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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증동

이 말은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뚫고 세상밖으로 나올려고 힘쓸 때에 어미 닭이 입부리로 꼭 쪼이면 병아리가 알 밖의 세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온다는 말입니다. 알 속의 병아리 처럼 학생들도 어둠 속 세계에서 밝고 넓은 세계로 나올려고 노력할 때 시기 적절하게 문리를 터 주는 스승의 혜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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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호(2018-01-01 22:04:18, Hit : 130, Vote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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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 속에 (논어 에세이)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은 순임금을 가만히 있으면서도 정치를 잘해낸 성인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공자 본인 역시 가만히 있는 데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논어> ‘향당’(鄕黨)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마을 사람들이 (좋은 신을 맞이하고자 악귀를 몰아내는) 나례 예식을 행할 때, (공자께서는) 조복을 입고 동쪽 층계에 서셨다.”(鄕人儺朝服而立於?階) 여기서 말하는 나례(儺禮)의 성격에 대해서는 주석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선조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했다는 취지의 주석(공안국·孔安國)이나, 놀이에 가까워져 경건함이 결여되었다는 취지의 주석(주희·朱熹)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 예식은 꽤나 시끄러운 스펙터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들 그렇게 시끄럽게 예식행위에 종사하고 있을 때, 공자는 경건한 자세로 동쪽 층계에 서 계시기만 했다는 것이다. 예복을 잘 차려입고, 그러나 별달리 과장된 행동은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던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시청 광장에 모여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을 기원하며 합창하고 북을 두드릴 때, 예복을 차려입고 시청 건물 동쪽 층계에 조용히 서 있는 이상한 사람처럼.

공자의 길을 따른다고 자처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처럼 옷을 잘 차려입고 가만히 있는 일의 달인들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묵자> ‘공맹’(公孟)편에 나오는 공맹자(公孟子)라는 인물이 그렇다. 공자의 재전 제자라고 알려진 그는, 군자란 모름지기 손 모으고 기다리는 법이라고 말한다.(君子共己以待) 유별난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 이것은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 에너지를 방전하지 않기 위해 흔히 취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고기를 자주 먹어주어야 한다. 공자나 그의 제자들이 정말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공자는 실로 고기를 주지 않는다고 노(魯)나라 사구(司寇) 직책을 관두고 떠나버렸다는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不知者以爲爲肉也) 이러한 이미지를 종합해보면, 남들이 떠들썩하게 움직일 때, 옷매무새나 잘 가다듬고 가만히 있는 사람, 그러나 고기에 관해서는 남다른 애착을 가진 사람이 머리에 그려진다. 일상복으로 입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멋지고 장식적인 예복을 좋아하는 사람, 그러나 체력이 약해서 잘 움직이지 않고 고기를 탐하는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상상해본 모습이 과연 그 당시 공자나 그의 추종자들을 공평하게 묘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묵자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에게 퍼붓는 묵자의 다음과 같은 비난을 보라. “예악을 번다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 게으르고 오만한 데서 만족감을 느끼고, 식탐을 부린다.”(繁飾禮樂以淫人 (…) 安怠傲貪于飮食, <묵자> ‘비유’(非儒)편)

묵자가 상상하는 인간은 능동적 존재
묵자가 보기에, 인간은 저렇게 수동적으로 살아서는 안 되고 열심히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능동적으로 사는 것인가? 일단 신에게 열심히 갈구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신으로부터 얻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과 소통하는 예식은 묵자에게도 중요하다. 묵자는 예식을 위해 물자를 많이 쓰는 것을 비판했을 뿐, 예식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러한 묵자의 태도마저도 수동적이라고 간주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그것은 인생에 대한 너무 수동적인 태도가 아닌가. 인간이 자연을 개조할 수 있으리라 한때 믿었던 “근대인”이 보기에, 묵자는 초인간적 존재인 신의 가호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공자 추종자만큼이나 수동적인 것이 아닐까.
그러나 묵자의 입장은 그 나름 인간사를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매우 강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그들에게 신이란 자판기와도 같은 존재이다. 열심히 기도하면, 그에 대한 어김없는 보답을 기대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신이다. 그렇다면 비록 초인간적 존재의 매개를 거칠지언정,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묵자가 상상하는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결핍에 속절없이 굴복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신에게 갈구하고, 마침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묵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이들에게 수동적인 운명론자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공맹자는 묵자에게 서늘하게 대답한다. “귀신(귀와 신)은 없다.”(無鬼神) 그러고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군자는 반드시 제사와 예를 공부해야 한다.”(君子必學祭祀)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귀신이 없다는 주장도 황당한데, 귀신이 정녕 없다면 제사나 예식은 도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서 묵자는 대꾸한다. “귀신이 없다면서 제사와 예를 공부하는 것, 이것은 손님이 없는데 손님 맞는 예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물고기가 없는데 그물을 만드는 것과 같다.”(執無鬼而學祭禮, 是猶無客而學客禮也, 是猶無魚而爲魚?也)

신이 없는 중국 사회는 수평적 구조
자식이 고시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추운 겨울에도 매일 새벽에 치성을 드리러 가거나 기도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 빙판길을 조심조심 걸어가 성소에 당도하여, 차가운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 “우리 자식이 고시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이는 거다. “신은 없어요.” “네?” 놀라 기도를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뜬 그에게 재차 말하는 거다. “신은 없다니까요.” 어안이 벙벙해져 자신이 기도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그에게 심드렁하게 한마디 덧붙이는 거다. “그래도 새벽기도는 계속하는 게 좋을 거예요. 신이야 있든 없든.”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그는 그곳이 성소라는 사실도 잊은 채 멱살을 쥔다.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멱살 잡은 손을 뿌리치고 여전히 심드렁한 어조로 말하는 거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려고 하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고, 또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다 보면 아침 운동도 되고, 그렇게 규칙적으로 살다 보면 건강하게 되고, 부모가 건강하면 자식이 부모 걱정할 일도 없어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되고, 공부에 전념하다 보면, 고시에 붙게 되고, 뭐 그런 거죠. 그러니까 신은 없지만 새벽기도는 계속하세요.”

공맹자도 바로 이런 식으로 말한 거다. 사람들은 신에게 뭔가 얻기 위해 기도하고 전례를 행하지만, 거기에 응답할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예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예를 통해서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거라고. 이런 취지로 공자의 가르침을 해석한 것은 그 옛날의 묵자나 혹은 묵자가 묘사하고 있는 공맹자뿐이 아니다. 일본 동양학 연구의 산실인 동양문고의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식민사학자로 알려진 동경대학 교수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1865~1942) 역시 <국체(國體)와 유교(儒敎)>라는 저서에서, 종교성의 결여야말로 중국을 설명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취지에서 시라토리는 <논어>는 신의 부재와 아울러 인간관계를 강조한 저작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보기에, 신이 없다는 것은 충성을 바칠 대상이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한 중국 사회는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게 마련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그러나 과연 공자가 신의 존재를 부정했을까? <논어>에 신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구절은 없다. 단지 <논어> ‘옹야’(雍也)편에서 “귀신을 공경하되 거리를 두라”(敬鬼神而遠之)고 말했을 뿐이다.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먼저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둘 방법은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라고 말하는 것은, 애인이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애인과 거리를 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애인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일단 애인이 있어야 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신의 존재를 인정해서 그에게 원하는 바를 갈구하는 입장이나,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은 나머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 강력한 존재에게 이끌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면, 탄원의 대상으로든 원망의 대상으로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상대로 바로 옆에 모시게 된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남편을 잃은 지 석달 만에 외아들마저 잃게 되자, 십자가를 내동댕이치고 하느님을 원망했으며, 스스로 미치지 않는 게 저주스러웠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렇게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공자를 무결점의 인간으로 만들려는 열망
그렇다. 인간은 허약하므로 무언가 부여잡고 삶을 지탱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혼신을 다해 사랑하고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죽거나, 미치거나,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하늘이 무엇을 말하던가?(天何言哉, <논어> ‘양화’(陽貨)편) 신이 침묵할 때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 공자에 따르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 들지도 말고, 신과 거래하려 들지도 말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들지도 말고, 완전히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도 말고, 신을 무시하지도 말고, 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고, 신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간에게 허여된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다.

신과 거리를 둔다고 해서, 공자가 기도를 게을리한 사람이었을까? 공자의 병이 위중해지자, 제자가 신에게 기도하기를 청한 적이 있다. 그때, 공자는 짧아서 그 뜻을 혜량하기 어려운 한마디 말을 남긴다.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丘之禱久矣, <논어> ‘술이’(述而)편) 이것은 신에게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기도해왔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신에게 기도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이야기일까? 조선 후기의 사상가 송시열은 <논맹혹문정의통고>(論孟或問精義通攷)라는 저서에서 공자를 이상적인 성인으로 간주한 나머지, 공자는 과오가 없었기에 새삼 기도할 일이 없었다는 취지의 기존 해석을 받아들인 바 있다.(夫禱者, 悔過遷善以祈神之祐也, 聖人未?有過無善可遷, 故曰丘之禱?矣) 그러나 공자를 무결점의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후대 사람들의 열망일 뿐, 나는 오히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황동규의 시 ‘기도’의 마지막 구절을 상기한다.

깃대에 달린 깃발의 소멸을
그 우울한 바라봄, 한 짧고 어두운 청춘을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 속에




원체 말이 없던 선생이 대답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논어 에세이)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 (논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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