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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증동

이 말은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뚫고 세상밖으로 나올려고 힘쓸 때에 어미 닭이 입부리로 꼭 쪼이면 병아리가 알 밖의 세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온다는 말입니다. 알 속의 병아리 처럼 학생들도 어둠 속 세계에서 밝고 넓은 세계로 나올려고 노력할 때 시기 적절하게 문리를 터 주는 스승의 혜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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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호(2018-01-01 22:01:35, Hit : 29,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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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 (논어 에세이)

지금도 기억이 또렷한데, 카를 야스퍼스의 책을 강독하던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독일어판을, 학생들은 영어판을 가지고 강독했다. 나는, 혀를 유난히 굴리며 영어 발음하는 이들을 꼴 보기 싫어하던 촌스러운 당시 대학생들 중 하나였다. 발음이야 그렇다 치고, 그래도 영어책은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수업을 수강했다. 어느덧 기말시험 때가 되었고, 시험 감독을 하러 들어온 선생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지금 군사독재 정권이 물러나야 한다고 한창 데모 중이지 않습니까. 군사정권의 수뇌들은 대개 사관학교 출신들이지요. 여러분들이 비판하는 그들은 사관생도 시절에 명예시험이라는 것을 치른다고 합니다. 시험 감독이 없더라도 자신들의 명예를 걸고 부정행위 없이 시험을 치른 뒤에, 스스로 답안지를 걷어 선생님에게 제출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군사독재 정권한테 물러나라고 비판하려 한다면 적어도 그들보다 명예가 낮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시험 감독 없이 명예시험을 치러봅시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열심히 시험 감독을 하시는 대신 창밖을 망연히 쳐다보며 한동안 서 있다가 급기야는 시험장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날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고, 선생이 되어 교단에 선 나는 이제 행정부서로부터 ‘교과목 필기시험 관리 강화 방안 이행 철저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관료적인 공문을 받는다. “이미 전해 받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제 날짜로 필기시험 관리감독과 관련해 교무처에서 추가 지침이 내려왔고…” 운운하는. 오늘날 대학은 시험 감독자의 위치는 물론 응시자 간의 좌석 이격 거리까지 관료적으로 지시하고 통보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며,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 대조를 해야 한다고 지시한다. 이러한 관료적 지시사항이 현장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대학도 점점 관료적인 지시가 당연한 공간이 되어간다.

사실의 기술인가? 규범적인 주장인가?
그러나 <논어>에는 행정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은 있어도 관료적인 지시나 행동을 권장하는 언명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일”(무위·無爲)을 종종 권장한다. 이를테면,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을 보라. “굳이 뭘 하지 않고도 다스림을 이룬 이는 순임금이로다. 무엇을 했는가? 자신을 공순히 하고, 바르게 남쪽을 바라보았을 뿐이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시험 감독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다보았던 선생님처럼, 순임금은 행정에 분주하지 않고 남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텍스트에서 이러한 묘사적인 서술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단지 사실을 기술하는 문장인지, 아니면 사실 기술의 형식을 빌려 규범적인 주장을 하는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순임금에 대한 묘사 역시, 모종의 원인에 의해 순임금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행동을 최소화하고 있는 순임금의 자세를 찬양하고 권장하는 것인지 판별해야 한다.

먼저 중국 진(晋)나라 채모(蔡謨)의 견해를 살펴보자. 채모의 집안은 경서 연구의 전통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는 그 집안에서 저술된 <논어석>(論語釋)이라는 책 제목을 기록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 책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다만 황간(皇侃)의 <논어의소>(論語義疏)에서 열 조항 정도 채모 집안의 논어 해석을 발견할 수 있다. 채모는 순임금에 대한 <논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그가 특히 주목한 점은, 같은 성군이라고 해도 왜 요임금과 우임금은 열심히 행동한 데 비해 순임금은 아무 일도 안 할 수 있었냐의 문제였다. “요임금이 무위가 불가능했던 것은 그가 대를 이은 전임자가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임금이 무위가 불가능했던 것은 그가 자리를 넘겨주는 후임자가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성인이 이어질 때, 순임금은 그 가운데서 요임금을 잇고 우임금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니 무엇을 새삼 하겠는가?”(堯不得無爲者, 所承非聖也. 禹不得無爲者, 所授非聖也. 今三聖相係, 舜居其中, 承堯授禹, 又何爲乎) 즉, 채모가 보기에, 순임금이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질서 있는 통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요임금에게 왕위를 이어받아 우임금에게 물려주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즉 전임자와 후임자가 모두 성인급의 훌륭한 이들이었기에 그는 중간에서 별다른 법석을 피우지 않아도 되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해석은 순임금의 무위를 특별히 찬양하거나 권하는 것이 아니다. 부산한 통치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역사적 경위를 설명할 뿐이다.
그러나 <논어>의 다른 구절들을 살펴보면, 위 구절을 규범적인 성격을 가진 언명으로 볼 만한 근거들이 있다. <논어> ‘자로’(子路)편에서 공자는 말한다. “자신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질 것이고,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이 구절은 무위의 상태가 규범적으로 바람직한 상태임을 비교적 분명히 말하고 있다. 명령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세계….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치킨이 배달되는 세계,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날씬해지는 세계, 양념을 찍거나 붓지 않아도 탕수육이 저절로 입에 들어오는 세계라니, 이것은 복음이 아닌가. 우리는 내심 매사를 귀찮아하고 있지 않나. 누가 그랬던가,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은 오직 “밍기적”뿐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밍기적 유토피아”가 실현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게으른 사람들에게 큰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사형통하는 세계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사형통하는 세계인가.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
위 <논어> 구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령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명령이 행해진 것임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바른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무위의 조건에 대해 비교적 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논어> ‘위정’(爲政)편의 첫 문장이다.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북극성은 자기의 합당한 자리에 있되, 뭇별이 그것을 둘러싸고 도는 것에 비유된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즉 행동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질서 있는 통치를 구현하려면, 덕이 필요하다. 여기서 덕을 구현하며 고요히 군림하는 군주는, 티 에스(T. S.) 엘리엇의 표현을 빌린다면,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훌륭한 덕을 가진 군주라고 한들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세상 일이 잘 돌아가는 것일까? 엘리엇조차도, 회전하는 세계의 중심점은 정지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기에 고정된 것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노래했다. 이런 점에서 도조 이치도(東?一堂)의 <논어지언>(論語知言)의 설명은 시사적이다. 그는 당시 천문학 지식을 활용하여, 북극성이 결코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북극과 북극성의 자리는 각도상 1도 반 떨어져 있으며, 북극성 역시 다른 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리를 축으로 하여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 회전 폭이 작아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今按北極距北辰一度半. 有不動處, 是北極也. 北辰亦與衆星共旋轉. 而其所旋轉, 在距天樞一度半間. 故雖旋轉, 猶居其所也) 즉, 덕을 가진 군주마저도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앞서 언급한 순임금에 대한 구절 역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대한 묘사는 아니었다. “자신을 공순히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고, 바른 방향(군주의 경우, 남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무위란 상대적인 침묵일 뿐, 강제적이고 과장되고 폭력적인 행동이 아닐 뿐, 행동의 완전한 침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명시적으로 관료제 옹호하지는 않아
따라서 덕을 가진 군주 역시 그 덕을 표현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긴 해야 한다. 적어도 남쪽으로 난 창문을 바라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논어>에 따르면 군주가 해야 하는 대표적인 일은 의례의 수행이다. 이러한 무위와 의례의 이상이 동아시아 특유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인류학자 클리퍼드 거츠가 발리의 국가를 설명하면서 한 다음과 같은 묘사를 보라. “궁정의례에서 왕이 한 명의 행위자로 참여할 때 왕이 하는 일은 오롯이 부동자세를 취함으로써 엄청나게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는 곳의 중심점에 한없는 정적을 투사하는 일이었다. 왕은 계속해서 여러 시간 동안 공허한 표정으로, 시선은 더욱 공허하게 둔 채 엄격하게 형식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앉아 있었다.” 거츠는 침묵하는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례의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관료제 없이도 발리에 고도의 정치질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논어>에는 행정의 필요를 인정하는 발언은 있어도 명시적으로 관료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찾기는 어렵다. <논어> 주석사의 큰 아이러니는, 바로 행동의 침묵을 설파한 <논어>의 구절이 관료제의 적극적인 운용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재해석되어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오규 소라이(荻生?徠)는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 덕 있는 이들을 등용했기에 수고롭지 않게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秉政而用有德之人, 不勞而治) 그리고 다산 정약용 역시 얼핏 무위처럼 보이는 통치는 그 일을 대신 잘해줄 수 있는 관료를 기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해석했다. “순임금이 22인을 얻어 그들에게 각각 직책을 맡겨 천하가 이로써 잘 다스려졌다. … 그리하여 국가는 인재를 얻지 않을 수 없음을 극진히 말하였다.”(舜得二十二人, 各授以職, 天下以治 … 所以極言人國之不可不得人) 이 아이러니는 공자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와 후대 주석가들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정치공동체의 모습이 달랐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후대 주석가들의 이러한 해석들은 공자가 꿈꾸었던 국가보다는 주석가들이 꿈꾸었던 국가의 모습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 속에 (논어 에세이)
그냥 살아갈 수 있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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