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순수 서정과 모더니즘의 세계

1930년대에 들어서면 한국의 근대시는 전대와는 다른 '현대적'인 모습들을 지니기 시작한다. 1929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하고 귀국하는 이른바 '해외문학파' 멤버들이 문단에 편입되면서부터, 문학 활동에 있어서 내용보다는 기법에 관심을 두는 일군의 시인들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핵심은 단연 1930년에 출발하는 '시문학파'이다.

{시문학}은 1930년 3월 창간되었다. 이의 구성원은 박용철(朴龍喆), 정지용(鄭芝溶), 김영랑(金永郞), 신석정(辛夕汀), 이하윤(李河潤) 등으로, 이 중 정지용과 이하윤은 상당한 경력을 가진 기성 시인이며, 박용철과 김영랑은 {시문학}을 통해 비로소 문단에 등장하는 신인이며, 신석정은 미미한 시작 활동이 {시문학}에 의해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은 재등단 신인에 해당한다. 이렇게 다양한 성격의 구성원들이 참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문학}은 그 내부에 하나의 공통적 특질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반이데올로기적인 순수 서정의 추구와 시어에 대한 예술적 자각으로 이 특질은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문학파'의 계보 속에서 일관되게 추구되어온 관심사였다. 특히 정지용의 작품들은 전통성과 모더니즘의 경향을 동시에 지양·극복하는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대의 한국 근대시를 한 단계 뛰어넘는 괄목할 성과를 이루어 낸다. 이렇게 1930년대의 한국시는 바야흐로 '현대적'인 특징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그 개화의 모습은 1930년대 중반 무렵의 모더니즘 문학 운동에서 발견된다.

서양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은 19세기 말엽에 시작하여 1차 세계 대전 전후에 전성기를 맞고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쇠퇴한 문예 운동으로서 여기에는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주지주의', '이미지즘' 등이 포함된다.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은 전대의 낭만주의의 계보를 이어받은 모더니즘 운동으로서 전위적이고 실험성이 강한 예술 유파이며,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은 고전주의의 계보를 이어받은 온건·합리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공통적 특질은 전통에 대한 비판, 주관성과 개인주의적 비젼, 예술의 심미성과 자기 목적성, 그리고 비연대기적 서술 방식·주인공의 불분명한 성격·복수적 시점과 의식의 흐름·언어적 유희 등을 주요 기법으로 하는 형식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는 이상과 김기림, 김광균, 소설에서는 이상과 박태원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한국의 모더니즘은, 카프를 중심으로 한 계급주의 문학과 민족주의 문학 간의 대립 구도가 허물어지는 전형기(轉形期)의 문학적 산물이다. 이와 함께 모더니즘은 1930년대의 서구화와 도시화라는 현대 문명의 시대적 풍경과, 점점 가혹해지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말미암은 지식인의 자기 소외, 고향 상실감과 무력감을 반영한다. 여기에는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과거를 부정하며 주체 분열의 자의식에서 몸부림친 이상의 문학이 있고, 그 한편에는 황폐화해 가는 도시 문명을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는 김광균과 그 속에서 문명비판적인 세계사적 전망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김기림 등의 문학이 있다. 이러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의 이론적 근거는 김기림과 최재서에 의해 제공된다.

1930년대 순수 문학과 모더니즘 문학은 시어에 대한 현대적 자각과 주체 의식의 반영, 그리고 기법의 혁신이라는 '현대성'으로 말미암아, 전대의 내용 중심주의의 문학에서 한 단계 발전한 문학사적 의의를 획득한다. 그러나 날로 노골화되어 가는 일제의 식민 통치 하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시인의 내면 속으로만 침잠해 들어가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공허한 유미주의적 자세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비판받아 당연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들에 의해 한국 현대시의 지평이 확대되고, 이들의 많은 작품이 오늘날에까지 널리 애송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역시 시의 본질은 그 서정성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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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철(朴龍喆)

용아(龍兒)

1904년 전라남도 광주 송정리 출생

1911년 광주 공립 보통학교 입학

1920년 배재 고보 자퇴

1923년 도쿄 외국어 학교 독문과 입학,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30년 김영랑과 시 동인지 {시문학} 창간, 편집과 재정을 맡음

1931년 종합 문예지 {문예월간} 창간

1933년 순문예지 {문학} 창간

1938년 사망

시집 : {박용철 전집}(1939)


{시문학}, {문예월간} 등 문예지를 주재하며 활발한 시작 활동을 전개한 박용철의 작품은 그의 의욕적인 문단 활동에 비추어 볼 때,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는 젊은이가 암울한 일제 식민지 현실을 눈물로만 보낼 수 없다는 강변(强辯)을 담은 것으로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서글픈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주제 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며 언어 구사가 명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 그의 작품 중에서서도 이 시는 <싸늘한 이마>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이 작품이 시적(詩的) 완성도가 높아서라기보다는 나라를 빼앗기고 설움에 잠겨 있던 당시의 민족적 분위기에 영합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시는 1연에서 식민지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그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으며, 2연에서는 떠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차마 떠날 수 없다는 감성적 행동 사이에서 겪는 고뇌와 갈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3연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로 인식하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항구를 '떠나가는 배'에 비유하여 괴로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앞 대일 언덕'이란 배를 정박할 항구를 뜻하는 것으로 목적지도 없이 망망대해로 떠나야 하는 괴로운 심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4연은 1연을 반복함으로써 의미의 강조를 꾀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나두야 가련다'고 하며 미래 지향적 태도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갈등과 고뇌가 깔려 있다. 몇 번씩이나 자신에게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며 강변하지만, 그 내면의 의지는 극복되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안개같이 물 어린 눈'을 글썽이는 인간적 나약함을 보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시적 화자의 모습을 통하여 일제의 수탈을 피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당대 유랑인들의 비애와 슬픔을, 한숨과 눈물로써 세월을 보내야 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고뇌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시적 자아의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2행 1연의 전 3연의 간결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연의 첫 행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둘째 행은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벗삼고 싶은 대상을 보여 주고 있다. '- 라도 있으면(있다면)'이라는 표현은 화자의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는 것으로, 화자는 그 대상을 각각 '산꽃', '귀뚜리', '별'이라는 평범한 사물로 제시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이라는 직설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 싼 세계를 어둠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그 속에서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2연에서는 1연과는 다른 방식인 비유적 표현으로 외로움이 나타나 있다. 눈을 감으면 마치 자신의 몸이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처럼 느껴진다는 진술에서 그가 겪고 있는 외로움이 가히 짐작된다. 섬뜩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는 한 마리 '귀뚜리'만 있으면 외로움을 이겨내는 큰 기쁨이 되리라고 한다.

3연에서 외로움은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으로 나타나 있다. '파란 불', 즉 예민한 신경으로 인해 잠을 재촉하면 할수록 머리 속이 초롱초롱해지며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같이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말하고 있다. 이럴 때,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 큰 즐거움이겠냐고 화자는 자문하고 있다.

화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왜 어둠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이 시는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지 않지만, 그런 대로 이 시가 읽히는 것은 바로 화자의 진한 호소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저 간단히 일제 치하라는 시대 상황으로만 설명하기엔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는 20년대 초 {백조}파의 '감상의 과잉'에 박용철의 기교가 결합된 정도의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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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金永郞)

본명 : 김윤식(金允植)

1903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

1915년 강진 보통학교 졸업

1917년 휘문 의숙 입학

1919년 3·1 운동 직후 6개월간 옥고

1920년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 입학

1922년 아오야마 학원 영문과 진학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

1950년 사망

시집 : {영랑 시집}(1935), {영랑 시선}(1949)


이 시는 영랑의 등단작이자 순수시라는 새로운 영역을 펼쳐보인 작품으로 원제목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이다. 남도 사투리가 부드럽게 순화되어 예술적 미를 형성하고 있으며, 생기가 감도는 가락은 짙은 향토색과 감미로운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동일 어구를 반복함으로써 음악적 리듬을 부여하는 한편, 단순한 형식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막아 주는 시적 효과를 내고 있으며, 특히 의미상 3음보 율격의 시행을 4음보 시형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시인의 내적 충동과 외적 절제라는 이중성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원제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시인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동백잎을 보는 순간, 은빛으로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볼 때와 같은 어떤 신비로움을 느낀 게 아닌가 한다. 일반적으로 영랑 시는 밖을 향해 시선이 열려 있는 외부 지향의 시가 아니라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을 '나'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내면 지향의 특징을 갖는다. 그런 탓으로 그의 시는 구체적인 체험 내용을 직접적으로 진술하기보다는 그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인상과 감흥을 드러내는 특성을 갖게 된다. 이 시도 역시 '내 마음'에 포착된 동백잎의 인상과 감흥을 '나' 안에서 즐기고 만족하는 내면 지향의 시로 영랑의 정신 세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시인이 동백잎에서 발견한 황홀경은 객관적 실체가 아닌 안식과 평화의 세계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부 세계와의 갈등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구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안식과 평화, '끝없는 강물'처럼 아름다운 그것은 다만 그의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에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일제 치하라는 현실 상황에서 영랑이 '끝없이' 추구했던 안식과 평화는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내 마음'에서만 가능했으리라 짐작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자폐증 환자와도 같이 외부 세계로 통하는 모든 문을 안에서 잠가 걸고 자기 내면 속에 침잠하여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폭압의 어두운 시대를 가슴 졸이며 견뎌내었던 것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듬뿍 배어 있는 이 시의 감상 초점은 '골 붉은 감잎'을 바라보는 '누이'와 시적 화자의 태도에 있다. 즉, '오매, 단풍 들것네'라며 소리치는 두 사람의 탄성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을 두고 작품을 파악해야 한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정신 없이 일상사에만 매달렸던 '누이'는 어느 날 장독대에 오르다 바람결에 날아온 '붉은 감잎'을 보고는 가을이 왔음에 깜짝 놀라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지른다. 그 놀라움이 누이의 얼굴을 붉히고 마음까지 붉힌다. 그러므로 '단풍 들것네'란 감탄은 '감잎'에 단풍이 드는 것이 아니라, 누이의 마음에 단풍이 든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가을을 발견한 놀라움과 기쁨도 잠시일 뿐, 누이는 성큼 다가온 추석과 겨울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추석상도 차려야 하고 월동 준비도 해야 하는 누이로서는 단풍과 함께 찾아온 가을이 조금도 즐겁지 않다.

누이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는 누이가 왜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쳤는지, 누이의 얼굴과 마음이 왜 붉어졌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둘째 연의 1·2행은 누이의 걱정을 헤아린 화자가 누이를 대신해서 누이가 외치는 탄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며 소리지른다. 호칭의 대상이 '누이'가 아닌 '누이의 마음'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첫 연의 '오매, 단풍 들것네'의 주체가 갈잎이 아니라 누이의 마음임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가 소리친 '오매, 단풍 들것네'의 주체도 화자 자신의 마음이 된다. 다시 말해, 누이의 마음이 화자에게 전이됨으로써 누이의 걱정이 화자의 걱정과 하나가 되는 일체화를 이루게 된다.

결국 '누이'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한 것은 '감잎'이었지만, '나'의 마음을 단풍 들게 하는 것은 '누이'가 되는 것이다. 첫 연이 누이가 자연을 통해서 느끼는 생활인의 마음을 표현했다면, 둘째 연은 화자는 누이에 대해 느끼는 인간적인 감동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오매, 단풍 들것네'라는 감탄은 첫 번째 것이 누이가 가을이 왔음을 알고 반가워하는 의미이라면, 두 번째 것은 누이가 가을로 인해 갖게 된 걱정스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며, 세 번째 것은 화자인 동생이 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영랑이 실험적으로 즐겨 쓴 4행시의 확대 형식으로 같은 내용의 4행시 두 편이 이어져 있는 작품이다. 그의 첫 시집 {영랑 시집}(1935)에 수록된 53편의 시 중 절반이 넘는 28편이 4행시인데, 그가 이처럼 4행시를 즐겨 쓰게 된 동기는 알려진 바 없지만, 아마도 한시(漢詩)의 기·승·전·결의 구성이나 4구체 향가 형식에서 그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가 한다. 4행의 짧은 시 형식에 완결된 시상을 담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그의 시가 갖는 주제 의식과 전통 율조에 가까운 리듬 감각을 감안해 볼 때, 그의 시도와 노력은 이해될 만하다.

이 시는 밝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유성음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부드러운 해조(諧調)로 만들고 있으며, '살포시'·'보드레한'과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 구사와 '새악시'·'부끄럼' 같은 한 음절을 가감(加減)하는 언어 조탁을 통하여 영랑의 탁월한 시작 능력과 그만의 감미로운 서정 세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내 마음 고운 봄길 위에>가 원제목인 이 시의 짜임새와 내용은 상당히 단순하다. 두 연의 1·2행은 모두 '―같이'로, 마지막 행은 모두 '―고 싶다'라는 형식으로 시적 화자의 소망을 담고 있다. 그의 소망은 지극히 소박한 것으로, 다만 '하늘을 우러르고(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나,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고요한 마음으로 우러르고 싶은 '하늘'은 그의 다른 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의 '강물'과 같은 이미지로서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안식과 평화의 세계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노래하는 대상은 '하늘' 그 자체가 아니라 '하늘'을 우러르고 싶은 '내 마음'이다. 따라서 '하늘'을 우러르고 싶은 내 마음이 비유된 '햇발'·'샘물'·'물결'은 바로 시인이 처해 있는 지상의 현실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같은'으로 비유될 때는 뒤에 놓이는 원관념과 비유관념의 공통점(또는 유사점)이 관심 대상이지만, '햇발같이 우러르고 싶다.'와 같은 표현에서는 '우러르고 싶다'는 행위보다 '햇발'로 비유된 시적 화자의 마음에다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소월 이후 우리말 구사에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김영랑은 "북도에 소월, 남도에 영랑"이란 말에 어울리게 섬세하고 은은한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었다. 그는 박용철과 함께 주도한 {시문학}으로 KAPF 중심의 비문학적 정치주의를 배격하고, 20년대 중반부터 확산되어 오던 순수시의 서정 세계를 열어 놓았다. 시문학파가 주장한 순수시는 일체의 이념적·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윽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를 뜻한다. 시문학파는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 세계에만 빠져 역사 의식을 상실한 채 시어의 조탁에만 열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시가 언어나 형식면에서 한 차원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공적이라 하겠다.

교훈적 계몽이나 정치적 목적 의식을 버리고 언어의 기교와 순수한 서정을 중시한 영랑의 시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주제로 하여 여성적 화자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남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섬세한 시어를 구사하여 밝은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기·승·전·결 형식의 네 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나의 마음을 알아 주실 임에게 간절한 그리움과 슬픔이 응결된 결정체를 보배처럼 간직했다가 내어 드리겠다는 내용의 연가이다. 네 연의 짜임을 살펴 보면, '내 마음을 아실 이가 계시다면'이라는 첫째 연의 '가정(假定)'과, '보배인 듯 그 마음을 드리겠다'는 그 가정에 대한 '응답'을 보여 주는 둘째 연에 이어, '꿈에서라도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있다면' 하는 셋째 연의 '자문(自問)'에 이어 마지막 연에서 그 임은 자기의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라며 추측에 의한 '결론'을 내려 버린다. 이런 가정과 응답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시적 자아는 꿈에서라도 그런 임을 만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헛일이 되고, 그럴수록 그의 안타까움은 달아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시적 자아는 자신의 의식 세계에 고립되어 더욱 고독해질 뿐이다. 이렇게 사랑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속으로 감내하며 괴로워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은 전통 의식 구조에 비추어 본다면 충분히 헤아릴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아실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정을 내려 놓은 상태에서, 더구나 폐쇄시킨 자신의 의식 세계는 열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한다며 임을 원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나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는 영랑이 남달리 좋아하던 모란을 소재로 하여 한시적(限時的)인 아름다움의 소멸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비애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모란'은 실재하는 자연의 꽃인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의 꽃이다.

연 구분이 없는 이 시는 작품 속에 전개되는 시간의 추이로 보아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인 첫째 단락은 1∼2행이며, 미래인 둘째 단락은 3∼4행, 과거인 셋째 단락은 5∼10행, 현재의 넷째 단락은 11∼12행으로 첫째 단락의 반복이다. 첫째 단락에서 시적 화자는 모란이 필 그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둘째 단락에 이르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모란이 떨어져 다시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셋째 단락은 그가 설움에 잠기게 될 미래의 상황을 증명해 줄 뿐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삶의 구도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오직 모란이 피어 있는 순간에만 삶의 보람을 느끼는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모란은 봄과 등가적(等價的) 가치로 그의 소망을 표상한다. 그가 추구하는 소망 세계가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것이 모란으로 대유된 어떤 절대적 가치의 미(美)라고 한다면, 시적 화자는 모란이 피어 있을 때는 자신의 소망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하여 보람을 느끼다가, 모란이 지고 말았을 때는 봄을 여읜―보람을 상실한 허탈감에 빠져, 마치 한 해가 다 지나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감상적 유미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화자의 한 해는 '모란이 피어 있는 날'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9·10행에서 볼 수 있듯이 모란이 피어 있는 날을 제외한 그의 나날은 '하냥 섭섭해 우는' 서러움의 연속이다. 여기에서 시적 자아는 모란과 하나가 되어 모란이 피어 있지 않은 '삼백 예순 날' 동안을 함께 슬퍼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모란이 피는 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기다리는 봄이 다만 '슬픔의 봄'이 아닌, '찬란한 슬픔의 봄'임을 인식하게 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찬란한 봄'이라는 의미보다 '슬픔의 봄'이 강조된 표현이라면, 표면적으로는 화자가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기대와 희망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란을 잃은 설움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란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비실제적 세계관의 소유자인 화자가 한 해를 온통 설움 속에서 살아갈지라도 그의 봄은 결코 절망뿐인 '슬픔의 봄'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봄은 또 올 것이고, 봄이 오면 모란은 또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슬픔은 다만 모순 형용의 '찬란한 슬픔'으로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뿐이다.

모란이 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설움에 잠겨 있는 화자의 태도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와 <내 마음을 아실 이>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내 마음'의 세계를 한층 더 내밀화시키는 것으로, 영랑으로 하여금 외부 사물과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취하지 못한 시 세계만을 펼쳐 보이게 하였으며, 결국 그의 시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판소리의 연창과 북의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판소리에 대한 영랑의 남다른 조예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영랑의 고향 강진은 판소리의 고장이고, 영랑을 비롯한 {시문학}파가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깊다. 전통 문화에 대한 영랑의 애정이 3, 4음보의 전통 가락과, 장단·완급의 다양한 변화, 북소리를 연상하게 하는 의성어 등과 잘 어울려 나타나 있다.

일반적으로 판소리에서 북을 반주를 위한 소도구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북 없이는 소리가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소리를 이끌어 가는 '컨덕터'가 될 정도로 북의 역할은 지대하다. 일 고수 이 명창(一鼓手二名唱)란 말도 결국은 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북도 소리가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를 떠나서 북은 오직 가죽일 뿐'이며, 명창 송만갑도 북 없이는 그의 소리 예술을 이룰 수 없었다. 따라서 북은 소리에 종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북으로써 소리는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은 판소리에 있어 북의 지대한 역할을 보여 주는 한편, 소리와 북의 일치에서 예술과 인생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북과 소리의 조화 속에서 소리가 완성되고, 명창이 탄생되듯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 흔치 않'음을 인식한 영랑은 마침내 북과 소리의 조화로 이루어진 소리 예술과 삶의 일체감 속에서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5월의 훈풍이 스쳐 지나가는 푸른 들판의 정경을 감각적으로 그려 낸 작품으로 시인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여성적 아름다움으로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것에서 그의 독특한 자연관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며, 대부분의 영랑 시가 음악성에 호소하고 있음에 비해, 이 시는 회화적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관심을 끈다.

또한 이 작품은 화자의 시선이 '들' → '바람' → '꾀꼬리' → '산봉우리'로 이어지는 소재를 따라 근경(近景)에서 원경(遠景)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며 전개되는 특징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서경적 혹은 묘사적인 서정시의 일종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타난 기대와 좌절의 감정 표출과는 달리, 5월의 싱그러운 자연을 표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시인의 내면적 정서는 억제되어 있으며, 언어 기교의 세련성이 시적 감각의 구체성을 살려 내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전 11행의 단연시로서 내용상 기·서·결의 3단 구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첫째 단락(1∼2행)에서는 붉은 꽃이 피어 있는 마을길과 푸른 들길을 대비시켜 봄이 가득한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으며, 둘째 단락(3∼5행)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의 정경과 바람 부는 모습을 시골 처녀의 허리로 의인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관능미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단락(6∼11행)에서는 꾀꼬리의 정겨운 모습과 산봉우리의 자태를 감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는 노란 꾀꼬리는 푸른 하늘, 푸른 들판과 색채의 대조를 이루며 다정한 연인에 비유되고 있으며, 고운 물감으로 채색한 산봉우리는 곱게 단장하고 교태를 부리는 새색시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이를 찾아 떠날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억제되어 왔던 화자의 감정이 비로소 이 마지막 시행에서 노출되게 되는데, 그것은 자연적인 삶의 순환 원리와 자연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서로 얽히고 설킴으로써 자연은 여성 원리로서, 화자는 남성 원리로서 인식된다. 따라서 자연은 '쫓기는' 여성으로서 '오늘 밤'이라도 달아나려 하고, 화자는 '쫓는' 남성으로서 그것을 붙잡고 싶어한다.


한결같이 고운 서정시만을 쓰던 김영랑은, 유미주의적 성향의 시작론(詩作論)을 서문(序文)에서 밝힌 그의 {영랑 시집}을 간행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간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39년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각급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을 폐지시킨 후였으며, 그 다음 해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시키는 등 그야말로 민족 문화의 존폐 위기 시대였다. 그런가 하면 소위 '내선 일체(內鮮一體)', '황국 신민화(皇國臣民化)'의 방편으로 우리 민족에게 '신사 참배(神社參拜)'와 '창씨 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기에 이르렀으며, '조선 문인 협회'(朝鮮文人協會, 1939)'라는 것을 만들어 우리 작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도록 하였던 암울의 극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순수시만을 고집하던 김영랑도 역사와 민족을 더이상 도외시할 수만은 없게 됨으로써 지금까지의 섬세하고 애상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당시의 현실 상황을 분명히 응시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독(毒)'은 그가 자신의 마음 속에 결정한 죽음의 각오를, '이리'·'승냥이'는 일제의 잔악한 모습을 상징한다. 그들이 앞뒤로 덤비며 마음을 노리고, 육신을 할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영랑은 스스로 독을 차고 나가겠다고 각오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을 찬 지 오래'되었다고 말하면서도 그 독을 누구에게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그만 독을 흩어버리라'고 권유하는 벗에게 그 독으로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기도 하지만, 그는 이내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하는 회의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죽게 될 것이라는 감상주의에 빠져 그 동안의 팽팽하던 시적 긴장을 깨뜨리며 갑자기 머뭇거리는 나약함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그는 다시 결연해지며 삶의 허무에서 벗어나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며 재차 다짐하게 된다. '다짐' → '회의' → '다짐'의 구조를 통해 그의 의지가 더욱 새롭고 강인한 것으로 발전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영랑은 결코 실천하는 행동주의자가 아닌, 언어적 사실만으로 저항 의지를 보여 주었을 뿐이며, '아무도 해한 일 없는' 그가 다만 이렇게라도 다짐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시가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는 극한 상황 속에서 시인이 '내 마음'에 '독'을 찰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와, 그것을 통한 내면적 다짐을 노래함으로써 겉으로는 그의 초기 순수시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지만, 사실은 그가 초기시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내면적 순결성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끈질기게 추구해 왔던 '내 마음'의 순수 세계가 행여 외부 세계로 하여금 파괴되거나 훼손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내면 세계를 그대로 보존·유지하기 위해 '독'을 차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가 '독'을 차는 최종 목적은 남을 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에 있기 때문이다.


영랑이 그 동안 일관되게 고집해 오던 '내 마음'의 서정 세계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방향을 돌리게 된 때는 1930년대 말엽으로서 일제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이 시는 <독을 차고>와 함께 그 같은 영랑의 변화를 한눈에 알게 해 주는 작품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일편 단심을 지키는 춘향의 애틋한 정절을 세조의 불의(不義)에 맞서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과, 촉석루에서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憂國)에 대응시켜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40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시의 창작 의도가 단순히 춘향의 사랑과 정절만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잊혀진 역사와 문화를 노래함으로써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적극적 의미가 숨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가사나 민요에 바탕을 둔 정형적 운율로써 순수 서정 세계만을 펼쳐 보인 초기시에 비해, 이 작품은 자유율을 구사하여 시의 산문화(散文化)라는 표현의 변화뿐 아니라, 제재면에서도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되었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역사와 문화로 확대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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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정(辛夕汀)

본명 : 신석정(辛錫正)

석정(石汀, 釋靜), 석지영(石志永), 사라(砂羅), 호성(胡星), 소적(蘇笛), 서촌(曙村)

1907년 전라북도 부안 출생, 보통학교 졸업 후 향리에서 한문 수학

1924년 {조선일보}에 시 <기우는 해> 발표

1931년 {시문학} 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한 이후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1972년 문화포장(文化褒章) 수상

1974년 사망

시집 : {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0), {난초잎에 어둠이 내리면}(1974) 외


목가적(牧歌的)인 전원 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편에 흐르고 있는 부드러운 분위기로써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자 하는 전원 시인으로서의 신석정의 풍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이 작품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형태 구조의 완비(完備)이다. 4행 1연의 4연시인 균형 잡힌 형식에서 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며, '그렇게 가오리다 / 임께서 부르시면…….'과 같은 여성적 어조의 여운을 남기는 도치문(倒置文)으로서 매연을 끝맺고 있어 '자연 회귀(自然回歸)'의 의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작품 전편에 부드러운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임께서 부르시면 ―처럼 가오리다'라는 반복(反復)과 변주(變奏)의 동일한 구조에서 각 보조 관념들을 '은행잎'·'초승달'의 어두운 이미지에서 '물'·'햇볕'이라는 밝은 이미지로 발전시키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황(黃)'·'청(靑)'·'백(白)'의 색채감 있는 시어를 선택함으로써 매우 신선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흔히 전원 시인, 또는 목가 시인으로 불리는 신석정의 초기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이 작품은 현실 저 건너에 존재한다고 믿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그와 대조되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부정(否定)을 어머니에게 속삭이는 듯한 경어체로 나직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전 10연의 형식이지만,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한 단위로 하여 내용상 1∼4연, 5∼7연, 8∼10연의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각 단락의 가운데 연(2·3·6·9연)에서는 이상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마지막 연(4·7·10연)에서는 그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누릴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현실의 갈등을 벗어난 근원적 평화를 상징하며, 먼 나라인 이상향을 알고 계신 능력 있는 분이자, 화자를 그 먼 나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어떤 절대적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 글이 씌어진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보면, '나'는 '현실'이고, '어머니'는 '구원'의 이미지로 '빼앗긴 조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 화자가 그리워하는 '그 먼 나라'는 '산'과 '호수'와 '들길'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흰 물새'·'들장미'·'노루새끼'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유를 표상하는 '비둘기'를 키우자고 한다.

둘째 단락에서는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그 먼 나라'에서 어머니와 같이 순결과 순종을 의미하는 '어린 양'을 데려오자고 한다.

셋째 단락에서 노래되는 で그 먼 나라と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촐촐히 비가 내리'며, '꿩 소리도 한가롭게 들리'는 곳으로 '산국화'와 '은행잎'이 곱게 피어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화자는 '새빨간 능금'을 수확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가을의 풍요로움, 즉 진정한 자유에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다.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이렇듯 시인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 순수하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하루속히 조국이 해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석정의 시 세계는 목가적 전원의 서정이 안식과 생명의 모체인 어머니와 결합되어 이상향을 동경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이 작품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같이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통하여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 구조는 단순하지만, '불의'·'악'·'고난'의 현실을 상징하는 '밤'과 '진실'·'선'·'자유'·'평화'를 상징하는 '촛불'·'새새끼'·'어린 양'을 대립시켜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또한 저물녘의 황혼에 인위적인 것(촛불)이 가미됨으로써 아름다움이 훼손될 것을 두려워하는 시인의 여리고 순결한 감정이 '어머니,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의 반복을 통해 간절히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어머니'는 특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기보다는 호소의 시형이 자연스레 갖게 되는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어머니이고, '촛불'은 어둠을 위한 광명이나 희생과 같은 긍정적, 적극적 개념이 아니라 인위적, 작위적인 유한한 광명이다. 각 연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연은 황혼녘의 아름다움, 둘째 연은 황혼녘의 물상(物象)에 대해 시적 자아가 갖는 새로운 인식, 셋째 연은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한 이상향에의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생명의 요람이요, 구원(久遠)한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시켜 주는 어머니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자기의 꿈을 들려 드리는 아들의 이야기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시인의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애심을 느낄 수 있다.

해 저문 들길에 선 시적 자아가 자신의 지난 생활을 돌아다 보며 새롭게 삶의 의지를 가슴에 심고,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의 이 작품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시적 자아가 존재해 있는 현실과, 그가 지향하는 '푸른 하늘'과 '푸른 별'의 세계를 대립시키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뼈에 저리도록' 현실 세계는 괴롭지만, 시적 자아는 조금도 절망하지 않는 낙천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고, 두 다리는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고 있다는 삶의 숭고함을 자각하면서 굳센 삶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생활이 아무리 슬플지라도 '푸른 별'을 바라보는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인 삶의 목표를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한 그의 건강한 삶은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있는 것이기에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하고 소리 높여 외치거나, '생활은 슬퍼도 좋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저문 들길'로 상징된 일제 말기의 어두운 시대적 분위기에서 씌어진 이 작품은 비록 현실이 괴롭고 모질더라도, 그럴수록 높은 이상과 뜨거운 생의 의지를 불태우며 미래에 다가올 희망찬 새 시대를 갈망하던 시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는 일체의 간섭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연 속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하는 도교적 사상이 간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으로 '난이와 나'라는 순수한 인간의 전형을 '작은 짐승'으로 표현하여 근원적 평화와 절대 순수의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시절이다. 그러므로 전 시행을 '-었(았)다'라는 과거 시제로 씀으로써 시인이 그리워하고 있는 어린 시절과, 시인이 현재 처해 있는 현실 상황과를 대비시켜 그 동경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곧 지금의 현실은 '난이와 나'가 누리던 평화와 행복이 모두 사라진 고통의 시대요, 따라서 '난이와 나'는 더이상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모진 세파 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영혼이 세속에 물들어 버렸음에 가슴 아파하며, 높은 산언덕 느티나무 아래서 티끌 하나 없는 순진무구함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던 옛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어, 다시 한 번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 바로 그것은 현대인 누구나 꿈꾸는 보편적 향수가 아닐런지. 또한 신석정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 순수한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가 일제 치하에서 줄기차게 추구하던 이상향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해방된 조국일 것이다.


이 시가 발표된 1939년,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 '노루새끼 한 마리' 살 수 없었던 우리 나라는 오직 '나와 / 밤과 / 무수한 별뿐'인 '검은 밤'의 일제 치하이었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같은 그의 초기시에서 노래 부르던 '어머니'마저도 상실한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그는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별'을 자신의 이상 세계로 삼고 식민지라는 고통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동시대 작품인 <지도>에서는 '오늘 펴 보는 이 지도에는 / 조선과 인도가 왜 이리 많으냐?'며 제국주의 강대국에 의해 자유를 잃은 약소 민족의 설움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이 바로 <슬픈 구도>로 점철된 당시의 지구 현실이었던 것이다.

전 4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반복·열거의 수사적 기법이 단순성을 보완해 주고 있다. 1연과 3연의 반복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나'의 고독과 절망뿐이다. 왜냐하면, '나'와 공존해 있는 것은 '하늘'·'산'·'밤'·'별'뿐으로, 이것은 바로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2연은 앞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불모성'을 '지구도 없고'라는 시어의 반복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4연은 '밤'과 '검은'의 하강적 이미지 시어를 통해 시인의 고독과 절망을 형상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단순한 구성은 이러한 고독과 절망이라는 주제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역사의 흐름을 표상하는 강의 어느 한 '지류'에 서서 캄캄한 강물을 응시하고 있다. '못 견디게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검은 밤'이 흐르고 '은하수에 빠진 푸른 별'도 흐른다. 본류(本流)가 아닌 지류에 서 있다는 것은, 화자가 일제의 식민지라는 어두운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으로, 암울한 역사 현장과 어느 만큼 거리를 둔 도피적 색채의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항일(抗日) 저항 의지를 적극적으로 세우지 못한 화자는 '검은 밤'으로 인해 숨 막힐 것 같은 현실에 절망하며, '푸른 별'마저 사라져 버린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다본다. 은하수에 휩쓸려 어디론가 흘러가 버린 '푸른 별'은, 독립에 대한 열망도 버리고 일제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해 그들의 주구(走狗)가 된 많은 지식인들처럼 자신도 그 같은 운명에 내맡겨진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자는 머지않아 새벽이 와서 이 어두운 강물에 '빛나는 태양이 다다를 무렵'이면, '조각'처럼 우뚝 서서 다시금 '푸른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바로 그 희망이 시인으로 하여금 끝끝내 친일 문학을 거부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비록 역사의 본류가 아닌 지류에서라도 광복의 도래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삶을 걷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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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용(鄭芝溶)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 납북

시집 :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이 시는 지상(紙上)에 발표된 정지용 최초의 작품으로 <향수>에 나타난 향토적 서정과 상반되는 모더니즘 색채를 띠고 있다. 이 시에서는 생경한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모더니즘의 특징을 더욱 잘 드러내고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젊은 시절 영문학도였던 시인 자신의 이국 취미(異國趣味)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냄새가 막무가내로 풍겨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바로 식민지 치하에 놓인 지식인의 힘없는 고뇌가 행간에 속속 배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밤비는 뱀눈처럼 가늘'고, 나는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픈' 것이다. 이와 같은 차갑고 싸늘한 이미지는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시적 화자가 안고 있는 망국민의 설움은 결국 이국종 강아지에게 자신의 발을 빨게 하는 자학적인 심상으로까지 확대되고 만다.

또한 이 시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도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프란스'라는 카페의 이름부터가, 아니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1920년대의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낯선 분위기인 것이다. 이러한 낯선 곳에서 슬픔에 겨워 자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바로 무기력했던 당시 지식인의 실제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전 10연의 이 시는, 형태적으로 안정된 1∼4연의 앞 단락과 불안정한 5∼10연의 뒷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앞 단락에서는 1연과 3연이, 2연과 4연이 서로 비슷한 형태로 짝을 이루면서 대응되고 있다. 1·3연은 시적 화자가 동료들과 함께 '프란스'란 상호(商號)의 카페로 갈 때까지의 거리 모습이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비뚜로 선 장명등',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느끼는 불빛' 등으로 제시된 시적 화자의 현실 공간은 '옮겨다 심은'·'비뚜로 선'·'뱀눈처럼 가는데'·'흐느끼는'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곳으로부터 이식된 공간, 또는 화자가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곳임을 알게 한다. 2·4연에서 '루바쉬카'는 '비뚜른 능금'과, '보헤미안 넥타이'는 '벌레 먹은 장미'와, '비쩍 마른 놈'은 '제비처럼 젖은 놈'과의 결합을 통해 이질적인 서구 문화의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뒷 단락은 '카페·프란스' 내부의 정경이다. 처음 5·6연은 앵무새와의 대화 부분으로 앵무새가 나타내는 말의 이질성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8·9연은 시적 화자가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님', '나라도 집도 없음' 등으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다. '카페·프란스'는 거리 모습과 동일한 이국적 공간으로 화자에겐 다만 '옮겨다 심은' 폐쇄적 장소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앵무새'와 '졸고 있는 아가씨'와 '이국종 강아지'뿐으로 화자와의 대화가 전혀 불가능한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카페·프란스'는 시적 화자의 폐쇄된 현실 공간을 상징하는 곳으로 '흰 손'을 가진 지식인 화자의 무기력한 독백만이 가능할 뿐이다.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대규모의 해금 조치가 단행된 이후 비로소 밝은 세상에 얼굴을 내민 정지용의 대표작이다. 한때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문학사에서 실종되었던 그는 최근 납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그에게 씌워진 멍에가 하나씩 벗겨지고 있지만, '한국 현대시의 효시요, 자각(自覺)'이라는 명예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정지용의 시사적 위치를 이것저것 장황하게 말하기보다는 청록파 세 시인을 {문장}지에 등단시킨 그들의 스승이었다고 하면, 그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시는 우리말로 씌어진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정지용만큼 체득하고 있던 시인은 드물다는 평가에 적합한 이 작품은, 그가 일본에 유학 중인 22세 되던 1923년 3월에 쓴, 그의 초기시의 대표작이다. 이 시가 씌어진 20년대 초가 {백조}를 중심으로 한 낭만적, 퇴폐적 감정 분출의 풍조가 문단을 지배하였던 시기였음에 비추어 볼 때, 주로 30년대나 되야 나타나는 '고향 회상'의 시정(詩情)을 이처럼 차분한 어조로 시대를 앞당겨 노래했다는 것에서 그의 선도적 시 세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대중 가요로 만들어져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고향 충북 옥천을 떠나 낯선 타국(他國)땅에서, 그것도 식민지 망국의 설움을 간직하고 생활하던 젊은 시인은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따스한 정경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가 노래하는 고향의 정경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한 특정 지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개천이 지줄대고' '얼룩백이 황소가 금빛 울음을 우는 곳'이며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우리 민족의 고향에 대한 보편적 정서와 부합된다. 그러므로 그의 향수는 그만의 향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된 향수로 확산되게 된다.

이 시는 음악의 반복 형식처럼 구성되었는데, 각 연 모두 '― 는(던) 곳'으로 끝맺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의 정경을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 뒤에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 강조하는 단순한 표현 기법을 통하여 감동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홀수 연은 고향의 정겹고 따스한 모습을, 짝수 연은 고향의 아픈 모습을 교묘하게 배합시켜 고향의 밝고 어두운 모습을 번갈아 보여 줌으로써 고향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푸근한 흙내음과 간난(艱難)한 삶의 고난이 함께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지줄대는'·'해설피'·'풀섶'·'함초롬'이라는 감각적 우리말 구사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이미지, 냉온 감각 등의 수준 높은 이미지 활용은 그의 시를 현대시의 효시로 평가받게 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이 시는 어린 화자의 따스한 마음을 통해 가축이 겪고 있는 이산(離散)의 아픔을 지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박한 동시(童詩)적 감각의 시로, 속삭이는 듯한 어투와 밀도 있는 압축과 여운 있는 생략, 특히 색채감과 질량감을 함께 보여 주는 '검정콩 푸렁콩'이라는 시어는 이 시의 작품성을 더욱 튼튼하게 하고 있다.

첫 행에서 화자는 말을 '다락'과 같다고 한다. 이것은 어두컴컴하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다락과 말이 사는 마구간이 비슷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발상으로, 이것을 통해서 화자가 어린 아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두컴컴할 뿐만 아니라 곰팡이 냄새까지 배어 있어, 흡사 마구간을 연상하게 하는 '다락'은 우리의 전통 가옥 구조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부엌과 천장 사이의 공간에 이층처럼 만들어 물건을 넣어 두게 된 곳을 말한다. 유년의 화자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그 곳에 몰래 기어들어가 자기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그 속에서 군것질도 하고, 책도 읽고, 동무들과 장난도 하며 무지개 꿈을 키웠을 것이다. 말을 다만 동물로만 여기지 않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가축으로 생각하는 화자는 '말아, 사람 편인 말아'라고 다정히 부르며 '검정콩 푸렁콩'을 주겠다고 말한다. '콩'은 말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로, 화자가 콩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곧 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함축한다. 그러나 키가 크고 날렵하게 생긴 말에게서 화자는 점잖음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에게서 진한 슬픔을 느낀다. 화자가 말에서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2연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자'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말이 밤마다 달을 쳐다보며 헤어진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온갖 정성과 사랑을 기울여 가축을 길러 내지만, 가축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가족과의 이산의 아픔을 겪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해 주는 이 작품은 가축을 기르는 우리의 일상적 삶을 반성하게 하는 한편, 나아가 동물에게도 육친에 대해 갖는 그리움이 인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시키고 있다.


이 시는 '차고 슬픈 것', '외로운 황홀한 심사' 등 소위 '감정의 대위법(對位法)'에 의한 정감의 절제와 선명한 이미지의 사용, 그리고 감각적인 시어의 선택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시인의 비애감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인 '유리창'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 광물성 이미지로서 창 안과 창 밖을 단절시키는 동시에,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로로 두 세계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유리창은 시적 자아와 그리워하는 대상[죽은 아이]을 격리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나타나는 영상(별), 즉 죽은 아이의 영혼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중적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어두운 밤, 창가에 서서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다.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창 밖의 어둠은 그의 허망하고 괴로운 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그를 더욱 아프게 한다. 그러다 그는 유리창에 뿌옇게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자신의 입김 자국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죽은 제 아이로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 때, 멀리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가 유리창에 투영되자, 그는 몇 번씩이나 유리창에 서린 입김을 지우며 창 밖의 어둠과 보석처럼 빛나는 별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시적 자아는 한밤중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별처럼 떠오르는 죽은 아이의 영상을 만나기 위해 홀로 유리창을 닦는다.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외로우면서도 황홀한 심사'라고 생각하는 시적 자아는 아이를 보기 위해 계속 유리창을 닦지만, '산새처럼 날아 간' 아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아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외로운 심사' 때문이지만, 유리창을 닦는 일종의 의식을 통해 그 아이를 영상으로 만나고 있기에 유리창을 닦는 것을 '황홀한 심사'로 인식하는 이 시인에게서 우리는 격한 감정을 슬기롭게 절제하는 그의 인간적 완성도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도 마지막 시행에 와서는 그 동안 참아왔던 슬픔을 더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아아'라는 감탄사와 느낌표(!)로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따스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를 모두 그의 슬픔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정지용이 추구하던 서구적 모더니즘과 고향에의 지향은 이국 정조(異國情調)와 향토적 정서로 표출되었으나, 그 어느 것에도 안주하지 못했던 그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세계에서 새로운 거처를 찾으려 하였다.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 4부에 수록된 9편의 시는 모두 신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작품들로 편의상 종교시 또는 신앙시라는 용어로 분류한다. 두 아들을 신부(神父)로 만들기 위해 수도원에 보낼 정도로 신앙이 독실했던 지용은 [시의 옹호]라는 시론을 통해서 신앙의 정신적 가치를 표명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최상의 정신적인 것이 신앙이며, 이 신앙을 이루는 것은 '애(愛)', '기도', '감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을 갖지 않은 시인은 높은 정신적 가치를 마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정지용이 가톨릭에 귀의한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 시가 발표되기 이전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시는 그와 같은 종교시(신앙시)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발표 당시에는 <무제(無題)>라는 하였으나 후일 시집에 수록하는 과정에서 지금처럼 제목이 바뀌었다. 정지용은 그의 종교시에서 주로 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존재라는 입장을 견지한 채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신에 대한 자신의 경배와 묵도의 의지를 드러내었다. 이 시도 그러한 시작 태도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1행에서 화자는 목적어를 도치시킨 수사적 의문문을 통해 '그'를 감히 '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다며 신의 절대성을 확인하는 한편, 자신은 미미한 존재임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2행부터 6행까지는 '그'를 '불'·'달'·'값진 이'·'금성'·'고산 식물' 등에 비유하여 절대적 존재인 신에게 근접하기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다. 7행에서 11행까지는 '그'에 대한 경배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으로 화자의 자세는 '오로지 수그리'는 무조건적이고 순응적임을 알 수 있다. 12행부터 마지막 행에서는 '그'와 화자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때없이 가슴에 두 손이 여미어지'는 보잘것없는 화자가 '굽이굽이 돌아나간 시름의 황혼 길 위'에서 방황할 때마다 바다 저편에 위치한 '그'는 '바다 이편'에 있는 화자에게 끊임없이 '그의 반임을 고이 지니고 걷'게 함으로써 '그'와 화자간에 놓인 끝없는 거리감과 함께 '그'에 대해 화자가 갖는 외경심(畏敬心)을 드러내고 있다. '나 ― 그의 반'이란 표현은 '그'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는 불완전한 존재인 화자가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인 '그'를 경배하며, '그'를 통해 삶의 구원을 얻으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고향은 이미 그리워하던 옛날의 그 고향이 아님을 깨닫고 슬픔에 잠기는, 고향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는 정지용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해방 직후 유행가로 만들어져 널리 애창되기도 했던 이 시는, 후일 정지용이 월북 작가로 묶여진 관계로 독자들에게 잊혀져 있다가, 노래와 함께 최근에 다시 빛을 보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의 특징은 방임형 어미와 부정 종지법에서 드러난다. '고향에 돌아와도 ― 고향은 아니러뇨.',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등과 같이 방임형 종속적 연결 어미는 부정 종지법과 서로 호응되면서 상실의 비애 또는 좌절의 아픔을 선명하게 부각시켜 준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처럼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심정이 드러나게 된다. 따뜻한 곳, 그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서의 고향은 다만 추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현실 또한 안주할 수 없는 곳이므로 시적 화자의 비애와 좌절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하의 고통 속에서는 그 어디를 가도 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로의 회상을 통해서만 정지용의 고향은 살아날 뿐이다. 따라서 정지용의 고향은 일제의 강점과 수탈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그로 하여금 인간성 회복의 소망을 일깨워주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특히, 이 시는 구조적으로 첫 연과 끝 연에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를 살리면서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의 표현에 의해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수법으로 시상을 점층적으로 전개하여 고향 상실의 서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니건만, 하늘만은 그대로인, 자연과 인간사의 대비를 통해 고향 상실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있는 이 부분은 두보(杜甫)의 시 <춘망(春望)>에서의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을 연상하게 해 준다.


이 시는 초기의 모더니즘 계열에서 동양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경향으로 옮아가는 단계의 작품으로, 난초라는 동양적인 소재를 취하여 여백(餘白)과 여음(餘音)의 수묵화적 분위기로 그려낸 시인의 솜씨는 가히 시대의 절창(絶唱)이라 할 만하다.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난초는 사군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여성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난초잎에는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으며 팔굽이를 드러낸 난초는 '적은 바람'에도 추위를 느낀다. 이렇듯 난초잎에 스치는 작은 움직임마저도 놓치지 않고 날카롭게 포착하여, 절제된 시어로 표현해 내는 솜씨와 2행 1연의 간결한 시 형식은 그 뒤의 '청록파' 시인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한국 현대시의 한 계보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다> 연작시 10여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정지용의 초기시 특징의 하나인 선명한 이미지 제시를 위한 시작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지용은 여러 감각적 이미지 중 시각적 이미지를 가장 많이 사용했으며, 또한 그 이미지를 직조해 내기 위해 직유법을 즐겼다. 그리고 직유에 사용된 보조 관념(vehicle)은 동물계의 자연물이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그가 직유를 즐기고 동물계 보조 관념을 많이 사용한 까닭은 움직이는 상태, 즉 동적 세계를 형상화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정지해 있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는 세계는 외부로 열려진 세계이고 밖으로 확산되는 세계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다>라는 연작시에 집착했던 이유는 보다 분명해진다. 결국 '바다'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개화기부터 일제하에 이르기까지 서구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것의 갈망이라는 지식인들의 정신 편향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물로 지용에게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파도가 밀려오는 푸른 바다의 모습을 놀랄 만큼 신선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는 이 시는 1∼4연의 앞 단락에서는 바다의 역동적 모습을, 5∼8연의 뒷 단락에서는 해안선까지 확대된 시인의 시선을 통해 바다를 총체적으로 관찰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먼저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의 모습을 '뿔뿔이 / 달아나려고'로, 파도가 뭍에 부딪쳐 흩어지는 모습을 '푸른 도마뱀 떼'로, '꼬리가 이루 / 잡히지 않'을 만큼 빠른 파도의 움직임을 '재재발렀다'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泡沫)을 '흰 발톱'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바다를 투시하던 시인의 혜안(慧眼)은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달려왔다가 해변에 이르러 하얗게 부서져 쓰러지는 파도의 기진한 모습에서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를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바다가 '가까스로 몰아다 부치고 / 변죽을 둘러 손질하여 물기를 씻'는 것으로 생각하는 시인은 마침내 자신의 상상으로 조형한 해도(海圖)를 총체적으로 그려 보여 준다. '찰찰'과 '돌돌'이라는 첩어를 통해 충만하고 경쾌한 바다를 제시하는 한편, 바다에 둘러싸인 지구를 바다가 지구를 떠받들고 있는 것으로, 또한 바다에 둘러싸인 지구가 마치 연잎처럼 오므라들기도 펴지기도 하는 것으로 해도를 그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바다에 대한 단순한 인식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바다와 하나가 된 무아경(無我境)의 세계에서 바다를 응시함으로써 바다에서 '도마뱀'을 찾아내고 '꼬리'와 '흰 발톱', 나아가 육지를 떠받들고 있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의 금강산 기행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으로 감각적인 직관에서 신앙심의 발현으로 옮긴 지용의 시 세계가 마침내 고고하고 관조적인 정신 세계로 안착되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화자와 청자가 모두 배제된 사물시(事物詩)로 대립과 대칭으로 이루어진 전체 구조 속에서 작품의 의미 체계를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대칭의 구조는 1연과 5연, 2연과 4연의 형태적 대칭과, 1연과 5연의 등가적(等價的) 의미의 대칭으로 나눌 수 있다. 1·5연은 '묻힌다'와 '넘어간다'의 평서형 종결어미로, 2·4연은 '하고'와 '않고'의 대등적 연결 어미로 형태상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1·5연의 의미의 대칭은 '사라지는 유성'과 '넘어가는 사슴'을 통해 텅 빈 자연의 적막감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대칭적 구조와는 달리 2·4연은 의미상 대립을 이루고 있다. 즉 2연은 움직임과 소란함, 4연은 고요함과 쓸쓸함으로 서로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2연의 움직임과 소란함은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요함·쓸쓸함과 대비시켜 강조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1연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골짜기의 모습을, 2연에서 우박이 떨어지는 움직임과 소란함을, 3연에서 호젓하게 피어 있는 꽃을, 4연에서 바람도 불지 않는 고요함과 쓸쓸함을, 5연에서 산마루를 넘어가는 사슴의 순서로 전개되는 대립과 대칭의 전체 구조 가운데에 '귀양' 사는 모습으로 외롭게 피어난 꽃이 제시된다. 이렇게 제시된 3연의 꽃을 중심으로 2·4행에 우박과 바람이, 1·5행에 유성과 사슴이 놓임으로써 '구성동'의 고요하고 적막함이 더욱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 고적감이 바로 산골짜기 폐사지(廢寺址)에 서 있는 화자의 정서이다. 이것은 자연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더라도, 그 자연을 완상하는 인간의 정서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변화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첫 시집 {정지용 시집}에 주로 나타나던 바다 시편들이 두 번째 시집 {백록담}에서는 <장수산>을 비롯하여 <백록담>, <구성동>, <비로봉>, <옥류동> 등 산의 시편들로 변모하고 있다. 이 시는 '장수산'의 공간적·시간적 이미지를 빌어 '고요'로 표상되는 동양적 세계에 일체화되고 싶어하는 시인의 정신적 의지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의 정신적 위기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의식의 연속적인 흐름과 긴밀성을 표출하기 위한 시적 배려의 일환으로 문장의 종결 부호가 사용되지 않고 종결 어미에 독특한 변형을 가한 표현 특징을 갖고 있다. 화자는 먼저 내부적 반향을 일으키는 음악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하이'로 끝맺고 있으며, 그 사이에 '쩌르렁'이라는 의성어를 배치함으로써 '울림'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적 배려는 첫 구절 '벌목정정'이라는 한문구(漢文句)를 살리기 위한 것이며, 이런 청각적 영상은 결국 '장수산'이란 공간을 내적 울림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앞의 두 구절은 실제적으로 벌목하는 소리를 화자가 듣는 것이 아니라, 장수산의 큰 소나무숲에서 느끼는 고요를 뒤바꿔 표현한 것이다. 셋째 구절에서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고요를 보여 준다. 다람쥐나 묏새같이 조그만 동물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장수산의 고요는 '뼈를 저리우는' 촉각적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으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흰'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눈과 밤이 일체화되어 장수산을 이룬 그 빈 공간에 이제 '보름달'이 떠오른다. 표면적으로는 달이 내려와 계곡을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화자가 달빛만 그윽한 고요 속의 계곡을 걷는 모습으로 화자의 감정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어 시인의 엄격한 언어적 절제력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웃절'에 거주하는 스님이 남긴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줍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장수산을 청각으로 묘사하던 지금까지의 방법을 후각으로 전환함으로써 자연을 인간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화자가 고요뿐인 장수산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늙은 중이 남기고 간 냄새와 같은 무념 무상(無念無想)의 탈속적 세계이지만, 그는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는 시름을 갖는 인간적인 내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장수산의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 속에 있는 화자는 장수산이 고요하면 고요할수록 '심히 흔들리는' 존재이므로 자연과 결코 동화될 수 없음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인간적 차원을 넘어서는 견인(堅忍)의 정신으로 이것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보여 줌으로써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화자로 하여금 우뚝 서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시는 정지용의 후기시 세계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초기의 모더니즘 계열에서 벗어나서, 가톨릭에 몸담은 종교시의 통과의례를 거친 뒤, 동양적 세계에서 노니는 관조적 서정을 절제된 이미지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정지용다운 시어의 세련된 구사가 두드러지는데, 첫 연에서부터 '먼 산이 이마에 차라'와 같은 감각적 표현은 그의 장기(長技)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와 같은 부분들도 그 세련된 언어의 맛을 잘 살리고 있는 표현이다.

밤새 춘설이 내려 서정적 자아는 문을 연다. 선뜻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 절기는 이미 우수를 지났건만 추위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봄기운이 자연 속에 피어나서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이러한 봄향기가 옷 속에까지 스며온다. 겨우내 웅크렸던 생명들이 '옹송그리고 살어난 양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이러한 봄기운을 느끼기 위해서는 비록 추위가 남아 있더라도 핫옷을 벗어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시인은 역설적으로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직설법이 아닌 시적 표현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맛보게 된다.

신비로움과 설렘의 감정이 교차된 시선에서 일상적 삶에서조차 경이로움을 발견해 내는 시인의 따스함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중견 시인의 작품이라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풋풋함과 신선함이 배어 있지만, 작품의 의미가 자연에 대한 경탄에서 그치고 만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정지용이 초기에서 보여 준 다양한 시 형식의 실험은 후기에 와서 산문시와 2행 1연의 시로 정착되었으며, 운율도 후기에 올수록 산문화되어 간다. 중심 소재였던 바다도 산으로 전환되면서 이에 따라 평면적인 것에서 입체적인 것으로, 유동적인 것에서 고정적인 것으로, 감각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의 변모를 가져오게 되는데, <백록담>은 <장수산(長壽山)>과 함께 이러한 후기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한라산 소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시는, 독립된 아홉 개의 단락이 하나의 표제 아래 한 편의 시로 결합되어 한라산 백록담의 등반 기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 상승을 뜻하는 것으로 동양적 세계에 침잠한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으며, 정지용 시의 마지막 도달점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정상에 오르는 도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시적 화자는 절정에 이르는 장면의 변화를 위해 서술의 초점을 '뻐꾹채꽃'에 두고 있다. 그 꽃이 어떤 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뻐꾹새와 꽃의 이미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때론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자와 함께 오르는 동행물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꽃이 키가 없어지는 고산 지대에 이르러 꽃의 이미지는 별과 겹쳐지고, 화자는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정상에 도달한 화자는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라는 지극히 간명한 진술로 등반의 소감을 밝힌다. 꽃에서 별로,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확장된 그의 의식 세계는 그를 자연에 동화시키고 일체화하게 만든다.

마지막 단락에서 정상을 향해 힘들게 올라온 궁극적인 목적이 제시된다. 그것은 바로 '백록담'으로 고요와 맑음의 상징이요, 객관적 세계에 대한 투명한 인식의 세계를 암시한다. 정상까지의 힘든 등반 과정 끝에 발견한 '백록담'은 '가재도 기지 않는' 고요가 있으며, '푸른 물에 하늘이 도'는 관조가 있는 곳으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갈' 정도로 화자는 자연과 동화되어 있다. 또한 그 곳은 '실구름 일말에도 흐리우'는 만큼 청정한 곳으로 그 곳을 들여다 보는 순간, 화자는 해체되어 백록담의 일부로 포개지는 완전한 동화를 이루게 된다. 마침내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은' 경지에 다다른 화자는 꿈과 현실의 구분이 없어지고 신에 대한 기도까지 망각한 무욕(無慾), 무탐(無貪)의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진 완전한 자연인이 되는 것이다.


이 시는 비 내리는 모습을 시인 특유의 절제된 감정과 정제된 시어, 그리고 짧은 행과 규칙적인 연 구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휴지(休止)와 여백의 미를 통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시적 화자는 비 내리는 모습을 감각적 시어의 유기적 결합 방법과 순차적 시간의 질서에 따라 지극히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 그 어떤 감정 표출도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 8연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규칙적으로 두 개의 연이 하나의 단락을 이루어 모두 네 장면을 펼쳐 보여 주고 있다. 1·2연은 비 내리기 직전, 돌에 그늘이 차고 어지럽게 바람이 부는 모습을, 3·4연은 빗방울이 여기저기 앞다투어 떨어지는 모습을 '종종다리 까칠한 / 산새 걸음걸이'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5·6연은 빗물이 모여 여울 지어 흘러가는 모습을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 손가락 펴고'와 같이 의인화하여 보여 주고 있다. 마치 하얀 뼈마디를 드러낸 것처럼 물보라를 일으키며 여러 갈래로 흘러내리는 여울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어느 정도 비가 계속되었음을 알려 주는 동시에, 첫 단락과의 시간의 간극을 짧은 시행과 규칙적인 연 구분으로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있다. 7·8연은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지는 모습을 '붉은 잎 잎 / 소란히 밟고 간다.'고 표현함으로써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대로 들려올 것같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정지용의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산중에 책력도 없이' '인동다'를 마시며 살아가는 '노주인'인 작중 인물은 바로 시인 자신이며, 그가 마시는 '인동다'는 겨울로 표상된 일제 치하를 견디게 하는 인내와 기다림의 힘이 되어 준다.

특히, 2연과 3연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성을 상징한다. 즉,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꺼진 줄 알았는데, '도로 피어 붉고', 그늘져 있는 마당 한구석에 묻어 둔 '무가 순 돋아 파릇한' 모습은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생활하면, 현실 상황인 '겨울'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리라는 시인의 의지와 소망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은 비록 '삼동이 하이얀' 시절로 세월 가는 것마저도 다 잊어버리고 싶은 험난한 세상이지만, '흙냄새가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 소리에 잠착하'듯이, 굳은 인내심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이 겨울 같은 모진 현실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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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29년 오산 고보 졸업, 동경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 공부

1934년 귀국 후 조선일보사 입사

1935년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여 등단

함흥 영생 여고보 교사

1942년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

1945년 해방 후 북한에서 문학 활동

시집: {사슴}(1936)


이 시는 백석의 등단작이자 그의 초기시 세계를 확연히 보여 주는 작품으로 '정주성'과 그 주위의 밤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정주성'은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성이 아닌, 성문은 헐려져 그 일부만이 남아 있을 뿐인 퇴락한 성이다. 화자는 그처럼 폐허가 된 성의 모습을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터'와 '헐리다 남은 성문이 / 한울빛같이 훤하다'라는 시각적 묘사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와 아울러 '정주성' 주위의 밤풍경들을 다채로운 감각적 이미지로 묘사함으로써 폐허가 된 성의 모습을 한층 실감나게 환기시키고 있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라는 청각적 묘사와,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들 같다'와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짝이로 난다'와 같은 시각적 묘사가 바로 그것이다.

'정주성'과 그 주위의 밤풍경들에 대한 이러한 다채로운 감각적 묘사는 폐허가 된 '정주성'의 풍경을 한층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무너져버린 역사의 허망함까지도 환기시켜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풍경 묘사는 단순히 유물로서의 '정주성'에 대한 정물적 풍경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폐허가 된 '정주성'의 풍경으로부터 역사의 허망함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 같은 풍경 묘사에 이어 마지막 시행에서 '날이 밝으면 또 메기 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라는 행위의 서술을 첨가시키고 있다. 여기서 '메기 수염 늙은이'의 모습은 폐허가 된 '정주성'의 모습과 절묘한 시적 대응을 이루어, '정주성'의 황폐함과 역사의 퇴락함을 더욱 실감나게 환기시켜 준다. 물론 이러한 모습의 유사성보다도 풍경 묘사에 이어 첨가된 인간의 행위가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 즉 그 행위의 서술은 '청배'를 파는 것으로, 그것은 일상적인 삶의 행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적인 삶의 행위는 '또'라는 부사와 '올 것이다'라는 미래 시제와 관련 맺으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역사의 허망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의 행위는 계속 이어진다는, 인간의 끈끈한 삶을 퇴락한 '정주성'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백석 시는 초기에는 대체로 평북 사투리와 토속적인 소재의 선택으로 농촌 공동체의 원형적 정서를 그려 내다가, 후기에는 여행을 통한 풍물시와 모더니즘 시풍을 보여 주는 특징을 갖는다. 이 시는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명절날의 풍경을 통하여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유년기 화자의 순진 무구한 정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해서 산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속에 구수한 사투리와 다양한 이미지 수법을 개입시킴으로써 푸근한 고향 정서를 환기시켜 주는 한편, 문장 종결형을 현재 시제로 하여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독자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느낌을 전해 주고 있다.

우선 이 시는 유년의 '나'가 체험하는 명절날의 풍속을 시간적 경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서사적인 시간 구성을 지니고 있다. 즉 명절날 유년의 화자가 '엄매 아배를 따라' 큰집으로 나서면서부터 저녁과 밤, 다음날 아침까지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시간적 경과에 따라 서사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화자가 부모님과 같이 큰집으로 명절 나들이를 떠나는 모습으로, '개'까지 따라 나선 명절날의 유쾌하고 들뜬 분위기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둘째 단락은 큰집에 도착하여 명절날에 한데 모인 일가 친척들의 모습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단순히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회화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얼굴 모습과 표정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그들의 성격, 취미, 행위, 사는 곳, 삶의 내력까지도 낱낱이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친척들 개개인에 대한 성격을 창조하면서도, 그들의 인생 역정과 삶의 정황을 압축된 서사로 표출함으로써 한결같이 평탄치 못한 친척들의 인생을 가늠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와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이웃이 되기에 충분하다.

셋째 단락은 이러한 일가 친척들이 안방에 모여 있는 모습과 명절날 풍성하게 장만된 음식물에서 느끼는 유년의 정서를 다채로운 감각적인 묘사로 표출하고 있다. 여기서 표출되는 감각적 이미지는 후각과 촉각인데, 이 가운데서 특히 후각적 이미지 구사가 돋보인다. 즉, 명절날 설빔으로 입은 옷의 느낌을 '새옷의 내음새도 나고'라고 함으로써 시각을 후각으로, 여러 음식물을 '…… 내음새도 나고'와 같은 후각적 이미지로 표출함으로써 명절날 특유의 신선한 분위기와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넷째 단락은 저녁밥을 먹고 난 후 아이들끼리 흥겹게 노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단락은 밤이 깊어 일가 친척들이 방안에 모두 모여서 엄매들은 엄매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각기 모여 앉아 즐겁게 노는 모습을 서술한 다음, 유년의 화자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새벽까지 잠이 드는 모습을 서술하면서 명절날 겪은 이야기를 마감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명절을 즐기는 공동체의 풍요로움을 다양한 시적 대상을 동원하여 표현함으로써 끈끈한 인간적 체취를 물씬 풍기게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고향을 상실한 일제 암흑기에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원초적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해방 이후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남아 있었던 것 때문에, 분단과 함께 월북 작가로 잘못 분류되어 그 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은,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평북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소월과 동향(同鄕)으로 평소 그를 매우 존경했던 것으로 알려진 백석은, 소월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투리의 구사로 시에서의 향토성을 유감 없이 발휘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백석의 사투리 구사는 단순히 향토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농촌 공동체 내에서의 연대 의식을 끈끈하게 지탱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단지 우리말의 보존이었음을 상기할 때, 백석의 시는 민요 가락에 실은 구수한 사투리로 그 누구의 작품보다도 우리의 민족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즈랑고개' 밑의 할머니가 살고 있는 '가즈랑집'을 소재로 하여 시적 화자의 유년 체험을 농촌 공동체에서의 연대 의식의 표출로 승화시킨 이 시도 백석의 이와 같은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는 그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1연부터 4연까지는 '가즈랑집'의 유래나 내력 등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가즈랑집'은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가즈랑고개 밑의 집'이며,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 오는 집'으로 마을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런 '가즈랑집'에서 살고 있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세월의 굴곡 속에서 쓸쓸함과 강인함을 다함께 가지고 있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을 고려해 볼 때, '가즈랑'이란 단어에서 이미 고개의 이미지와 함께 카랑카랑한 할머니의 이미지를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여우난곬족>과 함께 토속적인 지명을 적절히 시제로 선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자는 이 집에서 '돌나물 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날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기도 하고', '청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 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그리운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가즈랑집 할머니'는 단지 추억의 한 부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즈랑집 할머니'가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슬퍼지듯 '가즈랑집'은 화자가 마음 속에 의지하고 있는 안식처인 것이다.

백석은 바로 이러한 안식처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당시 식민지 치하의 지식인들뿐 아니라,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도 풍족히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닥불'을 소재로 하여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빨갛게 피어오르는 모닥불은 그 주위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구김살 없는 대화를 나누게 하는 만남의 장 구실을 한다. 즉, 계층이나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이 모여들 수 있는 공동체 사회의 훈훈한 정감이 살아 있는 원초적 공간 구실을 한다.

먼저 1연에서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태우는 땔감을 나열하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부스러지고 버려지고 잊혀졌던 하찮은 것들이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 따뜻한 모닥불을 이루고 있다. 그 땔감들을 나열하는 조사 '- 도'는 점점 커가는 모닥불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

2연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들어 불을 쬐는 한 무리 사람들과 그들을 따르는 짐승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들은 화자와 한 핏줄이며, 같은 마을의 구성원이며, 마을을 드나들며 서로 친밀히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하찮은 사물과 사물이, 사람과 짐승이 아무런 구별이나 차등이 없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농촌 공동체가 이상으로 삼는 최상의 풍경인지도 모른다.

3연에서는 모닥불 속에 숨겨져 있는 한 내력을 떠올린다. 화자의 '할아버지'는 어버이를 여윈 '서러운 아이'로 돌보아 주는 이 없이 자라났는데, 추운 겨울날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잠들다 그 불에 발을 태워 '몽둥발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화자가 들려 주는 이 '슬픈 역사'는 비록 화자의 할아버지 개인적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한 집안, 한 마을의 이야기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의 농촌 공동체의 한 전형으로 '어미 아비 없는'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를,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역사'로 확대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의 의도는 그 '슬픈 역사'를 들추고 되새기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슬픔마저도 넉넉하게 포용하고 하나로 일체화시키는 모닥불의 따뜻함과, 그것이 표상하는 농촌 공동체의 화해로운 세계에 대한 공감을 보여 주고자 하는 데 있다.

이제 모닥불은 더 이상 자질구레한 것들이 타면서 이루는 단순한 불꽃이 아니다. 잡다한 것들이 불 속에 던져져 하나의 거대한 모닥불을 이루어내는 것처럼, 타는 물건과 쬐는 사람이, 사람과 짐승이, 사람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화합과 친밀의 공간이다. 모닥불이라는 구심점을 향하여 둥글게 모여 앉은 모든 것들이 높고 낮음이 없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공간이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가슴 속의 서러움마저도 녹아 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모닥불이다. 그러므로 모닥불과 같이 화해로운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는 세계 안에서는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 같은 고통스럽고 서러운 역사일망정 끈끈한 내적 충일감 하나로 녹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려서 고아가 되어 온갖 고초를 엮으며 살아온 '할아버지'의 슬픈 개인사가 모닥불을 피워내는 근원적인 힘이자, 그것은 다시 사물들과 사람들을 하나의 유대로 엮어내는 힘이라는 상상적 동일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시는 비록 짧은 시행이지만, 모닥불을 대하는 화자의 차분한 눈길은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우리것을 알뜰히 지켜낼 수 있게 한 하나의 버팀목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