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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증동

이 말은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뚫고 세상밖으로 나올려고 힘쓸 때에 어미 닭이 입부리로 꼭 쪼이면 병아리가 알 밖의 세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온다는 말입니다. 알 속의 병아리 처럼 학생들도 어둠 속 세계에서 밝고 넓은 세계로 나올려고 노력할 때 시기 적절하게 문리를 터 주는 스승의 혜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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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호(2017-11-09 13:03:26, Hit : 16, Vot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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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러시아 혁명에서 평화를 배우자

이번 11월에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된다. 정확히 100년 전에, 춥고 시무룩한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계사의 분수령이 되었던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사상 최초로 피억압 계층들을 기반으로 하는, 비시장적이며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는 대안적 미래를 지향하는 급진정파가 국가권력을 쟁취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볼셰비키들이 기대했던 세계혁명은 불발로 끝났고 신생 소비에트 공화국은 고립되었다. 레닌이 애초에 꿈꾸었던, 직접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들이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도 결국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역사적 흐름을 바꾸었다. 소련이 제공한 대안적 산업사회의 모델, 그리고 소련과 그 동맹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1945년 이후의 식민지 해방운동이나 쿠바, 베트남 혁명 등은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1920년대 초반부터 유입된 사회주의 사상은, 그때까지 복벽론(조선왕조 복구론)과 공화론의 대립으로 점철되었던 독립운동의 판세를 바꾸었다. 사회주의가 가장 대중적인 독립운동 세력이 되었고, 그 외의 정파들도 그 영향을 다분히 받았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지만, 임시정부의 건국강령(1941년)은 러시아 혁명,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를 명시한 바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제대로 이어받자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국민기업으로 만드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1917년 혁명 이후의 러시아와 박근혜 퇴진 이후의 대한민국의 상황이 다른 만큼 러시아 혁명 때의 정책을 그대로 오늘날에 적용하는 거야 불가능할 것이다. 온 나라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되고 대도시에는 기근이 임박하고 농촌에서는 지주의 토지를 하루빨리 무상몰수, 무상분배하려는 농민들이 지주의 저택에 방화를 하곤 했던 그 당시의 상황을, 사실 오늘날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보아도 본받을 만한 정책을, 혁명 시절에는 꽤나 많이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체제가 다른 타국들과의 공존공생과 평화를 위한 외교였다. 사실 평화 문제야말로 혁명 당시 러시아에서 민중과 엘리트 사이 갈등의 핵이었다. 민중은 3년 동안 지속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도살극에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전쟁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한데 우파나 중간파뿐만 아니고 혁명정당 안에서조차도 다수의 정치엘리트는 ‘조국 방위’의 입장에서 적국이었던 독일과의 즉각적인 평화협정 체결에 결사반대했다. 러시아 총인구의 3분의 1이 살았던 광활한 영토를 독일에 내주면서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조약을 맺은 레닌은 볼셰비키당 안에서조차도 동료들로부터 ‘역적’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데 그 조약이 체결된 8개월 후에는 독일에서도 1918년 11월 혁명이 일어나 조약은 무효화되고 독일 군대는 러시아 영토를 떠났다. 평화를 향한 외교로 레닌은 국제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로 추천됐으며, 국내적으로 전쟁을 혐오하는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러시아의 동맹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등의 정권들은 훼방공작과 무장간섭을 통해 평화협정을 방해했지만, 레닌은 평화외교를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평화외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부터의 탈퇴로 끝나지 않았다. 이 외교의 일차적인 대상은 바로 당시 세계 무대의 약자들이었다. 볼셰비키 정부는 상대방의 이념을 따지기 전에 일단 열강이라는 이름의 강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와 다른 세계 약자들 사이의 ‘공통분모’부터 모색했다. 예를 들어 일당 체제인 소비에트 러시아와 다당제 의회주의 국가인 바이마르 시대(1919~33) 독일은,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넘어 1922년부터 수교해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 치하의 터키는 공산주의에 적대적인 민족주의 국가였지만, 열강에 공동으로 맞서는 반제 전선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기에 소비에트 러시아로부터 영토적 양보를 받았으며 1930년대 말까지 대단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심지어 봉건왕국이었던 아프가니스탄과도 소비에트 러시아는 1919년에 일찌감치 수교하여 기술원조 등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에 맞선 아프가니스탄의 독립투쟁이 이념의 차이를 넘을 수 있는 공통분모였기 때문이다.
한데 주요 열강인 영국, 프랑스와도 소비에트 공화국은 1924년에 수교하여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 등 온건 사회주의자들을 상대로 정당외교를 펼쳤다. 단, 영국이 소비에트 공화국한테 인도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말 것을 요구했을 때는 그 요구를 거절했다. 마찬가지로 1925년에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했지만, 조선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지원도 지속되었다. 심지어 경성(서울)의 영사관을, 조선 사회주의자들에게 코민테른 지원금을 전달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평화와 협력을 지향하되 결코 혁명적 이상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탈린의 독재가 한창이던 1930년대 말 소련 외교에 제국주의적 특색이 다시 나타났지만, 그 전까지는 조선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도 평화 유지와 약자와의 연대 중심의 소련 외교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우리에게 레닌의 외교에서 배울 만한 교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민중의 평화 염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넘는 공존과 상생의 기술이다.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과 1920~30년대의 터키, 아프가니스탄 등은 소비에트 러시아와 이념이나 체제를 달리해도 그런 외교적 노력의 결과로 좋은 협력자가 될 수 있었다. 볼셰비키와 영국 노동당은 이념을 달리하는 부분은 적지 않았지만, 평화 지향 등을 특히 노동당 좌파와 공유할 수 있었던 만큼 꽤나 우호적인 관계 만들기도 가능했다.
오늘날 한국의 경우 같으면, 북한과의 차이가 크다고 해서 꼭 서로를 적대해야 하는가? 차이도 크지만, 그보다는 양쪽이 지불해야 하는 너무나 비싼 분단과 적대의 비용을 줄임으로써 초래되는 공동이익이 훨씬 크다. 북한 젊은이들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10년간의 징병의무를 짊어져야 하지만, 한국의 징병제도 젊은이들에게 다대한 피해를 준다. 군 사망사고가 경향적으로 줄어들고는 있지만 작년 한해만 해도 군 복무 중에 81명의 젊은이가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병영에서의 구타도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예비역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약 절반 정도는 폭력 행위를 경험했다고 한다. 북한이라고 해서 군에서 폭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증언들도 나온다.
상호 대치 상황이 주는 압박감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병영질서를 유지시키고 있다. 북한은 선군이라는 이름으로 군에 주안점을 두지만, 문재인 정부의 내년 국방예산도 9년 만에 가장 큰 폭(6.9%)의 증가율을 보인다. 북한은 의료부터 기본 인프라까지 다 추가투자를 필요로 하고, 한국은 복지예산이 태부족한데, 왜 하필이면 천문학적인 돈을 동시에 무기 경쟁에 낭비해야 하는가? 레닌 외교의 선례대로 과감하게 서로에게 접촉하여 군축을 논해도 되는 신뢰모드의 구축에 함께 돌입하면 양쪽에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레닌은 세계 무산대중, 식민지의 피억압 대중에게 호소하면서 독일과 같은 과거의 적을 친구로 만들 줄 알았다. 우리도 한반도에서의 평화, 공존, 군축 정책을 추진하면서 세계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다. 냉전과 신냉전의 최악의 피해자가 된 분단 한반도의 평화정책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면, 지금 트럼프의 호전적인 정책에 맞서서 투쟁하려 하는 미국의 많은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내리라 확신한다. 북핵 문제가 일본 극우들에게 이용되지만, 한반도의 평화모드는 일본의 군사화를 반대하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혁명은 폭력적 측면을 내포한다 해도 세계성과 평화 지향이야말로 바로 지금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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