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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증동

이 말은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뚫고 세상밖으로 나올려고 힘쓸 때에 어미 닭이 입부리로 꼭 쪼이면 병아리가 알 밖의 세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온다는 말입니다. 알 속의 병아리 처럼 학생들도 어둠 속 세계에서 밝고 넓은 세계로 나올려고 노력할 때 시기 적절하게 문리를 터 주는 스승의 혜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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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호(2018-01-01 22:07:54, Hit : 3, Vote : 1
 http://cafe.daum.net/jinjujunho
 원체 말이 없던 선생이 대답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논어 에세이)

‘나무 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 /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기형도, ‘대학시절’)

이것만 읽어서는 많이 부족하니까. 손에 들었던 신입생 교양영어 교재 <후레쉬맨 잉글리쉬>를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이번 학기에는 이것도 함께 읽기로 합시다. 플라톤의 <국가>(the republic) 영역본을 들어 올렸다. 이것이 선생에 대한 내 첫번째 기억이다. 그 학기 교양영어 수업은 어려웠다. 두 사람이 B- 학점을 받았고, 그것이 전체 최고 점수였다. 그 시절은 많은 것이 어려웠다. 날아온 화염병 하나로 도서관 앞 향나무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고 눈앞에서 재가 되었다. 그래도 선생의 수업은 어려웠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시절, 한국의 대학에서 강의에 정성을 쏟는 선생은 드물었다. 정치적인 상황을 이유로, 혹은 대학 축제를 이유로 휴강이 잦았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급박한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수업에 종종 나오지 않았고, 한 학기에 한 권의 외국어 책 읽기도 버겁다고 칭얼댔다. 선생들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결강을 일삼았고, 실러버스(강의안내서)가 없는 것은 물론, 이번 학기에는 무엇을 읽어야 할지 어떤 리스트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말 페이퍼를 부과하는 선생도, 그 페이퍼를 첨삭해주는 선생도 물론 드물었다.

이 사람은 다르다. 선생을 알아본 나는 학교 앞 서점에 가서 그의 저서를 샀다. 선 채로 서문을 읽었다. 어려웠다. 그때는 행간에 숨어 있던 한나 아렌트나 메를로퐁티의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행동에 대한 명제들은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돌이켜보면 굉장한 만남이었다. 사상과 역사와 고전을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왔으나, 많은 수업들 중에서 끝내 길을 찾지 못하던 대학생에게 선생은 그렇게 홀연히 나타났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선생은 궁핍한 시대의 홀로 있는 지성처럼 보였고, 따라서 학교를 떠날 때까지 선생의 다른 수업들을 좇아 들었다. 당시 학생들은 대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이나 사회주의 관련 일본 책들의 조악한 번역서를 집중해서 읽었을 뿐, 나머지 책들은 쉽게 버려지던 시절이었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기형도, ‘대학시절’) 선생의 수업은 플라톤에서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서를 요구했다. 어느 날 수업 이외에는 원체 말이 없던 선생을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역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합니까?” “허허, 그걸 나에게 물으려고 왔습니까?” 선생은 연구실 문을 두드린 나에게 의자를 권했다. 선생은 대답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때는 마침 입대 전, 시간이 황망하게 흐르던 시절이었고, 주변 선후배들이 모여서 <자본론>, <반듀링론>,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독일 이데올로기> 등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죽 읽어 나가던 참이었다. 군대 가기 직전에 그 책들을 읽어 나간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좀더 넓은 정치경제학의 맥락을 알 수 있게끔 프랜시스 허치슨, 애덤 스미스, 프랑수아 케네, 존 스튜어트 밀, 장 보댕, 베르나르도 다반차티, 장 바티스트 콜베르, 리처드 캉티용, 부아길베르, 튀르고의 정치경제학 관련 서적, 그리고 각종 중상주의 팸플릿까지 함께 읽었다면, 한층 넓은 시야와 좀더 유연한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이미 파리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는 미셸 푸코가 유럽의 다양한 정치경제학 전통을 소화해서 <안전, 영토, 인구>의 내용을 강의한 지 오래였는데. 선생은 마르크스뿐 아니라 다른 사상가의 저작도 읽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당시 한국의 선생과 학생들은 대체로 지성사적 맥락에 무지했다.

나는 결국 그 무지를 떨치지 못한 채 군대에 갔다. 어느 날 아침 구보를 마친 훈련병들을 군대 훈련소 교관이 불러 모았다. “전달할 게 있다.” 교관의 입을 일제히 바라보고 있는 훈련병들에게 교관이 말했다. “소련이 망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어쩌고 하더니 결국 망했구나. 군복무 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그 말을 들은 지 너무 오래지 않아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함께 읽던 선후배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종적이 그냥 묘연한 사람도 있었고, 철석같이 믿었던 이데올로기가 의심받자 정신치유의 여행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돈 벌기 위해 입시 학원을 차리려고 계획 중인 사람도 있었고, 취직이 불투명해지자 느닷없이 신경질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 /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기형도, ‘대학시절’)

사상가는 당대의 지적 담론의 소산
현실 사회주의는 몰락의 길을 가고 있었지만 동양고전을 읽기에는 좋은 시절이었다. <행복한 책읽기>에서 문학평론가 김현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 사오 년 전쯤, 거의 모든 것을 팽개치고 집에 들어앉아, 노자와 장자만 읽던 내가 생각난다. 나는 버렸고, 그리고 이삼 년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조금씩 기력이 되살아났다. 지금도, 그때의 그 무기력증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삶에는 지름길이 없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신적·지적 시민(citizen)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던 당시의 나는, 선생을 찾아가 다시 물었다. “동양이나 한국의 사상도 공부할 만합니까?” 선생은 말했다. “충분히 공부할 가치가 있다.” “논문을 쓰느라 동양과 한국의 사상을 주제로 삼은 여러 연구서들을 읽어보았으나 대개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이래도 이것이 공부할 만한 것입니까?” “유학을 가게. 그곳에 가면 미국 사람뿐 아니라 중국 사람, 일본 사람, 유럽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달리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알 수 있을 걸세.”

어떤 사상가를 혜성처럼 나타난
성인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악의 근원처럼 간주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게 된다
(…)
숭배의 대상이든 혐오의 대상이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느닷없는 천재나 악마는 사실 드물다

그리하여 해외로 유학을 나와 보니, 학자들이 사상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그들 상당수는 과거의 사상가들을 경천동지의 혜안을 가진 고독한 천재나 지성으로 사모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열정적으로 전개된 세계 학계의 사상사 연구 흐름은 천재적이고 뛰어난 사상가로 알려져 있던 과거의 사상가들이 황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난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지적 담론의 소산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명성을 영속시킨 힘도 단순히 그들의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후 전개된 여러 역사적인 맥락 때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인류의 정신을 새롭게 열어젖힌 천재로 알려진 니콜로 마키아벨리나 존 로크도 그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동아시아 사상 연구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흐름이 있었다. 당시 영어권에서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그토록 숭배했던 주희 같은 인물도 단순히 천재적이고 위대한 사상가라기보다는 당대의 문제에 반응했던 여러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연구하는 흐름이 새롭게 학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사람과 함께 구성한 담론의 일부로 과거의 사상을 바라보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읽을 때 관련 정치경제학 저작과 팸플릿까지도 폭넓게 읽을 필요가 있듯이, 좀더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하다. 어떤 사상가를 혜성처럼 나타난 성인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악의 근원처럼 간주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사상은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것만 발견하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숭배의 대상이든 혐오의 대상이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느닷없는 천재나 악마는 사실 드물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상당한 거리
마키아벨리와 로크처럼, 그리고 남송의 주희처럼, 당대의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시대의 사상가는 그들이 처했던 지적 맥락을 재구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공자처럼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이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접근법을 취하기 쉽지 않다. 당대의 맥락을 구성할 만한 언설 자료가 태부족인 것이다. 유럽 사상사의 경우에도, 플라톤이나 파르메니데스보다는 마키아벨리나 로크의 사상적 맥락을 재구성하는 게 훨씬 시도해봄직한 일이다. 적어도 자료는 풍부하니까.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 구분에 의해 공자를 흔히 전국시대 사상가들과 더불어 다루는 일이 흔하지만, 공자가 활동한 춘추시대(770~476 BC)는 전국시대(453~221 BC)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춘추시대의 관련 자료는 전국시대 사상가들의 자료에 비해서 훨씬 소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에 담긴 내용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의 본격적인 사상 텍스트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도, 학자들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관련 자료를 확보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일견 사상 텍스트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국어>, <좌전>, <전국책>, <서경>, <시경> 등에서 관련 자료를 추출해낸다. 그 밖에도, <춘추사어>와 같은 마왕퇴(馬王堆) 출토 백서(帛書)가 도움을 준다. 그리고 <후마맹서>나 <온현맹서>와 같은 맹약 텍스트들, 청동기 및 청동기에 주조되거나 새겨져 있는 텍스트들(명문·銘文)로부터 당대의 언설을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대화편뿐 아니라 아테네 상류층이 민중을 대상으로 해서 행한 아티카 연설문(Attic oratory)도 살펴볼 필요가 있듯이. 그 밖에 한대(漢代)의 사상 텍스트에도 그 이전 정치가들이나 사상가들의 문장이 실려 있으므로, 적절한 사료 비판을 통과하면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이 <논어>에 담긴 생각의 역사적 맥락을 재구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렇게 해서 드러난 춘추시대의 모습은 <논어>에서 드러난 공자의 입장 역시 당대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앞으로 살펴보겠듯이, 공자는 도대체 예상할 수 없었던 발언을 갑작스럽게 해낸 천재가 아니라, 이미 선례가 있는 입장이나 경향을 나름대로 소화해낸 사람이었다.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 보면, 공자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했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언젠가부터 대학시절의 선생이 고독한 천재라기보다는 궁핍한 시대에 살면서 마주한 현실의 문제와 고투했던 당대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처럼.




사람은 상하지 않았나 (김동춘 칼럼)
언제나 거두소서, 당신의 울울한 적막 속에 (논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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