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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증동

이 말은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뚫고 세상밖으로 나올려고 힘쓸 때에 어미 닭이 입부리로 꼭 쪼이면 병아리가 알 밖의 세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온다는 말입니다. 알 속의 병아리 처럼 학생들도 어둠 속 세계에서 밝고 넓은 세계로 나올려고 노력할 때 시기 적절하게 문리를 터 주는 스승의 혜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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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호(2017-08-09 08:45:25, Hit : 17, Vote : 5
 http://cafe.daum.net/jinjujunho
 매천록 서문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학문이 있어야 하니 국가의 대소(大小), 강약(强弱), 흥망(興亡)을 막론하고 학문한 사람이 없던 적이 없고, 학문을 하여 널리 통하면 신구(新舊)나 문질(文質)을 막론하고 그 학문이 쓰이지 않은 적이 없으며, 진실로 나라를 위해 죽었다면 성사(成事) 여부를 막론하고 후인(後人)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한일합병조약(韓日合倂條約)이 체결된 다음 해에 한국(韓國)의 오랜 친구인 김창강(金滄江)이 그의 친구인 황 열사(黃烈士)의 시문(詩文) 2권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서문(序文)을 부탁하고 또 열사의 평생 사적(事跡) 및 한일합병 이후 음독 순국(飮毒殉國)한 절의(節義)와 음독 직전에 지은 〈절명시(絶命詩)〉를 보여 주었다. 내가 그것을 살펴보고 나서 한국이 나라 꼴이 안 된 지 오래임을 더욱 믿게 되었으니, 황군(黃君)이 바로 학문을 한 그 나라 사람이 아니겠는가.

요즘 중국(中國)은 한창 세계 각국의 강약, 흥망에 대한 두려움에 몹시 불안하여, 전국(全國)의 열혈지사(熱血志士)들이 아낌없이 몸을 희생하여 정치 개혁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처음 무한(武漢) 지역에서 정치 개혁 투쟁을 일으킴으로써 그 바람이 전국에 확산되어 웅걸(雄傑)한 인사들은 마치 범이나 매처럼 강렬히 분발 도약하고 있고, 문인 학자(文人學子)들 또한 그 거사에 대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계획을 협찬해 오고 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거사를 진행해 온 이래 북쪽 조정〔北廷〕이 스스로 재앙을 초래한 것을 뉘우치고, 또 파병(罷兵)을 원하여 백성들의 결의(決議)를 들어줌으로써 대사(大事)가 성사될 날이 머지않았다.

한국은 옛날에 기자(箕子)를 봉(封)했던 나라로 본래 우리 복희(伏羲), 염제(炎帝), 황제(黃帝)의 후예이다. 한국의 학문 또한 중국에서 들어간 것인데, 학문이 오래됨에 따라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못하여 전국의 선비들이 문예(文藝)에만 지치도록 골몰하는 풍조 또한 중국과 똑같은 실정이다. 그래서 한국이 망하자 그것을 논하는 이들이 말하기를 “학문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학문이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한국이 망함에 따라 중국이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폐단이 같기 때문에 화가 장차 중국에도 미치게 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수년, 수십 년 사이에 중국의 시국을 걱정하던 인사들은 국운이 부진하여 금방 망하게 된 형편을 분하게 여겨 정권(政權)을 쟁탈하기도 하고, 요인(要人)을 남몰래 공격하기도 하고, 황 열사의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처사와 같이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은 사람들이 전후에 서로 이어졌으니, 그들은 모두 지략(智略)이 다하고 사태가 극에 달하여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사태를 열사(烈士)는 미처 듣지 못했으니, 가령 죽은 열사가 이제라도 그 사실을 듣는다면 아마도 고약 분발(鼓躍奮發)하여 이미 죽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대저 선비가 음혼(淫昏)한 강자가 선량한 약자를 전제(專制)하는 세상에 나서는 국사(國事)를 전혀 손쓸 방법이 없어 다만 시문으로 펼쳐 내서 자신의 뜻을 부치는 것이 구차히 벼슬길에 나가서 스스로 자신을 폄하(貶下)시키는 것보다 낫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 그리고 국가가 불행하여 종사(宗社)가 망했을 때에 이르러서는 안으로 권력이 없음을 헤아리고 밖으로 동지(同志)의 고단함을 상심하여 부득이 한번 죽음을 결단하여 후인(後人)들에게 충정을 호소하는 것이 구차히 생명을 부지하여 나라를 욕되게 하는 것보다 낫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 그러나 국제 정세를 정탐하는 사람은 오히려 부족한 형편이기도 하다.

아, 시문의 학은 진실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음독(飮毒)하거나 자문(自刎)하는 행위는 진실로 시국에 도움 되는 것이 없으니, 그의 처지의 불행함과 의지의 비참함을 그 누가 알겠는가.

또한 들은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시(詩)는 정(情)에서 우러나온 사물이요, 죽음은 지조의 종결처이며, 국가의 강약 흥망은 우연한 만남이요, 만남의 다행하거나 불행함은 시기이며, 다행하여 성사하거나 불행하여 성사하지 못하는 것은 자취인 것이다. 이를테면 처음 발동하는 것은 정이고, 그것을 성사시키는 것은 지조이며, 최후에 결단하는 것은 죽음인데, 시기는 항상 같은 시기만 만나는 게 아니요, 자취는 항상 같은 일만 답습하는 게 아니니, 진실로 정과 지조가 없어지지 않아서 그 이룬 것을 시기에 따라 사용한다면 반드시 다행함이 있을 것이다.

황군이 정과 지조를 한국 사람에게 남겼고 보면 황군의 죽음은 삶과 다름없고 그의 시 또한 영원히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창강(滄江)은 시문에 능한 분인데, 황군을 일러 시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데다 소식(蘇軾), 육유(陸游)의 시체(詩體)를 잘 배워서 청신하고 기발하고 풍부하고 웅건함을 고루 갖추었다고 말한다. 그의 시집(詩集) 간행에 부쳐 중화민국(中華民國) 무원 강겸은 서문을 쓴다.

신해년(1911) 11월 20일.




남산 ‘망초’길을 걸으며 국치를 생각한다(서울 엔)
구언(求言)하는 전지(傳旨)에 응하는 소〔應旨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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