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식민지 현실의 폭로와 저항의 의지

1920년대 {백조}를 중심으로 한 퇴폐적 낭만주의는 1922년 '힘(力)의 예술'을 들고 일본에서 귀국한 김기진(金基鎭)과 그에 동조한 배재 중학 동기생인 박영희(朴英熙)에 의해서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1920년대 초의 한국의 문단은, 이광수(李光洙)·최남선(崔南善)의 계몽주의, 김동인(金東仁)을 중심으로 한 예술지상주의, 염상섭(廉尙燮)의 일본식 자연주의, {백조}를 중심으로 한 퇴폐적 낭만주의 등의 흐름이 뒤섞여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문학 운동으로서 '계급주의 문학'이 가세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 문학은 보통 '프로 문학' 또는 '경향 문학'으로 불리지만, 활동 초기에는 '신흥 문학' 또는 '신경향파 문학'이라고도 불렸다. 이 중 특히 '신경향파 문학'이라는 용어는 박영희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 보통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조직 이전의 자연발생적 계급주의적 색채의 문학을 의미한다. 계급 문학은 1922년 송영(宋影), 이적효(李赤曉), 박세영(朴世永) 등의 염군사(焰群社)라는 최초의 사회주의 예술 단체의 조직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이 단체에서 발간한 {염군}이라는 잡지는 발간 금지를 당하여 그 자세한 작품 활동은 알 수 없다. 1924년에는 PASKYULA라는 문학 써클이 조직된다. 이 단체는 박영희, 안석영(安夕影), 김기진, 이익상(李益相) 등의 구성원이 자신들의 이름의 영문자를 모아 이름을 붙인 친목적인 문학 단체로서, 한두 번의 문학 강연회 외에는 뚜렷한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이 두 단체가 1925년 8월 하나로 통합하여 조직한 단체가 바로 '카프 KAPF'이다. 그러나 이 단체도 창립 당시에는 뚜렷한 강령이나 활동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이름만의 써클적 성격의 모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27년 박영희에 의해 분명한 목적 의식의 활동 방침이 주창되고 다수의 구성원이 이에 동조하면서 카프는 1935년 해산될 때까지 한국 문단 내의 최대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된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의 약 10년 동안은 이러한 카프를 중심으로 한 계급 문학 시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들이 차지하는 문단의 비중은 매우 컸다.

1920년대 이후 각종 사회주의 단체들이 조직되면서 지식인들의 현실 비판 의식이 눈뜨게 되고 날로 가혹해져 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 의지가 싹트게 되면서, 이러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서고자 하는 저항 문학 또는 현실주의(realism) 문학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다. 이러한 문학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조직이 바로 카프로서 이들에 의한 계급 문학은 곧 일제에 대항하는 저항 문학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문학은 1934년의 박영희의 전향 선언의 한 문구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 자신이었다."에서 보듯 흔히 예술성의 포기로 비판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막무가내로 문학 작품에서 선전·선동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상성을 근거로 한 예술적 감동이 이들 문학의 목표였다. 이들의 문학 활동은 비평과 소설 창작에서 두드러지지만 시에 있어서도 많은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비록 현실적 제약으로 많은 작품들이 복자(伏字)처리를 당하여 그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이 단원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만으로도 당시 치열하게 살아갔던 우리 선조들의 저항 문학 정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폭로와 저항의 의지는 일부 민족주의 시인들에 의하여서도 활발히 전개된다. 그 대표적 시인이 이육사와 윤동주로 이들은 작품 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하다가 불행히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옥사하고 만다. 특히, 윤동주는 그의 모든 작품들이 사후에 유고집으로만 소개되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시인이지만, 그만큼 이들의 시에는 조국 광복에 대한 열망이 뜨거운 민족애로 넘쳐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문적인 시인이기보다는 소설 창작과 연극·영화 운동을 통하여 민족 운동에 힘을 쏟았던 심훈의 유고시도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이 단원에 실려 있는 거의 모든 시들은 식민지 현실의 가혹한 상처를 보듬고 살아간 비극적 삶의 정화(精華)들이다. 특히, 그 계급주의적 사상성으로 말미암아, 또는 해방 이후의 월북의 행적 때문에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우리의 문학사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만 일군(一群)의 시인들의 작품 중에는, 당시의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헤쳐 나갔던 치열한 삶의 행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들 작품들을 너그럽게 읽으면서 우리의 문학 유산을 더욱 풍요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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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화(李相和)

상화(尙火, 想華), 무뉘, 무성(無星), 백아(白啞)

1901년 대구 출생

1915년 경성 중앙 학교(京城中央學校) 입학

1919년 3·1 운동 때 대구에서 거사하려다 실패

1922년 문학 동인지 {백조} 동인

1925년 KAPF에 참여

1927년 의열단 이종암(李鍾岩) 사건으로 구금

1935년 중국으로 건너감

1936년 귀국 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943년 사망

시집: {늪의 우화}(1969), {나의 침실로}(1977), {석인상(石人像)}(1984), {이상화 시집}(1985),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86) 외



이상화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이 시는 {백조} 동인들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18세에 창작했다고 알려진 이 작품에는 식민지 치하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사춘기 소년의 낭만적 정열로 극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한 젊은이로서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삶의 세계를 추구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고통스러운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역설적으로 죽음의 세계를 동경하고 예찬하는 것으로 굴절되고 만다.

이 작품은 '마돈나'·'침실'·'수밀도의 네 가슴'·'나의 아씨여' 등의 감각적 시어들로 말미암아 간단히 남녀간의 정욕을 노래한 애정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적 자아가 '마돈나'와 함께 가고 싶어하는 '침실'은 육체적, 쾌락적, 본능적인 일반적 의미의 침실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과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는 재생의 장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시는 남녀간의 애정을 소재로 하여 관능적, 감상적, 낭만적 표현 방법에 의해 아름답고 영원한 꿈과 같은 안식처(安息處)를 갈구하는 내용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1연부터 마지막 12연까지 시적 화자는 연속적으로 '마돈나'를 부름으로써 급박한 상황을 부여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구석지고도 어두운 마음의 거리에서' 밝음이 오기 전에 '마돈나'가 오기를 간절히 애원하고 호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침실'의 상징 의미는 무엇일까? '침실'의 의미 체계를 해명할 수 있는 열쇠는 부제(副題)로 되어 있는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라는 에피그람[Epigram : 간결한 경구(警句)나 짧은 풍자 시구]에 있다. 이상화는 아름답고 오랜 것은 꿈속에서만 존재할 뿐 아니라, 꿈 그 자체로,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믿고 있다.

물론 '꿈'은 '밤'을 시간적 배경으로, '침실'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잠'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낮 시간의 활동을 '삶'이라 한다면, 밤 시간의 잠은 일종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잠'은 영원한 죽음이 아닌, 아침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므로 밤은 '부활의 시간'이요, '침실'은 '부활의 동굴'이 되며 잠(꿈)은 곧 '부활'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실의 의미는 밀실(密室), 현실의 도피처, 안식처, 조국의 광복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뉘우침과 두려움의 결단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꿈과 부활의 동굴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작품 전편에서 침실은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다시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침실과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아름답고 오랜 나라'로 다양하게 변주(變奏)되면서 정신적 안식과 활력을 주는 재생의 장소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또한 '마돈나'는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일 수도 있고, 시적 화자가 사랑하는 어느 젊은 여인의 애칭일 수도 있으나, 이들의 공통된 상징 의미는 '구원의 여성'으로 표상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6연까지의 전반부에서 강하게 나타나던 관능적 어조는 후반부에 이르러 어느 정도 완화될 뿐 아니라, '침실'의 상징 의미도 '부활의 동굴'로 가시화되어 관능적 쾌락의 측면도 희석된다. 번민과 집착, 고뇌로 가득한 것이 지상의 낮 세계라면, 그 일체의 번민과 집착, 고뇌를 감싸 주는 것은 비실제적인 밤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11연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이다.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상을 벗어난 환상의 세계, 바로 꿈의 세계이다. 그 꿈이 '잠속에서 꾸는 것(밤이 주는 꿈)'이건, '관념 속에서 일어나는 이상(우리가 얽는 꿈)'이건, 아니면 '죽음(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건 간에 참된 의미에서의 부활은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침실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침실은 마돈나를 불러 사랑의 완성을 위해 꿈을 꾸는 장소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 바로 죽음의 꿈이다. 왜냐하면, 그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은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침실이며, '언제들 안 갈 수 있으랴' 라는 표현처럼, 두렵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 형태를 갖추고 있다. 마돈나를 기다리고 갈망하는 사랑의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유기적인 형태 구조를 이루어 효과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첫째 단락인 1∼3연의 기다림은 '달려오너라', '몸만 오너라', '기다리노라'라는 애원과 간청이 시간의 경과와 기다림의 지속적인 심리 변화와 상징 체계를 이루면서 시적 정서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둘째 단락인 4∼6연에서는 '지난 밤이 새도록',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와 같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초조함과, '짧은 심지를 더우잡'는 동작과, 그리고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 것과 같은 절망에서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라는 극적인 갈등을 보여 주고 있다. 셋째 단락인 7∼9연은 앞의 두 단락의 시간 진행과 시적 화자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다림'이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 육체적인 결합을 환청과 환상으로 체험하면서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 화자의 고뇌가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 단락인 10∼12연에서는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테면 우리가 가자'라며 마냥 기다리는 자세에서부터 '가자'라는 적극적인 행위로 전환되는 시간의 연속성을 통해 '기다림'에 대한 절실함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기) 1단락 ―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3연 2행), (승) 2단락 ―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6연 2행), (전) 3단락 ―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8연 2행), (결) 4단락 ―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12연 2행)와 같이 기·승·전·결 형태에 적절하게 배치된 돈호법의 활용은 이 작품의 구조적인 면에서 뼈대 구실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의문형 → 서술형 → 의문형 → 서술형의 형식으로 연계시킨 것은 바로 '마돈나'에 대해 미약한 존재인 '나'의 사랑의 호소로 그것은 결단의 의지가 아닌, '듣느냐', '오느냐'와 같은 간곡한 하소연으로서의 정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환상적이고 애절한 사랑 체험은 형태적인 구조의 안정감을 뒷받침으로 하여 더욱 애절하고 심도 있는 사랑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이 시는 '간도 이민을 보고'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일제의 온갖 수탈과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간도와 요동벌로 떠나가는 유이민(流移民)들의 고통을 통해 당대의 암울했던 현실 상황을 극명히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 2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1연에서는 '쫓김'의 이미지가 주가 되어 간도 유이민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2연에서는 자포자기에서 오는 갈등과 간도 이민의 수난상을 직시하면서 이 땅에 남아 처절한 삶을 부지해야 하는 아픔을 묘파하고 있다. 그에 따라 1연에서 어느 간도 유이민으로 설정되었던 시적 화자는 2연에서 이 땅에 남아 치욕스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민족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가도다'라는 감탄형과 동일 시어의 반복을 통해 점층적으로 비극적 정감을 상승시켜 격정적 분위기를 이루는 첫 행에 이어 '주린 목숨 움켜 쥐고, 쫓겨가는' 유이민의 처절함과 '진흙을 밥으로, 해채를 마셔도 / 마구나, 가졌드면, 단잠은 얽맬' 수 있을 것이라는 궁핍상과 절박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일제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분노를 배가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신(神)께 소망하는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가거라!'라는 자학적인 절규는, 죽음이 도리어 행복했던 당대의 처절한 민족 실상을 드러내 주는 동시에,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 라는 2연의 첫 행 속에는 '과연 이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가'라는 절망적 현실에 대한 깊은 회의와 탄식이 내포되어 있다. 뒤이어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 상황에 대한 저항 의지는 '어둔 밤 말없는 돌을 안고서 / 피울음'을 토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어둔 밤'과 같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말없는 돌'처럼 침묵과 인내로서의 저항 의지, 그리고 '피울음'이라는 적개심이 동시에 분출되어 '차라리 취한 목숨, 죽여버려라!'라는 저항 의지의 정점으로 연계된다. 그러므로 1연의 '주린'이 배고픔의 육체적 고통을 의미한다면, 2연의 '취한'은 모순된 현실 상황을 그대로 살 수 없다는 정신적 고뇌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1·2연이 모두 7행이고, 각 행의 종지형(終止形)이 동일한 형태로 된 구성의 견고함은 주제의 치열성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이 작품을 보다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게 하고 있다.


이 시는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식민지 백성들의 비탄과 적개심을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다. 일제에 의한 조국 강토의 강점으로 두 발을 뻗을 수도 없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생존권마저 상실당한 당시 현실에 대한 강한 울분과 저항 의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참담한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하소연하고자 하나, '하늘'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함께 나눌 수도 없는 초월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식민지 현실을 절대적 한계 상황으로 인식한 결과이자, 지상의 모든 불행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고 해결하려는 지상주의적 항거 자세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흘기니 / 울음이 터지'는 것과 같은 분노와 저주에 떨다가 '해야 웃지 마라 / 달도 뜨지 마라'라는 부정적 저항 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상실된 주권과 박탈된 자유의 조국 현실이란 해와 달이 없는 것과 동일한 암흑의 상태이기 때문에 식민지 치하의 치욕스런 삶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민족의 생존권이 복원된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뜨거운 삶의 의지로 분출되고 있다.


이 작품은 <나의 침실로>에서 보여 준 감상적, 관능적, 퇴폐적 낭만성을 극복하고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 버린 식민지 조국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쓴 저항시로 이상화의 후기 대표작이자, 일제 치하 30여 년 동안 발표된 수많은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먼저 두보(杜甫)의 시 <춘망(春望)>*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설의적 의문은 당시 현실 상황을 '빼앗긴' 모습으로 묘파함으로써 지난날 역사에 대한 강한 비판과 부정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주권과 영토는 물론 마지막 남은 역사와 민족혼마저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피력하고 있다.

첫째 연의 '땅'과 '들'은 모성적(母性的) 심상으로서의 역사 의식을 보여 준다. 그것은 국가적인 면에서는 영토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우리 민족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적인 터전이요, 양식을 일구어내는 농토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의 땅과 들을 빼앗긴다는 것은 나아가 그것의 상징으로서의 민족혼까지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난 역사의 잘못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한 위기감과 박탈 의식은 마지막 연의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로 귀결됨으로써 민족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자연의 이법 또한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위기감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연, 땅, 들, 민족혼, 역사 어느 한 가지도 빼앗길 수 없다는 적극적 저항 의지의 표출이자, 잘못된 역사를 몸소 바로잡겠다는 투철한 역사 의식의 표현이다.

그리고 '바람'·'종달새'·'보리밭'·'도랑'·'나비'·'제비' 등의 많은 자연적 소재와 '가르마 같은 논길', '삼단 같은 머리'·'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맨드라미 들마꽃'·'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와 같은 향토적 정서를 환기시키는 토속적 표현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민족 현실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3, 4음보를 기초로 하여 3행 1연이 한 단위가 되어 각 연의 시행이 점점 길어지는 규칙성과 함께 완급률(緩急律)을 형성함으로써 모든 독자들에게 국권 회복의 의지를 품고 '빼앗긴 들'을 걷는 시적 화자의 발걸음과 행보를 같이하게 하여 국토의 소중함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깊이 깨우치게 한다. 이 작품의 그러한 성격과 색채로 말미암아 이 시의 발표 무대였던 {개벽}지가 일제로부터 폐간당하게 되었다는 점도 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제고하고 있다고 하겠다.

 

* 춘망(春望)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남아

성 안 봄에 풀과 나무만 무성하구나

感時花천?淚 恨別鳥驚心

시절을 생각하니 꽃이 도리어 눈물겹고

이별은 한스러워 새가 마음을 놀라게 한다.


상화의 시 상당수에는 그가 처했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비관적 현실 인식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세상의 허위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로, 당대의 참담한 모습이 주로 '밤'과 '울음'으로 나타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강렬한 사랑과 함께 그에 대한 회복의 갈망이 민족의 활화산으로 분출되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밤'의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지닌 의미는 대체로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슬픔과 고통의 이미지이며, 밤은 곧 '울음'과 '눈물' 등의 구체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 인식은 마침내 식민지 치하의 참담한 상황하에서 보다 비극적으로 심화됨으로써 그의 시는 비관적 인식의 단계를 넘어서서 일체를 부정하는 태도로 나아가게 된다. 이것을 부정적 현실 인식으로 부를 수 있다면, 이는 당대의 모순과 불합리에 대한 전면적 거부 태도라 할 것이다.

이 시는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찬 식민지 치하의 파행적인 현실을 '병'의 이미지로 구체화하여 부정적인 현실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으로, <몽유병(夢遊病)>, <조선혼(朝鮮魂)>과 같은 작품처럼 '잃어버림'과 '멀어짐'의 이미지를 통해서 '젊은 조선'의 비극적인 상황을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리'는 가을날, 시인은 우리의 '젊은 조선'이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있거나 안정된 가운데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뜬눈으로 '긴 밤을 지새는 귀뚜리' 같은 처지가 되어 '가없는 생각 짬 모를 꿈'을 모두 상실해 버리고 그저 '땅 위'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구슬픈 마음'은 '앓다 못해 날뛸 시절'로 제시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현실 상황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민족이 처한 고통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파악한 시인은 울분과 적개심을 동시에 표출하게 된다. 특히, '기러기'·'귀뚜리'·'떨어진 나뭇잎'·'홀아비'·'헤매는 바람떼'·'야윈 구름'·'떠돌아다니네'와 같은 하강적 이미지 시어 내지 소멸적인 이미지들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당대 민중들의 모습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절망의 극점에서 표출되는 현실에 대한 부정 정신의 표상인 '병'을 통해 시인의 현실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 현실 인식은 시인으로 하여금 모순의 현실과 적극적으로 대결 양상을 취하게 함으로써 당대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저항적 태도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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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林和)

본명 : 임인식(林仁植)

청로(靑爐), 김철우(金鐵友), 쌍수대인(雙樹臺人), 성아(星兒), 임(林)다다, 임화(林華)

1908년 서울 낙산(駱山) 출생

1921년 보성 고보 입학

1925년 졸업 직전에 중퇴

1926년 12월 카프(KAPF) 가입

1928년 <유랑(流浪)>, <혼가(昏街)> 등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

카프 중앙 위원

1929년 박영희의 후원으로 동경으로 떠남. 무산자사(無産者社)에서 활동

1931년 귀국. 카프 1차 검거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불기소 석방

1932년 카프 서기장

1945년 8월 조선 문학 건설 본부 조직, 서기장

1946년 2월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47년 4월 월북

1953년 8월 '미제 스파이' 혐의로 사형

시집 : {현해탄(玄海灘)}(1938), {찬가(讚歌)}(1947), {회상 시집}(1947)


프로 시인으로서의 임화를 우리 시문학사에 각인시킨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우리 오빠와 화로>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네거리'의 이미지는 후일 <다시 네거리에서>(1935.7)와 <9월 12일, 1945 또다시 네거리에서>(1945.9)로 변주(變奏)됨으로써 임화 시의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시는 시적 화자인 오빠가 종로 네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누이동생 순이에게 하소연하는 독백체 형식으로, 선동적이며 격정적인 호흡과 고백적이면서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계급 투쟁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이데올로기만을 강조하던 종전의 경향시와는 달리 서정성도 가지고 있다. 소위 '단편 서사시'로 분류되는 작품이지만, 일정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 실제로 등장하거나 일정한 질서를 지닌 사건이 구체적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서사시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담은 서정시, 즉 이야기 시로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누이동생 순이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공장에 나가는 노동자이며, 오빠는 '남은 것이라고는 때묻은 넥타이 하나뿐'인 지식인 계급으로 누이동생의 방황을 보며 현실 인식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청년은 순이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언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따뜻한 귓속 다정한 웃음으로' 꽃다운 청춘을 보내던 연인 관계이지만, 그가 공장에서 노동 운동을 한 죄목으로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두 사람은 고통과 수난을 겪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행동도 표출하지 못한 채 그저 마음속으로만 갈등하는 무기력한 오빠는,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복판에'서 방황하는 누이동생과, '젊은 날을 부지런한 일에 보내던 그 여윈 손가락으로 / 지금은 굳은 벽돌담에다 달력을 그리'며 감옥 생활을 하는 청년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프로 시로서의 계급 의식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은 '보아라! 어느 누가 참말로 도적놈이냐?'라는 설의적 의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시인이 의도하고 있는 계급 의식은 다만 추상적 관념으로만 나타나 있을 뿐, 구체적 현장성이나 실천적 운동성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카프 내의 최고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임화의 초기 대표작이다. 임화는 시로 시작해서 문단에 알려지고 카프 내의 최고의 이론가이자 실권자로 활동하여 해방 후에는 좌익 문학계의 거두로 활약하다가 월북하지만, 6·25 후의 남로당 숙청 과정에서 박헌영과 함께 사형당한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은 그 동안 남·북한 양쪽에서 다 소외받아 온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계급주의 문학을 도외시하고는 한국 문학을 온전히 알 수 없고, 특히 임화를 모르고서는 계급주의 문학을 안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존재는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겨놓은 것이 된다. 비록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예술성을 소홀히 하였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해도, 그러한 예술성의 부족이라는 잣대로 계급주의 문학을 평가하고자 하는 태도 자체가 오늘날엔 비판받고 있기도 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작품을 무조건 예술성이 뒤떨어진다고 하여 문학사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계급주의 문학은 일제 식민지가 낳은 일종의 저항 문학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문학을 통한 정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자면 문학은 선전·선동의 도구로서 우선 간주되는 것이므로, 얼마나 이러한 목표에 충실하였는가가 작품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작품이 무조건으로 예술성을 배척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예술성보다는 사상성을 그 우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임화의 이 시는 시 속에 어떻게 사상을 담을 수 있는가 하는 계급주의 문학에서의 고민을 적절히 해결하여 당시 '단편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고평된 작품이다. '단편 서사시'란 짧은 서사시로서, 종래의 서사시가 영웅들의 세계를 노래한 반면 '단편 서사시'는 계급 투쟁에서 비롯되는 혁명적인 사건을 취급하여 서사적인 화자를 시 속에 끌어들여 표현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단편 서사시'의 창작으로 임화는 일약 카프 내의 최고의 시인으로 떠오른다.

이 시는 시적 화자인 누이동생이 감옥에 갇혀 있는 오빠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남동생 영남이와 오빠와 함께 살고 있던 화자는, 오빠가 정치적인 이유로 구속되자, 동생과 함께 근무하던 공장에서 쫓겨나서 봉투에 풀붙이는 일로 겨우 연명해 나가고 있다. 그러던 중에 영남이가 사 온, 오빠가 매우 아끼는 질화로가 그만 깨어지고 만 것이다. 누이동생은 이 화로가 깨어진 것을 알려 주는 것으로부터 편지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 화로는 바로 오빠 또는 혁명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화로는 동생 영남이가 사 온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혁명의 정신이 계속하여 젊은 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은연 중 드러내 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화로가 깨어졌음은 곧 오빠의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혁명 전선에서의 패배까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은 누이동생과 영남이는 오빠의 투쟁 정신을 되새기며 더욱 큰 일을 위하여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그것을 임화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었어요 /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있고 /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즉도 더웁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모든 무산 계급의 혁명적 연대 의식으로 확대되어 누이동생은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프롤레타리아 문학(계급주의 문학)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의 결말을 그 특징으로 하는데, 이러한 도식적인 창작 방법에 대해서 프롤레타리아 문학 진영 내에서도 자기 비판을 제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여 나아가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항상 그 선두에 서서 진영을 이끌고 있는 이론가가 바로 위와 같은 '단편 서사시'로 프롤레타리아 시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임화인 것이다.


1934년 이른바 '신건설사 사건'으로 카프 맹원들에 대한 일제 검거가 시행되고 있을 때, 임화는 폐결핵의 악화로 검거를 모면한다. 그가 마산에서 요양 후 1937년 상경하였을 때, 문단에는 카프 해산 이후 '전형기(轉形期)'를 맞아 최재서, 김기림의 모더니즘론과 백철의 휴머니즘론 등, 탈(脫)리얼리즘의 기운이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를 맞아 임화는 다시 주체 재건을 꿈꾸면서 본격적인 리얼리즘론의 탐구에 몰두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첫 시집 {현해탄}을 간행한다. 이 시집에는 1934년부터 1937년 사이에 쓰여진(예외적으로 <네거리의 순이>가 있다) 총 41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현해탄'이라는 바다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식민지 청년의 운명과 싸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한 잔 포도주를>은 {현해탄}이 간행되고 난 뒤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1930년대 후반에 처한 임화의 내면 풍경을 아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바야흐로 파시즘의 시대에 돌입한 뒤의 과거 카프 서기장이었던 임화, 그러나 검거를 모면하여 '변절자'로 비쳐질 수도 있는 임화가 이러한 '새 시대'를 맞아 어떠한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가. 이 시는 이런 의미에서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 시의 변모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임화의 변모를 보다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는 그 제목부터가 '한 잔 포도주를' 하며 건배를 권하고 있어, 포도주 예찬시가 아닌 만큼 열정적이고 선동적이다. 지금은 '찬란한 새 시대'로서 '향그런 방향 우에 / 화염같이 붉은 한 잔 포도주를' 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대는 '새벽 공격의 긴 의논이 끝난 뒤'이며 '결별에 임하여' '피로하지'도 않아야 하며 '적에 대한 미움을 늦추지 않'아야 하는 미명(未明)의 시기이다. 따라서 모름지기 '향연'에는 '뼛속까지' 취하는 '붉은 포도주'가 준비되어야 하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취해 나자빠질 수도 없는 현실이다. 오히려 이 때의 '한 잔 포도주'는 승패를 초월한 결과를 겸허히 맞아들이는,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위대한 결별을 위한 최후의 축배인 것이다.

이러한 최후의 순간을 맞는 심정을 임화는 '꽃과 애인과 승리와 패배와 원수까지를 / 한 정열로 찬미할 수 있는 우리 청춘'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임화가 맞서려고 하는 '적'과 '원수'의 정체는 무엇인가. 역사주의적 비평 방법에 기댄다면 쉽게 '일본 제국주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수까지를 찬미한다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분석 방법은 더 이상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왜냐하면, 동일한 비평 방법에 근거하자면, 이는 당연히 '친일적인' 표현으로 비판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원 발표문에서의 '피녀(彼女)'를 해방 이후에 '적'으로 교정시켜 놓은 것을 보면, 이 시는 분명히 '일본 제국주의'를 향한 1930년대 후반의 한 지식인 청년의 도전 의지의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임화는 '적'에 대한 분노에 몸을 떨거나 눈을 부릅뜨고 전의를 가다듬지는 않는다. 단지 벗들에게 '축복의 붉은 술잔을 들자'고 건배를 권하고 있을 뿐이다. 일찌기 중학을 중퇴하고 가출하여 다다이즘에 취하였던 모던 보이이자 미남 배우였던 임화, 24세의 나이로 카프 서기장이라는 권좌에 올랐던 임화, 그러나 김남천과 더불어 스스로 카프 해산계를 경기도 경찰국에 제출해야만 했던 임화로서는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 같으면, 파시즘의 시대를 당하여 스스로를 시대의 주구(走狗)로 탈바꿈시키도록 노력하든가 아니면 시대의 뒤안길에서 무기력함을 달랠 것이지만, 임화는 다른 전술을 사용한다. 그는 '적'을 인정하고, 그가 그 동안 몸바쳐 왔던 그 어떤 '주의'와도 마찬가지로, 다시 그 '적'에 '대등하게' 열정적으로 사는 방법을 택한다. 이제는 '적'의 실체와 세력의 정도가 관심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는 방법이 문제가 되는 시기인 것이다.

이렇게 1930년대 후반, 29년의 청춘을 보내면서, '적'을 적으로서 떳떳이 인정하고 차라리 패배를 위한 축배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임화. 그는 그만큼 혁명가이기보다는 자신만만한 모던 보이이자 로맨티시트 시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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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강(金海剛)

본명 김대준(金大駿)

1903년 전북 전주 출생

1925년 전북 사범 학교 졸업

전주 사범 학교, 전주 고등학교 근무

1925년 시 <달나라>가 {조선문단} 응모에 당선

193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새 날의 기원>이 당선

1936년 {시건설} 동인으로 참가

1963년 예총 전북지부장 역임

시집: {청색마(靑色馬)}(1940), {동방서곡(東方曙曲)}(1968)


김해강은 활동 초기, 프로 문학 운동이 왕성할 때에는 동반 작가로서 경향적인 시를 많이 발표하였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는 순수 서정 시인으로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한 한국의 전통적 서정 세계를 주로 노래하였다. 이 시는 그의 초기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경향적 작품이다.

1∼2연은 간밤의 봄비가 그치면서 봄빛이 가득한 세상을 보여 준다. 그러나 봄비는 지리한 밤과 함께 새벽바람에 물러가고 '산기슭엔 아즈랑이 떠돌고' '땅 우엔 샘이 돋건만', '발자취 어지러운 옛 뒤안'을 돌아본 시적 자아는 그저 쓸쓸함을 느낄 뿐이다. 이 때, '옛 뒤안'은 단순히 집 뒤의 공터라는 의미보다는 그 동안 식민지 시기의 온갖 고난과 역경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3∼4연에서 시적 자아의 시야는 집 밖의 세상으로 확대된다. 그 곳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양지쪽에 쭈그리고 앉아 놀고 있는 한가로운 장소이지만, 회한에 잠겨 '한숨지고 섯는 늙은이'의 흰 수염이 바람에 날리는 '무너진 성터'로서, 봄을 맞는 폐허의 구체적 공간적 배경이 된다. 그러나 이 때의 '무너진 성터'는 폐허의 대유적 표현이며, 이는 곧 나라를 잃은 망국의 국토를 상징한다. 5∼6연에서 시적 자아의 현실 인식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시적 자아는 그대로 폐허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다시 찾아온 봄에 의탁해 막연하나마 희망을 실어보낸다. 그러나 정면으로 맞서지도 나서지도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은 고작 두근거리는 가슴 속에 눈물을 삼키는 회한으로 표현된다. 그렇지만 그는 '새벽바람에 달음질 치는 동무'를 봄으로써 이러한 막연한 희망에서 구체적인 현실적 방법의 모색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 동무는 아마도 남몰래 노동 운동을 하거나 지하 정치 운동을 하는 젊은이리라. 시적 자아는 드디어 '철벽을 깨뜨리고 새 빛을 실어오기'를 '가슴을 바쳐' 기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이 작품은 '이 폐허에도 봄은 찾아 왔건만'의 표현에서 보듯 두보(杜甫)의 시 <춘망(春望)>의 모티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시는 전반부의 봄을 맞는 비관적 정조에서 벗어나 주체의 현실적 자각을 획득함으로써, 현실을 뚜렷이 응시할 수 있는 비판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마지막 연의 '그러나 나는'에서 보듯, 시상의 전환과 함께 분명하게 시적 자아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 점은 이러한 현실 인식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경향시의 대표적 특징인 것이다.


김해강의 1933년도 {동아일보} 신춘 문예 당선 작품이다. 이 시는 그 제목에서 보듯 새해를 맞는 소망을 기도체의 문장으로 담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이 땅 겨레의 가슴에도' '새로운 붉은 해가 돋아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기원은 해마다 비는 연례적인 행사이긴 하지만, 특히 이 해에 더욱 간절한 마음이 되는 것은 그만큼 시적 화자가 처한 현실이 어둡고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1930년대 이후 더욱 악랄해진 일제의 폭압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시인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의 애타는 염원을 '붉은 해'로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이러한 염원을 그냥 엎드려 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담아 '주먹을 놓고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가슴이라도 베여 정성을 다하고 싶'고,

'어깨라도 끊어 정성을 다하고 싶'을 정도로 절대 절명의 소원으로 표현된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현실의 어둠과 답답함을 '붉은 해'가 힘차게 열고 빛나게 하기를 새해를 맞아 빌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새해 첫날은 사실 1년 365일의 모든 날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만, 새해 첫날을 빌어, 시인이 평소 간직하고 있는 깊은 소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이러한 소망의 표현도 더이상 마음 놓고 하지 못하게 된 현실의 역설적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리라.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눈물겹도록 애처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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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팔양(朴八陽)

금려수(金麗水), 여수(麗水)

1905년 경기 수원 출생

1920년 배재 고보 졸업 후 경성 법학 전문 학교 입학

정지용(鄭芝溶), 박제찬(朴濟瓚) 등과 함께 등사판 동인지 {요람(搖藍)}에 참가

192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신(神)의 주(酒)>가 당선되면서 등단

1926년 KAPF에 가입

조선일보사 입사

1928년 {중외일보} 사회부장 역임

1937년 {만선일보} 기자 역임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가담 후 월북

시집: {여수 시초(麗水詩抄)}(1940), {박팔양 시집}(1947)

김여수(金麗水)라는 이름으로도 많은 시를 발표한 박팔양은 임화를 중심으로 한 단편 서사시 계열과는 달 리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주로 창작하였다. 이러한 서정성은 일찌기 {요람}을 만들기도 하였던 시적 감수성이기도 한데, 이러한 성격에서 그는 초기 계급 문단에 관여하기도 하고 1930년대 중반 '구인회'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 시는 추방당하는 유랑민의 비애를 거친 호흡과 직설적인 어법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각 연의 영탄적 표현에서 보듯 박팔양의 젊은 시절의 낭만적 어조가 짙게 배어 있다. 이 시에는,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한 '추방되는 백성'의 회한과 '무겁게 나려 덥힌 지리한' 국경의 밤의 이미지가 '괴물' 같은 기차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식민지 현실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주된 시어도 '추방'·'고달픈'·'헐레벌덕어리며'·'달어난다'·'답답한'·'숨맥힐 듯'·'가슴 터질 듯'·'캄캄하고나'·'괴로운'·'적막한'·'피로한'·'무겁게'·'나려 덥힌' 등에서 보듯 피압박의 이미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어휘들이 대부분이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추방되는 백성'으로, 그는 '백성'이라는 시어에서 보듯 나 혼자만이 아닌 식민지 백성 전체를 대유한다. 그리하여 2연의 1행 '내 답답한 마음'은 4연 마지막 행의 '의지할 곳 없는 우리의 마음'으로 밤차를 타고 있는 모든 승객―모든 유랑객의 마음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비닭이집' 같은 오붓한 고향을 등지고 '도망꾼'처럼 '솔밭길을 빠지듯'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나선 신세이다.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밤차에 몸을 실어 낯선 북방의 산하를 헤맬 것이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을 따스하게 맞아 줄 '아름답든 꿈'은 없으리란 것을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단지 '숨맥힐 듯 가슴 터질 듯 몹시도 캄캄'할 뿐이다. 모두 피곤히 잠들어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말없이 울고 있을 뿐인데, 차창에는 북국의 거친 바람이 부딪히고, '괴물' 같은 밤차는 이러한 백성들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돌진'할 뿐이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이러한 추방된 백성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의롭게 할 일, '아까울 것 없는 이 한 목숨 바칠 데'를 찾는다. 그것만이 이 괴로움에서 백성들을 깨워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추방의 원인이, '고향의 아름답든 꿈'이 사라지고 '비닭이집' 같은 평화로운 고향이 지금은 황폐화된 것에서 보듯, 식민지 현실의 질곡에 있는 한, 시적 자아는 그러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데에 한 목숨을 바치려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서정성 짙은 프롤레타리아 시를 통한 박팔양의 작품 행동인 것이다.


이 시는 주제와 리듬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데모의 유쾌하고도 장중한 기분을 잘 형상화해 낸 박팔양의 대표적 작품이다. '납덩어리같이 무겁고 괴로웁든' 마음으로 그저 '평소에 묵묵히 일하든 친구들'이 오늘 5월 1일의 메이 데이[노동절]를 맞아 궐기한다. 그것은 참으로 '가슴 울렁거리도록' 즐거운 일이다. 그 동안 '먼지 휘날리며 달리든' 부르주아의 자동차와 마차도 오늘은 움직이지 못하며, 거리는 데모대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하다. '자본가'들은 두려움에서 밖에 나오지 못한 채 건물 안에서 놀란 눈으로 서로 눈치만 볼 뿐이다. 영리하게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시민들에게 '미래를 춤추는 이 군중의 무도를' 보여 주면서 데모대는 보조를 맞추며 장쾌한 행진을 계속한다.

이 시는 이처럼 명확한 주제를 직설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보듯이 4음보의 장중한 리듬과 함께 제시된 '보조, 보조, 보조를 맞치라'의 선동적 문구는 이 시의 주제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 준다. 이처럼 이 시는 많은 복자(伏字 : ×××와 같이 검열을 통과하기 위하여 사상성이 담긴 어휘를 감추어 놓은 것)를 담고 있는 것에서 보듯, 분명한 목적 의식을 지닌 대표적 프롤레타리아 시에 속한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시는 기존 체제의 변혁을 의도하기 때문에 당연히 항일의 성격을 지니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복자의 표현을 지닌 프롤레타리아 시는 193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일부 시인들에 의해 꾸준히 창작된다.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시의 제재로 선택되는 것 중의 하나가 꽃이며, 그 중 진달래꽃은 우리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친숙한 꽃이어서 그 동안 많은 시인들에 의해 주로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취급하는 제재로서 특히 애용되었다. 그 비근한 예로 우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들 수 있거니와, 위의 박팔양의 작품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달래꽃'을 그 제재로 취급하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이 시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 하로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처럼 피었다가 지면 열매를 맺는 결실도 없이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일홍'과 같은 화려함이나 '국화'와 같은 끈질긴 생명력도 없어서 노래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꽃이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서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이며 봄의 모양을 먼저 그리는 '선구자'이다.

그러나 선구자는 불행하다. 자신의 희생이 가져오는 화려한 결실을 직접 맛보지도 못하며 스러진다. 시적 화자는 따라서 그 동안 희생된 '우리의 선구자들 수난의 모양이 / 너무도 많이 나의 머릿속에 있는 까닭'에 진달래꽃을 부여잡고 운다. 시제에서 보듯 시적 화자는 '진달래꽃'을 '봄의 선구자'로서 인식하지만, 그것은 '찬 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서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지는' 희생자로서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러나 정작 진달래꽃 자신은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고.

결국 시인은 '진달래꽃'에 의탁하여 그냥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적 삶을 비판하고, 순간에 스러지더라도 뚜렷이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삶은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박팔양이 선택한 삶의 방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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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영(朴世永)

백하(白河)

1907년 경기도 고양 출생

1922년 배재 고보 졸업 후 중국 혜령 영문 전문학교에서 수학. で염군(焰群)と 동인

1924년 귀국 후 사회주의 예술 운동에 가담

1927년 시 <농부 아들의 탄식>, <산협(山峽)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 시작

1937년 배재 고보에 근무

194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 동맹, 조선 문학가 동맹 맹원

1946년 월북

1989년 사망

시집 : {산제비}(1938), {횃불}(공동시집,1946)


이 시는 우리 시문학사에서는 아주 드물게 식민지 시대 혁명 전위(前衛)의 역사적 전망을 뚜렷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지금 오후의 마천령을 넘고 있다. 이 시는 이러한 등정의 길을 따라 구성된다. 시적 화자는 1연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2연에서는 어느새 마을이 산 아래 놓여 있는 위치에 올랐으며, 5연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험한 마천령을 넘어서 6연에서 드디어 그는 마천령 위에 올라 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가 힘들게 올라온 꼬불꼬불한 길은 위에서 내려다보니, 영어의 W자 I자 N자 등으로 생겨 마치 WIN의 의미로 보인다. 이는 시적 화자의 성취감과 전위의 혁명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 시의 주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전망이 확보되었을 때, 시적 화자의 마음은 자신을 '내려다보든 이 산이나 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마음껏 '장쾌함'과 '위대함'을 느끼고, 결연한 의지로서 '언제나 이 마음을 사랑'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직접 '나'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 보인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감 없이 산을 오른다. 그의 길은 '조그만 산기슭에 숨어버리고' 그는 '산을 싸고 도는 길이 있으면, 백리라도 돌고 싶'은 심정이며, '장엄한 대자연에 눌리어 / 산 같은 물결에 삼켜지는 듯' 마음이 떨린다. 그러면서 그는 '이리구도 천하를 근심하였나, 스스로 마음 먹'으며 자신을 반성해 본다. 그리하여 그는 강한 의지로 '기어이 고개길로 발을 옮'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나약한 패배주의적 감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비록 그는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북쪽'으로 활동 중심을 옮기고 있지만, 이제는 '겁나던 마음이야 옛일 같'아 '갑옷을 입은 전사와 같이 / 성난 이리와 같이 / 고갯길을 쿵쿵 울리고' 고개를 넘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그는 '장쾌함'과 '위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이처럼, 기존의 여성적 편향의 고향 상실을 노래하는 작품이나, 북방 정서를 바탕으로 유이민의 비애를 노래하는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혁명 의지와 역사적 전망이 강하고 장중한 남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시로 꼽힌다.


박세영은 초기에는 주로 서술시를 발표하여, 사회적인 이념이나 사상을 표출하고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는데, 이러한 특징의 시들이 한 데 모인 성과물이 바로 시집 {산제비}이다. 이 시집에서 박세영은 당대의 궁핍화한 농촌 현실에 대한 탄식과 식민지 시대의 박탈감을 짙게 드러내고 있는데, 이렇듯 그의 시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응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산제비>는 식민지 상황 속에서의 지성인이 추구하는 자유 의지를 '산제비'를 통하여 표출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 의지가 단순히 억눌린 상황하에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하여 가난한 농민을 위하여 / 구름을 모아는 못 올까'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대의 농촌 현실에 대한 애정과 식민 통치에 대한 은근한 비판까지도 드러내고 있어서, 지식인의 민중 연대 의식 또는 공동체 의식까지를 넉넉히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산제비'는 '자유의 화신'이자 '천리조'이지만, 그저 '녹두만한 눈알로 천하를 내려다보는' 장한 새일 뿐 아니라, 시인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서 시인 자신의 안일하고 나태한 허위 의식을 꿰뚫어 보는 역사 의식의 소유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4연에서 보듯 '하루 아침 하루 낮을 허덕이고 올라와 / 천하를 내려다보고 느끼는 나를 웃어 다오 / 나는 차라리 너희들같이 나래라도 펴 보고 싶구나'라는 탄식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렇듯 이 시는 식민지 현실하에서 현실을 극복하여 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산제비'에 의탁하여 표현하는 데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 시는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지식인이 겪는 시대고(時代苦)와 불안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는 전쟁 준비에 더욱 몰두함으로써 우리 나라는 일제의 병참 기지로 전락하게 되고,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지식인의 위기감은 더욱 팽배해진다. 이 시에는 이러한 1930년대 후반의 현실이 숨을 쉴 수 없는 질식의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스스로를 '시대병 환자'라고 여긴다. 그러나 자신을 '환자'라고 보아 주는 이가 전혀 없을 정도로 현실은 이미 회복 불능의 중증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사람들은 무감각하게[익숙하게]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시적 자아는 이러한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시는 전체 내용으로 보아 2단락으로 구성된다. 1∼4연은 '완연히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도시의 일상적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도시의 객관화되어 있는 풍경의 모습 속에는 은연중 시적 자아의 불안 심리가 투영되어 있어서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이 들여다 보인다. 1연에서 '솔개미가 빙빙 단엽기같이' 날고 있는 모습에서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솔개'의 살기 등등한 눈매가 느껴지는 동시에, '단엽기같이'라는 비유에서 보듯, 솔개를 '단엽기', 즉 전투기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역시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은근한 풍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연에서의 '나팔을 불고 지나가'는 '청년단원'과 '쉴 새 없이 도심지대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트럭, 3연에서의 '보루' 같은 '고사포'와 '콩크리트 굴둑' 등의 시어에서 보듯, 전쟁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자아의 불안 의식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늘어만 가는 '고사포'를 깨닫는 자신의 눈이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지경에 빠지게 되고, 결국 5연에서 보듯 자신을 '독까스를 마신 질식한 사나이'로, '시대병 환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자신을 불안하게 하고 무력감에 빠뜨리는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을 '환자'로 보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시는 그 시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실 의식을 잘 보여 준다. '솔개미'·'단엽기'·'무장'·'청년단원'·'나팔'·'트럭'·'도심지대'·'보루'·'병원'·'고사포'·'콩크리트 굴둑'·'공장'·'독까스'·'질식'·'환자' 등에서 보듯, 도시와 전쟁의 이미지의 시어들이 각 연의 '―다'의 단정적 진술과 어울려, 현실의 암담하고 질식할 것 같은 시대적 분위기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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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장환(吳章煥)

1918년 충청북도 보은 출생

1930년 안성 보통학교 졸업

1931년 휘문 고보 입학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 발표

1936년 {낭만}, {시인부락} 동인

1937년 {자오선} 동인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맹원

월북

시집: {성벽(城壁)}(1937), {헌사(獻詞)}(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오장환이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하면서부터이지만,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한 것은 1936년 {낭만},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월북하기까지 4권의 시집을 상재한다. 첫 시집 {성벽}은 1937년 2월까지 쓴 작품들을 모은 것이고, 둘째 시집 {헌사}는 그 이후부터 1939년 8월까지의 작품들을, 세 번째 {병든 서울}은 해방 이후부터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네 번째 시집 {나 사는 곳}은 몇 작품을 제외하면 해방 전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시기적으로는 {병든 서울}보다 앞선다.

오장환의 시 세계는 대개 세 경향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성벽}과 {헌사}에서 보여 주는 비애와 퇴폐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모더니즘 지향의 세계요, 둘째는 {나 사는 곳}의 향토적 삶을 배경으로 한 순수 서정시의 세계요, 셋째는 {병든 서울}이 보여 주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세계이다. 그의 문학은 과거의 관습과 전통의 계승을 부정하고 서구적 취향에 몰두하였다가 다시 고향을 발견하는 도정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오장환의 시 세계는 순수 모더니즘의 성격에 훨씬 가깝다.

이 시는 다음의 <성벽>과 함께 그의 초기시 세계를 뚜렷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에게 있어서 '성씨보―족보'란 한갓 '오래인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왜 '오가(吳哥)'인지 모른다. 단지 조상 때부터 그렇게 불려 왔기 때문이다. 족보를 살피자면 중국 청인(淸人)을 조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믿을 수 없다. 족보란 얼마든지 허위로 작성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매매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족보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역사 전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역사란 소라 껍데기처럼 속에 비해 무척 무거운 짐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그는 분명한 어조로 단언한다.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라고.

이러한 극단적인 전통 부정은 이상(李箱)에게서 보듯, 모더니즘의 한 형태로서 자폐적 언어 유희로 나타날수도 있지만, 오장환의 전통 부정은 나름대로의 역사 인식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가계보'를 작성한 먼 조상을 '대국 숭배를 유심히 하고 싶어서' 족보를 허위 작성하거나 매입한 '알 수 없는 종자'로 파악한다. 이러한 자기 부정은 실은 자신이 지금 속해 있는 식민지 현실을 있게 한 모든 조상에 대한 부정이자, 그러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러한 극단적인 부정의 내부에는 강한 혁명의 에너지가 살아 숨쉬고 있기 마련이다. 단지 오장환에게 있어서는 그 에너지가 본격적으로 분출되기까지의 시간이 다른 프롤레타리아 시인들보다 조금 더 걸렸을 뿐이다.


오장환의 과거에 대한 부정은 다시 그 대상이 '성벽'으로 이동한다. 앞의 '성씨보'와 마찬가지로 '성벽'이란 '보수'의 상징이다. 성을 쌓을 때는 그 내부에서 누리고 있는 안온(安穩)한 질서를 영원히 유지하기를 의도한다. 즉, 성벽은 변혁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은, 외적이 침입하였을 때, 외래의 서구적 문명이 도전하여 왔을 때, 재래의 무기인 뜨거운 물과 고춧가루로 그들을 물리쳐 보지만, 대세를 거역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성벽의 존재 의의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한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턱어리처럼 지저분'할 뿐이다.

시인이 이 시를 통해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의 '편협한 야심'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성벽을 통해서 지키고자 하였던 보수적 세계관, 즉 폐쇄적이고 정적인 공간으로서의 성벽이 지닌 이데올로기[관념]이다. 그러나 실상 시인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가치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영원 불변한 것으로 믿고 막무가내로 저항하려 한 조상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렇게 저항해 보았자, 얻은 것은 식민지 현실일 뿐인 것에 대한 모멸감, 자괴감에 오장환은 극단적인 전통 부정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이 시는 일제 치하 식민지 현실 속에서 삶의 근거를 잃고 유랑하던 1930년대 농민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연과 행의 구분을 무시한 독특한 형태의 '이야기 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한 시인의 의도는 폐쇄적 공간인 식민지 현실의 구속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서사적 줄거리를 요약하면, "싱싱하던 박 넝쿨이 서리에 사그러 붙던 어느 가을밤, 부부는 밤새도록 싸웠으며, 박이 완전히 굳어지고 낙엽지던 날, 그 부부는 새 바가지를 뀌어 들고 움막을 떠나갔다."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순한 줄거리 속에 당시 유랑인들의 곤궁한 삶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초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로 제시된 퇴락한 '움막'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박'을 심어 그것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던 극한적 궁핍상이다. 부부가 무엇 때문에 밤새도록 싸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생활의 어려움 때문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결국 부부가 새 바가지를 꾸어 들고 움막을 떠나 유랑 걸식하는 걸인이 되는 것으로 시상이 마무리되고 있는데, 이러한 비극적인 부부의 모습이야말로 당시의 숱한 유랑인들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으로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러한 비극적 상황에 대해 일체의 설명이나 자신의 감정을 배제시킨 채, 시적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인 정황만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시적 대상인 부부와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이 시는 생략과 응축이라는 절제된 표현 방법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에 호소함으로써 시적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즉, 제목인 '모촌'과 퇴락한 움막 풍경이 주는 황량한 분위기와 함께,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과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이 환기하는 쓸쓸함에서, 그 부부의 서러운 인생과 당시 민중들의 비참했던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극심한 가난과 일제의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정든 고향땅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을 잘 그려낸 작품이라 하겠다.


1930년대에 들어서 지식인 실업자[룸펜]들의 급격한 증가는 많은 문학 작품들의 주요 제재로 등장하는데, 소설로 보자면 채만식(蔡萬植)의 <레디메이드 인생>(1934), 유진오(兪鎭午)의 <김강사와 T교수>(1935) 등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이러한 지식인의 문제는 1930년대에 들어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경제 공황으로 말미암아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 식민지 모순에 근본적으로 근거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1930년대 후반부터의 문학 세계는 그 동안 직접적으로 드러났던 현실 인식이 내면화되어 상징적으로 표출되거나, 아니면 현실을 도외시한 먼 역사로의 도피이거나, 일상사의 사소함 속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획득하는 자기 침잠의 세계로 전환된다.

이 시는 이렇듯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지식인이 겪는 무력감과 소외감을 '황혼'의 이미지와 연관시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정든 고삿,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의 고향을 떠나온 '병든 사나이'로서 황혼의 거리에서 자신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서 있다. 일을 찾아 직업소개소에 들려 보지만, 자신과 같이 병든 사람이 할 일이라곤 전혀 없다. 자신의 키보다도 작은 가로수에라도 의지하고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는 병약한 몸으로서 거리를 나서 보았지만, '공복의 가는 눈'만 겨우 뜰 수 있을 뿐, 근육은 풀어져서 '힘없는 분노와 절망' 속에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적 화자에게도 아름답던 고향의 추억은 있다. 그러나 그 고향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었지만, 이제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병든 학일 뿐이다. 그러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지만, 도시의 현실은 어떤가.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서 더 이상의 병약한 노동력은 요구하지도 않는다. 시적 자아는 비로소 자신의 '타태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져 보지만, 아무도 자신을 보아 주지 않는 황혼 속에서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릴 뿐이다.

이 시는 이처럼 황혼의 어스름에서부터 밤이 밀려오기까지의 시간적 경과 속에서 시적 자아가 가로수에 가만히 기대어 서서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과 그 속에서 느끼는 지식인의 무기력과 절망감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명시적으로 작품 속에 지식인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젊음의 자랑과 희망', '타태와 무기력' 등의 이미지와 '노등'·'포도'·'전서구'·'학' 등의 시어는 그를 통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지식인적 성격을 어느 정도 드러내 준다. 한편으로 이 시는, 과거의 밝은 이미지와 현재의 어두운 이미지의 겹침 효과가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전환하는 '황혼'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잘 조화되어, 시적 자아가 처한 비극적 환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날마다 야위어가는' '병든 학',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가고' 등의 구절에서 보듯, 그러한 비극적 환경이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식민지 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근거한다는 부분적인 표현은 1930년대 후반의 한국시의 내면화된 현실주의적 특성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시의 화자는 '도형수'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실제 죄수라는 뜻이 아니라 식민지의 질곡(桎梏) 속에서 죄수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의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무거운 쇠사슬'과 같은 고난을 끌고 식민지 현실을 헤쳐가는 화자에게 설령 자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닌, '쓸쓸한 자유'일 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정표를 들여다 보지만, 그것은 이미 썩어 흰눈 속에 파묻혀 버렸을 뿐 아니라 '더러운 발자국'까지도 함부로 찍혀 있다. 그 때, 그는 가슴 속으로부터 '치미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갑자기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지만, 그런 행위를 비웃듯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개가 짖는' 소리뿐이다.

이제 화자는 잃어버린 모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러한 길을 따라 어머니가 묻혀 있는 '차디찬 묘'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큰 꿈을 안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정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낙엽송에 쌓인 눈'은 바람에 흩어지고, 어디선가 울부짖는 '산짐승의 우는 소리'는 더욱 처량하게 들려온다. 개울물은 파랗게 얼어 있고, 하늘에선 당장이라도 진눈깨비가 쏟아져 자신의 '비애를 적시울 듯'하기만 하다.

여기서 '낯선 집 울타리에 던지는 돌'은 보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먼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낯선 집'은 일본인들의 집으로, 눈 위에 찍힌 '더러운 발자욱'은 일제의 발자욱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치미는 마음'이라는 구절도 역시 일제에 대한 분노로 해석될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 시를 항일 저항시의 하나로 보기에는 다음과 같은 난점이 뒤따른다. 우선 '돌'을 던진 사람은 분명 '도형수'인 화자와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돌을 던진 그의 행위가 역사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의식의 결과였다면, '돌'을 던지고 난 후에는 적어도 자신의 행위를 적어도 한 가닥 긍지로 인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산짐승의 우는 소리'만이 처량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행위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대응 의식의 소산이라기보다는 현실 상황에 대한 심한 좌절감을 느낀 화자가 다만 자신의 울분에서 벗어나고자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인 행동임이 분명하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장환이 그의 두 번째 시집인 {헌사(獻詞)}를 발간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순수 서정 시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시는 처음 <향토망경시(鄕土望景詩)>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나, 시집 {나 사는 곳}에 수록할 때, 이같이 개제(改題)한 작품으로 잃어버린 고향 앞에서 느끼는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고향이란 모든 이에게 삶의 안식처요,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고향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시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고향이 눈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갈 수 없는 처지라면, 그 설움의 깊이는 엄청날 것이다. 원제(原題)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의 화자는 그 같은 처지에서 깊은 회한과 자책의 심정으로 자신의 안타까움을 애잔하게 토로하고 있다.

해빙이 이루어지는 어느 이른 봄날, 사람이 그리워진 화자는 나룻가에 나가 서성이다가 결국 발걸음을 주막으로 옮긴다. 그 곳에서 행여나 반가운 고향 소식이나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기대해 보지만, 술집 주인에게 얻어 듣는 이야기는 모두 다 아픈 가슴에 상처만을 남길 뿐이다. 변하지 않은 곳은 조상들의 무덤뿐, 그 어디에서도 고향의 옛 모습은 찾을 길 없는 막막함 속에서 화자의 이러한 안타까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낙엽이 흩날리고 잣나비만이 슬피 운다. 옛날이나 이제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장사하는 상인들이라면, 전나무 우거진 고향 마을의 그 진한 누룩 냄새를 묻혀 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화자는 자신의 애끓는 심정을 표출하고 있다. 고향을 바라보며 떠돌이 장사꾼들에게서 고향의 정취만이라도 확인하려는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게 느껴진다.

이 시는 잃어버린 고향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오장환의 변화된 시적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제에 대한 자아의 각성, 즉 확고한 민족 의식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제의 식민지적 수탈과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한 민족적 저항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았다는 면에서 이 시를 저항적 색채의 작품으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 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민족적 저항의 방법은 대체로 민족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것과 계급 의식을 곁들인 두 가지 경우이다. 물론 오장환은 전자의 방법을 취하기보다는 후자의 방법을 취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아직 그러한 면을 발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잣나비의 울음 소리' 같은 다소 허황된 감정의 분출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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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악(李庸岳)

1914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35년 {신인문학} 3월호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며 등단

1939년 일본 상지(上智) 대학 신문학과 졸업

김종한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 발간

1939년 귀국하여 {인문평론} 기자로 근무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

1950년 6·25 때 월북

시집 :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이용악}(현대시인전집 1, 1949)


이용악은 일제 강점기에 대규모로 발생했던 국내외 유이민(流移民)의 비극적 삶을 깊이 통찰하고, 이를 빼어난 시적 감수성과 튼튼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작품화한 시인이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막혀 40년이 넘게 논의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가 단행된 이후에서야 비로소 30, 40년대 우리 시문학사의 빈약한 공간 속에 우뚝 자리잡게 된 위대한 민족 시인의 한 사람이다.

이 시는 '고향 상실감'에 대한 독특한 시적 정서가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패배주의와 절망의 몸짓만이 두드러진 박용철의 '고향'(1931)과도 다르고, 개인의 회고적 서정에 머무르고 만 정지용의 '고향'(1932)과도 차별되는 특유의 시적 정조가 단 6행 속에 명료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그의 '고향'은 단순한 향수 대상이 아닌, 현실 상황을 총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고통받는 현실적 삶과 역사의 시적 등가물로 치환되어 있는 고향이다.

이 시는 화자의 내면 감정을 표백하는 독백의 성격을 지닌다. 화자는 지금 자신의 고향이 위치한 '북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다. 시름에 찬 화자의 내면은 마지막 구절인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른다'로 명징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 다시 풀릴 때'라는 묘사적 표현은 화자의 고향인 '북쪽'의 예사롭지 않은 상황을 암시하는 동시에 화자의 근심어린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북쪽'을 향하여 시름에 찬 화자의 내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시키는 가운데,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라는 객관적 서술이 2행에 삽입되어 있다. 이 구절은 '북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화자로 하여금 시름을 겪게 하고 있는 동인(動因)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는 경우, 화자의 주관을 배제시킨 채 객관적인 서술로 표출하게 되면,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물론 그 구체적인 사건이란 다름아닌 당대의 사회·역사적 상황, 즉 일제하의 우리 민중들이 겪는 고난과 수탈의 비극적 상황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시는 고향을 그리는 주관적 표출과 함께, 그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비극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표현 방법을 배합하여 개인의 주관적 서정을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닌 사회적 차원의 정서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는 러시아를 넘나들며 상인으로 삶을 꾸려가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최후를 통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유랑하는 민중의 비참한 삶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물론 이 아버지가 시인의 실제 아버지였는지의 사실 여부는 작품 감상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시인 자신의 체험을 어느 정도 객관화시켜 북방 지역에 삶의 근거를 둔 어느 유랑 조선인의 허망한 죽음을 형상화한 것은 틀림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세도 안 되어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금을 얻기 위해 소금을 싣고 러시아 영토를 넘나들며 장사를 하였던 것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용악의 시가 대부분 그러한 비극적 삶의 체험 세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그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도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 시의 핵심은 아버지가 '우리집도 아니고 / 일가집도 아닌 집 / 고향은 더욱 아닌 곳' '아라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 있다. 화자는 1연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비참한 심정을 서정적으로 표출한 데 이어, 2연에서는 아버지의 과거 삶과 아버지의 주검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 마디 남겨두는 일도 없었고'라는 구절에서 그의 죽음이 객사(客死)일 뿐 아니라, 급작스러운 죽음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술은 화자 개인의 가족사적 비극 체험을 지나 당대 조선 민중의 비극적 삶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는 당대 유이민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연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그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를 가르쳤다.'라는 표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고, '때늦은 의원이 아무 말 없이 돌아간 뒤 / 이웃 늙은이 손으로 / 눈빛 미명은 고요히 / 낯을 덮었다.'라는 표현은 죽음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제시이다. 이렇게 죽음의 현장을 객관적인 묘사와 사건의 제시를 통해 장면 위주로 전달함으로써, 그 처참한 현장이 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달되는 한편, 그만큼 슬픔의 강도도 커지는 시적 효과가 있다. 4연은 1연의 반복으로, 소위 수미 상관의 구조로 주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안정감을 부여시키고 있다. 여기서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라는 표현은 때마침 집 주위에서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에 대한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느끼는 화자의 참담한 내면 심경을 대변해 주는 소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후의 밤'에 가득 찬 '풀버렛소리'는 화자가 통곡하는 슬픔의 강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는 국경을 넘나들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다 결국은 낯선 땅에서 '침상 없는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조선인 아버지의 임종을 통해 시베리아 유이민의 참담한 실상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930년대 후반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시 삼재(詩三才)로 손꼽혔던 이용악은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땅을 버리고 생존을 위하여 만주나 시베리아 등지로 떠나야만 했던 숱한 유이민들의 비극적 삶을 주된 관심으로 하여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형상화시킨 민족주의 시인이다.

이 작품은 그의 첫 시집 {낡은 집}의 표제시로서 일제의 탄압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 버린 '털보네'집의 퇴락해 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당시의 처절했던 유랑민들의 슬픔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털보네' 일곱 식솔이 사라진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해 나 있는 발자국을 발견하고 동네 노인들은 그들이 아마 무서운 오랑캐땅이나 러시아로 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털보네'가 떠난 후, '거미줄'만 늘어나는 그 집은 이제 더 이상 퇴락(頹落)할 여지조차 없는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이 되어 '꽃 피는 철이 와도 / 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대대손손에 물려줄' 물건 하나 가지지 못한 전형적 조선 빈농(貧農)인 '털보네'가 야반 도주(夜半逃走)를 한 것은 아마도 일제의 심한 감시의 눈길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개화기 이래 일제가 파행적으로 행한 허구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손바닥 만한 농토마저 '찻길'로 빼앗긴 탓이요, 그나마 힘들게 소출(所出)한 '콩'마저도 '늙은 둥글소'에 의해 '항구'로 운반되어 일제에 수탈당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을 가장 명징(明澄)하게 보여 주는 공간 지표인 '항구'를 쉴 새 없이 드나든 탓으로 일찍 노쇠해 버린 '둥글소'와 꺼질 듯 위태롭게 '시름시름 타들어 가는 저릎등'과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은 '낡은 집'과 조화를 이루어 일제 치하 무기력한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표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차 '털보네'가 겪어야 할 암담한 미래를 예견하게 해 준다. 또한 9년 전, 시적 자아의 '싸리말 동무'인 '털보의 셋째 아들'의 출생에 대해, '팔아 먹을 수 있는 송아지'보다도 못한 것이라 하는 '마을 아낙네'들이 '무심코' 주고받는 '차가운 이야기' 속에서 당시 농민들의 비극적 삶은 절정을 이룬다.


이용악 시의 우수성은 무엇보다도 일제 강점기 하에 대규모로 발생했던 국내외 유이민의 비극적 삶을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그들의 현실적 고통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여 튼튼한 서정성 위에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이 시의 화자도 역시 만주행 열차에 몸을 싣고 두만강 다리를 건너가는 유이민의 한 사람으로, 화자는 '너'로 의인화된 두만강과의 대화를 통해 유이민들의 서러운 운명에 대한 자괴심(自愧心)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두만강을 '너'로 의인화시키면서도 개인적 정서를 뛰어넘어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의 '우리'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민족 공동체적 정서를 제목에서부터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만강은 현재의 역사를 바라보는 증인일 뿐 아니라, 미래에의 전망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전 5연의 이 시는 기·승·전·결의 전통적 형식을 점층적 확장 구조하에 사용하면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1연의 기에서 화자는 '죄인처럼 수그리고' '코끼리처럼 말이 없이'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앉아 두만강을 바라보고 있다. 이 강을 건너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남의 나라 땅임을 아는 화자이기에 월경(越境)하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 하며, 그저 '조그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2연의 승에서 화자는 얼어붙은 강물 밑으로 바다를 향해 쉬지 않고 흘러가는 두만강을 자각하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깨달음으로써 언젠가는 지금의 이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3·4연의 전에서 화자는 '강 건너 벌판에 얼어붙은 듯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욕된 운명은 밤 위에 밤을 마련할 뿐'이라는 현실 인식을 갖게 됨으로써 마침내 '잠들지 말라 우리의 강아'라며 조국이 깨어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비록 현실 상황은 '뭇 슬픔이 목마르고 / 얼음길은 거칠다 길은 멀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깨어 있는 모습으로 조국의 고통을 기억하라고 외치는 데서 화자의 준엄한 자기 질책과 자기 반성적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5연의 결에서 화자는 '길이 마음의 눈을 덮어 줄 / 검은 날개'를 희구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그것은 절망적 현실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화자는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강원도 사람과 마주앉아 생존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자신의 처지가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외롭다고 느끼고 있다.



일제의 수탈로 말미암아 소위 오랑캐땅으로 쫓겨난 유이민들의 비극적 삶을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서정주로부터 "망국민의 절망과 비애를 잘도 표했다."는 절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시는 '오랑캐꽃'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민족이 처한 비통한 현실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복잡한 비유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연약하고 가냘픈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는 민족의 삶과 운명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고통받는 민족의 현실을 등치(等値)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서정을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서정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꽃의 형태가 오랑캐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는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것이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그 옛날의 오랑캐나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 버린 민족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현실 인식이 이 시의 주요 모티프를 이루고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오랑캐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연민의 정을 민족이 처한 객관적 현실에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의 기본적 구조가 된다.

이 시는 첫머리에서 '오랑캐꽃'의 명명(命名)에 대한 유래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오랑캐와의 싸움에 시달렸던 우리 조상들이 '오랑캐'의 뒷 모습과 '오랑캐꽃'의 뒷 모습이 서로 닮아 그 꽃을 '오랑캐꽃'이라 했다는 설명이다. 즉, 그 명명은 과거의 전쟁 체험 및 모습의 유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랑캐꽃'의 명명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앞머리에 제시해 놓고 전개되는 작품 내용은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1연은 오랑캐와 고려와의 싸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어 2연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상당 기간 지났음을 묘사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3연은 화자의 주관적 인식과 그로부터 촉발되는 화자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화자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고, 또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에 대해 극도의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 즉, 오랑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면서도 '오랑캐꽃'이라 불리게 된 데 대해 화자는 극도의 슬픔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감정은 마침내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화자의 감정은 폭발되고 만다. '오랑캐꽃'이라는 잘못된 명명이 일종의 억울함이라면, 화자의 슬픔은 이러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 오랑캐라고 천대받던 유이민들이자, 더 나아가 전 조선 민중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낡은 집>,<오랑캐꽃>의 연장선으로 두만강 '무쇠다리 건너온 함경도 사내'인 시적 자아가 그보다 석 달 먼저 두만강을 건너와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에서 작부(酌婦)로 전락해 술과 웃음을 팔아 살아가는 '전라도 가시내'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유이민의 비참한 삶을 보여 주는 한편, 보다 깊어진 현실 인식을 가슴에 품고 모순된 역사 속으로 결연히 뛰어드는 비장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시적 자아는 '눈포래를 뚫고' 찾아간 북간도의 어느 술집에서 까무스레한 얼굴의 작부가 '남실남실 따라 주는 술'을 마시며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랜다. 오랜 세월 가난 속에서 지역 차별주의와 정치적 무관심으로 냉대받고 살다가 북간도로 건너온 '함경도 사내'인 그는 '그늘진 숲속'만큼 어둡게 살아온 그 전라도 가시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에게서 끈끈한 동류 의식을 가지게 된다.

'천리 천리 또 천리' 구름처럼 떠돌다 마침내 그 곳 북간도까지 흘러온 전라도 어느 바닷가 마을 빈농의 딸인 그녀의 불행을 자기 것으로 인식하는 시적 자아는 두어 마디 그녀에게서 배운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새 봄이 돌아오면 고향으로 떠나라며 그녀를 따뜻이 위로한다. 이제 그에게 있어 '전라도 가시내'는 하룻밤 알고 지내는 천박한 술집 작부가 아니라, 공동 운명체적 존재로 각인(刻印)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두루미처럼 흐느껴 울며' 자신의 운명에 절망한다.

그녀의 슬픈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시적 자아는 마침내 '얼음길'로 상징된 고난의 현실이 끝날 것을 확신하며,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인 암울한 역사 현장으로 달려가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라는 마지막 시행에서 우리는 투철한 역사 인식으로 무장하고 온몸을 던져 시대고(時代苦)를 허물겠다는 시인의 결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용악은 당시대 유이민의 비극적 생활상을 튼튼한 서사적 구조 아래 섬세한 서정성과 북방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확고한 자기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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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李源祿), 원삼(源三), 활(活)

1904년 경상북도 안동 출생

1915년 예안 보문의숙에서 수학

1925년 형 원기(源祺), 아우 원유(源裕)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

1926년 북경행

1927년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 대구 형무소에 3년간 투옥됨.

이때의 수인(囚人) 번호(64)를 자신의 아호로 삼음.

1932년 북경의 조선 군관 학교 간부 훈련반에 입교

1933년 조선 군관 학교 졸업 후 귀국, 이때부터 일경의 감시하에 체포와 구금 생활을 반복

1935년 {신조선}에 시 <황혼> 발표

1943년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

1944년 1월 16일 북경 감옥에서 사망

시집: {육사 시집}(유고 시집, 1946)


이 시는 육사의 실질적인 등단작으로 '골방'에 있는 화자가 청자인 '황혼'에게 말을 건네는 독특한 화법으로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화자가 처해 있는 '골방'과 '황혼'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골방'은 20년대 초 {백조} 동인으로 대표되는 감상적 낭만주의 시인들이 일률적으로 추구하던 밀실과 같은 현실 도피의 공간이 아니다. 이 '골방'은 화자인 시인이 번민과 고뇌의 비극적 자기 인식을 하게 되는 공간이며, '황혼'은 식민지 현실 상황의 화자에게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세계이다. 그러기에 화자는 커튼을 걷으며 외부와 차단된 고독감 속에서 안식과 평화의 황혼을 맞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먼저 이 시의 형태는 5연 20행에, 각 연이 4행씩 조금의 변형도 없는 정형적 형태이다. 이로 미루어 육사의 시 의식이 한시나 시조와 같은 전통적인 시 형태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연의 시 형태를 시상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이 3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1연으로 전제 부분에 해당하며 화자의 독백 형태로 되어 있다. 2단락은 2·3·4연으로 황혼이라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소망을 기원문 형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본문 부분이다. 3단락은 5연으로 다시 화자의 독백 형태로 되어 있으며 해결 부분에 해당한다.

1연에서는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인 '골방'과 '황혼'의 대립적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커튼'은 황혼의 우주와 골방의 중간 위치에 존재하며 '걷고' '맞아들이는' 화자의 행위에 의해 외부 세계를 그의 내면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통로 구실을 한다. 이에 따라 온 세상으로 번지고 스며들어 끝없이 확대되는 '황혼'이 '골방'으로 비쳐 들어오게 됨에 따라 '골방'의 폐쇄성은 황혼이 펼쳐진 우주로 개방, 확장될 수 있다.

2연에서는 존재의 외로움을 인식한 화자가 '황혼'의 손에 입을 맞추던 소극적 행위에서 '황혼'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에게 / 나의 입술을 보내'는 적극적 행위로 변모하게 된다. 이로써 화자는 골방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황혼만큼 확대되게 된다. 그 모든 것이란 바로 3연에서의 '별'·'수녀'·'수인'과, 4연에서의 '행상대'·'토인들'로, 2연에서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들이 3·4연에 이르면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분명해진다. 이것들은 모두 버림받은 것, 쓸쓸한 것, 외로운 것들로 화자는 그들을 부드럽게 안아 뜨거운 입맞춤을 보낸다. 이렇게 끝없이 확대되는 황혼에 의해 그 외로움이 해소되게 함으로써 화자와 대상 사이에 있는 거리감이 무너지게 되고, 공통된 의미의 동일성으로 화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화자가 자신이 추구하려는 안식과 평화의 세계를 단지 자신에게만 실현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외로운 것들에게까지 확대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포용성이 바로 육사의 조국애, 민족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그를 조국의 광복을 위해 처절한 역사 현장 속으로 뛰어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5연에서 우주를 감싸 안은 화자의 포용성과 의지는 황혼의 사라짐, 시간의 유한성에 의해 인간의 꿈과 한계를 일깨워 주고 있다. 황혼이 오늘뿐 아니라 '내일'도 찾아와 주리라는 확신을 가지면서도, '암암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를' 것 같다는 우려를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한 현실 상황을 극복하고 안식의 세계로 향하려는 적극적인 저항 의지로 발전함으로써 후일 <절정>, <광야>로 대표되는 항일 저항 문학의 정수를 펼쳐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편 '지구의 반쪽'이라는 구절은 제국주의의 지배 국가와 피지배 국가로 지구가 양분되어 있던 당시의 국제 정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육사시에서 쉽게 떠올리게 되는 강인한 남성적 어조 대신 화자가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고통과 질곡, 불안 의식 등을 잔잔한 어조로 솔직 담백하게 펼쳐 보여 주는 작품이다. 주지하다시피 육사는 40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진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다.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 대륙을 전전하며 항일 독립 운동에 일생을 바친 그는 자그마치 열일곱 번이나 일경에 체포되어 구금, 투옥 생활을 했으며, 결국은 낯선 중국 땅에서 옥사당하고 말았다. 이같이 화려한 항일 무장 투쟁 속에서도 그는 한 인간으로서 겪던 고뇌와 좌절을 솔직히 표출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연보>와 <노정기(路程記)> 등을 들 수 있다.

각 연이 2행으로 된 전 8연의 구성으로, 육사시 특유의 정형성을 보여 주는 이 시는 내용상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4연의 앞 단락은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과 흘러간 세월의 덧없음을 표출하고 있다. '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화자에게서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는 나아가 '강언덕 그 마을에 /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모'른다고 인식할 뿐 아니라, '열여덟 새 봄은 /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냈다고 하면서, 고통과 슬픔 속에 흘러가 버린 자신의 삶을 슬픈 눈으로 되돌아 보기도 한다. 그러던 화자는 마침내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라며 극한적인 고통과 슬픔을 토로하게 된다.

5∼8연의 뒷 단락은 현재의 삶 속에서 겪는 고통과 질곡이 나타나 있다. 힘겨운 독립 투쟁의 유랑 생활을 하는 그이기에 '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어' 있을 뿐이다. 또한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 / 간 잎만이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라는 구절에서 '서리'는 그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해 주며, '단풍'은 그가 자신의 삶을 이미 퇴색해 버린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 / 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지'는 고통의 극한에 자신이 처해 있음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끝내는 자신의 삶에 대해 슬픈 긍정과 자기 위안을 보내는 비장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육사시는 조국의 상실이라는 극한적 상황에 의한 비극적인 자기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초기시에 주로 나타나는 심상은 '어둠'의 이미지이다. 조국을 잃고 세계와 단절되어 빛을 잃은 그가 어둠 속을 걸어온 자신의 삶의 역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노정기>이다.

이 시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시적 화자의 노정은 '물'의 흐름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마치 깨어진 뱃조각'처럼 여기저기 유랑하고 있기에, '흩어져 어설퍼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이야말로 다 부서진 티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화자는 행여 젊은 날은 어떠했을까 하고 뒤돌아 보지만,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쩡크'와 같은 고통이었으므로 그는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오른 상처만을 확 인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고, 현재의 삶에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젊은 시절이지만, 화자에게는 그것이 항시 고통스러운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나날이었기 때문에, '남십자성이 비쳐주도 않'는 '흐릿한 밤'이요, '산호도는 구경도 못하는' 고달픔일 수밖에 없었다. '산호도'는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시계(視界)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막막한 곳을 찾아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을 이끌고 가려고 하지만,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같이 '다 삭아 빠진 소라 껍질'에 붙어 살아온 그로서는 그저 물처럼 흘러가 버린 지난 삶의 역정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고뇌 어린 삶의 역정기로서의 이 시는 그 전 노정을 '물'의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물'과 관련된 심상은 '배'·'어촌'·'포범'·'서해'·'밀항'·'짱크'·'조수'·'암초'·'산호도'·'밀물'·'소라'·'항구' 등으로, 특히, 마지막 시행의 '흘러간 생활'에서 '흘러간'이라는 '물'의 이미지를 그의 생활에 투사하여 귀결시킴으로써 화자는 이러한 노정을 통하여 비극적인 자기 인식을 하게 된다. 치열한 현실 인식에서 배태된 이 비극적 자기 인식은 마침내 적극적인 저항 의지로 표출, <광야>, <절정> 등으로 가시화됨으로써 육사는 항일 저항 문학의 거대한 정점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황혼>에서 보여 준 안식과 평화를 향한 육사의 의지는 <연보>, <노정기>와 같은 비극적 자아 인식으로 깊어져 삶의 비약적 상승과 희망을 꿈꾸는 이 <꽃>이란 작품으로 개화하게 된다. 극한의 식민지 시대 상황 속에서도 '기다림'과 '믿음'의 강인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이 시는 시적 상황 전체가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시의 표현 특징을 살펴 보면 일정한 반복적 구조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기·서·결로 짜여진 이 시는 각 연 모두 4행씩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각 연의 1행부터 3행까지는 구문의 전개와 함께 시행의 길이가 점층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4행에 이르러 화자의 심정을 집중적으로 토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한 그 매 4행을 모두 영탄형으로 끝맺는 문장 구조를 통해 화자가 자신의 내면 의지를 강화시키는 특징도 갖고 있다.

우선 화자가 처해 있는 현실 상황은 '하늘도 다 끝난' 곳,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곳, '북쪽 툰드라' 같은 척박한 곳으로 설정되어 있다. 생명의 근원적인 모든 요소를 잃어 버린 극한 상황에서도 그는 '저버리지 못할 약속'처럼 '꽃 맹아리가 옴작거리'고,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는 봄날을 기다리며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하루도 쉬임 없이 정진하겠다는 결의를 나타내고 있다. 생명이 부정되는 극한 속에서도 피어난다는 역설적인 '꽃'은 암담한 현실 상황과 대립되는 동시에, 화자의 현실 초월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2연에서도 화자는 극한적 한계 상황에서 '꽃 맹아리'와 '제비떼'를 기다리는 희망과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과 기다림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아니라,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의 확신에서 비롯된 의지의 태도이다. 3연에서는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 실행되었을 때의 밝은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일제의 오랜 질곡에서 벗어난 환희로 가득차 있는 '한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조국 해방의 모습이며, '꽃성'으로 표상된 그 날, 광복의 기쁨에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는 결국 우리 민족의 모습이다.

물론 절대 절명의 극한 상황에서 '꽃이 빨갛게 피'었다는 역설은 마땅히 피어야 할 꽃이 피지 못한다는 의미로, 그만큼 당시가 극한적인 상황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육사는 '저버리지 못할 약속'에 대한 기다림을 갖고 '쉬임 없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그 기다림이란 '북쪽 툰드라'·'찬 새벽'·'눈 속'이라는 일제 치하의 현실 상황에 '꽃 맹아리'·'제비떼'와 같은 생명의 의지를 심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그 '약속'처럼 도래할 찬란한 조국의 미래를 위해 그는 꽃 한 포기 피어나지 못할 만큼의 암울한 역사 현장 속으로 온몸을 던지는 위대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 시는 <노정기>와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실향(失鄕)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고향을 잃고 어디론가 떠나게 된 화자는 '수만호 빛이래야 할' 고향에 대한 바램을 갖고 있지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른' 현실의 고향을 생각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그리고 '파이프'라는 시어를 통해 화자가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화자는 어두운 밤, 어느 항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삭막해져 가는 고향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파이프'의 연기처럼 사라져 간 표랑(漂浪) 생활은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지도록 고향을 찾고 있지만, 그 고향은 이미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없는 빼앗긴 땅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이미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담배를 피우는 행위이다. '파이프'에 타오르는 '꽃불'은 3연의 '연기'와 연관된다. 화자에게 있어서 이 담배는 '꽃불', '연기'가 되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념의 매개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꽃불'을 1연의 이미지와 연관시키면 '수만호 빛'과 서로 상통하게 된다. 이 때의 불은 고향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희망적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꽃불'이 향기롭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희망적 이미지는 쉽게 드러난다. 따라서 이 시는 담배의 불빛과 연기가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을 상실한 화자는 4연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 상황을 '바람 불고 눈보래 치잖으면 못 살리라'라는 육사 특유의 역설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포근히 안길 공간, 즉 고향을 상실한 절규로, 그는 결국 '매운 술을 마시'며 절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슬픔의 격정은 5연에서 '강물'처럼 표랑의 의미를, '달'처럼 애상과 정감에 젖은 짙은 객수(客愁)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숨 막힐 마음'으로 담배를 피우며 슬픔의 격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는 파이프에서 타오르는 불빛 같은 향기로운 희망과 의지를 새롭게 가다듬는다.

물론 화자가 고향을 떠나 북방 이국의 객창에서 느끼는 이러한 실향 의식은 비극적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수만호 불빛'이 사라진 대신 '이끼'만 푸르게 자라난 고향을 원형대로 되돌려 놓기 위해 '바람 불고 눈보래 치는' 암울한 역사 현장 속으로 달려나가는 적극적 저항 의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육사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갈등 의식이나 대결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 대신 수준 높은 서정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일제에 대한 투쟁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육사였지만, 그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정서를 소유한 로맨티스트였다. 이 낭만성이야말로 그의 저항 의지를 더욱 뜨겁게 달구어 준 용광로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의 투쟁 의지가 포도송이처럼 내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시각적 이미지의 시어 선택과 청·백의 색채의 대조로써 시적 분위기를 선명하게 하고 있으며, '청포도'를 비롯한 여러 전통적 소재들을 이용하여 정감어린 고향의 이미지를 맑고 깨끗한 세계로 승화시킨 다음, 이런 순수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어느 청포를 입은 '손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자가 처해 있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 유의해야 한다. 화자의 고장은 바야흐로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고,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풍요로운 삶과 인간의 새로운 만남을 약속하는 땅이다. 그 곳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화해로운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일제 암흑기에 처해 있는 화자로서는 그 삶의 가능성이란 아직 '전설'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6연 10행의 이 시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2연의 첫 단락에서 화자는 '청포도'가 익어가는 고향의 칠월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청포도'란 단순한 과일의 의미가 아니라, 한 마을의 뿌리와 유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는 '청포도'를 통해 밝은 미래가 담고 있는 '전설'을 보고 있다. '전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평화로운 삶의 이야기이자, 민족이 염원하는 희망으로 '주저리주저리'와 '알알이'라는 두 개의 부사로써 감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3·4연의 내용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를 입고 찾아'올 어느 '손님'으로 표상된 광복의 세계라 할 수 있다.

3·4연의 둘째 단락에서 제시되고 있는 '청포를 입은 손님'은 '청포도'와 유추적 관계로, 그는 단순한 화자의 손님이 아니라, 어두운 역사와 함께 '고달픈 몸으로' 살고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는 <광야>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과 같은 존재로서,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일 뿐 아니라 바로 그런 인물로 대표되는 조국의 광복을 표상하고 있다.

5·6연의 셋째 단락에서 화자는 그 '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굳은 믿음 아래 그를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를 맞아 누리는 행복의 기쁨을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이라는 함축된 구절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순간을 위해 '은쟁반'과 '모시 수건'과 같이 깨끗하고 정성스러운 기다림의 준비 과정을 그려 놓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조국 광복의 그 날, 잃어버린 고향과, 그 같은 평화롭고 화해로운 인간적 삶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육사의 아름다운 소망과 굳은 의지를 '청포도'라는 사물을 통하여 밝고 건강한 분위기와 서정성이 충만한 표현 방법으로써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육사의 지사혼(志士魂)을 대표하는 상징적 저항시로, 암담한 식민지 치하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 그것을 초극하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민족이 겪는 극한 상황 속에서 대일(對日) 저항의 시 정신을 '절정'에까지 몰고간 육사의 절명시(絶命詩) 성격의 이 시는 기·승·전·결의 한시(漢詩) 형식의 구조에 탄탄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현실 의식이 고도로 절제된 시적 긴장으로써 형상화된 명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형태상의 이러한 고전적 특성은 자기 감정을 고도로 통어하고 있는 절제 의식이 빚어낸 것으로, 작품 전체에 강렬한 긴장미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긴장미는 화자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현실과 팽팽히 맞서 있는 화자의 현실 인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1연과 2연의 각 앞 행은 화자에게 부여된 비극적 상황이고, 각 뒷 행은 화자가 존재할 필연적 공간이다. 3연에서는 상황과 공간에 대한 자신의 갈등을 비장한 독백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처절하리만큼 냉혹한 상황에 대한 저항 의지가 담겨 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못 이겨 '북방'으로, '고원'으로 쫓기게 된 화자는 결국 '서릿발 칼날진 그 위'라는 극한의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이렇게 1·2연은 화자가 처해 있는 외적 상황을 점층적으로 날카로운 것으로 압축시킴으로써 극한 상황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즉, '북방' →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의 과정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3·4연에서는 절대 절명의 외적 상황이 내적 상황으로 전이되어 나타나고 있다.

3연에서는 비켜설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절망적 상황에 처한 화자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자신의 강인한 의지밖에는 없음을 깨닫고 있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라는 구절은 굴복의 행위가 아니라, 무릎을 꿇을 데가 없어서 무릎 꿇지 않겠다는, 즉 결코 무릎 꿇지 않겠다는 강인한 저항 의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화자는 그 극복 방법을 어떤 절대자나 초월적인 힘에 호소하는 데서 찾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극한 상황이므로 화자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4연에서 그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4연에서 화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금 돌아보며 눈을 감는다. 막다른 벼랑 같은 극한의 절정에서 화자는 절망하며 몸부림쳤지만, 눈을 감는 순간, 시상의 극적 전환이 일어나며 초연한 풍모와 굳은 의지로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로 변모한다. '눈감아 생각해 볼 밖에'는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 얻은 자아의 갈등을 승화시킴으로써 초월성에로 이입시키는 연결구가 되며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결구(結句)를 통해 모든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초월적 자세를 취하는 고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구속'·'지상적(地上的) 절망'·'죽음'의 표상인 '강철'과, '초월'·'천상적(天上的) 희망'·'비상(飛翔)'의 표상인 '무지개'가 연결됨으로써 '겨울'은 절망과 초월의 모순, 곧 '비극적 초월'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가혹한 역사의 횡포에 붸기는 외적인 삶이 생존의 극한에 몰려 축소될 때, 오히려 내적인 정신적 삶은 현실을 초월, 확대되어 간다는 역설이 바로 이 시의 궁극적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를 간결하고도 강인한 어조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뚝 남아서서'·'휘두르고'·'깊이 거꾸러져' 등의 남성적 강인함을 느끼게 하는 시어는 '차라리'·'아예'·'마침내'·'차마' 등의 부사와 어울려 화자의 단호한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한편, '말아라'·'아니라'·'못해라' 등의 부정어로써 그 강인한 의지를 배가시키고 있다.

'교목'은 줄기가 굳고 굵으며 높이 자라는 나무(큰 키 나무의 총칭, 관목<灌木>과 반대)로, 의지를 굽히지 않는 육사의 강인한 삶을 비유하고 있다. 따라서 육사가 추구하는 삶인 <교목>은 유치환의 <바위>와 같은 맥락에 놓여질 수 있다. 다만 <바위>는 미래에 이룰 소망이라면, <교목>은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의 태도를 표현하는 사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1연은 교목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통하여 화자의 굳은 의지와 의연한 자세를 표출하고 있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 있는 '교목'이 화자의 강렬한 의지를 형상화한 것이라면, 교목을 불태우는 '세월'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식민지의 혹독한 현실 상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검게 탄 몸으로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선 교목의 모습에서 지절(志節) 높은 선비를 보는 듯하다. '푸른 하늘'은 좁은 의미로는 조국의 독립을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일체의 장애가 제거된 완전한 인간적 삶을 뜻한다.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라는 단호한 금지(禁止)는 생명을 포기함으로써 봄이 와도 꽃을 피울 수 없을지언정 그 의지만은 버릴 수 없다는 다짐의 말로, 상대적인 저항성을 포괄하는 절대적인 초월성을 담고 있다.

2연은 교목의 내면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후회 없는 삶을 결의하고 있다. '낡은 거미집'은 화자의 현실적 조건을 암시하고 있으며, '끝없는 꿈길'은 새로운 세계를 희구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1연의 '푸른 하늘'과 연관되는 이미지이다. 이러한 현실적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희구하는 자신에게 뉘우침은 결코 없을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한편, '설레이는'과 '뉘우침'은 화자가 겪는 번민과 괴로움을 표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인한 의지 그 내면에 존재하는 갈등을 솔직히 보여 주고 있는 동시에, 단금질을 당하는 쇠가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이러한 번민과 고통을 통하여 그의 의지가 더욱 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연에서는 다시 부동(不動)의 정신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참담한 상황이 찾아온다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지듯 자신의 삶을 결연히 버림으로써 의지만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펼쳐 보인다.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올곧은 기개를 내버리지 않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바람'은 그의 의지를 꺾으려는 어떤 유혹이나 타협, 또는 외부의 힘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결의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의 결의요, 육사를 지켜 주던 '선비의 도(道)'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선비의 도'는 후일 발표된 <광야>에서 '초인(超人)'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시는 혹독한 일제 치하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것에 굴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살아온 육사의 삶의 자세를 '교목'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이 같은 그의 굳은 의지는, 많은 문인들이 부정한 현실과 타협하여 일신의 영화를 누리는 와중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던지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윤동주와 함께 일제 암흑기의 2대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육사는 1935년 {신조선}에 시 <황혼>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1937년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는 등,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성이 풍부한 목가풍의 시를 발표하였다. 그의 시작 발표는 주로 {조광(朝光)}을 통하여 194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시작 활동 못지 않게 독립 투쟁에도 헌신,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되었으며, 40세에 북경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1935년부터 1941년까지의 기간 중에 씌어졌는데, 이때는 그가 중국과 만주 등지를 전전하던 때인 만큼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한 침울한 북방의 정조(情調)와 함께 전통적인 민족 정서가 작품에 깃들어 있다. 대표작인 <광야>에서 보듯이 그의 시는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비운(悲運)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꺼지지 않는 민족 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 시는 육사의 확고한 역사 의식에 바탕을 둔 현실 극복 의지가 예술성과 탁월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자기 극복의 치열성에 바탕을 둔 초인 정신과 투철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는 지사(志士) 의식, 그리고 순환의 역사관에 뿌리를 둔 미래 지향의 역사 의식 등이 종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15행의 5연시로 과거(1∼3연), 현재(4연), 미래(5연)의 시간적 추이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데, '까마득한 날'에서 '다시 천고의 뒤'까지의 시간의 흐름은 조국의 현실을 '광야'로 상징한 역사 의식의 표출이다.

1연에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태초의 상황을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라는 부정적 설의법을 이용하여 광야의 원시성과 신성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활유법을 구사하여 광야의 광활하고 장엄한 모습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3연에서는 신성한 공간인 광야에서 태동한 우리 민족사의 유구한 역사와 문명을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라는 동적 이미지로써 보여 주는 한편,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에서는 시간적 개념인 '계절'을 '피어선 지고'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감각화하고 있다. 4연에서는 일제의 압제를 상징하는 '눈'과 조국 광복의 기운이자 온갖 폭압에 맞서 싸우는 절조(節操)인 '매화 향기'를 대립시킨 가운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미래에 대한 굳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의 '아득하니'는 '멀다'의 뜻이 아니라, '그윽하고 은은하다'의 의미이며, '노래의 씨'는 가혹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생명의 의지로, '씨'에 함축되어 있는 자기 희생적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극복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는 자기 겸손의 표현이기보다는 냉혹한 현실 상황에서 홀로 행하는 행동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5연에서는 새 역사에 대한 소망이자 조국 광복에 대한 굳은 확신을 통하여 미래 지향의 확고한 역사 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암담한 현실 상황에 화자가 뿌린 '가난한 노래의 씨'를 수확하여 '목놓아' 노래 부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바로 불행했던 역사를 몰아내고 온갖 질곡과 고통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여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 피울 인물이다. 그런데 그 '초인'의 도래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꽃>에서의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과 같은 확고한 믿음임을 '초인이 있어'에서의 '있어'를 통해 알게 해 준다.

따라서 이 시는 '광야의 원시성·신성성' → '광야의 광막성' → '민족사의 태동과 개척' → '현실 인식과 선구자 의식' → '초인 정신과 예언자적 역사 의식'의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육사의 투철한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지사적·예언자적 기품과 단호하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로써 신념에 찬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민족시의 정화(精華)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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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尹東柱)

1917년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1925년 명동 소학교 입학

1929년 송몽규 등과 문예지 {새 명동} 발간

1932년 용정(龍井)의 은진 중학교 입학

1935년 평양 숭실 중학교로 전학

1936년 숭실 중학 폐교 후 용정 광명 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

1938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

1942년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 입학, 가을에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로 전학

1943년 송몽규(宋夢奎)와 함께 독립 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1945년 2월 16일 큐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유고 시집, 1948)


이 시는 윤동주가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다닐 때인 1934년 12월 24일, 그의 나이 17세에 쓴 처녀작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습작기에 쓴 작품으로 다소 문학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윤동주가 나아가게 될 문학 세계를 가늠하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즉, 후기에 접어들수록 높은 문학성을 획득하게 되는 많은 윤동주의 작품들도 이 처녀작에서 보여 주고 있는 '순결'과 '참회', 그리고 '자기 희생' 등을 좀더 의미있게 변용한 것에 지니지 않는다. 윤동주의 시에는 남달리 순결한 마음 혹은 고결한 정신을 추구하면서 고독한 가운데 자신을 성찰하는 시인의 모습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고독한 가운데서의 자기 성찰은 자신을 참회하는 삶의 태도로 나아간다.

먼저 이 시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육신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자기 희생 정신이다. 이러한 촛불의 정신이 바로 윤동주의 삶의 태도이자 인생관의 비유로, 그는 어둠을 홀로 밝히면서 스스로 육신을 불사르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렇듯 타인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삶, 다시 말해 자신이 스스로 제물이 되는 이 속죄양으로서의 삶은 원형 상징의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고독한 삶이자, 고독 속에서 자신을 성찰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어두운 밤 홀로 빛을 발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육신을 바치는 이 촛불의 자기 희생이야말로 처절한 고독 속에서의 자기 성찰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와 같은 자기 성찰은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 그의 생명인 심지'라는 말로 나타나 있다. 제단에 제물로 바쳐진 '염소의 갈비뼈' 같은 몸이라는 표현에서 속죄양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그가 쓴 최초의 시인 이 작품과 최후의 시인 <쉽게 씌어진 시>를 관류하는 이 자기 희생의 순절 정신이야말로 그가 동시대 많은 문학인들과 차별성을 갖게 하는 점인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시에 나타나는 것은 어떤 이념에 대한 순결한 시인의 의지이다. '그의 생명인 심지',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라는 시행이 바로 그것이다. 등심(燈心)인 '심지'는 동음이의어인 마음에 품은 의지라는 뜻의 '심지(心志)'를 표상하며, '깨끗한 제물'과 신을 섬기는 '선녀'로 비유된 촛불의 자기 희생은 곧 어떤 이념에 대한 순결한 의지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깊은 참회의 자세이다. '그의 생명인 심지 /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 불살려 버린다.'와 같은 시행에서 보여 주는 삶의 태도가 그 단적인 예가 된다. 백옥같이 정갈한 눈물과 피를 쏟는 희생양의 모습은 바로 참회하는 인간으로서의 전형적 모습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이 시는 윤동주가 19세이던 1936년에 썼다고 알려진 동시(童詩)이다. 작품의 뒷 배경으로 나타나는 비극적 현실 상황은 어린 나이 때부터의 투철했던 시인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2연 구성으로 된 이 시는 일제의 잔혹한 수탈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어느 가정의 비극사를 어린이 화자의 눈과 입을 통해 간결하게 보여 주고 있다. 표면적 의미로만 보면 작품 속의 어린 형제들에겐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돈 벌러 만주로 갔다. 현실의 불행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린 화자는 어느 날 아침, 동생이 요에다 그린 '오줌싸개 지도'를 빨래줄에 널면서 그것은 간밤에 동생이, 죽은 엄마가 가 있는 별나라나 또는 아빠가 돈 벌러간 만주 땅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장난스러운 상상 속에는 우리 민족의 불행했던 역사의 한 단면이 나타나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게 만들고 있다.


이 시는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하던 1938년에 쓴 작품으로 어느 날 밤, 형인 화자가 아우와 나누었던 대화를 소재로 하여 삶의 우수(憂愁)를 노래하고 있다. 언뜻 보면 뛰어난 문학적 기교도 없고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도 담겨 있지 않은 평범한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이 시는 윤동주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가늠케 해 주는 열쇠 구실과 함께, 일제 치하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 앞에서 어떤 시를 쓰게 될지 알게 해 주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2·3·4연에서 형제가 주고받는 몇 마디 대화와 동작뿐이며, 나머지 1·5연은 아우의 얼굴에서 느낀 화자의 슬픔을 변주하여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즉,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라는 화자의 질문에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이러한 아우의 말에 대해 화자는 '진정코 설은 대답'이라고 여기며, 아우의 순진성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게서 슬픔을 느낀다. 이것이 이 작품의 전부이다. 그러므로 이 시를 온전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가 나누는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화자가 아우에게서 '슬픈 그림' 같은 모습을 발견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십일 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온 화자이지만, 그가 삶에 대해 갖는 태도는 다분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자식으로, 그것도 한 많은 만주 유이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민족의 아픔을 맛보면서 남다른 민족 의식과 각별한 신앙심을 키우며 성장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자신의 이상과 암울한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온갖 갈등을 겪으며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이 배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신의 행복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부끄러운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직한 인간으로서 양심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몸소 체험으로 터득하게 된 화자로서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라는 물음에 '사람이 되지'라고 쉽게 말해 버리는 어린 아우의 대답이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스런 아우가 어른이 되기까지 겪어야 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알고 있는 화자는 그 순진 무구한 아우의 대답을 듣고, 다시금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 때, 아우의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어리어' 있음을 발견한 화자는 그의 얼굴에서 '슬픈 그림'을 떠올린다. 다시 말해, 달빛에 젖은 아우의 얼굴이 화자의 눈에는 마치 '슬픈 그림'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실제로 슬픈 것은 아우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다.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행복하게 생활하는 아우에게서 잃어버린 자신의 유년을 찾곤 하던 화자로서는 아우가 자라면서 상실할 수밖에 없는 그 행복과 순진 무구함이 더할 수 없이 슬프게 느껴지게 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이 시는 암울한 식민지 치하에서 온갖 고통을 극복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시인이 어린 아우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순진 무구함과 행복스런 모습을 발견하지만, 자신이 소망하는 성실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겪어야 할 아우의 고통을 생각하며 괴로움에 빠지는 진지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다소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시인의 비극적 자기 인식이야말로 투철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올곧은 삶을 살고자 했던 참 신앙인으로서의 철학적 산물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삶의 자세가 바로 그로 하여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완벽한 삶을 살게 해 준 버팀목이 되었음은 물론, 그러한 삶이 표출된 훌륭한 시를 다수 창작해 내게 함으로써 우리 시문학사에 '위대한 시인'이라는 수식어로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윤동주와 이육사는 다함께 일제 말기 암흑의 시기에 죽음으로 저항하며 항일 민족 문학의 맥을 이은 시인들이지만, 두 사람의 작품 세계는 여러 면에서 이질적이다. 육사의 경우, 극한 상황에 밀린 민족의 위기를 초인적 의지로써 극복하려 하는 데 비해, 윤동주에게는 그러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반면에 윤동주의 시는 자신의 생활에 대한 애정 있는 성찰과 자신이 지켜야 할 이념에 대한 신앙적 자세를 시 세계에 담아냄으로써 '부끄러움의 미학'이라는 독특한 체계를 세웠다.

이 시도 '부끄러움의 미학'을 바탕으로 하여 1939년 9월, 연희 전문학교 재학 당시인 22세 때 쓴 작품으로,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번뇌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애증(愛憎)을 서술체 문장으로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이 시에는 '우물 속의 사나이'와, 그를 들여다보는 화자인 '나', 이렇게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양분된 자아인 이 두 존재가 부정(否定)과 긍정(肯定)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화합하는, 이른바 변증법적 구조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물 속에 비친 사나이'는 바로 시인 자신이며, '우물'은 <참회록>에서의 '구리 거울'과 동일한 이미지로서 자신의 삶을 투영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우물 속의 사나이'를 발견하는 자기 인식의 심리적 묘사가 함축미 있는 시어의 구사로 윤리적이고 심미적인 긴장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우물은 '산모퉁이'를 지난 '외딴' 곳에 있고, 그 곳을 '홀로' 찾은 화자는 '가만히' 우물을 들여다본다. 이것으로 볼 때, 우물은 일상의 세계와 분리된 곳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외딴'·'홀로'·'가만히' 등의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의 시어들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겠다는 화자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2연은 들여다본 우물 속을 묘사한 부분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현실 세계에 대한 만족감에서 비롯된 인상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3연에서는 2연의 풍경 아래 화자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물 속의 사나이'는 2연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화자는 그가 '미워져' 돌아가고 만다. 화자가 우물 속에서 발견한 '사나이'는 시대적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현실에 안주해서 만족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으로, 그는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자기 혐오감을 갖게 된다.

4연에서는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이 함께 나타나 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자신이 가엾어져서 다시 우물을 찾아가 들여다보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5연은 내적 갈등, 고민, 방황이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미워져 돌아가고 돌아가다 다시 그리워지는 화자의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6연은 우물 속의 풍경을 다시 묘사하는 동시에,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추억'은 그리움 내지 동경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제 우물 속엔 그 '사나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다만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두 자아가 비로소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연희 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에 쓴 작품으로 어느 병원의 정경(情景)을 통하여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폐쇄된 공간 속에서 극한적인 삶을 살아가던 당시의 지식인들이 겪는 고뇌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병원'은 화자의 고독한 내면 세계이자, 당시의 암울한 현실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또 다른 고향>의 '방'과 상통하는 공간이다. 한편, 환자로 등장하고 있는 '젊은 여자'는 화자와 동일시된 인물로, 그녀는 고통스런 현실 때문에 가슴앓이를 앓고 있으며, 화자 역시 시대적 고뇌로 아픔을 겪고 있다.

3연의 산문시 형태로 이루어진 이 시는 대상의 이동에 따라 시상을 전개시키는 한편, 현장감을 주기 위해 현재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묘사에 의한 시각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1연은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병원을 제시하는 동시에 병원 뒤뜰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가슴앓이' 여자 환자를 보여 주고 있다. 그녀가 앓고 있는 '가슴앓이'는 단순히 병명(病名)을 뜻한다기보다는 암담한 식민지 현실 상황에서 시대적 고뇌를 겪는 마음의 병이라 할 수 있다. 면회객은커녕 나비 한 마리 찾아 주지 않는, 고독한 그녀가 누워 있는 살구나무 아래에는 바람조차 불어오지 않는다.

2연에서는 화자가 같은 병원을 찾는다. 현실 상황에 대한 괴로움으로 인해 오래도록 고통을 당하던 화자가 병원을 찾지만, 늙은 의사는 화자의 병명을 모를 뿐 아니라, 도리어 병이 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현실적 '시련'과 '피로'로 말미암아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화자로서는 '성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자신이 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의사의 말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화자와 '여자'는 같은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로서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연대 의식이 나타나 있다.

3연에서는 화자가 자신과 여자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화단에서 금잔화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로 들어가는 여자의 모습은 1연에서 일광욕을 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절망적인 현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보는 화자의 행위도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자기 희생의 이념을 표출하고 있어 휴머니티의 백미(白眉)로 손꼽히는 이 시는 순절 정신(殉節精神)과 속죄양(贖罪羊) 의식을 바탕으로 연희 전문 졸업반에 재학 중일 때(1941. 5.31)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징표나 형벌의 도구를 의미하는 관습적 상징만이 아니라,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의미하는 개인적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1연은 정의로운 삶을 추구해 온 화자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더 이상 그러한 삶을 추구하기가 어려워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가 '쫓아 오던 햇빛'은 정의로운 삶의 지표, 즉 순결과 광명, 고매함을 뜻하는 이상의 빛이요, 나아가서는 조국 광복의 빛이다. 그 '햇빛'이 교회당 꼭대기의 십자가에 걸렸다는 것은, 화자가 추구하는 삶이 이제 극한에 다다랐음을 알려 주는 것으로, 화자는 정의로운 삶의 새로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그 새로운 방법이란 5연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는 것'이다.

2연은 화자가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밝혀 주는 부분으로 1연의 부연에 해당한다. 화자는 그 '햇빛'을 따라 삶의 목표이자 이상의 상징인 교회당 '첨탑(尖塔)'에 오르기를 소망하지만,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라고 스스로 반문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극한에 이르렀음을 구체적으로 밝혀 주고 있다. 여기서 '있을까요'라는 설의적 언사(言辭)는 그 같은 상황의 인식에 대한 화자의 단정이라기보다는 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보다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화자가 결코 근접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존재하는 대상물로 화자와의 거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된 화자는 결국 3연에서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는 나약하고 자조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 때, '교회당'에서는 그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종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다.'

4연에서는 그러한 갈등을 겪은 화자가 첨탑에 오를 수 없다면, 차라리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받아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민족을 위해 속죄양이 되고 싶다는 거룩한 순절 의식을 갖게 된다. 모든 인류의 짐을 지고 괴로워했던 예수 그리스도였지만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던 그를 떠올리며, 화자는 자신도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동일성에의 지향을 꿈꾼다. 1연의 '십자가'는 글자 그대로 교회당 꼭대기에 걸려 있는 것으로서의 일차적 의미를 지닌 데 반해, 여기서의 '십자가'는 단순히 교회당 꼭대기에 걸린 물질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화자가 도달하고 싶어하는 종교적, 도덕적 생활의 목표, 즉 그의 정신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5연은 자기 희생이나 속죄양 의식이 응축되어 나타난 부분으로 주제연에 해당한다. '어두워 가는 하늘 밑'은 더욱 암울해져 가고 있는 당시의 현실 상황을 상징하고 있으며, '꽃처럼 피어나는 피'는 희생을 통한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모가지'라는 비어(卑語)는 그러한 자신의 행위를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고, '조용히'는 자신의 행위가 과시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이 아닌, 순수한 것임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했을 때, 화자는 자신이 흘리는 '피'가 꽃처럼 피어나게 되어 십자가에 박히는 고통이 황홀한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러므로 시인은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서성거리는' 삶의 태도를 버리고, '모가지를 드리우는' 고통을 감수하며 그리스도처럼 영원히 사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일본 땅에서 27세의 나이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조용히' 죽어 간 것이다.


연희 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1941년 9월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윤동주의 시는 대부분 자아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는 특징을 갖는데, 그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주로 '방'·'우물'·'길' 등의 이미지이다. '길'은 탐색의 과정과, 출발과 도착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므로 '길'의 공간성은 항상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지닌다. 그러나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의 '길'에는 반드시 겪어야 할 시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은 시련의 극복이라는 정신적인 세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에서의 '길'은 자기 성찰과 자기 수련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1연에서는 상실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또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나서고 있다. 여기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길을 나서는 행위와 대비되는 것으로, 결국 두 손은 두 발로, 주머니는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머니는 길에 비해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화자의 행위는 곧 잃어버린 대상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2연에서는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돌이 끝없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돌담을 끼고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돌담이 길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갈라 놓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는 화자로서는 결코 돌담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 곳은 바로 화자가 회복해야 할 이상적 자아의 세계이지만, 돌담이 그 길과 평행 상태로 끝없이 어어져 있기 때문에 화자는 그 곳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돌담은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갈라 놓으며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네 삶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돌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고 함으로써 절망적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

4연에서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으로서의 길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길의 진행은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산다는 것은 화자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탐색 과정인 것이다.

5연에서는 부끄러움을 통한 자아의 갈등과 각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적 자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깨달은 화자가 쳐다본 하늘은 현실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지고(至高)한 존재로 그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동주 시 세계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준엄한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게 해 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6·7연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존재해 있는 잃어버린 자아, 즉 본질적 자아를 찾기 위함이다. '긴 그림자가 드리운' 돌담 같은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기 위함이라는 독백을 하는 화자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악랄한 식민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 회복의 길을 걷던 윤동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1941년 9월 연희 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에 바탕을 둔 내면 세계와 탈(脫)현실의 단면을 띤 또 다른 내면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고향마저도 실재하는 현실적 고향과 스스로 그려서 이룩해 낸 탈현실의 고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시는 현실적 자아가 누워 있는 '고향'(만주 용정)과 이상적 자아가 도달하고자 하는 '또 다른 고향'(정신적 안식처)을 두 축으로 설정하여 그것들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빚어지는 고뇌와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고향'과 '또 다른 고향'이 한 대응 체계를 이루고 있는 한편, '백골'과 '나'와 '아름다운 혼'으로 빚어진 또 하나의 대응 체계가 있다. '나'는 개인적 자아·본래적 자아요, '백골'은 사회적 자아·유한적 자아로 이 둘은 모두 현실적 자아를 의미하고, '아름다운 혼'은 종교적 자아·영원한 자아로 이상적 자아를 뜻한다.

현실적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백골'이라는 피압박의 자의식이 '나'를 따라와 함께 눕는다. '어둔 방'으로 표상된 불안과 고독의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본래적 자아인 '나'와 사회적 자아인 '백골'과 이상적 자아인 '아름다운 혼'으로 분열된 자아가 하나로 통합되어, '백골을 들여다 보며 / 눈물 짓는' 자아 성찰의 몸부림을 한다. 그러나 '나'는 '고향'과 '백골'을 벗어나 '또 다른 고향'과 '아름다운 혼'의 차원으로 승화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고향'과 '또 다른 고향', 그리고 '백골'과 '아름다운 혼'은 화합을 이루지 못한 채 끝끝내 대립을 이루게 된다.

'고향'의 어두운 방에 '백골'로 누워 괴로워하고 있는 그 때, '나'를 '또 다른 고향'인 '우주'(어둔 방은 우주로 통한다고 했음)로 승화시켜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바람'이 불어오고, '어둠을 짖는 개'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온다. '아름다운 혼'을 지향하는 지조(민족 정기) 높은 그 '개'는 '백골'과 등가(等價)를 이루는 '어둠'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밤을 새워 짖는다. ('백골'은 '소리처럼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풍화 작용을 하여 소멸하는 것이고, '어둠'은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 개'의 울음 소리로 점차 사라지는 것이기에 이 두 사물은 등가를 이룬다.) 결국 이 작품은 현실적 공간을 뛰어넘어 밝고 넓은 초현실의 공간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영원한 삶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 몸부림을 더욱 자극시키고 채찍질하는 것이 바로 소리처럼 느껴지는 '바람'과 '지조 높은 개'가 밤새워 우는 '울음'인 것이다.


아름다운 이상에의 동경을 주제로 한 이 작품(1941. 11.5)은 난해함이 없는 산문체의 질서적 표현 기법으로 친근감과 설득력을 더해 주고 있다. 가을 하늘과 별과 시인의 고향이 되어 버린 북간도(北間島)의 이국 정조(異國情調, exoticism)가 망국(亡國)의 설움과 어울려 민족의 비애가 애잔하게 표현되어 있다.

'별'은 이 작품의 중심 소재로서 윤동주가 즐겨 사용하는 이상적 이미지이다. 윤동주는 이상과 순수, 구원의 상징인 별을 헤면서 여러 상념에 젖고 시를 떠올리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가 별을 다 헬 수 없는 것은 그가 꿈꾸는 것이 많기도 한 탓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밤이 빨리 지나가기 때문이며, 번민과 고뇌로 상징되는 젊은 날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별을 헤며 불러보는 아름다운 말들은 '추억'(소학교 때 ― 이국 소녀들의 이름), '사랑'(벌써 ― 계집애들의 이름), '쓸쓸함'(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 '동경'(비둘기, 노루), '시'('프란시스 잼' ― 시인의 이름)로 상세화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시인이 추구하는 별(이상)처럼 멀리 존재할 뿐이다.

그리움과 쓸쓸함의 근원인 어머니는 북간도까지 붸겨간 윤동주의 어머니이자 그 곳에 살고 있던 수많은 우리 민족의 어머니들이요, 일제에게 수탈당한 한국인의 상징적 어머니 상(像)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곧, 모국(母國)의 표상인 셈이다. 이제 그는 극도의 순결 의식을 가지고, 지나칠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가 되어 어머니를 부르며 '흙으로 덮어 버린' 자신의 이름에 절망한다. 그 '부끄러운 이름'은 창씨 개명(創氏改名)으로 더렵혀진 한국인 모두의 이름이자, 이상에 충족하지 못하는 제 자신의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비록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살고 있지만, 먼 훗날 이 땅에 다시 봄이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가 꿈꾸던 이상은 마침내 실현되고,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 그의 무기력했던 삶도 소생, 부활할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이 시는 해방 후 간행된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모두(冒頭)에 놓여 참삶을 추구, 지향하는 윤동주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명시(名詩)이다. 윤동주는 식민지라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지성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고요한 내면의 세계를 응시하려는 순결한 정신의 소유자요, 자신이 걸어야 할 삶의 길에 순응하고자 했던 인간이다. 그를 일제 말기라는 문학적 공백기에 민족적 의지와 양심을 지켜주던 대표적 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시가 시대적 상황의 투시와 양심에서 배태된 '부끄러움'의 인식 때문이다.

이 작품의 구조는 2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시간의 변화에 따라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은 둘로, 즉 1∼4행과 5∼7행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단락은 과거 시제로 지금까지 화자가 살아온 생활의 고백이고, 둘째 단락은 미래 시제로 미래의 삶에 대한 화자의 신념의 표명이다. 셋째 단락인 2연은 현재 시제로 현재의 시적 상황의 제시이다. 결국 이 시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며, 지금 현재는 어떠하다는 구조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배경은 별과 밤 하늘이다. 별이 빛나는 그 밤 하늘 아래 시적 화자인 '나'가 존재하고 있다. '밤'은 암울한 시대 상황이며 자아의 실존적 암흑 의식을 표상하고 있으며, '별'은 외로운 양심의 표상이자 구원(救援)의 지표로 희망과 이상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희원(希願)하며, 도덕적 결백성과 순결성 때문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있다. '별'과 대조가 되는 '바람'은 화자가 추구하는 참삶과, 지켜 오고 있는 양심을 흔들리게 하는 현실적 시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우주 섭리(攝理)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 충실하는 한편,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과 조국과 민족의 고난을 포근히 감싸 안고자 했던 시인의 지극한 휴머니즘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의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시행은 그가 처한 암담한 현실 상황을 대변하는 동시에, 바람에 부대낄수록 더욱 밝은 빛을 발하는 별과 같이 자신의 이상도 빛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어, 아직 채 완성되지 못한 24세 때(1941.11.20) 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뛰어난 자기 인식으로 드러나는 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28세의 젊은 나이로 후쿠오카 어두운 감옥에서 숨을 거둔 그가 하늘과 양심 앞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던 번민과 의지의 결실인 이 시는,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주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1941년 11월 29일 연희 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가 갖는 특수성은 각기 다른 동·서양의 두 고전을 형상화한 점에 있다. 즉, 거북이의 꾐에 빠져 간(肝)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토끼가 특유의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지는 내용의 '귀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다가 밤에는 그 간이 되살아나 영원히 고통을 겪는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교묘히 결합하여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를 밝힌 작품이다. 이 두 고전을 차용한 까닭은 '귀토지설'에서는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항거 의식을,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는 속죄양 의식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윤동주는 벼랑 끝에 몰린 위기에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를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을 지키며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두 고전의 문면(文面)을 글자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하여 작품 속에 투영시키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거북의 유혹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 했던 토끼, 즉 화자가 지상 낙원이 용궁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산중임을 깨달은 후, 그 곳으로 돌아와 '간'을 꺼내 바위 위에 말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토끼의 행동은 바로 간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간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보다도 간이야말로 거북에게 맞설 수 있는 가장 크고 효율적인 무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간'이 '습한' 것은 한때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며, 그것을 햇빛에 말리는 것은 다시는 유혹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욕망의 절제를 통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연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귀토지설' 속에 끼어들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고전에 공통적으로 '간'이 등장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간'은 모두 상대와 맞설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3연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기른 독수리에게 자기의 간을 뜯어 먹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 독수리는 4연에서 '너'로 지칭되고 있는데, '나'가 육체적 자아라면 '너'는 정신적 자아라 할 수 있다. 결국 '너'라는 독수리는 화자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자아의 예리한 의식이 된다. 그러므로 '너는 살찌고 / 나는 여위어야지'라는 구절은 자신의 육체는 희생되더라도 정신만은 지키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끝머리의 '그러나'는 여위어 대항할 힘은 없어도, 정신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뜯어 먹히더라도 간은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5연에서 화자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며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용궁의 유혹'에 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6연에서는 불쌍하기는 하나, 프로메테우스처럼 화자도 인간을 위한 속죄양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하'는 것은 그 같은 거룩한 자기 희생 정신의 표현이다.


이 시는 암울한 시대에 욕된 삶을 사는 자신을 성찰하고 참회하는 작품으로 자문(自問)하는 형식 속에 지식인의 양심적 자세를 담고 있다. 24세의 청년 시절(1942. 1.24)에 쓴 작품으로 이와 같이 냉철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동양적 윤리관에 입각하여 철저히 분석, 해체한 점에서 그의 깊은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시적 화자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그 속에서 '왕조의 유물'과 '내 얼굴'을 발견한다. 이 '거울'은 그 자체가 '나'이면서 나를 비춰 주는 거울로, 그는 거울을 통해 과거의 삶을 성찰하고 참회할 뿐 아니라, '그 어느 즐거운 날'인 미래에 비추어 현재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의 거울은 단순히 내면적 자아 성찰의 도구가 아니라, 역사 인식의 매개물이요 미래 전망의 창구(窓口)가 되는 것이다.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던 화자는 조국의 잘못된 역사를 발견하고 자신에 대해 욕됨을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런 기쁨 없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참회의 글을 쓰는 한편, 조국 광복이 된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또다시 써야 할 참회록을 생각한다. 미래에 쓸 참회록이란 식민지라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자기 노력도 없이 현실의 고통만을 토로한 앞의 참회록을 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의 글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주제는 투철한 역사 의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구절은 바로 이러한 자아 성찰의 자세가 극명히 나타난 것으로, 온몸을 바쳐 자신을 꾸준히 되돌아보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절망과 암흑의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화자는 마침내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과 철저한 자기 참회의 실존적 자아 성찰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운석'은 별똥별을 일컫는 것으로 흔히 죽음을 연상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구절에 담겨 있는 화자의 자기 인식은 매우 우울하고 비극적이라 할 수 있는 한편, 이 시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직전에 쓴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감동적이다. 그는 일본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조국 독립을 6개월 앞두고 옥사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쓴, 윤동주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는 그의 독특한 '부끄러움의 의식'을 바탕으로 부활의 정신과 미래 지향의 기다림이 강렬하게 표출되어 있어 비장미(悲壯美)를 느끼게 해 준다. '남의 나라' 일본, 어느 하숙집 한 '육첩방'에 앉아 '속살거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한 줄 시'를 쓰고 있다. '육첩방'이란 다다미 여섯 장 넓이의 방으로 그의 삶을 한정, 구속하는 부자유의 상징이다. 그 작은 공간 속에서 그는 시인으로서의 소명(召命) 의식을 갖고 시를 쓰는 것이다. 시인을 일러 '슬픈 천명(天命)'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대민족적, 대역사적 의무감을 인식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표현으로 식민지 치하에서의 자신의 글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적 태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공부를 하는 자신을 돌아다 보는 진지한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어린 때 동무들 / 죄다 잃어버린' 지금, '무얼 바라' 낯선 타국(他國) ― 그것도 적국(敵國)에서 '늙은 교수의 강의'나 들으며 '홀로 침전하는' 자신에 대해 근원적인 회의를 품는다. 이럴 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라며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삶의 어려움에 비추어, 별 고통 없이 씌어지는 자신의 시를 반성하는 성실성을 보여 준다. 괴로운 반성과 자기 연민의 깊은 밤,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절망하지 않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구도자의 자세로써 그 고통을 이겨낸다. 그 '아침'은 개인적 번민으로부터 벗어남이자,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어둠을 무너뜨리고 모든 고통을 떨쳐낸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조국 해방의 날'이다. 그리하여 그는 조국이 머지않아 해방될 것임을 확신하며, 자기 자신을 처음으로 '눈물과 위안'의 따스한 '손을 내밀어' 다독거려 주는 동시에, 조국 해방에 대해 마지막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해방을 끝내 보지 못하고, '육첩방'도 안 되는 후쿠오카 좁은 감옥에서 한 많은 눈을 감게 되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정신과 미래 지향의 기다림은 윤동주의 예언자적 지성의 탁월한 발현이자, 영생과 부활을 믿는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둔 역사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국과 민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 앞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는 완전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그에게 아마도 그 같은 역사 의식은 그의 삶과 문학을 지탱시켜 주던 원동력인 동시에, 최후의 정신적 보루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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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훈(沈熏)

본명 : 심대섭(沈大燮)

금강생, 금호어초(琴湖漁樵), 백랑(白浪), 해풍(海風)

1901년 서울 노량진 출생

1919년 경성 제일 고보 재학시 3·1 운동에 참가

1922년 중국 항주(杭州) 지강(之江) 대학 극문학부 중퇴, 귀국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역임

1926년 {동아일보}에 <탈춤>을 발표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공모에서 <상록수> 당선

1936년 사망

시집 : {그 날이 오면}(1949)


출세작 <상록수>를 집필하기 3년 전인 1932년에 간행하려 했던 {그 날이 오면}은 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반 이상이 삭제됨으로써 중단되었다가, 그의 사후 10년도 더 지난 1949년에야 비로소 가족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상록수>를 이해하는 길목에 위치하는 {그 날이 오면}은 중국 항주(杭州) 지강 대학에서 돌아와 1923년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쓴 시와 수필을 묶은 작품집이다. 이 작품집의 표제시인 이 시는 제일 고보에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 진두 지휘를 하다가 투옥된 바 있는 심훈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애국심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이육사의 <절정>과 함께 3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의 하나이다.

이 시에서 '그 날'이란 온갖 민족적 수난과 저항 끝에 죽음을 넘어서 획득하게 되는 조국 해방의 날을 의미한다. 화자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라고 하는 등 조국 해방의 날이 오는 순간을 상식적인 논리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화자가 '그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 준다. 이러한 환각 속에서 화자는 죽음마저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은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와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 있다.

2연도 1연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그 날'이 올 때의 기쁨을 제시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와 같은 죽음을 초월한 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시는 격정과 환희라는 시 정신을 바탕으로 광복의 '그 날'을 염원하는 마음이 잘 표출되어 있다. 눈에 거슬리는 극한적 표현을 자주 씀으로써 다분히 관념적이고 격렬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절절한 호소, 강인한 의지, 도도한 의기(義氣)의 자세와 목소리, 비장감(悲壯感)으로 비롯된 치열한 저항성과 강렬한 역사성은 바로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이와 같은 저항시에서는 세련된 정서나 아름다운 표현은 도리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쓸데없는 장식물이 될 뿐이다. 한편, 이 시는 1930년 3월 1일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비평가 바우라(Bowra)는 그의 비평서 {시와 정치}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한 본보기로 들며,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하였으나, 그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고 평한 바 있다.


총독부 검열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이는 6행을 끝내 복원시키지 못하고 심훈은 1936년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어서야 감옥을 나온 어느 애국 투사의 장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시에서 동지들이 자신의 옷을 벗어 시신(屍身)을 덮어 주는 장면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저승길까지 따라붙는 일본 경찰 때문에 죽은 이를 애도하는 '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고 장지(葬地)로 향하는 '동지'들을 '산 송장'이라 지칭하는 시적 화자의 어조에는 일제에 대한 분노와 함께 깊은 회한(悔恨)이 담겨 있다. 살아 남아 죽은 이의 장례를 치루어 주는 동지들까지 산 송장이라 생각하는 그의 의식 속에는 삶과 죽음이 그만큼 가깝게 느껴졌던 것이고, 일제 치하에서 누리는 식민지 삶이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송장과 같다는 투철한 현실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궂은 비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 가등(街燈)'을 따라 차가운 시신을 메고, 아무 '말 없이 무학재를 넘어 철벅철벅 걷던' 심훈은,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입술을 깨물고 조국 해방의 그 날을 염원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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