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00선

1. 전환기의 좌절과 희망

우리가 흔히 개화기(開化期)라고 부르는 시기는 보통 1870년대∼1910년대를 말하지만, 개화기의 문학은 이보다는 조금 늦게 1890년대 이후 성립된다. 그 내용에서 개화기의 현실 인식을 담고 있는 개화기 문학은 산문에서는 역사·전기 문학과 이른바 신소설류가 그 중심이 되고, 시가에서는 전통 시가의 형식을 계승한 개화 가사, 개화기 시조와, 외래 문화의 영향으로 새로 소개된 시형(詩形)인 창가와 신체시가 그 중심을 이룬다.

개화 가사와 개화기 시조는 공통적으로 개화 의식에 대한 비판적 경계심이 그 중심 주제를 이루면서 작가도 봉건적 인물이거나 미상인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창가와 신체시는 개화기의 신흥 문물에 대한 찬양과 진취적인 기상을 드러내는 전문적 작가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창가와 신체시는 개화기에 활발하게 설립된 각종 학교의 교가와 응원가, 그리고 기독교의 찬송가와 서양식의 행진곡 등의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아 성립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대의 가사와 시조, 그리고 민요의 형식도 동시에 존재하고 그 어떤 하나의 형식이라고 볼 수도 없는 이른바 자유시형을 지닌 시가도 다수 발표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개화기 시가의 어떤 작품을 특정한 한 형식에 담아 두거나, 최초의 신체시 아니면 최초의 자유시 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올바른 작품 이해의 방법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1910년대의 시는 1919년 일대 전환을 이룬다. 1919년 1월 김동인과 주요한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창조}는 최초의 근대 문예 동인지로서 자각적인 문학 활동으로서의 시와 소설을 다수 싣고 있으며, 1919년의 3·1 운동의 실패는 때마침 유행하던 세기말적 풍조와 맞물려 많은 지식인 시인으로 하여금 허무와 좌절을 읊조리게 하였던 것이다. 근대 의식이 개인의 주체 의식의 확보를 전제로 한다고 할 때, 1920년대의 근대시는 이러한 비관적 주체 의식하에서 출발하며, 구체적으로는 {백조}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퇴폐적 낭만주의가 그 대표적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1920년대 초의 허무와 좌절은 곧이어 등장한 김소월과 한용운에 의해 단순한 허무와 좌절이 아닌 새로운 차원으로 극복·승화되기에 이른다.

김소월은 김억·김동환·주요한 등과 함께 '민요조 서정시[민요시]'를 다수 발표한다. 민요조 서정시란 민요적인 3음보의 율조를 기본으로 하고, 설화적인 소재를 취급하며, 향토성 짙은 서정을 노래하는 시를 말한다. 김소월은 이러한 민요조 서정시를 창작하면서도, 정형적 율조에만 머물지 않으면서 개인의 비애를 넘어서는 민족적 정한을 노래함으로써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일급 시인으로 떠오른다. 그에 의한 민요조 서정시는 당대의 억눌린 식민지 정서를 해소[카타르시스]해 줌으로써 무기력한 지식인의 자기 토로(吐露)의 현장으로부터 시의 본래적 존재 의의를 정립시켜 줄 수 있었다.

한용운의 등장은 훨씬 더 이채로우며 암흑 속의 등불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선 그의 이력에서 보듯 민족 지사이자 불교 운동가로서의 그의 시작(詩作)은 단연 주목받을 만한 것이지만, 그보다는 그의 시가 단순한 관념의 표출이 아닌 정제된 한국어의 갈고 닦음의 노작(勞作)이라는 점,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습작이나 추천의 흔적을 보이지 않은 채, 시집 {님의 침묵}으로 홀연히 문단에 등장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에 실려 있는 모든 시가 전래의 한국시가 보여 준 그러한 낭만적 애상의 정조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새로운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용운의 등장은 한국 근대시사의 획기적인(epoch making) 사건이었다. 이러한 한용운의 시 세계는 바로 한국 근대시의 새로운 전개를 알리는 서곡으로, 그로 말미암아 한국의 근대시는 한 차원 높아진 형이상학의 세계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1920년대의 시는 초기의 허무와 좌절에서부터 김소월과 한용운에 의해 새로운 희망과 의지의 전기(轉機)를 맞게 된다. 그런 한편으로 이러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울분을 적극적인 저항의 주제로 표현해 내는 일군의 시인들을 우리는 만나게 된다. 그 자세한 모습은 다음의 제2장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최남선(崔南善)

대몽최(大夢崔), 공륙(公六), 육당(六堂), 일람각주인(一覽閣主人), 한샘

1890년 서울 출생

1904년 일본 동경부립 제일 중학(東京府立第一中學) 입학, 2개월만에 귀국

1906년 와세다(早稻田) 대학 고등사범 지리역사학과 입학

1908년 종합 월간지 {소년} 창간

1914년 종합 월간지 {청춘} 창간

1919년 3·1 운동시 <독립 선언서> 기초. 체포되어 다음해 출옥

1922년 {동명} 발간

1938년 만주 신경(新京)에서 {만몽일보사(滿蒙日報社)} 고문 역임

1949년 해방 후 친일 반민족 행위로 기소, 수감되었다가 병으로 보석 출감

1957년 사망

시조집 : {백팔번뇌(百八煩惱)}(1926)



근대 잡지의 효시인 {소년} 창간호 권두시로 발표된 이 작품은 서구 자유시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최초의 신체시(新體詩)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전대(前代)의 고전시가 형식인 3·4조 내지 4·4조의 엄격한 율격을 깨뜨렸지만, 각 연의 대응되는 행의 자수(字數)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창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연씩 떼어놓고 볼 때는 정형적 자수율을 전혀 갖지 않은 자유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아울러 독자에게 바다의 웅대함을 느끼게 하는 '처……?썩, 처……?썩, 척, 쏴……아'와 같은 의성음(擬聲音)까지 사용하는 파격적 (破格的) 리듬을 창조한 점에서는 근대적 성격을 어느 정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소년}지 창간 당시, 불과 17세이던 육당은 잡지명을 의도적으로 {소년}으로 택하여, 전통 문화와 고유 사상이 몰락해 가는 파산(破産) 직전의 국운(國運)의 현실에서, 조국의 희망과 새 시대의 상징으로서 소년이 나아가야 할 지표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도 전래의 사고 관습에서 거의 제외되었던 소년과 바다를 함께 내세우고 대조시켜 망망대해에 도전하는 젊은이의 씩씩한 기상을 고무하는 내용을 역설함으로써 힘과 용기를 잃은 소년들에게 애국적 포부와 미래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모두 6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는 내용상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부터 5연까지의 첫째 단락은 '바다의 웅대함'을 노래하고 있으며, 둘째 단락인 6연은 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소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읊고 있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권력이나 세속적 부귀 영화에 굴하지 않는 존재를 비유하고 있으며, 순진 무구(純眞無垢)한 소년들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들이 바다와 같은 웅대한 포부를 갖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렇게 바다는 새로운 세계와 문명 개화, 무한한 힘과 새로움의 창조 능력을 상징하고 있으나, 소년과 바다가 지극히 화해 관계로만 놓여 있어 육당이 의도하고 있는 힘과 순결성이 방향을 잃고 있다. 또한 계몽주의적 낙관론이 너무 짙게 깔림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지적과 함께 최초의 신체시가 아니라는 비판, 그리고 '바이런'의 시, <차일드 헤롤드의 순례>의 모방작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지만, 이 시가 당시 국민적 계몽시로 등장하여 우리 현대시에 끼친 공로만큼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 시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통해 제기된 우리 시가의 근대성 획득 문제가 그대로 대두되고 있는 작품으로, 1·2연의 자수율이 동일할 뿐 아니라, 표현도 진부한 설명의 차원에 머물었으나, 시적 발상과 행간의 처리 등에 있어서는 전대에 비해 한결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분히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의 이 시는 1연에서는 꽃을 즐겨 맞는 이유를, 2연에서는 꽃을 즐겨 보는 이유를 노래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꽃을 즐겨 맞는 이유는 '아리따운 태도'와 '향기로운 냄새'라는 꽃의 표면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더운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꽃의 내면적 의미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꽃은 '칼날 같은 북풍을 더운 기운으로써' 대신해 주고, '인정 없는 살기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주는 존재로서 따스한 기운과 깊은 사랑으로 우주 만물을 소생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꽃을 즐겨 보는 이유는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부귀 기상 나타낸 성한 모양'이라는 꽃의 순간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씨 열매'가 표상하는 꽃의 구원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꽃의 두가지 속성, 즉 '아리따움'·'향기로움'·'평화로움'·'부귀함' 등이 갖는 현상적 아름다움과 '더운 기운'·'깊은 사랑'·'씨 열매' 등이 갖는 본질적 아름다움 중에서, 본질적이고 심층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꽃이 새로운 서구 문명을 상징하고 있다면, 이 시의 주제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참다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화라는 거센 물결에 편승하여 여과 없이 유입되고 있던 서구 문명에 대하여 시적 자아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최상급의 수식어로써 예찬하고 있다. 아울러 서구 문명의 수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는 비주체적, 비역사적 시대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육당이 가지고 있던 현실 인식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잣대요, 육당을 위시로 한 그 당시 개화론자들의 한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점이라 하겠다.

* 시적 자아(The Poetic I) : 시 속에서 시인의 서정을 드러내는 인물로서 시인과 세계를 매개하는 주인공이 된다. 서정적 자아라고도 하며, 시인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가공의 존재로서 시적 화자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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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경서학인(京西學人), 고주(孤舟), 보경(寶鏡), Y생, 외배, 장백(長白),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春園), 향산광랑(香山光郞)

189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10년 일본 메이지 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1916년 와세다(早稻田) 대학 철학과 입학

1917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 연재

1919년 <2·8 독립 선언서> 기초 후 상해로 탈출.

상해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 주간으로 활동

1921년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 등에서 언론 활동

{개벽}에 <민족 개조론>을 발표하여 큰 물의를 일으킴.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와 함께 투옥

1939년 조선 문인 협회 회장 역임

1950년 6·25 때 납북


민족주의에 입각한 계몽적 문학관으로 일관했던 춘원의 문학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이 작품은 비둘기를 소재로 하여 죽은 딸아이에 대한 슬픈 기억을 그린 2수의 연시조로 300편이 넘는 그의 많은 시가 중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느 봄날 아침, 작가는 비둘기가 되고 싶다던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저 새가 혹시 아이의 혼령이 현신(現身)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진한 육친의 정을 느끼고 있다. 병실 창가로 날아들던 비둘기를 바라보며 그 비둘기처럼 건강한 삶을 갈망하던 딸아이의 모습과, 일년 전 아이의 임종을 지켜보던 가슴 저린 아픔들이 아침에 듣게 된 비둘기 울음 소리와 더해져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봄의 생동감과 아이의 죽음을 대조시키는 방법으로 자신의 슬픈 마음을 강조하는 한편, 두 수의 마지막을 '-더니'로 끝맺음으로써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과 그리움을 간신히 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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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한(朱耀翰)

송아(頌兒), 송아지, 송생(頌生), 낭림산(狼林山)

1900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12년 평양 숭덕 소학교 졸업

1918년 일본 메이지 학원 중등부 졸업

1919년 시 <에튜우드>를 {학우(學友)}에 발표

문학 동인지 {창조} 동인

1925년 중국 상해 호강(扈江) 대학 졸업

1929년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논설위원

1933년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전무

1945년 해방 후 문단 활동 중단

1980년 사망

시집 : {아름다운 새벽}(1924), {삼인(三人) 시가집}(공저, 1929), {봉사꽃}(1930)


이 시는 3·1 운동이 일어나기 두 달 전, <불놀이>를 발표하기 한 달 전인 1919년 1월, 일본 교토(京都) 유학생회 기관지인 {학우}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원래 <에튜우드>라는 큰 제목 아래의 다섯 작품 중의 한 작품으로 발표되었다가, 후에 시집 {아름다운 새벽}을 간행하면서 <샘물이 혼자서>라는 제목이 붙게 되었다. '에튜우드'란 학습(etude)의 뜻을 지니는 불어로서, 이러한 제목을 붙인 것을 보면, 습작의 의도로 시를 쓴다는 그의 겸손한 시작(詩作) 태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습작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주요한은 이 <에튜우드>를 통해서 자유시의 차원을 새로이 개척하여 보여 주었고,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근대시는 그 가능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춤추며', '웃으며', '산골짜기 돌 틈으로', '험한 산길 꽃 사이로' 밝고 광활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샘물의 행로는, 이 시가 화자와 시적 공간 모두 점차 확대되어 가는 '열림의 시'임을 알게 해 준다. 이것은 암울한 시대일수록 희망찬 내일을 예시해야 하는 시인의 초인적(超人的)·예언자적 역할을 의미하는 한편,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새 삶을 열려는 시인의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

이 시의 운율적 특징을 살펴 보면 '샘물이 / 혼자서 / 춤추며 / 간다 // 산골짜기 / 돌 틈으로'의 배열로 각 연의 1·2행은 모두 4음보로, 3행은 2음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다'를 제외한 모두가 3(4)음절을 1음보로 하는 우리 시가의 전통적 율격 단위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1·2연을 부사어로 끝내어 동적인 방향성과 미완성 상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3연은 서술형 종결 어미로써 시상을 마감하고 있다.

계몽성과 교술성의 완전한 청산, 3(4)·4조의 정형률 탈피, 균형미 있는 자유시형 확립, 영탄적 어조를 배제한 절제된 감정, 세련된 구어체, 특히 '험(險)한'을 제외한 순우리말 사용 등은 동시대의 시 가운데서 이 작품을 가장 뛰어난 것의 하나로 평가하게 한다.


이 작품은 전대의 교훈성이나 계몽성을 탈피하고 개인적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 일체의 운율적 제약을 벗어나 감정의 자유로운 유출(流出)에 합당한 자유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대담한 상징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한문투를 최대한 배제한 순우리말 표현 - '외로운 강물', '스러져 가는 저녁놀' 등은 당시로 보아 대단히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자아는 죽음과 삶, 즉 임을 잃고 갖게 된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사월 초파일의 흥겨운 불꽃놀이로 나타난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죽음과 삶의 대립은 어둠과 밝음, 물과 불의 대립으로 이어져 전편을 격정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다시 말해,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 '라는 구절로 나타나는 죽음과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에 표출되는 삶의 욕구 사이에서 번민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 '물'과 '불'이라는 두 원형적(原型的) 상징은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 슬픔과 기쁨, 삶의 고뇌와 비상(飛翔) 등으로 표상되는 대립적 요소이다. 그러나 외견상 화합할 수 없어 보이는 이러한 대립은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이라는 구절에서 역설적 논리로써 통합됨으로써 극한적 자학 상태에 빠진 시적 자아를 극적으로 소생시켜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부활의 언덕을 향해 배를 저을 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가 겪어 오던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 물과 불이 결국 동일한 것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시적 자아는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며 더욱 강열한 삶의 욕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에서 보이는 파괴적 충동과 격렬한 도취의 행위는 아직도 절망적 태도와 비애의 감정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대립된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격한 감정으로 표출됨으로써, 때로는 시상(詩想)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여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감정의 지나친 유출로 인한 감정의 허세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애상적 정조는 아마도 일제 치하를 살았던 청년 시인 주요한의 고뇌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감상적(感傷的), 영탄적 정조의 세기말적 징후는 서구 상징주의 문학의 유입과 함께 당시 젊은 지식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박종화, 홍사용, 이상화로 대표되는 <백조> 동인의 경우 3·1 운동의 좌절로 인한 암담한 절망감과 결부되어 퇴폐적이고 애상적인 분위기는 더욱 증폭되게 되었다.


서정시의 본질이 세계의 자아화, 즉 시적 자아에 의한 객관적 세계의 주관화에 있다면,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객관화된 세계[비]를 자기만의 주관적 내면 공간에 용해시킴으로써 이 시를 한 편의 훌륭한 서정시가 되게 하였다.

1연은 어두운 밤, 뜰 위에 내리는 비의 모습을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로, 2연은 비가 오려는 조짐을 시각과 촉각이 교차한 감각적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3연은 1·2연의 객관적 비유를 주관적 비유 감각으로 바꾸어 비 내리는 상태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마지막 4연은 3연에서 '다정한 손님같이' 내리던 비가 시적 자아와 합일되는 순간을 노래함으로써 '남 모를 기쁜 소식을 / 나의 가슴에'만 전해 주는 비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이 사물을 더욱 선명하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영상 수법(映像手法)을 통해 선명하고도 구체적인 이미지 제시에 성공하고 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이 작품은 단순히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일 수도 있고, 시적 자아의 마음을 빗소리에 의탁하여 조국 해방의 꿈을 표현한 상징시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동시풍(童詩風)의 정감어린 서정과 섬세한 이미지가 돋보이며, 후자의 경우라면,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와 같은 표현에서 그와 같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미 닭이 날개를 펼쳐 병아리를 품어 주듯,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셔 주듯, 질곡(桎梏)의 식민지 현실을 포근히 감싸 안고 민족에게 '남 모를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특징은 감각적 형상 능력의 우수성 이외에도, 일체의 한자어를 배제하고 순수한 우리말의 율감을 살려 밝고 서정적 감각을 노래함으로써 우리말의 세련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나타난 탁월한 이미지는 30년대나 되어야 진정한 이미지스트가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분명 이 시는 당시로는 수작(秀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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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억(金億)

본명 : 김희권(金熙權)

안서(岸曙), 안서생(岸曙生), AS

1886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07년 오산 중학 입학

1913년 게이오 의숙(慶應義塾) 영문과 입학

1914년 동경 유학생 기관지인 {학지광(學之光)}에 <미련>, <이별> 발표

1916년 오산 학교 교사로 부임, 김소월 지도

1920년 {폐허}, {창조} 동인

1924년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

1950년 6·25 때 납북

시집 : {해파리의 노래}(1923), {봄의 노래}(1925), {안서 시집}(1929), {안서 시초}(1941), {먼동이 틀 제}(1947), {민요 시집}(1948)


이 시는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는 주요한의 <불놀이>보다도 두 달 앞서 발표되었다. 기존의 신체시에서 지적되는 계몽성을 탈피하여 개인의 주관적 정서를 상징적 수법을 통해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어느 늦은 봄날 밤에,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며 느낀 상실의 슬픔을 여성적 어조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시에 흐르는 애상과 비애를 바탕으로 한 상실과 체념의 미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애달픈데'·'생각인데'·'아득이는데'·'슬피 운다'·'탄식한다' 등의 주관적 하강의 감정어와 '간다'·'떠돈다'·'빗긴다'·'떨어진다' 등의 객관적 하강의 상태어의 결합을 통해 나타나는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이 작품이 암울한 시대 상황을 인식한데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된 '밤'은 당시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으며, 계절적 배경인 '봄'은 '오는 봄'이 아닌, '가는 봄'으로서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상실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봄밤'은 모든 것을 상실한 고뇌의 현실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상황을 치열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 적극적 행동의 미학이 표출되지 못하고, 수동적인 자세로 탄식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시행 배열의 규칙성, 대구법의 남발, 의도적인 각운법, 불필요한 이미지의 반복, 감정의 무절제한 표출 등으로 작품의 전체 구조가 약화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에다 시인의 감정을 의탁한 감정 이입의 수법과 '종소리 빗긴다'에 나타난 공감각적 이미지는 동시대 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산수(山水)와 조화된 한국인 특유의 인정미를 7·5조의 가락을 빌어 노래하고 있다.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들이 대체로 애틋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띠는 데 반해, 이 시는 경쾌한 3음보 리듬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시적 화자의 정감이 어우러져 오히려 밝고 정겨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작품의 기본 정서는 다분히 한국적으로 자연과의 합일과 과거 속으로의 회귀 욕구가 담담한 독백체 어투로 잘 나타나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연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심성 구조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오다 가다 길에서 / 만난 이'를 못 견디게 그리워한다. '자다 깨다 꿈에서'까지 만날 정도로 정든 그 사람이, '짙어가는 풀잎'처럼,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리워 시적 화자는 마침내 '십리 포구 산 너머' 그를 찾아 나선다. 시적 화자는 그와의 인연을 '그만 잊고 그대로 / 갈'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청청'·'중중'·'죄죄'와 같은 음성 상징어와 청백(靑白)의 대비를 통한 선명한 이미지 제시 방법으로써 밝고 경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죄죄 / 제 흥을 노래하'는 '산새'처럼, '송이송이 / 바람과 노'는 '살구꽃' 향기처럼, '십리 포구 산 너머'를 향하는 시적 화자의 발걸음은 하늘을 날아오를 듯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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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우(黃錫禹)

상아탑(象牙塔)

1895년 서울 출생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수학

1920년 {폐허} 동인으로 참여. {폐허}에 <애인의 인도(引渡)>, <벽묘의 묘>, <태양의 침몰>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21년 {장미촌} 창간에 관여

1928년『조선시단』주재

중앙일보사 기자 역임

1960년 사망

시집 : {자연송(自然頌)}(1929)


우리 현대시사에서 최초의 난해시(難解詩)로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은 '영혼의 구제'라는 관념적 사상으로 인해 발표 당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먼저 '벽모(碧毛)'는 파란 털을 의미하며, '묘(猫)는 고양이를 뜻한다. 괄호로 묶인 7행 이후의 시행은 푸른 털의 고양이가 시인에게 속삭이는 영혼의 대화로, 이처럼 이 시는 형식에서부터 매우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고양이'와 '나'는 모두 시인의 분신으로서 '고양이'는 심성의 간교한 악마적 모습이요, '나'는 심성 본래의 선한 모습이다. 즉,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악(惡)의 고양이가 본래적 자아이며, 현상으로 나타나는 나의 선(善)한 모습이 현실적 자아이다.

어느 날 영혼의 낮잠터인 사막 위 숲 그늘에서 안식을 취하던 나는 고양이를 만난다. 영혼의 낮잠터인 그 곳은 사막과 숲 그늘이 어우러진 곳으로, 악과 선이 함께 존재하는 시인 자신의 마음이다. 그 때,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내 삶의 태양과 기독이 되어준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온갖 고뇌와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사랑으로 구제해 주겠다."고 속삭인다. 여기서 '태양'과 '기독'은 삶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양이가 시인에게 속삭이는 말은 "선하게 살아가는 데서 발생하는 모든 괴로움과 운명을 구제하여 강하고 철저한 삶으로 변모시켜 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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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순(吳相淳)

공초(空超), 상현(想絢), 선운(禪雲)

1894년 서울 출생

1900년 어의동 학교(於義洞學校)에 입학

1906년 경신 학교(儆新學校) 졸업

1918년 도시샤(同志社) 대학 종교철학과 졸업

1920년 김억, 남궁벽(南宮壁)과 함께 {폐허} 동인으로 참가

1963년 사망

시집 : {공초 오상순 시선}(1963), {방랑의 마음}(1977), {허무혼의 선언}(1987)


하루 200개비의 줄담배를 피우며 일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다 세상을 떠난 공초(空超) 오상순은 변영로와 함께 {폐허} 동인 활동을 하면서 기독교를 버리고 입산과 환속을 거듭하는 등 숱한 기행(奇行)으로 화제를 뿌렸던 시인이다. 그는 평생을 이 작품의 제목처럼 '방랑의 마음'으로 전국을 떠돌며 일제 식민지 치하의 삶을 '허무와 세속에의 일탈(逸脫)'로 영위하려 하였다.

이 작품은 일제 치하라는 현실의 질곡(桎梏)을 벗어난 이상향을 그리워하며 정처없이 떠도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 곳은 '망망한 푸른 해원'으로 '눈을 감고 마음 속에' 그리는 바다일 뿐이다. 즉 현실의 바다라기보다는 시인의 이상 속에 존재하는 바다요, 현실의 모든 고뇌로부터 떠난 자유와 안식의 바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 깊은 바닷소리'는 내 몸 속으로 '피의 조류를 통하여 오'지만, 그 곳으로 갈 수 있었던 '때를 잃고', 다만 끝없는 그리움으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발돋움하고 /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는 그 바다는 시인이 식민지라는 민족적 고통을 안고 꿈꾸는 곳으로, 결국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젊은 시인의 '흐름 위에 / 보금자리 친' 영혼이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푸른 해원'과 같은 곳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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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로(卞榮魯)

변영복(卞榮福), 수주(樹州)

1898년 서울 출생

1909년 중앙 학교 입학

1918년 중앙 고보 영어 교사

1920년 문학 동인지 {폐허} 동인 활동

1931년 도미(渡美),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대학에서 수학

1935년 {신가정}지 주간

1946년 성균관 대학교 영문과 교수

194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53년 서울신문사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

1961년 사망

시집 : {조선의 마음}(1924), {수주 시문선}(1959), {차라리 달 없는 밤이드면}(1983) {논개}(1987)


1920년대 전반기 한국 서정시의 정상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논개>와는 달리 고요하고 잔잔한 시정(詩情)을 세련되고 섬세한 시어로써 유려하게 노래하고 있다.

각 연의 1·2행에서는 공통적으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를 반복하여 봄비의 부름과 그에 대한 시인의 정감을 한 문맥에 접목시키고 있으며, '노라!'·'누나!' 등의 영탄조의 어미 사용은 이 작품을 보다 더 낭만적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와 같은 반복구(反復句, refrain)는 시의 리듬을 교묘하게 살리는 데 효과적인 표현법이 되고 있다.

각 연의 마지막 행은 봄비 내리는 모습을 보고 느낀 시적 자아의 마음을 '서운하고', '아프고',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편향적 어조와 함께 시인의 감각적인 통찰로 빚어진 이 작품의 아름다운 정감과 선율은 그윽하고 부드럽기만 하다.


변영로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러 충신과 열녀들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여 섬세한 전통 정서와 기개 높은 민족 정신으로 형상화시킨 시인이다. 이 작품도 이와 같은 그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의 하나로,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倭將) 게다니(主谷村六助)를 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 충절(憂國忠節)을 노래하고 있다. 동시대 {백조} 동인들이 암울한 시대 상황에 굴복하여 한숨과 눈물만을 토로한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시를 쓴 데 비해, 그는 민족적 패배감에 젖어 있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논개'의 우국 충절을 보여 줌으로써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 주었다.

1연에서는 논개의 거룩한 분노와 애국적 정열을, 2연에서는 물로 뛰어드는 논개의 거룩한 순국 모습을, 3연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통하여 논개의 충혼(忠魂)에 대한 추모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왜적에 대한 논개의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한' 것이므로 각 연에 첨부된 후렴은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단심(丹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강낭콩과 강물의 푸른색, 양귀비꽃과 석류 속의 붉은색을 대립시키는 방법으로 논개의 정열을 강조하는 이미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므로 각 연에 반복되는 후렴이 바로 이 시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한편,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사군자(四君子)와 같은 진부한 소재를 쓰지 않고, '강낭콩'·'양귀비꽃'·'아미'·'석류'와 같은 토속적 분위기의 소재를 빌어 참신한 이미지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의 '푸른 강물'은 '영원한 역사'를 상징하므로 진주 남강이 마르지 않고 푸르게 흐르는 한, 논개의 충절도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항적 색채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1924)}은 발간 직후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령이 내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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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사용(洪思容)

노작(露雀)

1900년 경기도 용인 출생

1919년 휘문 의숙 졸업, 3·1 운동에 참가하여 일경에 피검

1920년 박종화 등과 문예지 {문우} 창간

1922년 박종화, 현진건, 박영희 등과 {백조} 창간

1923년 극단 토월회(土月會) 참여

1927년 극단 산유화회(山有花會) 조직

1930년 홍해성(洪海星)등과 신흥극장(新興劇場) 조직

1947년 사망

시집 : {나는 왕이로소이다}(1976)


이 시는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의 감상적(感傷的)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삶의 고통과 비애를 주제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백조}의 실질적 주재자로 활동한 홍사용의 타고난 감상벽이 그 한 원인이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3·1 운동의 좌절로 인한 민족적 패배감과 지식인으로서의 견딜 수 없는 무력감으로부터 이 작품의 감상적 경향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병적이고 퇴폐적인 성향의 정서 저변에는 일종의 민족적 울분과 시적 서정성이 깔려 있다.

전 8연의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연에서는 전생(前生)을, 2연에서는 출생의 슬픔을, 3연부터 8연까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 희망과 좌절, 내면적 슬픔 등 소년 시절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를 '왕'으로 지칭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갈고 심을 땅을 일제에 빼앗긴 농군의 아들인 그로서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는 쫓겨난 왕으로 슬픔과 비애뿐인 '눈물의 왕'이 된다. 그가 갖게 된 삶의 비극적 인식은 어머니의 산고(産苦)를 통해 태어났다는 것과 '으아!' 하는 울음으로부터 삶이 시작되었다는 인간 존재의 숙명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성장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비애의 감정은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고통과 슬픔을 안고 태어난 '왕'에게 동네 사람들은 단지 '무엇이냐?'는 세속적 관심만 나타낼 뿐이며, 그럴수록 '왕'은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옛이야기를 들려 주시며 한숨과 눈물을 짓던 어머니를 따라 허무 의식을 키우던 그는 동무들로부터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는 놀림을 받으며 더욱 폐쇄적 성격의 아이로 성장한다.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면서 나무꾼의 산타령을 배우거나 상두꾼의 구슬픈 만가(輓歌)를 들으면서 '눈물의 왕'이 되어가던 중, 우연히 발견했던 '파랑새'를 놓치고 그는 거의 절망적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식날 성묘를 떠나기 앞서 '흰 옷'을 입혀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하신 어머니의 엄명 때문에 그는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없이 혼자 우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모가지 없는 그림자'란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비극적 숙명을 뜻하며, '파랑새'는 자신의 이상 또는 희망을 상징한다. 또한 '흰 옷'은 성년(成年)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때부터 '죽음'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렇게 아픔을 속으로 키우며 '쫓긴 이의 노래' 같은 좌절감을 안고 생활하는 그에게 산천 초목조차 무심하며, 세월은 허망하게 흐를 뿐이다. 결국 그는 '돌부처' ― '미륵불'에게도 구원받지 못하는 신세로, 철저한 고독과 비애 속에서 처절한 '눈물의 왕'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당시의 현실 상황과 연관지어 '왕'을 조국으로, '어머니'를 식민지 이전의 조국인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면, 일제의 탄압으로 고통받고 있는 '왕'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은 식민지라는 민족적 슬픔뿐이고, 식민지 백성으로서 '모가지 없는 그림자'를 가진 그는 '망국의 한(恨)'을 안고 살아 가는 '눈물의 왕'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년이 된 후로는 마음대로 울 자유마저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는 탓으로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디든지 설움만 존재하는 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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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희(朴英熙)

회월(懷月), 송은(松隱), 방촌향도(芳村香道)

1901년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天然洞) 출생

1919년 김기진(金基鎭)과 배재 고보의 같은 반에서 수학

1920년 토쿄 세이고쿠(正則) 영어 학교에서 수학하다가 귀국

1921년 시 전문지 {장미촌(薔薇村)}, 종합 교양지 {신청년} 동인

1922년 문학 동인지 {백조} 동인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조직 주도

1934년 <최근 문예 운동의 신전개와 경향>을 발표하며 전향

1939년 조선 문인 협회 간사

1950년 6·25 때 납북

시집 : {회월 시초}(1937)


{백조}의 '병적 낭만주의'는 3·1 운동의 실패로 인한 '민족적 좌절감'과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서구 낭만주의의 '세기말적 경향', 그리고 그러한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된 '개인적 성향'이 3박자를 이루어 만들어진 것이다. <꿈의 나라로>, <유령의 나라>, <월광으로 짠 병실>로 대표되는 박영희의 시는 바로 그 '병적 낭만주의'의 실상을 보여 주는 작품들로, 온통 감상(感傷) 투성이의 현실 도피성 영탄일 뿐이다.

박영희는 후에 팔봉(八峰) 김기진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고 '감상'을 탈피한 다음, 1925년 단편 <사냥개>를 발표하면서 신경향파로 기울어져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핵심적 지도 이론가로 변모하였다가, 결국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 자신이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향하게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병실'은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병실이 아니라, '달님'을 사랑하게 되면서 마음의 병을 앓게 된 시적 화자가 거처하고 있는 정신적 공간이다. 따라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화자에게 달님이 보내 준 '슬픔'·'두려움'·'안일'이라는 이름의 의인화된 정서는 그를 '끝없이 고치지 못하는 병'에 빠뜨리게 한 유치한 감상으로 시인의 현실 인식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알게 해 준다. 시인이 아호를 '회월(懷月)'로 삼은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이 작품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의 시는 결국 '갈 바를 모르는 헤매는 마음'으로 '부질없이' 달빛만 '사모하'는 '어린애같이' 저급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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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화(朴鍾和)

월탄(月灘)

1901년 서울 출생

1920년 휘문 의숙 졸업

1922년 문학 동인지 {백조} 동인 활동

1946년 전조선 문필가 협회 부회장

1947년 서울시 예술위원회 위원장

1949년 한국 문학가 협회 회장

1955년 예술원 회장, 제1회 예술원상 수상

1964년 한국 문인 협회 이사장

1966년 월탄 문학상 제정

1981년 사망

시집 : {흑방비곡(黑房秘曲)}(1924), {청자부}(1946), {월탄 시선}(1961)


박종화의 초기시 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이 작품은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퇴폐적이고 세기말적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탈리아의 작가 '단눈치오'의 탐미적 소설 <죽음의 승리>에서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다고 하며, 작품 자체의 우위성(優位性)보다는 {백조}류의 '병적 낭만주의'의 전형으로 시사적(詩史的) 위치가 중요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현실을 떠난 죽음의 세계에서 진리와 영원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 작품은 현실 도피성 문학의 대명사로 지칭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죽음에 대한 표면적 현상만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본질적 성격을 노래함으로써 생의 부정이 아닌 생의 차원 높은 긍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그가 희구하는 죽음의 세계는 '장엄한 칠흑의 하늘, 경건한 주토의 거리'로 '영겁' 위에 '생명'·'참'·'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곳에서 참다운 생명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얻고자 하나, 그 곳은 구도 정신을 통해 생사를 초월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차원 높은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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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희(李章熙)

본명 : 이장희(李樟熙)

고월(古月)

1900년 대구 출생

1917년 일본 교토(京都) 중학 졸업

1924년 시 <청천(<靑天)의 유방(乳房)>, <실바람 지나간 뒤>를 {금성} 3호에 발표하여 등단

1929년 음독 자살


이 시는 우리 나라 근대시사에서 가장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 또는 20년대 모더니스트로 불리는 이장희의 대표작으로 20년대 초 한국 감각시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주관의 범람과 감상의 과잉으로 비판받는 {백조} 동인들과는 달리 자연발생적 감정을 억제하고, 주지적 성향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제시하여 당시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시는 시인의 그러한 성향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으로, 시인 자신의 순수 지각(純粹知覺)에 의한 봄의 심상을 서구적 시어인 고양이와 결합시켜 관능적 표현을 이루고 있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을 따라 객관적 대상(고양이의 털 → 눈 → 입술 → 수염)과 주관적 정서(봄의 향기 → 불길 → 봄 → 졸음 → 생기)가 상호 작용하면서 통합되는 탁월한 연상 작용에 의해 전개되고 있으며, 1·2연과 3·4연은 문장 구조뿐 아니라 율격 구조까지도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1연에서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이라는 촉각적 이미지를 '고운 봄의 향기'라는 후각적 이미지와 결합시켜 고양이의 털에서 봄기운을 느끼도록 표현하였으며, 2연에서는 고양이의 눈과 봄의 햇살을 시각적 이미지로 제시하여 '고양이의 눈은 호동그란 금방울 같고', 다시 그것은 '미친 봄의 불길'로 전이(轉移, transfer)되고 있다. 3연에서는 봄날 양지쪽에 엎드려 졸고 있는 고양이의 입술 위에서 발견한 봄의 평화로운 정경을 '떠도는 봄 졸음'이라는 촉각적 이미지로 표현하였으며, 4연에서는 고양이의 수염에 어린아이의 재롱처럼 '뛰노는 봄의 생기'를 묘사함으로써 3연의 '봄 졸음'과는 대조적으로 일종의 생동감이 느껴지게 하였다.

또한 1·3연은 '꽃가루'·'부드러운'·'고운'·'향기'·'고요히'·'포근한'·'봄 졸음' 등의 정태적(靜態的, static) 시어로 곱고 부드러운 여성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편, 2·4연은 '호동그란'·'미친'·'불길'·'날카롭게'·'쭉 뻗은'·'수염'·'푸른'·'생기' 등의 동태적(動態的, dynamic) 시어를 사용하여 남성적 분위기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얼핏 보기에는 튼튼한 구조 없이 고양이에게서 느껴지는 봄의 서정만을 마구 나열해 놓은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견고한 구조 위에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당시 시단의 경향과 비교해 볼 때, 고양이를 통해 봄을 드러내는 뛰어난 연상 능력과 완벽한 구조적 통일성은 인정되지만, 독자의 내면을 울리는 감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본질적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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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영(盧子泳)

춘성(春城), 꿈길

1898년 황해도 장연 출생

1922년 일본 니혼(日本) 대학 문과 수업

1922년 문학 동인지 {백조} 동인

1934년 {신인문학} 발행

1940년 조선일보사 출판부 입사, {조광}지 편집

1940년 사망

시집 : {처녀의 화환(花環)}(1924, 1929), {내 혼이 불탈 때}(1928), {백공작(白孔雀)}(1938)


이 시는 자연의 물결과 시적 자아가 갖고 있는 고민의 물결을 대비시켜 "자연의 물결은 저절로 가라앉지만, 고민의 물결은 구원받지 못해 더욱 애태운다."는 평이한 내용으로, 일제 치하에서 겪고 있는 삶의 고뇌와 절망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6·5조의 정형률에 의존하면서도, 마지막 4연의 첫 행은 파격(破格)으로 처리하여 율격적으로 돋보이지만, '물결' ― '마음'을 비롯하여 '바위' ― '고민', '새하얀' ― '시커먼', '구슬' ― '눈물'의 어휘를 대칭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자유로운 시상의 전개를 스스로 차단시켜 버린 점은 가장 큰 약점으로 남는다. 4연의 '해도 없어서'는 암울한 식민지 현실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의 동요적 어법과 유아적 상상력은 시인의 저급한 현실 인식 수준과 둔감한 시적 감수성을 짐작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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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동(梁柱東)

무애(无涯, 無涯)

1903년 경기도 개성 출생

1920년 중동 학교 고등속성과 입학

1921년 와세다 대학 예과 입학

1923년 유엽, 백기만, 이장희 등과 문학 동인지 {금성} 발간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평양 숭실 전문학교 교수로 부임

1929년 {문예공론} 발간

1954년 학술원 회원

1977년 사망

시집 : {조선의 맥박}(1930)


이 시는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민족 부활의 미래를 '튼튼한 젊은이'·'어린 학생'·'갓난 아이' 등에서 발견하고 민족주의의 바탕 위에서 천길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조선의 맥박'에 굳은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는 계몽성이 강한 교훈적 내용의 작품이다.

생경한 비유와 산문적 서술, 그리고 '-이로다' 등의 전근대적 영탄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민족주의를 이념적으로 추상화시키지 않고 '맥박'·'숨결' 등의 생명적 요소로 파악하여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한밤' → '새벽' →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상 전개와, 여기에 상응하여 '절망' → '희망' → '활기'로 펼쳐지는 시적 상황의 변화는 추상적인 내용을 보다 더 구체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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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환(金東煥)

강북인(江北人), 파인(巴人), 백산청수(白山靑樹)

1901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16년 서울 중동 학교(中東學校) 입학

1921년 일본 도요(東洋) 대학 영문과 입학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학업 중지

1924년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로 등단

1925년 카프(KAPF)에 가담

1927년 조선일보사 기자

1929년 종합지 {삼천리} 발간

1937년 문예 전문지 {삼천리 문학} 주재

1950년 6·25 때 납북

시집 : {국경의 밤}(1925), {승천하는 청춘}(1925), {삼인(三人) 시가집}(공저,1929), {해당화}(1932, 1939)


우리 나라 신시사상(新詩史上) 최초의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은 시인 자신의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고 한다. 이 장편 서사시는 두만강 유역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하여, 일제에 쫓기어 밀수꾼이 되거나 만주나 간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불안과 참담한 현실을 향토색 짙은 민요적 표현을 빌어 노래하고 있다.

전 3부 72장 893행의 긴 분량이지만, 지면 관계상 5장까지 옮겨 놓은 탓으로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체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부 (1 - 27장) : 설이 가까운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두만강 유역의 국경 마을에서 한 여인(순이)이 소금 밀수출 마차를 끌고 강 건너로 간 남편(병남)을 걱정하고 있다. 저녁 무렵, 한 청년이 나타나 그 여인의 오두막을 두드리며 주인을 찾는다.

2부 (28 - 57장) : 그 청년은 여인이 어렸을 때 함께 소꿉놀이 하던 친구로, 두 사람은 차차 연정을 느끼는 관계로 발전하였으나, 재가승(在家僧)인 여진족의 후예인 순이는 다른 혈통의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부족의 관습에 따라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고, 사랑 잃은 소년은 마을을 떠난다. 그 소년이 8년 뒤에 순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3부 (58 - 72장) : 청년은 이제 남의 아내가 된 순이에게 다시 구애(求愛)의 손을 내미나, 순이는 남편에 대한 도리와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들어 이를 거절한다. 그 때, 밀수출을 나갔던 그녀의 남편은 마적들의 총을 맞고 죽은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참담한 현실과 쫓기는 자, 소외된 자의 비극적 좌절 체험을 국경 지방의 겨울밤에서 느껴지는 삼엄하고 음산한 분위기와 극적 상황 설정을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이 작품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만큼 일제 하의 민족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한 탓으로, 차라리 국경 지방을 배경으로 하여 펼쳐지는 세 남녀의 낭만적 사랑과 비극의 서사시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족한 역사 의식으로 인해 본격적인 서사시에는 다소 적합하지 못하더라도, 작품의 주제나 제재가 개인의 단순한 정서 표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사와 그 운명에 대해 치열한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1920년대 감상적인 낭만주의 시단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것만은 분명하다.

 

* 학자에 따라서는 이 시가 영웅의 업적을 칭송하는 서양의 서사시의 개념과는 달라 단순히 서술시(narrative poem)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김동환의 등단시로 원래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것을 시집 {국경의 밤}에 수록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손질과 함께 지금 제목으로 바뀐 것이다.

모진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일제의 수탈을 피해 북국으로 이주하던 1920년대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튼튼한 서사 구조와 사실적 묘사를 통해 형상화시킨 이 작품은 소재면에서나 정서면에서 <국경의 밤>과 매우 흡사하다. 작품의 배경은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는 동토(凍土)이며 '막북강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 '귓불을 때리'는 모래 바람까지 불어오는 어느 북국 마을이다.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을 뒤로한 채, 생존을 위해 그 곳을 찾아가는 그들의 행로는 독자로 하여금 처절한 느낌까지 갖게 만들어 준다. '눈 속에 파묻힌' 산을 넘고, '얼음장 트는 소리' 나는 강을 건너 얼어붙은 귓불을 매만지면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는 유이민들은 '백웅이 울고 북랑성이 눈 깜박'이는 밤이면, '서로 부등켜 안고 적성을 손가락질'해 보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포기한지 오래일 뿐이다. 또한 '봄이라고 개나리꽃 보러 온 손님을 / 눈 발귀에 실어 곱게 남국에 돌려보내느니.'라는 구절에서 유이민들의 안타까운 심정과 절실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으나, 그 소망도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과 비탄 속에서 '제비 가는 곳 그리워하는' 유이민들의 마음은 차츰 동병상련(同病相憐)과 같은 집단 의식으로 발전하고 '우리네'로 승화됨으로써 그들은 불가에 모여앉아 고향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잠시 시름을 잊기도 한다. 고향 얘기를 안주삼아 독한 호주(胡酒)를 마시며 추위를 잊은 그들은 내친김에 한바탕 신명난 춤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추는 춤은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의 상징적 의식이라기보다는 절망과 비애 속에 빠져 있는 서로를 위무(慰撫)하고 고통을 잊게 하는 행위로서, 불행한 자신들의 운명을 감내하려는 의지가 간접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그러드는 모닥불 곁에 피곤한 육신을 눕힐 때, 또다시 퍼붓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오호, 흰 눈이 내리느니, 보오얀 흰 눈이 / 북새로 가는 이사꾼 짐짝 위에 / 말없이 함박눈이 잘도 내리느니.'라며 내뱉는 자조(自嘲) 섞인 영탄은 당시 유이민들의 황량하고 막막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으며, '막북강'·'북랑성'·'북새'와 같은 시어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북방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한편, 이국(異國)으로 이주하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민족적 이질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일상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북청 물장수를 소재로 하여 고향에 대한 향수를, 물장수를 하여 자식을 상급 학교까지 보냈다고 하는 그들의 근면성과 건강성을 통해 표현한 20년대의 수작(秀作)이다.

이른 새벽, 물지게를 지고 찾아오는 물장수는 '머리맡에 찬물을 퍼부어' 나에게 건강한 하루를 열어 준다. 물 붓는 소리에 어렴풋이 깨어난 내가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어느새 사라진 대신, 고달픈 생활고(生活苦)로 상징된 '삐걱삐걱' 하는 물지게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물장수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과 물장수가 작품 속에서 하나로 합일되는 원숙한 표현 기교를 보여 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즉, 물장수가 '새벽마다 고요히' 시인의 '꿈길을 밟고' 옴으로써 두 사람은 조우(遭遇)하게 되고, 그 순간 시인의 꿈은 시원한 '물에 젖'어 건강한 하루룰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근면하고 성실하여 애처롭게까지 느껴지는 북청 물장수, 그의 근면함이 도시의 새벽을 밝게 만들어 주고 우리의 아침을 풍요롭게 해 준다. 이러한 물장수와 맺어진 아침의 신선한 인간적 정(情)이 시인으로 하여금 '날마다 아침마다' 물장수를 기다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최하 계층인 물장수의 고달프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미화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채 작품 속에 생생하게 용해되어 있다.


이상향을 추구하는 시인의 욕구가 자연과 융합되어 자연의 운율적 질서와 동화됨으로써 민요적 리듬을 창출하고 있는 이 작품은, <국경의 밤>과 <북청 물장수>에서 보여 준 북방의 억센 사투리와 강한 남성적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언어 구사와 여성적 어조로 표현되어 있어, 시인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시인은 <국경의 밤>, <눈이 내리느니>와 같은 작품에서는 북방의 춥고 어두운 겨울을 배경으로 암울한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데 반해, 이 시에서는 겨울이 없는 '남촌'을 무대로 하여 그가 그리워하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달래 향기'·'보리 냄새'·'호랑나비떼'·'종달새 노래'로 대표되는 사랑과 평화의 낙원으로서의 '남촌'이 지니고 있는 희망과 사랑의 이미지는 시인으로 하여금 '배나무 꽃 아래' 계실 '님'이 비록 구름에 가려 보이지는 않더라도, 자신에게 전해 주는 사랑의 노래는 봄바람을 타고서 계속 들려오는 것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식민지 백성들에게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역사적 사실을 작품에 투영시켜 현실 상황에 맞서 싸우는 저항 의지를 보여 주던 김동환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나라 찾기의 시'를 버리고 민요시로 전향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송화강 뱃노래>이다. 김억, 김소월로 대표되는 기존의 민요시가 다분히 여성적 취향의 애틋한 정감을 갖는 데 반해, 김동환의 민요시는 강한 남성적 어투와 활달한 가락을 바탕으로한 건강미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시는 고국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장부의 씩씩한 기상이 민요풍의 가락 속에 굴절되어 다소 애절한 느낌을 배태(胚胎)하고 있으며, 각 연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1행에서는 고국을 떠나가는 시적 화자의 애절한 심경을 표현하고 있으며, 2행에서는 애절함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장치로 노젓는 의성어를 그대로 차용하는 한편, 3·4행에서는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시적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앞날이 순탄치 못할 것을 암시하는 '구름장'과 앞으로도 '만 리'를 더 가야할지 모른다는 막막함, 그리고 화자를 따라 '송화강'도 섧게 운다지만, 몸은 떠나왔어도 마음만은 고국땅에 가 있다는 화자의 말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 짐작되나 왠지 가슴이 허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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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월(金素月)

본명 :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

1915년 오산 학교 중학부 입학

1923년 배재 고보 졸업

1924년 {영대(靈臺)} 동인 활동

1934년 음독 자살

시집 : {진달래꽃}(1925)


이 시는 각 행 모두 3음보의 리듬을 사용하여 자연에 대한 순진무구한 동경을 진솔하게 노래함으로써 서정시의 완벽한 음악화를 이룬 작품이다.

'강변'으로 대유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마음은 '엄마야 누나야'라는 어린아이의 호칭을 사용할 정도로 순수하다. 그가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강변'은 그에게 평화와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안식처로서, 가족들과의 단란을 이상으로 하는 보금자리를 뜻할 수도 있고, 당시 현실 상황에 견주어 볼 때는 일제의 모진 압제를 벗어난 어떤 이상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꿈꾸는, '갈잎의 노래'가 들려오고 금빛 모래가 반짝이는 그 곳은 꿈의 세계만큼이나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서러운 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김소월 시의 출전은 처음 발표지에 따른 것이지만,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된 시의 경우에는 널리 알려진 대로 시집 {진달래꽃}의 표기에 의거하였음을 밝혀 둔다.


임을 잃은 비극적 정한(情恨)이 봄의 생동감과 어울림으로써 한층 더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이 시는 보여 주고 들려 주는, 이른바 '노래하는 시'의 전형으로서 '잔디 / 잔디 / 금잔디'와 같은 리듬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 임과 해마다 임의 무덤가에 돋아나는 금잔디를 대비시키는 방법을 통해 임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나타냄으로써 임의 뜨거운 사랑의 불길처럼 피어난 금잔디로 인해 '무덤가'를 찾아온 봄이 더욱 원망스럽고, '가신 님'이 한층 더 그리워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봄이 왔네 / 봄빛이 왔네 / 봄날이 왔네'라는 점층적 표현은 봄이 왔음을 강조하는 한편, 임의 부재를 더욱 절실하게 나타낸다.

이렇듯 소월에게 있어서 임의 죽음은 부활을 예비하는 죽음도 아니고, 임의 떠남은 돌아올 것을 준비하게 하는 떠남도 아니다. 그러므로 소월은 임의 죽음 그 자체, 임의 떠남 그 자체를 노래함으로써 그의 임은 현재나 미래의 임이 아니라 항상 과거 속의 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작품에서도 소월은 금잔디를 바라보며 과거 속의 임을 그리워하거나 돌아오지 못할 임을 체념으로 이겨내려는 몸부림만을 보여 줄 뿐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과 애수로 일컬어지는 한국적 고유 정서와 전통적 민요조 가락은 소월시를 이루는 두 원소(元素)이자, 소월시를 존재하게 하는 두 원인(原因)이다. 민족 최대·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소월이 남긴 150여편의 시는 생전에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으로 묶였고, 사후(死後)에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1939)에 이어 지금까지 수많은 시집이 간행되어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전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게 된 원동력과 흡인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소월시가 남과 다른 숭고한 이념이나 사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요, 시대적 고뇌를 온몸으로 포용하고 있는 지사적(志士的) 풍모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모두(冒頭)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작품 속에는 민족의 고유 정서와 맞닿아 흐르는 어떤 소박하고 진솔한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간결하고 소박한 가락,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구화체(口話體)를 활용한 7·5조의 대중적 리듬과, 이별·그리움·체념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적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 전통적 정서에 닿게 되어 소월시만이 갖는 처절한 호소력과 강렬한 감동을 전수받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소월시의 정수(精髓)로,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시적 자아로 하여 전통적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가시리>, <서경별곡(西京別曲)>, <아리랑>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한다.

4연 12행의 간결한 시 형식 속에는 한 여인의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체념과 극기(克己)의 정신이 함께 용해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즉,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동양적인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임이지만, 그를 위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절대적 사랑, 임의 '가시는 걸음 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을 때,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그리고 그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忍苦)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이 '진달래꽃'은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 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표상하기 위하여 선택된 시적 자아의 분신이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華功德)' ―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저 이별을 노래하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의 문제로도 확대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월은 그의 다른 대표작인 <산유화(山有花)>에서처럼, 여기서도 '진달래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원리로 설정함으로써 마침내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그는 더 나아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버림받은 여인과 떠나는 남성 간에 발생하는 비극적 상황이 초점을 이루는 설화적 모티프 ― 여성의 인종(忍從)과 남성의 유랑(流浪) 및 잠적(潛跡) ― 를 원형(原型, archetype)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여성 편향(女性偏向, female complex)의 '드리오리다'·'뿌리오리다'·'가시옵소서'·'흘리오리다' 등의 종지형을 의도적으로 각 연마다 사용함으로써 더욱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피학적(被虐的, masochistic)이던 시적 자아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마지막 시행과, '걸음 걸음'·'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에서 나타나듯이 그저 눈물만 보이며 인종하는 나약한 여성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떠나는 남성이 밟고 가는 '진달래꽃' 한 송이 한 송이는 바로 여성 시적 자아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꽃을 밟을 때마다 자신이 가학자(加虐者, sadist)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아는 시적 자아는 그러한 고도의 치밀한 시적 장치를 통해 떠나는 사랑을 붙잡아두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월이 수학했던 배재 고보의 교지 {배재}에 발표한 이 시는 설화에서 소재를 차용한 민요적 분위기의 작품이다. 전해 오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 평안북도 진두강가에 한 소녀가 부모와 아홉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죽고 계모가 들어왔다. 계모는 포악하여 생모의 유품을 모두 없애 버렸으며, 10남매에게는 끼니도 주지 않고 집에다 가두기도 하였다. 소녀는 나이가 들어 박천의 어느 부잣집 도령과 혼약을 맺게 되었다. 부자인 약혼자 집에서 많은 예물을 보내오자, 이를 시기한 계모는 예물을 빼앗고 소녀를 장롱 속에 가두고는 불에 태워 죽였다. 누나의 죽음을 슬퍼하며 동생들이 재를 파헤치자, 재 속에서 한 마리 접동새가 날아 올랐다. 이를 안 관가에서 계모를 잡아다 같은 방법으로 계모를 죽였는데, 그 때는 까마귀가 날아 올랐다. 접동새가 된 소녀는 죽어서도 계모가 무서워 대낮에는 나오지 못하고 깊은 밤에만 조심스레 동생들이 자는 창가에 와 슬피 울었다.

접동새의 울음소리를 의성화한 '접동 / 접동'과 '아홉 오래비'를 활음조(滑音調, euphony)시킨 '아우래비'를 조화시켜 리듬의 불협화음을 막은 데서 일상적 언어를 자기 것으로 육화(肉化)한 소월의 천부적 시 능력이 유감 없이 나타나 있다. 또한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비서술적 형식인 압축과 비약의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감동을 극대화하고 있다.

'오랍동생' 중 하나인 시적 화자는 2·3연에서 접동새에 얽힌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다가, 4연에 이르러 주관적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즉, '누나'를 '우리 누나'라고 하여 독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독자를 시적 화자와 일체화, 동일시하게 함으로써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찾아와 우는 누나의 슬픔과 어린 동생들의 그리움을 화자는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새를 자유와 비상(飛翔)의 표상이라고 하지만, 누나의 분신인 접동새는 동생들 때문에 자유롭게 날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 있다. 이렇듯 자유와 구속의 모순된 이중성을 갖는 접동새가 '한(恨)'의 표상이라면, 이 작품은 바로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내재해 있는 한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는 <산>, <가는 길>, <길> 등과 같이 유랑의 비애를 읊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는 지금 어디에서부터인가 '왕십리'를 향하여 가고 있다. 여기서 '왕십리'란 구체적인 지명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공간, 즉 시적 자아가 안주하고 싶어하는 세계와의 정서적 거리를 의미한다. 시적 자아는 늘 떠돌고 있는데, 이 날 따라 비가 내려 지금 비를 맞고 '왕십리'로 가고 있다. 나그네에게 있어 비는 갈 길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내리는 비는, 그 비를 핑계로 쉴 수 있어 차라리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연에서는 비가 온다는 사실에 자신의 서글픈 심정을 기대어 노래한다. '비가 온다 / 오누나 / 오는 비는 /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온다', '오누나', '오는', '올지라도'의 연쇄적 수법에 의하여 비가 계속 내리는 이미지와 자신의 떠돌이의 비애가 서로 맞물려 표현되고 있다. 2연에서는 비가 내린다는 사실에서부터 유추되는 비에 관한 당대의 관습적 표현을 생각해 낸다. 즉, 조금 때인 음력 여드레와 스무날[정확히는 23일]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을) 비가 '오고', 사리 때인 초하루와 보름에는 (와도 좋은) 비가 내리지 않고 '간다'. 이러한 표현은 특히 갯벌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바닷가 주민들의 생활사와 연관되어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해, 조수(潮水)가 가장 낮아 바다가 잔잔하고 맑은 조금 때에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바다로 통하는) 마른 강에 물이 금방 들어 차, 마치 큰비가 내린 것 같은데, 이 때는 (오지 않았으면 좋을) 비가 와서 조개 채취에 지장을 준다. 그와 반대로 조수가 가장 높고 물도 맑지 않아 작업을 쉴 만한 사리 때에는, 큰비가 와도 강에는 이미 물이 많아서 비가 많이 온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도, 이 때는 오히려 (와도 좋은) 비가 오지 않고 간다. 이렇듯 비마저도 우리네 살림살이와는 동떨어지게 빗나가는 현실을 생각하니 시적 자아는 한결 서글퍼진다. 그런데 오늘따라 '가도 가도' 비가 내리는 것이다.

3연에서는 이러한 서글픈 시적 자아의 비애가 '벌새'에 의탁해서 표현되고 있다. 벌새는 '비 맞아 나른해서' 울고 있다. 온몸이 비에 젖어 무거운 몸으로 울고 있는 벌새는 세상사에 찌든 시적 자아의 또 다른 모습이리라. 하지만 시적 자아는 이러한 여로(旅路)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여유가 없다. 차라리 목표지인 '왕십리'에 가서 모든 슬픔을 토로해 버리는 것이 나으리라. 4연에서 보듯, 비는 천안에도 내리고 있음을 소식으로 듣고 있다. 그 유명한 천안 삼거리의 실버들도 비에 '촉촉히 젖어서 늘어져' 있다. 이 때의 '실버들'은 3연의 '벌새'와 같이 시적 자아의 마음을 의탁한 매체(vehicle)가 된다. 천안에서 왕십리에 이르기까지 지금 비가 내리고 있지만, 그 비는 줄기차게 쏟아지는 장대비라기보다는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의 이미지를 띤다. 이러한 비는 그것을 무릅쓰고 가기에도 적당치 않고, 그렇다고 주저앉아 쉬기에는 갈 길이 안타까운 그러한 비다.

마지막 행에서 보듯 구름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마루에 걸려서 울고 있다. 여기에서 울고 있는 구름 역시 그것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는 곧 비가 그칠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시적 자아는 비를 핑계로 잠시 머물지도 못하고, 또 어디론가로 떠나야 하리라. 그래서 시적 자아는 또다시 서글피 노래한다. 차라리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라고.

이처럼 이 시는 비의 이미지와 떠돌 수밖에 없는 유랑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1920년대 초 당대의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비애를 그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특히 그러한 떠돌이의 비애가 다른 시에 비해 훨씬 더 내면화되어 있어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 등과 더불어 이 시가 김소월의 대표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삭주 구성'에 대한 그리움을 3음보 율격에 담아낸 작품으로 <산>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삭주 구성'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삭주 구성'은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 가다가 비에 걸려 오'는 곳이요, '산 넘어 / 먼 육천 리'인 곳으로, 꿈속에서도 쉽게 갈 수 없는 '불귀지지(不歸之地)'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산>에 등장하는 '삼수갑산'과 더불어 유배지, 불귀지지, 또는 죽음의 이미지를 지닌 공간이다. 이렇게 화자에게 있어서 '삭주 구성'이라는 곳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체념의 장소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 곳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임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님을 둔 곳이길래' 그 곳을 지향하는 것이다.

비록 '산 넘어 / 먼 육천 리'인 곳이지만,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일 정도로 그리워하는 곳일 뿐 아니라, '새들도 집이 그리워 / 남북으로 오며가며' 하는 것을 바라보며 화자는 귀향에 대한 소망의 의지를 불태운다.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하는 데에서 화자는 그 구름을 타고 어느덧 '삭주 구성' 가까이 가 있는 듯한 꿈에 부풀기도 한다. 이처럼 화자가 갖는 체념과 미련의 양면성을 함께 표상하는 것이 바로 '산'이다. 산은 화자가 지향하는 '삭주 구성'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넘기만 하면 곧바로 '삭주 구성'에 도달할 수 있기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음속으로나마 '산'을 넘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존재하는 이 곳은 고달픈 생활의 연속인 현실의 공간이요, 임이 없는 부재의 공간임에 비해, 화자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삭주 구성'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임이 계신 곳이자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동경(憧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후일 발표한 <길>의 전편에 속하는 작품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낯선 타향에서 유랑의 길을 걷는 시적 화자의 비애감을 표출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기와 비슷한 정황의 '오리나무 위의 산새'를 바라보며 산새와 일체화된다. 새는 평화롭게 살았던 '시메산골'을 그리워하나 높은 고개가 있어 울고, 시적 화자는 '삼수갑산'을 그리워하나 '고개'로 인해 운다. '삼수갑산'을 떠나 눈길을 뚫고 '오늘도 하룻길 / 칠팔십 리'를 걸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육십 리'를 되돌아갈 뿐이다.

'시메산골'을 향한 새에게 놓여 있는 '영(嶺)'이나, '삼수갑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시적 화자에게 놓여 있는 '고개'는 모두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障碍)'의 대상으로, 그 곳을 넘으려는 욕망으로 인해 그에게는 더욱 깊은 절망과 회한이 생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욕망을 단념하겠다며 '사나이 속'으로 다짐해 보지만, '십오 년 정분'의 '삼수갑산'을 잊기는커녕 더욱 더 깊은 미련을 갖는 나약한 태도를 보인다. '눈'으로 표상된 현실 세계의 고통과 '눈길'로 제시된 현재적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추억에 잠긴 채, 다만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귀소 본능(歸巢本能)의 시적 화자야말로 불우한 환경에서 비롯된 병적인 성격으로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를 정면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체념과 정한의 눈물로 살다가, 서른둘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소월 자신의 전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7·5조의 3음보 율격으로 우리 민족의 내면에 흐르는 정한(情恨)의 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이별의 아쉬움과 그리움의 심리 상태를 소월 특유의 세련된 말솜씨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기·승·전·결의 4연 구성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앞뒤 각각 2연씩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앞 단락은 임을 떠나기 싫어하는 시적 자아의 심리적 갈등과 아쉬움을 보여 주고 있으며, 뒷 단락에서는 시적 자아의 그러한 심리를 반영하는 소재로서의 자연이 제시되어 있다.

앞 단락 : '그립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그 말을 하고 나니 그것은 모호하고 유동적인 상태로부터 하나의 분명하고 고정적인 상태로 바뀌어 어렴풋하던 그리움은 분명한 그의 마음이 되어 새삼 못견디게 임이 그리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잊고 떠나려 해도 임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시적 자아는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임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다시 뒤돌아본다.

뒷 단락 : 지는 해를 배경으로 곳곳마다 까마귀가 울고 있어 떠나는 이의 마음을 더욱 허전하게 만들고 있으며, 앞뒤의 강물은 떠나기 아쉬운 그의 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출렁이며 흘러갈 뿐이다. 이렇듯 소월은 이별의 안타까운 심정을 직접적으로 진술하는 대신, '까마귀'와 '강물'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아픔과 인생의 무상함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또한 간결한 형식과 탁월한 언어 구사, 특히 유음(流音)과 비음(鼻音) 등의 유성음으로 이루어진 시어는 시적 자아의 떠나기 싫은 아쉬움과 그리움을 애잔하게 그려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소월은 <엄마야 누나야>와 같은 소박한 전원시 또는 동시적(童詩的) 경향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류의 애틋한 사랑시, 그리고 <삭주구성(朔州龜城)>, <길> 등의 향토적 서정시, <부모>로 대표되는 가족주의시, <접동새>와 같은 설화적 민속시 모두를 망라하고 있어, 그야말로 서정시의 다양한 세계를 보여 준 시인이었다. 그러나 이 <옷과 밥과 자유> 같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나 저항 의지가 담긴 또 다른 시세계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이 시는 '새'·'곡식'·'나귀'를 바라보는 관찰자로서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옷과 밥과 자유'를 상실한 절망감과 탄식을 그려내고 있다. 제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어의 선택으로 인해 다소 모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을 통해 '새'에서 '옷'을, '곡식'에서 '밥'을, '나귀'에서 '자유'를 유추시키는 의도적인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다.

새에게는 '털 있고 깃이 있'어 마음대로 '공중에 떠다니'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옷' 한 벌 갖지 못한 시적 화자는 한낱 미물(微物)에 불과한 '새'보다도 못한 식민지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의 악랄한 토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 농토를 빼앗긴 그들에게 있어서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진 '밭곡식'과 '물벼'는 이미 그림의 떡일 뿐이다.

또한 '초산 지나 적유령 / 넘어서'는 '나귀'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고통스런 모습을 상징한다. '너는 왜 넘니?'라는 반문의 마지막 시행에서 굴레와 같은 코뚜레와 '짐'으로 표상되는 '나귀'를 통해 '자유'를 잃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비극적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옷'과 '밥'과 '자유'라는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살아가던 당시의 식민지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시는 전통적인 7·5조의 3음보 율격을 바탕으로 하여 소월 특유의 일상적 언어와 자문자답(自問自答)의 독백 속에서 정처 없이 유랑(流浪)하는 시적 자아의 의지할 곳 없는 서글픈 심정과 고독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적 자아의 암담한 마음을 '가마귀'로, 향수의 정감을 '기러기'로 표현했으며, 운명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모습은 '열십자'로, 끝 없는 유랑의 인생은 '길'로 각각 제시하여 그의 서러운 마음과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 목적지가 없는 시적 자아는 길이 없어도 잘 가는 기러기들의 모습을 선망하며, 희망과 자유의 공간인 '공중'에 비해 절망과 부자유의 갈림길인 '열십자 복판'에 서서 '갈 길 하나 없'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서러워한다.

삶의 터전인 고향을 상실하고 유랑하는 시적 자아는 '오늘은 / 또 몇 십 리 / 어디로 갈까.' '오라는 곳 없어 나는 못 가오.',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등의 시행에서처럼 실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유랑하고 살았던 소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 농토를 빼앗기고 생존을 찾아 고향을 떠나 북간도로, 도회지로 떠났던 숱한 유랑인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각 연 모두 3행의 구성으로 전 7연의 작품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1연)은 시적 자아의 현실적 상황을 제시하는 도입 부분이며, 둘째 단락(2∼3연)은 지향성 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전개 부분이다. 그리고 셋째 단락(4연)은 서글픈 고향 자랑을 통해 자기 위안과 연민을 갖는 전환 부분이며, 넷째 단락(5∼6연)은 자유롭게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자신도 그처럼 안주(安住)하고 싶어하는 열망과 함께 '열십자' 복판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자신의 방향 상실에 대한 비애감을 말하는 절정 부분이다. 마지막 다섯째 단락(7연)에서는 수없이 많은 길 가운데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적 자아의 방황을 보여 주는 정리 부분이다.


<진달래꽃>과 함께 소월의 대표시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성과 평범하면서도 함축성 있는 시어를 구사하여 서정시로서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제목으로 쓰인 '산유화'는 어떤 꽃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산에 피어 있는 꽃'이라는 뜻으로 '산'과 '꽃'을 함께 제시하는 조어(造語)이며, 모든 생명체를 대표하는 대유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인간'을 제외시킨 채 다만 '꽃'과 '새'와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만을 노래한 서경시가 아니라, 꽃이 피어 있는 공간으로서의 자연과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의 꽃을 포괄하는 수준 높은 존재론의 서정시이다.

첫째 연은 산이라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는 '갈 봄 여름 없이'라는 구절처럼 계절의 변화이자 순환의 원리를 뜻한다. 따라서 생성과 소멸이라는 두 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꽃도 존재하므로, '산에는 꽃피네 / 꽃이 피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라는 시행 속에는 산과 꽃, 즉 자연과 생명이 공간적 질서와 시간적 질서의 결합 위에 놓여 있으며, 그것은 바로 순환의 원리에 근거한다는 소월의 깨달음이 나타나 있다.

둘째 연에는 자연과 생명의 공간적 존재성이 형상화되어 있다. '산'이라는 공간 속에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은 모든 존재들의 숙명적인 개체성 또는 실존적 존재성을 표상한다. 따라서 다의적(多義的, ambiguity)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저만치'는, 실제의 공간적 거리라기보다는 꽃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심리적 거리이자, 꽃과 꽃, 인간과 인간, 즉 모든 존재들이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실존 상호간의 거리를 의미하며, 이는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모든 존재의 고독한 모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연에서는 다시금 모든 사물의 상대적 존재성을 제시하고 있다. '새'는 '꽃이 좋아 / 산에서 살'지만,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으로 인해 '꽃'과 하나가 될 수 없으므로 '꽃'과 '새'는 모두 고독한 존재로서의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넷째 연은 첫째 연과 호응하면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의 '피는' 행위가 넷째 연에 이르러 '지는' 사건으로 마무리되면서 탄생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라는 우주 만상의 존재 원리를 강조한다. 따라서 시적 화자도 자신이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유한적(有限的) 존재임을 인식하고, 무한적이고 영원한 자연과 결코 합일되거나 동류(同類)가 될 수 없음에 절망한다. 그는 '갈 봄 여름 없이' 피었다 지는 '꽃'을 통하여 인생의 무상함과 자연의 원리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魂)이 몸을 떠나는 것이라는 믿음에 의거하여 떠난 혼을 불러들여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儀禮化)된 것을 고복 의식(皐復儀式) 또는 초혼(招魂)이라 한다. 그 의식은 사람이 죽은 직후, 그가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이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죽은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초혼은 죽은 이를 소생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한 '부름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사랑하던 그 사람'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이름이여'·'그 사람이여'·'부르노라'와 같은 호칭적 진술을 반복하는 부름의 형식을 통해 고복 의식을 투영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월의 시는 임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비탄감을 체념적·수동적 어조로 분출해 내는 나약함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격정적이고 능동적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임의 갑작스런 죽음을 대하는 시적 자아는 '사랑한다'는 말도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한' 한(恨)을 가슴속에 새겨 넣고 '붉은 해가 걸린 서산 마루'에 올라앉아 '슬피 우는 사슴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허탈한 모습으로 '그대의 이름을 부른다.' 임과 나는 결코 이어질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 만큼의 절망적 거리로 멀어져 있다는 현실에 체념하지만, 곧바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임의 이름을 부르며 임의 죽음을 부정하는 설움의 극한을 보인다. '돌'은 백제의 가요 '정읍사'나 박제상의 처가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모티프와 관련이 있으며, 임이 죽은 사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비원(悲願)을 담은 한의 응결체인 것이다.

시적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초혼이라는 전통 의식에 맞추어 한 인간의 극한적 슬픔을 말하고 있다. '산산히 부서진 / 허공 중에 헤어진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을 부르는 슬픔을 표현한 1연에 이어, 미처 고백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달픔을 말한 2연, 허무하고 광막한 시적 공간을 제시하며 슬픔의 본질을 드러낸 3·4연, 그리고 망부석으로 비유된 슬픔을 마지막 5연에서 말하며 임이 떠나간 저 세상으로 간절히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해질 무렵'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선으로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산'으로 제시된 공간적 배경 또한 땅과 하늘의 경계, 곧 현실의 세계와 영원의 세계를 구분짓는 것으로, 산 자가 죽은 자의 세계로 다가갈 수 없다는 절망적 한계를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 시적 자아의 심리적 추이 과정을 살펴보면 대략 '충격과 슬픔' → '허무와 좌절' → '미련과 안타까움'으로 말할 수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이러한 비극적 세계관을 통해 시적 자아는 자신도 그 죽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마침내 임의 죽음을 긍정하게 되고 허무의 초극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흔히 정한과 비애의 전통적 정서로 파악되는 소월의 시 세계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현실 인식이 투영된 그의 또 다른 시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임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된 그간의 한과 체념의 정서로부터 벗어나, 국권 상실이라는 비극적 현실 인식과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저항 의지를 보여 주는 이 시는, 민족 공동체로서의 정서를 땅의 상실이라는 구체성에 바탕을 두어 작품의 효율성을 얻고 있다. 이러한 변모는 식민지 치하의 현실 상황에서 그저 한스럽다며 울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적극적 자세를 드러내 주는 것으로, 개인적 서정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우리의'과 같은 민족 모두의 문제로 시적 인식의 폭을 확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꿈의 모습인 1연과 땅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현실의 2∼4연을 대립시킴으로써 현실의 고통과 비극을 더욱 극명히 드러내는 표현 방법을 취한 이 시는 '보습 대일 땅', 즉 농토를 빼앗김으로써 물거품이 되어 버린 꿈을 쓸어안고,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20년대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동서남북을 유랑하는 그들에게 희망은 '별빛'처럼 아득일 뿐이요, '가슴에 팔 다리에'는 절망과 고통의 '물결'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생존을 위해 새벽부터 열심히 산비탈을 경작하는 이웃들을 목격하는 순간,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일지도 모르는 절망적 심경을 떨쳐 버리고, '나는 나아가리라 /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라 힘차게 외치며 밝은 내일을 향한 미래 지향적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삼수갑산'에 유폐되어 있는 시적 화자의 고립감과 단절감을 비통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가 처해 있는 공간은 '물도 많고 산첩첩'인 삼수갑산이므로, '님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 고립의 장소이다. 그러기에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불귀(不歸)의 운명을 타개할 방법이 없음에 그는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시가 소월이 죽기 한 달 전에 발표한 그의 마지막 발표작임을 생각하면, 이 시에 드러난 절망의 깊이를 통해 그가 자살을 감행하던 때의 심적 태도가 어떠했는지 가늠해 보기에 충분하다.

소월시에서 고향은 임과 집이 존재하는, 혹은 자아와 세계의 근원적인 합일이 보장된 평화와 안식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알 수 있듯, 고향으로 향하는 길을 완전히 상실한 절망적 상황 앞에서 그 같은 고향은 단지 먼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아득한 곳이 되고 만다. 그리고 화자를 그 곳으로 인도해 줄 길이 없는 한, 고향으로부터의 거리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소월은 현실 세계와 자아의 긴장된 모순 관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면서 현실의 냉혹한 질서 앞에 서 있는 자아의 모습을 형상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세계에 압도된 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망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시는 현실 세계와 소월 사이에 놓인 거리가 극복될 수 없는, '길'마저 존재하지 않는 한계 상황 앞에 선 자아의 절망과 비탄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소월시는 대부분 의미있는 대상 세계와의 거리감, 즉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자각과 그로 인한 상실감과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실감과 비애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것, 그로 인한 가세의 몰락, 사회적 부적응 등, 결국 그 자신을 음독 자살로 몰고간 그의 개인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식민지 치하라는 당시 민족의 현실 상황이 결합됨으로써 그는 '님'도 '집'도 '고향'까지도 상실해 버렸다는 자각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인식에서 이 시를 비롯하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길>, <옷과 밥과 자유>, <초혼>과 같은 작품을 탄생시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참고 ―――――――――――

이 시는 {신인문학}(1934.11)에 발표된 김소월의 최후의 작품으로, 자필 원고에 의하면 창작 일자가 '1934년 9월 5일 밤'으로 되어 있어 그가 죽기(1934.12.23) 약 3개월 보름여 일 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는 김억에 의해 {신동아}(40호, 1935.2)에 자필 원고가 영인되어 유고로 소개되어 있으며, 김억이 편집한 {소월시초}(1939)에도 재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들의 표현이 지면마다 달라 감상에 주의를 요한다. {신동아}에 영인으로 보이는 시의 제목은 '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署先生三水甲山韻)'으로, 이 시는 김억의 <삼수갑산>이란 시에 운을 붙여 지어서 스승 김억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것이다. 이 때의 자필 원고와 {신인문학}에 발표된 작품은 띄어쓰기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대동소이하나(자필 원고에서는 '삼수갑산 이 어디뇨'로 되어 있다. 이 때는 삼수갑산에 와서 본 절망감이 강조되어, '삼수갑산이 도대체 어떤 곳인가'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소월시초}에는 매우 많은 부분이 개작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대하는 김소월의 '삼수갑산'은 바로 이 {소월시초}의 수록 시로, 원문에 비해 그 수준이 현격히 떨어지므로 여기에서는 김소월의 원본을 소개한다. 참고로 김억의 <삼수갑산>({삼천리}, 1934.8)과 {소월시초}에 수록된 김억의 개작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를 보면 김소월과 김억의 시재(詩材)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수갑산(三水甲山)

 

삼수갑산(三水甲山) 보고지고 삼수갑산 어디메냐

삼수갑산 아득타 아하 산은 첩첩 흰구름만 싸인 곳

 

삼수갑산 가고지고 삼수갑산 내 못 가네

삼수갑산 길 멀다 아하 배로 사흘 물로 사흘 길 멀다.

 

삼수갑산 어디메냐, 삼수갑산 내 못 가네

불귀불귀 이 내 맘 아하 새드라면 날아날아 가련만

 

삼수갑산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락가락 무심타 아하 삼수갑산 그립다고 가는 꿈

 

삼수갑산 먼먼길을 가고지고 내 못 가네

불귀불귀 이 내 맘 아하 삼수갑산 내 못 가는 이 심사

 

 

차안서선생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

 

삼수갑산(三水甲山) 나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메냐.

오고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삼수갑산이 어디메냐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을

아하, 새드라면 떠가리라.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둡네.

 

내 고향을 가고지고

삼수갑산 날 가둡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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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韓龍雲)

본명 : 한정옥(韓貞玉)

만해(萬海), 한유천(韓裕天)

1879년 충청남도 홍성 출생

1896년 동학에 가담하였으나 운동이 실패하자,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감

1919년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

1927년 신간회(新幹會) 중앙 집행위원

1930년 월간지 {불교} 발행인

1944년 사망

시집 : {님의 침묵}(1926)


<님의 침묵>의 첫 구절,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된 시집 {님의 침묵}은 마지막 작품인 <사랑의 끝판>의 끝 행, '예 예 가요 이제 곧 가요'로 마무리되는 이별과 만남의 존재론적 드라마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시집 {님의 침묵}에 강한 연계성과 극적인 구조로 배열되어 있는 88편의 시를 대표하면서 나머지 시들을 해명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해시가 갖는 시적 특질을 가장 압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님'과 '침묵'의 상징 체계가 어떠한 연관을 지니는가 하는 것을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집 {님의 침묵}의 머리말격인 '군말'을 보면,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중략>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그것이 생명이 있건 없건 간에 만해는 모두 '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해의 '님'은 그의 영혼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그를 존재하게 하는 원점이고,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動力)이라 할 수 있다. 자아를 출발시키는 근원으로서 존재하는 그의 '님'은 역사 속에서는 조국이나 민족이며, 진리의 의미로는 참자각의 세계요, 그의 종교적 환경에 비추어 본다면 절대 신앙의 가치요, 그외에도 단순한 연인으로서의 의미 등 다양하게 변모하며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것도 될 수 있으며, 또한 그 어느 하나만은 될 수 없는 복합적 의미의 '님'인 것이다. 가장 포괄적으로 그의 '님'을 말하면 인간의 삶을 삶답게 해 주는 모든 가치의 총체를 의인화한 것이라 하겠다.

'님'의 다양한 의미처럼 '님의 침묵' 역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인간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렵고 도달하기 어려운 부처의 경지, 피안(彼岸)의 진리 세계,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암담한 조국 현실 상황, 현상으로는 이미 사라지고 본질로서만 있는 영원한 임의 존재 양상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만해의 생애와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던 민족의 삶이었던 만큼 역사적, 현실적 의미를 떠나서는 그의 시가 온당하게 해석될 수만은 없을 것이 분명하다.

1행은 '님'이 떠난 사실을, 2행은 '님'이 떠난 모습을, 3행은 '님'이 떠남으로써 파기된 '님'과의 약속을, 4행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님'과의 추억을 말함으로써, 1∼4행이 '님의 떠남', '님의 부재'를 형상화하고 있다.

5행은 '님'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6행은 '님'이 떠남으로써 야기된 슬픔을 보여 주어 5∼6행은 '님'과 함께 있으면서 '님'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했던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뜻밖의 이별에 대한 충격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1∼6행까지는 사랑하는 '님'과 이별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일어나는 슬픔과 괴로움을 묘사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러나'라는 접속어에 의해 7행은 시적 상황이 급전하게 되어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이것은 바로 그가 '거자필반(去者必反)'과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철리(哲理)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8행에서는 '거자필반'이라는 재회의 확신을 보여 줌으로써 이 시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만해에게는 이별이 부정적 이별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을 극복한 긍정적 이별이 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가 '소멸'과 '생성', '이별'과 '만남', '눈물'과 '웃음'의 변증법적 구조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결국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9행은 주제행으로 '님'이 부재하는 객관적 사실을 '마음으로는 보내지 아니하였다'는 주관적 의지로써 슬픔을 극복하고 있다. 마지막 10행에서는 현상적으로는 사라졌지만, 본질적 존재로서는 남아 있는 침묵의 깊은 경지 속의 '님'을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을 그리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1∼5행에서 '만남은 만남, 이별은 이별'이라는 단순히 객관적인 사실로서만 존재하던 평면적 사고(思考)가 6행에 이르면서부터 입체적인 사고로 변하게 되었다. 만남의 배후에 있는 이별과 이별의 배후에 있는 만남을 설정함으로써 만남은 곧 이별이요, 이별은 곧 만남이라는 역설이 가능해진 것이다. 바로 이 역설적이고 입체적인 사유가 5행에서 주제행인 10행으로 전개시킨 원동력이 되었고, 또한 '님'과의 이별이라는 비탄과 절망의 상황을 소망과 기대의 밝은 공간으로 이끌어 준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님'이라는 존재와 이별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제시하여 인간 정서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별의 한(恨)'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정서를 '절망이 아닌 희망'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열어 준 기념비적 작품으로, '이별' → '이별의 슬픔과 고통' → '희망적 기다림' → '만남'에 이르는, '소멸' → '모순·갈등' → '생성'이라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드라마이다. 따라서 이별은 만남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생성의 존재 원리에 해당한다. 결국 만해는 국권 상실도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소멸에 불과한 것으로 더 큰 의미의 광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현실적 고통이며 역사적 시련으로 인식함으로써 1944년 숨을 거둘 때까지 조금도 변절하지 않고 일제와 맞서 싸운 실천적 지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이별'과 '미'의 등식(等式) 관계를 통해 이별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로 시작해서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로 끝나는 구조는 이 시가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을 준비하는, 이른바 정·반·합의 변증법적 철학 원리에 기초해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별의 미는,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는 것처럼 긍정적 가치는 반드시 부정적 가치의 존재에서만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역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한다. 다시 말해, 황금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탕으로 빛을 발하고, 검은 비단은 어둠 속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며, 생명은 죽음 없이는 가치를 얻을 수 없고, 시들지 않는 꽃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님'과의 '다시 만남'을 전제로 한 이별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 되며, 또한 그 이별은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있는 이별이므로 새로운 미의 창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님의 침묵>과 함께 만해시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전 6행의 이 작품은 5행까지는 동일한 구문이 계속되다가 비로소 6행에서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의미 내용이 드러나게 된다.

'A는 누구의 B입니까?'의 구문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누구'는 <님의 침묵>의 '님'과 동일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자연의 신비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만해의 의식 세계에서 절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님'에 대한 찬양과 헌신의 의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1∼5행에서 보여 주고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 현상은 모두 '님'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님'의 발자취는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이고, '님'의 얼굴은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이며, '님'의 입김은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이다. 또한 '님'의 노래는 신비의 계곡에서 나와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의 흐름 소리며, '님'의 시는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인 것이다. 여기서 '오동잎'·'하늘'·'향기'·'시내'·'놀'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이 곧 '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님의 침묵>에서 본 것처럼 '님'은 복합적인 상징 체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님'의 일부로는 생각할 수 있으나 자연 그 자체가 '님'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1∼5행까지는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 현상으로 '님'의 존재를 제시하였던 것이 6행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그칠 줄 모르고 타오르며 님의 밤을 지키는 등불'로 나타난다. 이 시행에서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적 확신이 이루어져 있다. <님의 침묵>에서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거자필반(去者必反)의 철리가 적용되었던 것이 이 작품에서는 소멸과 생성의 원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자기 연소(自己燃燒)와 극복의 몸부림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새로운 극복과 생성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만해로 하여금 '님' 앞의 '끊임없는 등불'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등불'은 자신을 불태워 남을 밝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무화(無化)시켜서 남을 존재하게 하는 거룩한 존재이다. 따라서 만해는 자신의 절대적인 '님'을 향해 다시 기름이 되는 생성의 믿음과 의지를 굳게 갖고, 재가 되는 소멸의 아픔을 기쁨으로 감수하는 것이다. 이처럼 만해시는 소멸의 시인 동시에 역설의 시이기에 극복의 시가 될 수 있으며, 생성의 시로 상승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기본 바탕은 불교의 윤회 사상과 연기설(緣起說), 그리고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지만, 그 심오한 진리가 작품 속에 완전히 용해된 탓으로 조금도 설법(說法)의 냄새를 풍기지 않고, 도리어 감각적 실체로만 나타나 있어 만해의 뛰어난 시적 능력을 감지(感知)할 수 있다.


이 작품도 만해의 다른 시들처럼 '님'에 대한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 노래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을 '나룻배'에 비유하고, 나룻배와 행인의 관계를 통하여 인내와 희생, 그리고 사랑에 대한 숭고한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행인인 '님'은 나를 흙발로 짓밟지만, 나룻배로 나타난 시적 화자는 기쁨과 사랑을 느낀다. 왜냐하면, 흙발로 짓밟히는 그 순간만이 그가 '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 곧 '님'을 맞기만 하면 나룻배, 곧 시적 자아는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를 막론하고 기쁨에 넘쳐 강을 건너게 된다. 바람과 눈비를 맞는 고통 속에서 '밤에서 낮까지' '님'을 기다리던 어느 날, 마침내 '님'은 나룻배를 타게 된다. 그러나 그뿐, 나룻배인 그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님'이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으며 또다시 '님'을 기다리며 날마다 외롭게 낡아가고 있다.

이 작품에서 '님'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로 하여금 절망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2연 3행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이 믿음은 <님의 침묵>의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와 동일한 차원으로, 거자필반(去者必反)의 원리를 믿고 있기에 날마다 '님'을 기다리며 낡아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기본 바탕은 욕된 일에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참는 '인욕(忍辱)'과 자기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주고 희생함으로써 탐욕을 이겨내고 사랑을 실천하는 '보시(布施)'의 불교적 윤리 의식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흙발로 짓밟혀도 원망하지 않고(인욕), '님'을 안아 물을 건너며(보시), '님'이 오실 때를 기다리는 헌신적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해에게 있어서 '님'은 현실적으로 떠나고 없지만, 그 '님'과의 이별은 만남이라는 밝은 긍정을 전제로 하고 있는 차원 높은 이별이다. 소월의 '님'은 이미 죽었거나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나 버린 '님'이므로 그의 시가 비탄과 체념적인 어조를 띠고 있는 데 비해, 만해의 '님'은 반드시 돌아올 것을 확신하는 '님'이므로 그의 시는 항상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이 시의 핵심은 인종(忍從)과 애소(哀訴)로 살아가는 가운데서 극복의 힘을 주는 '당신'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가냘프면서도 끈질긴 한국 여인의 목소리이다. 여기서도 '당신'은 시인이 추구하는 '님'과 같은 존재이다.

'당신'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다운 삶을 포기한 채 치욕 속에서 사는 내게 삶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갈고 심을 땅'도, '집'도, '민적'도 없다. 이러한 나에게 부자인 '주인'과 권력자인 '장군'은 인격적 대우를 거부하고 치욕을 가한다. 나와 주인, 나와 장군의 대립은 못 가진 자와 가진 자, 피지배자와 지배자, 민중과 권력자의 대립으로, 이것은 바로 타락한 인간 세계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자, 당시 현실과 연관지어 보면 우리 민족과 일제의 대립으로 민족의 삶과 존엄성이 박탈된 식민지 상황을 암시한다. 여기서 만해는 '그를 항거'한 3·1 운동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내보이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自責感)으로써 현실 상황을 '스스로의 슬픔'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타락 사회에서 치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시적 자아는 윤리와 도덕, 법률은 말만 그럴듯한 것이지, 결국은 권력(칼)과 돈(황금)에 의해 지배되는 허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과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지게 됨으로써 불안감이 고조된다. 마침내 현실의 역사를 부정하고 피안(彼岸)의 세계(불교적 초월의 세계)로 도피하는 삶과, 인류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 그리고 현실에 절망하고 그저 자포자기하는 삶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갈등을 겪고 있던 중, '당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극적 전환이 일어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적 자아는 아무리 타락한 현실 세계라 할지라도, 참된 삶을 이루기 위한 정당한 모색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또한 그것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 귀중한 깨우침이 바로 만해로 하여금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치게 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자유'와 '복종'은 상대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는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다고 한다. 이것은 시적 자아가 일상적인 사고(思考) 체계를 갖는 '남들'과는 다른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복종이야말로 '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와 같은 유교적 이념에 충실하는 절개의 길이자, 참자유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진술은 시적 자아가 남들이 추구하는 자유의 가치를 무조건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다시 말해, 남들이 향유하려는 자유가 현실 세계 속에서 구속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기에 시적 자아는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고 했을 때, 그 '아름다움'은 부정적 의미일 뿐이다. 또한 강요로 이루어지는 복종이 아니라, '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복종이기에 그것을 '행복'으로 인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기에 '님'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는 것이고, 또한 남에게 복종하려면, '님'을 배반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종은 '님'의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인정하는 행위이자, '님'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서 시적 자아의 입체적 사유를 보여 주는 것이다.

'당신'은 조국을, '다른 사람'은 일제를 상징한다고 보면, 이 시는 조국에 대한 헌신적 사랑과 함께 일제에 절대로 복종할 수 없다는 저항 의지를 표현한 시로 평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제가 가져다 준 자유 아닌 자유, 즉 퇴폐적 자유에 민족 의식을 상실해 가고 있는 당시 현실을 비판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정(情)의 하늘'과 '한(恨)의 바다'이지만, 그 곳은 가을 하늘보다 높고 봄 바다보다 깊어 시적 화자는 결코 갈 수가 없다. 이렇게 제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드러내고 있는 시적 화자의 숨은 의도는 '정천 한해'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이나 미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님'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찬 마음은 가을 하늘보다도 높고, 가슴에 사무친 한은 봄 바다보다도 깊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답고 오묘한 것이라 하지만, 사바 세계를 헤매는 인간들로서는 그것을 실천하기 어렵고, 연모의 정으로 깊어진 원한 또한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지혜의 높이인 '손'이 낮고, 지혜의 깊이인 '다리'가 짧은 모든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그러므로 사랑이 진정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가슴에 사무친 한이 사랑으로 승화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깊을수록 묘한' 것임을 아는 시적 화자는 사랑의 감정이 없어지고, 사무친 한이 사라진다면, 차라리 '정천에 떨어지고 한해에 빠지는' 절망의 질곡에서 고통받겠다고 외친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제시한 것으로, 그리움의 대상이나 원한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사랑의 감정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그리움에 사무친 한이 세상 어느 것보다 깊고 절실한 것인 줄 알았는데, '님'의 초월적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님'의 절대성을 인식하게 된 시적 화자는 마침내 '님에게만 안기는' 완전한 귀의의 방법을 통해 정한(情恨)을 극복하고 '님'의 초월적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이 시는 대립적 개념인 '정(情)'과 '한(恨)'이 하나로 통합되어 '님'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귀결되는 과정 즉, 대립적 관계에서 합일적(合一的) 경지로의 이행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유한적 정한의 세계를 철저히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초월적 세계로의 승화를 꿈꾸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잘 나타나 있다.

'님'에 대한 찬송인 이 작품은 동일한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음악적 효과와 함께 의미의 점층적 심화를 꾀하고 있다. 찬송의 대상인 '님'의 존재는 '백 번이나 단련한 금결'·'사랑'·'아침 볕의 첫걸음'·'옛 오동의 숨은 소리'·'얼음 바다에 봄바람' 등으로 비유되어 그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영원토록 천국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며, 현실의 고통과 억압에서 구원받기를 소망하는 내용으로 보아 이 작품에서의 '님'은 조국 또는 민족의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금'은 영원 불변의 절대적 가치의 표상으로서 진리의 속성과 상통한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이루어진 '금'과 같은 존재인 '님'은,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으며 무명(無明)을 물리치는 '아침 볕의 첫걸음'과 같이 사바 세계에 깊은 깨달음을 준다. 또한 '님'은 '황금'으로 대표되는 세속적 부귀 영화보다는 초월적 가치인 '의'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시적 화자는 '님'에게 '거지의 거친 밭'이라는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빈곤으로 고통받는 우리 민족을 위해 '복의 씨'를 뿌려달라고 기원한다. 이제 '님'은 '옛 오동의 숨은 소리'처럼 그윽하고 감미로운 사랑을 베풀어 주지만, 민족이 처한 현실은 아직 '겨울 바다'와 같은 암흑과 절망의 식민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는 보다 강렬한 어조로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어 '봄바람'과 같은 구원의 빛을 내려주기를 '님'에게 간절히 희구하는 것이다.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만해가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시를 읽고 난 뒤, 그것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문학관 및 종교관이 나타나 있어 주목을 끈다. 타고르는 동양 최초로, 그것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인으로서 노벨 문학상(1913년)의 수상자가 된 사람이다. 우리 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던 그가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던 당시의 많은 우리 문학인들에게 '동방(東方)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가 이 땅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917년 육당의 {청춘}을 통해서였으며, 본격적인 소개는 김억에 의해서였다. 만해의 {님의 침묵}에 수록된 시편들은 타고르의 본격적 도입 이후 창작된 작품이며,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 그 전개에 끼친 타고르의 영향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타고르의 시 'Gardenisto'라는 작품은 '원정(園丁, 정원사) The Gardener'의 에스페란토 역(譯)이다.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타고르의 시에 상당히 감동받았으면서도 전적으로 타고르의 시 세계에 공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타고르의 시에 나타나는 초월적 세계에의 지향에 대하여 만해는 많은 이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만해에 의하면 현실을 떠나 영원한 피안(彼岸)의 세계를 노래하는 타고르의 시는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경건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절망의 노래요, 죽음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시는 타고르의 시에 대한 만해의 소감을 '벗'이라고 지칭된 타고르에게 들려 주는 형식으로 된 전 4연 구성의 자유시이다.

1연에서 만해가 평가하는 타고르의 시는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이나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의 향기'와도 같이 대단히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아무리 신비롭고 놀라운 것이라 하더라도 진정 살아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일견 희망의 노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희망을 포기한 '절망인 희망의 노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2연에서 만해는 그에게 눈물을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라고 한다. 떨어진 꽃에 눈물을 뿌리는 일은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3연에 이르면 더욱 분명해져 그의 시를 '무덤을 그물친 황금의 노래'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현실의 생명과 유리된 허황한 아름다움만을 가진 노래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추'는 것은 현실의 삶을 위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고 있는 만해로서는 그에게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발을 세우'라고 진심으로 충고한다. 즉, 고통스런 현실의 역사를 회피하지 말고, 그 안에서 참된 가치의 실현을 위해 싸우라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마침내 절망적 현실인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게 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4연에서 만해는 그의 시에 대한 감상을 종합적으로 '부끄럽고 떨리는' 것으로 말하고 나서, 왜 '내가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것인지 밝힘으로써 자신의 문학관이자 종교관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종교란 현실을 떠난 영원한 내세로 구원시켜 주는 데 그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의 고통에 맞서 능동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해 주는 데 그 가치가 있으며, 문학 또한 그 같은 사명에 충실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만해는 이 시를 통해 지금과 같은 암울한 현실 상황하에서 필요한 것은 절망적 노래가 아니라, 현실 상황과 대결하며 그 속에서 가치 있는 삶을 이루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어느 달밤, 초월적 세계에 이끌리다가 '님'이 떠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시인의 상념을 노래한 작품으로, 현실 속에서 '천국'을 꾸미고자 하는 그의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이름도 모르는 나라' 속에 형상화되어 있다. 그 나라는 인간이 타고난 본래의 모습처럼 평화롭고, 고통이 없으며, 권위(권력)·물욕(物慾)·육욕(肉慾) 등의 세속적 가치가 부정된 탈속적(脫俗的)인 낙토(樂土)이다. 만해의 승려 신분을 고려한다면, 그 곳은 인간의 자성[(自性), 자성 본불(自性本佛)의 준말로,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이라는 뜻]이 유지되는 불국(佛國)의 서방정토(西方淨土)이다. 그러나 그 곳에는 '님'이 없기에, 그는 유혹을 물리치고 현실로 돌아온다. '님'과 재회하고 '님'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낙원을 이곳 현실 세계 속에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현실의 세계' → '명상의 세계' → '현실의 세계'라는 전개 방식을 취해, 현실 세계와 명상 세계의 대립 관계를 드러내는 한편, 화자가 현실 세계를 선택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화자가 불교적 초월과 현세적 삶을 비교해 본 후, 불교적 초월이 아니라 '님'과 함께할 수 있는 현세의 삶을 선택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을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선사(禪師)로서의 삶이 아니라, 지사(志士)로서의 삶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지사의 길은 불교 사상에 의해 현실을 떠난 고답적인 세계에 침잠하거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석가의 인류애적인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민족과 함께 침략자들의 불의에 항거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선택은 개인적 행복이나 구원이 아니라, 고난받는 민족의 구제에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선사의 길인 불교적 초월 세계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는 님이 오시면 그의 가슴에 천국을 꾸미려고 돌아왔습니다.'라는 구절을 통해 만해가 현실 세계에서 불교적 초월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음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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