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생명의 의지와 전통의 깊이

1930년대 시문학의 주류는 보통 '시문학파'와 모더니즘, 그리고 세칭 '생명파[인생파]'의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그 중 하나인 '생명파'는 1936년 창간된 {시인부락} 동인 서정주(徐廷柱)와 1939년 시집 {청마시초}를 펴낸 유치환을 중심으로 한 시작(詩作) 경향을 말한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우리 자신의 삶의 문제를 치열하게 파고드는 생명 탐구와 삶의 의지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시문학파와 모더니즘 시인들이 기법과 관련하여 미적 자의식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면, 이들은 그러한 자의식을 지닌 주체 자체의 존재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 '생명파' 시인들은 바로 시문학파와 모더니즘 시인들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결함, 즉 현실 문제에서 어느 정도 비껴나 있는 '공허한 현대성'을 극복함으로써 1930년대 한국 현대시의 영역과 깊이를 확장시켜 놓는다.

서정주는 전통적 서정과 향토적 미감(美感)의 바탕 위에 원초적 관능의 세계로부터 동양적인 영겁의 세계로 옮겨가면서 갈등과 화해의 테마를 일관되게 취급한다. 이것이 {화사집}에서 {귀촉도}로 옮아가는 그의 시 세계로, 그는 계속하여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화해의 정신을 시로써 실현한다.

유치환 시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허무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그의 허무는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우선 죽음은 일제 말기의 극한 상황에 처한 그의 현실 인식과 결부되어 그의 시적 자아는 자학적 분노와 야성적 생명 의지를 보여 주며, 한편으로 인간의 숙명적 조건인 죽음은 연민과 애수를 낳아서, 그의 초기시의 주조를 형성한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식민 지배가 더욱 악랄해져 가는 1939년 순문예지 {문장}과 {인문평론}이 창간되어 침체된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특히 {문장}은 발간과 함께 신인 추천제를 실시하여 박목월(朴木月)·박두진(朴斗鎭)·조지훈(趙芝薰)·이한직(李漢稷)·김종한(金鍾漢)·김상옥(金相沃)·이호우(李鎬雨) 등의 유능한 시인들을 배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인들이 미처 작품 활동을 제대로 전개하기도 전인 1941년 {문장}과 {인문평론}은 폐간되고, 문예지는 {국민문학} 하나로 통합되기에 이른다. 일제의 국민 문화 정책은 더욱 노골화되어, 1939년 '조선문인협회'가 조직되고 1940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내에 문화부가 설치되고, 1943년에는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학 단체가 하나로 합쳐 '조선문인보국회'가 결성된다.

이러한 일제의 문화 정책에 따라 많은 문인들이 친일과 변절의 길을 걷게 된다. 이광수(李光洙), 이태준(李泰俊)·유진오(兪鎭午)·임화(林和)·김기진(金基鎭)·백철(白鐵)·정지용(鄭芝溶) 등 수많은 대표적 문인들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러한 굴욕과 훼절의 길을 선택하였음은 실로 한국문학사의 부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문인들 중에는 죽음으로 일제에 대항한 투사도 있었으며, 멀리 국외로 도피하여 국권 회복의 그 날을 기다리며 분루(憤淚)를 삼킨 지사들도 있었다. 우리의 문학사는 비록 많지는 않지만 이러한 지조 있는 문인들 덕분에 그 향기와 빛깔을 더욱 선명히 할 수 있는 것으로, 1946년 공동 시집 {청록집}을 간행한 박목월·박두진·조지훈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한 고비에 우뚝 서 있는 위대한 시인들이 아닐 수 없다.

이 {청록집}의 간행으로 이들을 일러 세칭 '청록파[자연파]'라고 부르거니와, 이들은 붓을 꺾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그 간악한 식민지의 1940년대를, 침묵이 아닌 독백으로 고통의 열매를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열매가 해방이 되자마자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결코 암흑기의 터널 속에 주저앉아 공허하게 세월만 불러대고 있지는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청록집}에 수록된 다수의 시는 일반적으로 해방 이전의 시사(詩史)에서 다루어진다.

물론 이들이 다소의 상이한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같은 자연을 취급한다 하더라도 박목월의 향토적 서정과 조지훈의 전통적 아취(雅趣), 그리고 박두진의 기독교적 자연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이들의 시는 공통적으로, 1930년대 김광균으로 대표되는 이미지즘이 보여 주는 자아 상실의 풍경화와도 또한 분명히 다르다. 이들 시에는 한결같이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이 처한 얼과 혼이 끈끈한 민족적 유대감으로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록파의 시는 한국 현대시사의 값진 수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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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주(徐廷柱)

미당(未堂), 궁발(窮髮)

1915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에서 출생

1929년 중앙 고보 입학

1931년 고창 고보에 편입학, 자퇴

1936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벽>이 당선

시 전문 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1946년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 결성, 시분과 위원장직을 맡음

1950년 종군 위문단 결성

1954년 예술원 종신 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1972년 한국 문인 협회 부이사장

한국 현대 시인 협회 회장 역임

1977년 한국 문인 협회 이사장

시집 : {화사집}(1941), {귀촉도}(1948), {흑산호}(1953), {신라초}(1961), {동천} (1969), {국화 옆에서}(1975), {질마재 신화}(1975), {노래}(1984),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1987), {팔할이 바람}(1988), {산시(山詩)}(1991), {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이 시는 전 5행에 불과한 짧은 형식이지만, 언어의 관능적 용법과 생명 현상에 대한 집착으로 대표되는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미당의 초기 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먼저, 피를 토하듯 우는 슬픈 울음을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로 표현한 데서 언어의 관능적 용법을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꽃처럼 붉은 피가 배어나는 처절한 울음에서는 단순한 감각적 차원을 넘어선 근원적인 체험 의식까지 갖게 해 준다.

그리고 생명 현상에 대한 집착은 '애기 하나 먹'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 숨어 살며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문둥이'는 그저 '해와 하늘빛이' 서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해와 하늘빛이 있는 대낮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는 그는 살기 위한 원초적 욕망으로 '애기 하나 먹'음으로써 병을 고치려 하지만, 이 같은 생에 대한 집념이 부도덕함을 깨닫고, 마침내 자신의 숙명적 운명에 대한 몸부림으로 인하여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시인의 체험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인간성이 파멸된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성이 회복된 건강한 삶을 희구하는 그의 강한 생명 의식이 이 <문둥이>를 낳게 한 것이다.


이 시는 첫 시집 {화사집}의 표제시로서 미당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초기시는 자연보다는 인간을, 그 속에서도 선보다는 악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선택함으로써 자연과 선의 세계를 주된 주제와 소재로 다루었던 우리의 전통 시가에 대해 반기를 들게 되었다. 이 시는 원초적 생명력의 상징적 존재로서의 '배암'을 통해 소위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초기시 세계의 문을 연 작품이며, {화사집}은, '보들레르'의 퇴폐적 관능미와 저항 정신이 미당의 토속적 원생주의(原生主義)와 결합됨으로써 탄생한, 한국시사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미적(美的) 세계의 확대와 구축이었다.

먼저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가 되는 '화사'는 꽃뱀을 뜻한다. 흔히 뱀은 그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생김새로 인해 '악(惡)'을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는 여기에 '꽃'이 결합된 꽃뱀이므로 뱀의 일반적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화사'는 표면적으로는 꽃처럼 아름다운 빛깔과 무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 양면성의 존재, 모순의 존재인 것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아서는 구약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유혹의 뱀'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뱀을 원시적 생명의 대상 소재로 하여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원초적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추구하고 있으며, 때묻지 않은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고 있다.

1연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배암'은 인간의 증오의 대상으로 태어난 슬픔 때문에 징그러운 몸뚱아리를 갖고 있다는 뱀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사향 냄새가 나는 향기로운 풀섶길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배암'을 '징그러운 몸뚱아리'로 인식하는 데서 '화사'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2연은 징그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이율배반의 '배암'의 모습을 '꽃대님'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님'은 한복 바지를 입은 뒤, 바짓가랑이 끝을 접어서 졸라매는 끈을 뜻한다. 뱀의 길이와 비슷할 뿐 아니라, 우리와 친숙한 소재이므로 화사를 '꽃대님 같다'로 표현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3연에서 '달변의 혓바닥이 /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변화한다.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은 소리를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다만 '날름거리는 아가리'뿐이다. 옛날의 달변과 지금의 실어(失語)로 대비되는 '배암'의 슬픈 운명을 보며 화자는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라며 뱀을 부추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는 존재의 원죄적 모순성에 대한 화자의 강한 저주와 증오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4연은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라는 하나의 시행으로, '물어뜯어'라며 부추기던 시행과 관련되어 더욱 심한 저주와 증오를 드러내고 있다. 5연은 원죄적 숙명을 극복하려는 운명과의 대결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라는 표현은 화자의 공격적 행위를 의미하지만, 화자는 곧바로 뱀과의 대립에서 오는 긴장을 풀며, 뱀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옮기는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돌을 던지며 뱀을 뒤쫓는 화자의 행위는 뱀에 의해서 우리가 원죄를 얻게 된 데 대한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석유 먹은 듯' 불타는 '가쁜 숨결'로 인한 것임을 밝히며 그간의 저주와 증오를 완화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가쁜 숨결'이란 뱀을 뒤쫓는 데서 오는 숨가쁨이 아니라, 관능적인 숨가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화자에게서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의식을 부정하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관능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석유 먹은 듯'의 반복과 생략 부호의 반복은 바로 '가쁜 숨결'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표현이다. 4연의 '대가리'는 남성의 성기를 충동적으로 느낀 뱀의 원형적 심상으로, 5연의 '석유 - 가쁜 숨결'로 이어져 8연의 '순네'와 연결되고 '스물 난 색시'의 관능으로 확대된다.

6연은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으로 나타난 뱀을 몸에 두르고 싶다는 소유욕을 말하고 있으며, 7연에서는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클레오파트라의 고운 입술로 나타난 뱀의 입술이 화자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관능적 욕망을 보여 주고 있다. 8연은 관능과 생명력이 고조된 연으로 스무 살 '순네'의 고운 입술을 뱀의 입술로 인식하는 화자는 마침내 '순네'가 뱀이 되어 자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과 욕망에서 오는 악마적 전율과 예찬을 통해 서구적 발상과 토속적 사고의 융합을 교묘하게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미당이 스물 셋의 나이에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생애를 회고하는 내용이다. 그가 이 글에서 밝히고 있는 그의 가족사와 이력이 사실에 얼마나 부합되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과장하거나 미화하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텐데, 도리어 그는 자랑스럽지 못한, 부끄러워 감추려고 할 만한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밝히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비상한 충격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얻어야 할 것은 (물론 무엇을 얻기 위해 시를 읽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인물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 고통과 오랜 방황, 그리고 이로부터 나타나는 결연한 생명 의식이다.

1연은 '나'의 출생 배경을 할아버지 대(代)로부터 보여 주고 있다. 갑오 농민 전쟁에 나가 죽은 외할아버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주인을 위해 밤 깊도록 일만 하는 종인 '애비', 그리고 동생을 임신한 '어매'를 통하여 그의 집안은 유교적 봉건 시대의 모순된 사회 제도에 의해 고통받으며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흙으로 바람벽한' 퇴락한 초가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인 그 집은 대대로 가난에 시달려 왔을 뿐 아니라, 동생을 임신한 '어매'가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그것 하나도 갖다 드릴 수 없을 정도로 궁색하기만 하다. 그런 속에서 그는 손톱에 때[垢]가 까맣게 낀 소년으로 성장해 있는 것이다.

2연은 시상을 전환하여 화자의 지난 생애를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의 자식이라는 남들의 멸시, 그것으로 인한 끊임없는 방황과 부끄러움, 그리고 무지(無知) 등으로 힘겹게 살아온 자신의 지난 생애를 회상한 다음, 그는 괴로웠던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삶의 시련과 고통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굳건한 생의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힘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강한 생의 의지로써 마침내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는 진실된 시가 됨을 3연에서 밝히는 한편,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회상과 생의 강한 욕구를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로 끝맺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이처럼 원색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개인적 생애와 더불어 험난했던 우리 근대 역사를 돌아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제1시집 {화사집(花蛇集)}에서 보여 주었던 '보들레르'의 악마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적 사상에로 접근, 영겁(永劫)의 생명을 추구하는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한 제2시집 {귀촉도}의 표제시가 된 이 시는 사별한 임을 향한 애끓는 정한과 슬픔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귀촉도'란 흔히 소쩍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는 새로, 이 작품에서는 촉제(蜀帝) 두우(杜宇)가 죽어 그 혼이 화하여 되었다는 (杜宇死 其魂化爲鳥 名曰 杜鵑 亦曰子規 ; 成都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귀촉도'는 말 그대로 '촉으로 돌아가는 길'을 뜻하여, 멀고 험난한 길[촉도지난(蜀道之難)]의 의미로도 사용되는 중의적인 어법이다.

1연에서는 '임'이 가시던 모습과 그 가신 길이 너무 멀기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음을 '삼만 리'라는 거리감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삼만 리'가 상징하듯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인 여인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눈물이 '아롱아롱' 맺힌다. 두견화인 '진달래꽃'은 새의 전설과 관련된 시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에서도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백의 민족(白衣民族)이 갖는 근원적인 한(恨)을 느낄 수 있다. 2연은 돌아오지 못하는 임에 대해 '신이나 삼아 줄 걸',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하면서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나타내는 한편, 임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지극한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비원(悲願)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3연에서는 화자의 감정 이입인 '귀촉도'의 울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새는 그리움·서러움·후회스러움 등의 감정이 사무치고 북받쳐서 '목이 젖은 새'이며 '제 피에 취한 새'이다. 그러므로 새의 울음은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안으로만 조여든다.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이기에 그 임을 생각하는 그리움의 고뇌는 안으로 응어리져 피맺힌 눈물을 이룬다. 따라서 귀촉도의 울음은 바로 시인 자신의 애끓는 슬픔이자 사랑인 것이다. 1연에서 '아롱아롱' 하던 눈물이 마지막에 와서는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피맺힌 눈물로 깊어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임의 떠남' → '화자의 회한' → '귀촉도 울음'이라는 기본 구조로 짜여 있으며, 사랑의 본질, 더 나아가서는 생의 본질이 이 같은 비극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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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환(柳致環)

청마(靑馬)

1908년 경상남도 충무시 출생

1927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1년 시 <정적>을 {문예월간}에 발표하면서 등단

1937년 문예 동인지 {생리} 발행

1946년 청년 문학가 협회 회장 역임

1947년 제1회 청년 문학가 협회 시인상 수상

1957년 한국 시인 협회 초대 회장

1967년 사망

시집 :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청령 일기(??日記)}(1949), {보병과 더불어}(1951), {예루살렘의 닭}(1953), {청마 시집}(1954), {제9시집}(1957), {유치환 시초}(1958), {유치환 시선}(1958),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미루나무와 남풍}(1964)


이 시는 청마 초기시의 주된 정조인 연민과 애수의 서정을 통하여 존재론적 차원의 허무의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다. 전 9행의 단연 형식의 이 시는 비유적 비교와 반어적 대조를 통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진술(陳述)에 의존하여 대부분 관념시가 되고 있는 일반적인 청마시에 비해, 이 시는 체험의 윤리적 의미를 중시한 수사적 차원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진술 대신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 시는 중심 이미지인 '깃발'에 '아우성'·'손수건'·'순정'·'애수'·'마음'이라는 5개의 참신한 보조 관념이 연결된 확장 은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곧 깃발은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으로 '푸른 해원'이라는 이상향을 동경하는 '순정'을 상징하며, '애수'와 '마음'은 이상향에 끝내 도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좌절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푸른 해원의 하얀 깃발'이라는 색채의 대조 속에는 이 두 상반된 태도가 적절히 대응되어 있다.

다시 말해, 깃발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서 이상향을 향한 '아우성'의 몸짓으로 의지와 집념의 자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깃대를 떠날 수 없는 숙명적 존재임을 깨닫고 절망하고 만다. 결국 이 작품은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해 절망하는 감상적 허무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인 줄 알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모순과 고뇌를 깃발의 펄럭이는 모습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일월(日月)>과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유치환의 시정신을 극명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전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본연(本然)의 생명을 추구하여, '출발' → '수련' → '성취'의 과정을 통하여 강인한 남성적 어조로 극한적 의지를 표현함으로써 청마시의 전형을 제시한다.

1연은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다 발견한 지식의 한계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절망하여 '아라비아 사막'으로 상징된 구원의 세계로 떠나가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곳은 작열하는 태양과 고뇌와 방황의 알라신만이 계신 '영겁의 허적'으로 혹독한 고행과 절대적 고독의 현장일 뿐이다. 2연은 모든 것이 사멸하고 뜨거운 태양만이 내리쬐는 열사의 땅에서, 시적 화자가 구도자의 기도하는 자세로 오랜 고행과 수련의 고통을 겪은 다음, 마침내 진실된 자아, 생명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3연은 참된 자아가 허위와 위선에 물들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순수한 생명체의 삶을 되찾지 못할 때는, 차라리 그 곳에서 미련없이 목숨을 버리겠다고 절규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시적 화자가 떠나가는 아라비아 사막은 '허적'이 주는 하강력(下降力), 곧 온통 허무뿐인 죽음의 세계이며, 역설적으로 '열사'가 갖는 상승력(上昇力), 곧 뜨거운 생명이 샘솟는 세계이기도 하다.

고통의 극한, 극도의 고독에서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유치환의 논리는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을 찾아야 한다는 이치와 동일하다. 이렇게 죽음 속에서 생명을 찾아내는 유치환의 생명 탐구 방법은 청마 특유의 허무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도리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장 철학(老莊哲學)의 허무 사상과도 그 맥락이 닿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비교적 많은 관념어를 사용하고 있고, 각 연의 1·2행이 모두 진술(陳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구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시는 첫 시집 {청마 시초}에 수록되어 <생명의 서>와 더불어 세칭 '생명파'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한 작품이다. 그가 일제 압제를 피하여 가족과 함께 북만주로 탈출하기 1년 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그의 치열한 생명 의식과 사회악에 대한 준열한 윤리 의식을 결합하여, 생명파 시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전 6연의 구성이나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1연)에서는 광명의 지표인 백일(白日)에 대한 확신을 갖는 화자가 망명(亡命)을 결행(決行)하고 있으며, 2단락(2∼3연)에서는 문명 이전의 건강하고도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희구와 함께 애련에 빠지는 약하고 속된 감정을 경계하고 있다. 3단락(4연)에서는 원수와 그 아첨배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정의를 결의하고 있으며, 4단락(5∼6연)에서는 극에 달한 증오심으로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치열한 윤리적 대결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원수'란 생의 모순과 부조리는 물론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는 모든 요인들을 의미한다.

망명살이 어디에고 '백일(白日)'로 표상된 밝고 정의로운 세상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화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그 곳 별과 비바람의 대자연 속에서 우주 섭리를 근심하면서 살아가는 미개적 유풍의 원시적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지(知)'·'정(情)'·'의(意)'를 열렬히 사랑하되 사랑과 연민에는 빠지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다짐한다. 왜냐하면, 애련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원시적 삶을 사는 자연인에게는 부끄러움이고, 이 애련을 초극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성신'·'비와 바람'·'일월' 등의 원시적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한편, 화자는 민족의 원수인 일제와 그들에게 아첨하는 민족 배반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증오밖에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 증오는 불의와 부정한 세력에 대한 것이므로 당연히 '옳은 증오'임을 굳게 믿고 있다. 설령 그 곳에서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결코 원수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으며, 어느 뜻하지 아니한 때, 짐승처럼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은 결코 버릴 수 없기에 어떠한 후회나 한탄도 있을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불의(不義)와 악(惡)에 대한 타협 없는 증오와 대결의 의지를 관념적 시어와 강건하고 비장한 어조로 나타내고 있으며,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 삼가 애련에 빠지지 않음'을 추구하는 이러한 의지적 태도로 말미암아 청마를 흔히 '의지의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시는 '의지의 시인'이라 불리우는 유치환의 허무 극복 의지를 확연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깃발>에서 드러난 허무에의 절규가 <생명의 서>, <일월>에서는 생명과의 치열한 대결 의식으로 변모되었다가, 마침내 <바위>에 이르러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생의 의지로 완성되어 생명파로서의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게 된다.

이 작품에서 노래하는 대상인 바위는 어떤 의지나 이념을 표상하는 것으로 일체의 감정과 외부의 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상징한다. 그러한 주제 의식에 어울리게 시인은 한국 시사(詩史)에서 마치 전통처럼 되어 왔던 여성 편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단호하고 웅장한 어조로 불굴의 의지를 토해 내고 있다.

의지의 이상적인 결집체인 바위를 통해 죽음으로 비롯되는 허무 의식을 극복하는 이 시는 먼저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라는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 나머지 시행은 모두 그 선언의 이유가 되는 바위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애련'·'희로'로 대표되는 일체의 감정에 좌우됨이 없이 안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수련과 고행의 자세로 비바람의 외부 시련을 겪어냈을 때, 마침내 스스로의 생명도 망각하고 모든 흔들림을 극복하는 경지, 곧 바위가 될 수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인생의 유한성과 자연물의 영원성을 대조시킴으로써 유한성을 극복하는 영원성에의 갈망도 담고 있다. 어떠한 감정도 개입할 수 없는 '비정의 함묵'인 바위의 세계, 그것은 시인이 지향하는 의지의 세계로서 구름이나 멀리서 들려오는 우레 소리는 다만 외부적 자극일 뿐 아무런 동요를 주지 못한다. 그러한 초연적 경지에 들었을 때, 시인은 그 어떤 이상을 가진다 해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 노래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자기 몸이 두 쪽으로 깨뜨려지는 파멸이 온다 해도 결코 아픔의 비명을 지르거나 불평을 토로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꿈도, 자기 파멸도 초극한 바위 같은 뜨거운 생의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이 시는 바로 허무감을 이겨내기 위한 그의 사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1940년 봄, 유치환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로 탈출해서 생활할 때의 경험을 노래한 작품으로 <일월>의 후편(後篇)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적 공간인 '광야'는 그가 탈출했던 북만주를 의미하며, 이 시는 '미개적 유풍'을 따르며 '성신'과 '비바람'과 더불어 사는 자연적 삶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떠났던 그 곳이 사실은 암울한 땅임을 깨닫고 절망하는 모습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자학'·'패망'·'회오'와 같은 관념어가 많이 쓰인 까닭에 구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조국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랑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모든 시인에게 있어 조국에 대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요, 벗어날 수 없는 형극(荊棘)의 길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조금도 슬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의지의 시인'답게 당당한 목소리로 의로운 길을 걷는 선비로서의 의연함을 보여 주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전 17행의 자유시 구성의 이 시는 의미상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9행으로 화자가 만주에서 겪는 고달픈 생활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그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탈출한 곳은 '흥안령 가까운 북변'이다. 그 곳까지 가면서 그는 '죽어도 뉘우치지 않'겠다고 몇 번씩이나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일제와 끝까지 맞서지 못하고 탈출을 감행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얼마쯤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곳에 도착하고 보니 '이레째 암수의 비 내리'는 '광막한 벌판의 끝'일 뿐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그 곳에서 하는 일 없이 '화툿장을 뒤치고 / 담배를 눌러' 끄는 무의미한 생활을 계속한다. 화자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망나니'와 같은 것으로 규정하며 진지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다시 나를 과실함'이라는 구절을 통해 조국을 탈출했던 자신의 행동이 결국은 잘못된 것임을 솔직히 고백하기도 한다.

둘째 단락은 10∼17행으로 자신의 생활에 대해 자책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이미 온갖 것을 저버리고' 조국을 떠나온 그는 자신의 과거 행동과 현실 생활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자학의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그는 속 시원히 울어버림으로써 '회오의 앓음'을 씻어낼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그 어디에도 '호읍할 곳'이 없음을 깨닫고는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자학의 모습을 보인다. 견딜 수 없는 답답함에 화자는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지만, '탈주할 사념의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불의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광명의 땅이라 믿고 찾아왔던 그 곳이 결국은 '암담한 진창에 갇힌' 암흑의 땅임을 깨닫게 된 화자는 마침내 조국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결심도 해 보지만, 그 곳은 '정거장도 이백 리 밖'에 있는 '절망의 광야'일 뿐이다.


이 시는 관념과 의지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청마의 시 세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순수 서정시로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관념어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절제된 표현과 섬세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서정시의 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 살구꽃'을 바라보며 깊어가는 봄을 만끽하고 있다. 그 때 작은 '멧새' 한 마리가 '살구꽃 연분홍 그늘'을 찾아오자, 화자는 멧새를 봄의 전령사로 생각하며 멧새가 지나온 겨울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는 겨울 내내 추위와 눈보라에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냈을 멧새가 오늘처럼 봄이 무르익자,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어느 틈에 멧새는 날아가 버리고, 멧새가 잠시 머물다 간 살구꽃 가지 사이엔 그윽한 '여운'이 남아 있다. 화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그 '여운'은 멧새가 날아간 후에도 살구꽃을 살며시 흔들고 있다. 물론 그것은 멧새의 떠남을 아쉽게 생각하는 화자의 감정이 멧새에 전이된 까닭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멧새가 또 다른 꽃나무 그늘을 찾아갔을 것이라고 믿으며, 멧새가 날아간 길을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라며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다. 이 '끝없이 작은 길'은 멧새가 날아간 길이자, 보오얀 봄의 길이요, 더 나아가서는 우주로 통하는 길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감각의 극치로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다. 이 구절만 보더라도 청마의 글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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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섭(金珖燮)

이산(怡山)

1905년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생

1924년 중동 학교 졸업

1932년 와세다(早稻田) 대학 영문과 졸업, 극예술 연구회 참가

1945년 중앙 문화 협회 창립

1950년 {문학} 발간

1956년 {자유문학} 발간

1977년 사망

시집 :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이삭을 주울 때}(1965),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사회시집}(1971), {김광섭 시전집}(1974), {동경}(1974), {겨울날}(1975)


일제의 모진 압박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지켜온 김광섭은 창씨 개명(創氏改名)을 거부하다 끝내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치하의 가장 양심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온 그의 초기 대표작이자 출세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주지적 경향과 관념적 표현이 두드러지며,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이 겪는 자의식과 지적 고뇌가 심각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철학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시대 상황과 관련된 존재론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그의 시대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한 칸 무덤', '신경도 없는 밤' 등으로 파악된 외부 현실 세계 속에서 화자는 '고단한 고기'처럼 누워 잠을 청하지만, '맑은 성 아름다운 꿈'은 멀기만 하고 '그리운 세계의 단편'만이 아스라한 추억처럼 떠오를 뿐이다. 다시 말해, 화자는 삶의 능동적 자유 의지를 상실하고 '아름다운 꿈'과 '그리운 세계'는 단절된 채, '고단한 고기'가 되어 '세기의 지층'에 이끌리며, '신경도 없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무덤'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 가는 자신을 '시계'로 객관화하여 자신의 깨어 있음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지금 자신이 깨어 있는 것은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과정에서 터득한 '오랜 세기의 지층(知層)'과 같은 관념적이고 표피적인 지식에 근거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맹목적으로 돌아가는 시계 바늘과 같은 것으로 인식한 자기비판적 성찰의 결과로, 시계처럼 사물화되어 맹목적 생존의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식민지 치하의 무의미한 삶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산(怡山)의 첫 시집 {동경}의 표제가 된 이 시는 앞의 <고독>과 같이 식민지 치하에서 괴로워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자가 처해 있는 현실은 '이상'의 표상인 '별조차 떨어진 밤'이므로, 그는 '무거운 꿈'만 꾸게 될 뿐이다. 악몽(惡夢)처럼 괴롭기만 한 현실 속에서 화자는 '무엇이 나를 불러서 / 바람에 따라' 간다고 하지만, 그 길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처럼 불분명하게 나타난 표현은 일제의 혹독한 검열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을 감으로써 '하나의 뚜렷한 형상이 / 나의 만상에 깃들이'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 길이야말로 일제 치하에서 부단히 자신을 지키려 했던 자기 확인에 대한 노력이며, 암울한 시대에 처한 자신의 끊임없는 성찰 태도임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별조차 떨어진 밤'의 시대에 '사화(詞華)' 같은 뛰어난 문장으로 자신의 고뇌를 표현한다 해도 그것은 그저 '무언의 고아가 될' 뿐이며,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로 미래를 표현한다 해도 그것은 이루지 못할 '꿈이 되고 슬픔이 될' 뿐이다.


비록 5행의 짧은 소품이지만, '비 개인 여름 아침'을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모더니즘의 기법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제시하여 비 그친 뒤의 신선한 분위기까지 느끼게 해 주는 이 작품은 시인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어린 시절의 고향 세계이며, 일제 치하의 현실에서 그가 꿈 꾸는 이상 세계로 해방된 조국의 모습일 것이다.


이 시는 시인 자신의 마음을 고요한 물결에 비유하여 마음의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항상 수평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진 물은 모든 사물 중에서 가장 고요한 만큼, 그 고요함이 깨지기도 쉽다. 이와 같은 양면적 속성을 지닌 물을 통하여 시인은 마음의 민감한 흔들림과 그 평온함에 대한 소망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돌을 던져' 마음의 평화를 깨는 사람과 '고기를 낚아' 현실적 이익을 취하려 하는 사람, 그리고 '노래를 불러' 그를 유혹하거나 그 고요함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시적 자아는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내면 세계 속으로 침잠(沈潛)하는 인생의 방법을 취한다.

그리하여 혼자 '물가 외로운 밤'이 되었을 때, 자연의 대유인 '별'과 '숲'이 시적 자아의 주위에서 그의 평화를 지켜 주고 도와 주는 것이다. 희망과 이상을 상징하는 '백조'가 오는 날, 그의 마음인 '물가'가 혹시 고요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마음이 평화로운 밤마다 번거로운 상념들을 모두 가라앉히고 백조를 기다리는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을 덮는다'는 것은 차마 그 고운 꿈이 깨질까 하여 보호, 간직한다는 의미가 된다.

은유와 상징이 조화 있는 배합을 이룬 이 시에서 우리는 모진 현실의 삶을 떠나 어떠한 외부 세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심경을 얻으려 했던 시인의 인생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아울러 그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삶을 추구하게 하였던 일제 치하의 고통스러운 현실 상황을 가히 짐작하게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시는 고요한 서정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는 수동적 세계관에 머무르고 있다는 한계를 보여 주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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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용(金尙鎔)

월파(月坡)

1902년 경기도 연천 출생

1917년 경성 제일 고보 입학

1919년 보성 고보 전학

1927년 일본 릿쿄(立敎) 대학 영문과 졸업

1928년 이화 여자 전문학교 교수

1930년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동아일보}에 발표하여 등단

1951년 사망

시집 : {망향(望鄕)}(1939)


자연 귀의(自然歸依)라는 자연애와 인생의 정관(靜觀)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동양인의 전통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소위 '전원시'라 불리는 작품 중 백미(白眉)로 꼽힌다. 전 3연의 간결한 형식과 밝은 시어, 민요조의 단순하고 소박한 가락을 이용하여 전원 생활에 대한 동경을 제시하는 것에 그칠 뿐, 그렇다고 해서 전원 생활에 대한 굳은 신념을 남에게 억지로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남(南)'이 주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와 함께 잘 나타나 있는 이 시는 시인의 개인 취향의 산물로 볼 수도 있지만, 1930년대 식민지 시대에 불가피한 삶의 자세라고도 볼 수 있다.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것은 집 안을 밝게 한다는 단순한 채광(採光)의 의미를 넘어 드넓은 자연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소망을 뜻하며, 한참을 갈 수 있는 농토인 '한참갈이'는 무욕(無慾)과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심경을 나타내고 있으며, '구름'은 허망한 속세의 삶이나 어떤 유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새 노래'는 자연이 주는 무량 무한(無量無限)의 은혜와 축복을 뜻하는 것으로 자연에 있어서의 '무상(無償)의 생활'을 의미하며, '공으로'는 자연과는 반대로 현실 생활이 유상(有償) 생활임을 역설적으로 암시한다고 하겠다.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라면,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 와 자셔도 좋소.'는 이에 대응하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 노래'가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혜와 축복을 대유하는 것처럼 '강냉이'는 자연에 인간의 노동이 가해져 이루어지는 오곡 백과의 대유이며, 함께 와 먹어도 좋다는 것은 돈을 내고 사 먹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 없이 공으로, 즉 무상으로 먹어도 좋다는 의미로 시인의 넉넉한 마음씨가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 연의 '왜 사냐건 / 웃지요.' 라는 심경은 이백(李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의 둘째 구절 '笑而不答心自閑'과 상통하는 것으로, 이 시는 삶의 허무 의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합일되어 무위의 상태에 다다른 시인의 인생관 내지 삶에 대한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1930년대 중반 유행처럼 번지던 서구적 취향의 모더니즘 시 세계와는 상반된, 다분히 한국적이면서 동양적 생활 철학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참다운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 산중문답(山中問答)

問余何事棲碧山

어인 일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나에게 물으니

笑而不答心自閑

웃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실린 물이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천지요 인간 세상이 아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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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형수(咸亨洙)

1914년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생

1935년 함흥 고보 재학 시절 학생 운동에 가담, 그로 인해 퇴학, 중앙 불교 전문학교에 입학

1935년 시 <마음의 단편(斷片)>을 {동아일보}에 발표

1936년 서정주, 김동리, 김달진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1939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마음>이 당선

1946년 해방 후 북한에서 정신착란증으로 사망


서정주, 김동리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 활동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한 함형수는 심한 정신 착란증에 시달리다 해방 직후 30세로 요절하였다. 세상에 발표된 그의 시는 10여편에 불과하지만, 동경(憧憬)의 꿈과 소년적 애수를 주조로 하는 개성 있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적 화자 '나'는 부제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를 고려해 볼 때, 죽은 청년 화가 L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이미 죽은 청년 화가 L이 자신의 죽음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하여 죽음을 초월한 그의 삶에의 열정과 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행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고 있다는 표현 특징뿐 아니라, 각 행이 '세우지 말라'·'심어 달라'·'보여 달라'·'생각하라' 등 단호한 명령형으로 끝맺는 종결 처리법도 결국 이와 같은 주제 의식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1행에서 화자는 '차가운 비(碑)걁돌'을 세우지 말라고 한다. '비(碑)걁돌'은 죽음을 뜻하는 비석이므로, 이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2행에서는 '비(碑)걁돌' 대신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한다. 화자가 화가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라는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다. 해바라기는 향일성(向日性) 식물로 정열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1행에서 드러난 의지의 표명이 2행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삶에의 강렬한 의지 내지 정열을 해바라기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3행에서는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고 한다. '끝없는 보리밭'은 풍성한 생명력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 구절 역시 생명의 충일함을 통해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4행에서는 자신의 무덤가에 심어 놓은 해바라기를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으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자신의 정열적인 사랑과 삶이 죽음을 초월하여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행에서는 보리밭 사이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를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으로 생각해 달라고 당부한다. 이는 꿈을 간직하며 살던 자신의 삶이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결국 '노고지리'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시는 '차거운 비(碑)걁돌'로 표상된 비생명적(非生命的)인 것을 거부하고, '노오란 해바라기'와 '끝없는 보리밭'을 통해 뜨거운 생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어, 이른바 {시인부락} 동인들의 생명파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해바라기는 화려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보리밭은 생명의 터전을, 노고지리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각각 상징할 뿐 아니라, 그것들이 지면과 지상, 공중에서 서로 대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노란색과 푸른색의 색채의 대조로 인하여 더욱 싱싱하고 강렬한 생명 의식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섬세한 수식 하나 없는 투박한 언어 사용으로 인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이 시인의 순수함과 젊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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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명(金東鳴)

1910년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출생

1921년 함흥 영생 학교 졸업, 일본 청산 학원 신학과 졸업

흥남 동진 소학교, 평남 강서 소학교 교원

1923년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 등을 {개벽}에 발표

1945년 함흥 서호 중학교 교장 역임

1947년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역임

1960년 초대 참의원 의원

1966년 사망

시집 : {파초}(1938), {삼팔선}(1947), {하늘}(1948), {진주만}(1954), {목격자}(1957), {내 마음}(1964)


이 시는 원산지를 떠나와 이국(異國) 땅에서 자라나는 파초를 통해 망국(亡國)의 한을 노래한 작품이다. 파초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나는 관상용 다년생 식물로 이 시에서는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물로 쓰이고 있다. 시인은 따스한 남국을 떠나와 추운 이 곳에서 가련하게 살아가는 파초의 운명을, 자유를 잃고 조국을 떠나 살면서 항상 조국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처지와 동일하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조국을 떠난 파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따스한 남국을 떠나와 살아야 하는 파초의 '가련한' 처지에서 화자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파초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2연에서는 이국 땅에서 남국을 향해 향수를 불태우는 파초를 '너'라고 의인화시켜 그의 외로움을 표출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파초의 모습을 '소나기를 그리는 정열의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화자는 그런 파초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샘물을 길어 그의 발등에 붓는다. 그리고 4연에서는 밤이 깊어 날씨가 차가워질 것을 걱정한 화자가 파초를 자신의 방에 들여놓겠다고 한다. 마지막 5연에서는 화자가 즐거이 파초의 '종'이 되어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은 파초와 화자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일체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편, 4연의 '밤'과 5연의 '겨울'은 모두 화자와 파초가 겪는 시련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련을 함께 나누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일체감이 된 그들은 결국 '너'와 '나'의 개별적 존재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 운명체임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치맛자락'으로 서로를 '가리워' 주고, 암담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다시 말해, 파초에게서 느꼈던 동정심이 상호 교감(相互交感)의 과정을 거쳐 애정으로 심화됨으로써 그들은 마침내 일체화된 것이다. 여기서 '치맛자락'이란 파초의 넓은 잎사귀를 뜻할 뿐 아니라, 성숙한 여인의 애정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제의 모진 탄압을 상징하는 우리의 '겨울'을 막아 주는 보호막이자 도피처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조국 광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가곡으로 작곡되어 널리 애창되고 있는 이 시는 4행이 한 연을 이루는 전 4연 구성 속에 사랑의 기쁨과 정열, 그리움과 애달픔이라는 사랑의 실상을 매우 아름답게 담고 있다.

'호수'·'촛불'·'나그네'·'낙엽' 등으로 은유된 '내 마음'을 주지(主旨, tenor)로 한 다음, 거기에 대응되는 '배'·'옷자락'·'피리'·'뜰' 등으로 표현된 '그대'를 각각의 매체(媒體, vehicle)로 하여, 앞의 두 연은 동적(動的)이고 직접적인 방법에 의해 사랑을 즐거운 것과 타오르는 것으로, 뒤의 두 연은 정적(靜的)이고 간접적인 방법에 의해 사랑을 외롭고 슬픈 것으로 구상화하여 참신한 이미지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

1연에서는 임을 위해 부서짐으로써, 2연에서는 타 버림으로써 임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1연에서는 호수를 통한 넓이의 사랑으로, 2연에서는 촛불이라는 소멸의 의지를 통한 깊이로 임에 대한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촛불은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라고 노래하는 것은 임에 대한 절대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임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부서지며'·'태우며'로 노래한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서는 '나그네'·'낙엽'으로 전이된 화자가 만남의 약속도 없이 쓸쓸히 임의 뜰을 떠나가겠다고 하면서 사랑의 감정에서 빚어지는 외로움을 심상화하고 있다. 이렇게 이 시는 사랑의 상반된 두 감정의 교묘한 배합을 통해 기쁨과 아픔이라는 사랑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각 연의 매 2행은 경어체인 '오오'·'주오'·'하오'로, 매 4행은 '지리다'·'오리다'로 끝맺음으로써 임에 대한 사랑을 더욱 절실하고 호소력 있게 하였으며, 아울러 이 시를 섬세한 어감과 분위기의 작품으로 이끌고 있다.


이 시는 "밤은 호수요, 나는 어부이다."라는 내용으로, 2개의 명제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 단형의 작품이다. 그러나 4행 27자에 불과한 이 시가 제시하고 있는 공간은 아득한 우주까지 확장되어 있다. '밤은 /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로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深淵)의 신비를 지닌 곳으로, '푸른 안개'라는 아늑한 밤의 이미지와 함께 상서러운 느낌까지도 준다. 이렇게 밤마다 '잠의 쪽배를 타고' 그 곳에 가서 '꿈을 낚는 어부'가 되는 화자는 바로 이상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자로서의 시인의 풍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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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천명(盧天命)

1912년 황해도 장연 출생

1930년 진명 여고보 졸업

1934년 이화 여자 전문학교 영문과 졸업

재학시 <밤의 찬미>를 {신동아}에 발표

1934년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

1935년 {시원} 동인

1950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관여한 혐의로 9·28 수복 후 투옥

1951년 출감

1955년 서라벌 예술 대학 출강. 이화 여자 대학교 출판부 근무

1957년 사망

시집 : {산호림(珊瑚林)}(1938), {창변(窓邊)}(1945)


이 시는 흔히 '사슴과 5월과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며 30년대 여류 시단을 모윤숙과 함께 이끈 노천명의 대표작이다. 시사적 측면에서 현대시다운 시를 쓴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가장 여성다운 시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그녀는 여류 시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센티멘탈리즘을 철저히 억제하고, 절제된 언어에 의해 탁월한 비유법을 구사하였다.

시인은 세속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조용히 안으로 자신을 다스려 온 삶의 자세를 '사슴'에 비유함으로써 단아하고 고고한 풍모를 나타내고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인 '사슴'은 '관이 향기로운 / 높은 족속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잃었던 전설을 생각하'며 '먼 데 산을 쳐다보'는 사슴은 바로 각박한 현실 세계와 영합하기를 거부하며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젖어 일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 시인 자신의 자아 투영으로 볼 수 있다.

'잃었던 전설'은 '높은 족속'과 관련되어 향수의 근원을 밝힌 것으로, 사슴은 '먼 산'이라는 이상(동경) 세계를 바라보며 세속과 타협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자아 성찰을 통해 마침내 '어찌할 수 없'이 '슬픈 모가지를 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적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시는 청명한 오월에 느끼는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 9연의 자유시로서 노천명다운 호사스런 시심이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1연의 '청자빛 하늘'·'육모정 탑'·'연못 창포', 6연의 '청머루 순'·'꿩'·'활나물'을 비롯한 여러 나물, 8연의 '보리밭'·'종달새' 등의 시어로 우리 고유 정서를 드러내는 한편, '라일락 숲'·'여왕'·'여신'과 같은 시어를 통해 서구적 정감을 가미시키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계절의 여왕'인 오월에서 환희와 즐거움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아름다워지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점점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옛날에 대한 향수와 비애를 함께 노래하고 있다.

1연에서는 오월의 정경을 '청자빛 하늘'·'연못 창포잎' 등 청색의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으며, 2연에서는 화자가 오월의 푸르름 속에서 느끼는 고독을 보여 주고 있다. '젊은 꿈은 나비처럼 앉는 정오'이지만, 화자는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3연에서는 옛 시절에 대한 향수의 감정을 제시하고, 4연에서는 산책을 하며 회상에 젖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봄날의 아름다움 속에서 느끼는 화자의 외로움은 다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들도 흔히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다. 5·6연에서는 향수와 동경의 대상이 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 그 지난날은 5연에서는 '풀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로 나타나 있으며, 6연에서는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의 시각적 이미지와 '꿩'의 울음 소리인 청각적 이미지의 조화로 나타나 있다. 7연에서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느끼는 화자의 심정이 제시되고 있다. '노래'를 부르자고 하는 것은 화자가 자신의 비애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으며, 8·9연에서 화자는 옛날에 대한 향수를 떨쳐 버리고, 오월의 하늘로 힘차게 비상하는 환희가 그려지고 있다. 이렇듯 이 시는 환희에서 출발한 감정이 옛날에 대한 향수와 비애로 바뀌었다가 다시 환희로 돌아옴으로써, 시인의 감정은 더욱 호사스러워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사당'은 꼭두쇠라 불리는 우두머리를 비롯하여 보통 40∼50명의 놀이꾼으로 구성되어, 경향 각지를 유랑하며 놀던 조선시대 말엽의 남자만의 유랑 예능 집단을 말한다. 그들은 모내기철부터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까지 활동했으며, 불을 피워 놓고 밤새워 놀이를 벌였다. 남자들만의 집단인 관계로 여자의 배역을 맡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들 중에 비교적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고운 자를 골라 여장을 시키고 그 역을 맡도록 하였다.

이 시의 화자는 시인이 가공적으로 설정한 남사당패의 일원이다. 이 같은 가공적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형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설정되어 있는 허구적 삶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이 시는 남사당패의 삶을 보여 주는 만큼 그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시어들을 구사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한층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이 시는 남사당패라는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 주는 작품이면서도 작가인 여성으로서의 섬세함과 차분함이 잘 드러나 있어서,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센티멘탈리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1연에서는 화자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는 바로 여자역을 맡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밤새워 벌이는 남사당패의 공연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내 남성이 십분 굴욕되다'는 표현에서는 남성으로서의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여자의 역(役)을 맡아야 하는 남사당 배우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3연에서는 여자역을 맡은 화자가 겪는 비애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도 여자역을 담당해야 하는 입장과, 남사당패를 떠날 수 없는 운명적 굴레로 인해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4연에서는 공연이 끝나고 떠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구경꾼을 모으는 날나리 소리처럼 /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는 구절을 통해 그들의 삶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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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목월(朴木月)

본명 : 박영종(朴泳鍾)

1916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1933년 대구 계성 중학교 재학 중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각각 당선

1939년 {문장}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 <산그늘> 등이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

1946년 김동리, 서정주 등과 함께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 결성,

조선 문필가 협회 사무국장 역임

1949년 한국 문학가 협회 사무국장 역임

1957년 한국 시인 협회 창립

1973년 {심상} 발행

1974년 한국 시인 협회 회장

1978년 사망

시집 : {청록집}(1946), {1946}(1946), {산도화}(1955), {란(蘭)·기타(其他)}(1959),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구름에 달 가듯이}(1975), {무순(無順)}(1976)


김종길에 의해 "우리 나라 낭만시의 최고의 것"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이 작품은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시로 씌어졌다. 이 시는 7·5조의 음절수를 기초로 한 3음보 율격의 민요조 가락과 친근한 우리말 구사, 그리고 간결한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체념과 달관으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나그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목월의 대표시 중 하나이다.

이 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이미지는 2연과 5연에 반복되는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이다. 본래 '나그네'는 떠도는 구름의 심정으로 여기저기 그저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는 사람으로, 구름을 따라 흘러가는 달과 함께 세속적인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난 동양적 해탈의 경지를 표상한다. 유유자적하고 행운유수(行雲流水)한 서정을 짙게 풍기는 이 '나그네'는 작품이 씌어진 식민지 말기의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과 관련되는데, 그것은 바로 나라 잃은 백성들의 체념과 달관을 뜻하는 동시에, 현실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시인 자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 시는 시대 현실을 외면한 도피성의 문학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

강나루를 건너가면 밀밭 사이로 외줄기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고적한 풍경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강의 푸른색과 밀밭의 푸른 색조가 어울려 짙은 색감을 드러내며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리고 외줄기 길에서 느껴지는 나그네의 고독은 삼백 리로 더욱 깊어진다. 여기서 '삼백 리'는 실제적 거리라기보다는 화자가 느끼는 고독한 정감을 나타내는 추상적 거리를 의미하며, 삼(三)이란 수(數) 역시 한국적 정감을 나타내는 친숙한 숫자로 향토적 분위기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외줄기로 길게 뻗어 있는 쓸쓸한 황토길을 밟으며 술 익는 어느 마을을 지날 때, 마침 서산 하늘 가득히 타고 있는 저녁 노을이 고독한 나그네의 가슴을 온통 서럽게 불태우고 있다. 이렇게 노래되고 있는 자연 풍경은 분명 한국인의 의식 속에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정감 어린 정경이다.

이 시는 '강나루' → '밀밭길' → '술' → '저녁놀'로 시상이 발전되고 있는데, 이것은 술의 재료인 '밀'에서 실제의 술인 '술 익는 마을'로, 그리고 익은 술빛을 연상하게 하는 '저녁놀'로 이미지가 확대된 것이다. 따라서 '술 익는 마을'[서정]과 '타는 저녁놀'[서경]의 조화로 자연과 인간이 동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푸른색과 붉은색이라는 색채의 대비와 함께 후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으로 한층 더 승화된 미감을 자아내고 있다.

한편, 1연의 '밀밭 길'이 3연의 '외줄기 길'로 변형, 발전된 것은 밀밭길의 '아름다움'이 남도 삼백 리로 뻗은 외줄기 길의 '고독'으로 변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고독한 '길'과 그 길을 가는 '나그네' 사이에 '저녁놀'이 타고 있는 것에서 나그네의 고독한 길이 단순한 고독으로 그쳐 버리는 것이 아닌, 술과 관련되는 황홀 속에 번져 가는 차원 깊은 고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는 1연을 제외한 나머지 연을 모두 명사형으로 끝맺고 있는데, 이것은 연과 연 사이에 여백을 줌으로써 시상을 함축하여 각 연 사이의 유동성을 막고 감동의 여운을 주는 효과를 지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련된 시어를 사용하여 순수한 산수의 서경과 인간 본연의 근원적 애수를 노래한 목월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민요풍의 서정시이다. 7·5조를 바탕으로 기·승·전·결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시는 어느 산 속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면서, 그 속에서 눈 먼 처녀의 애뜻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이따금 꾀꼬리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오는 어느 한가로운 윤사월의 대낮, 노란 송화 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외딴 봉우리 한구석에는 산을 지키는 산지기의 집이 한 채 외롭게 서 있다. 그 집에는 산지기의 딸인 듯한 눈 먼 처녀가 살고 있는데, 모춘(暮春)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없는 그녀는 문설주에 기대어 꾀꼬리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고 있다.

이 작품의 모티프는 '송화 가루'와 '꾀꼬리', 그리고 '눈 먼 처녀'이다. 그런데 '송화 가루'는 시각적인 것으로 '눈 먼 처녀'와 직접적인 상관 관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데, 이 양자 사이에 교량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꾀꼬리'의 울음 소리이다. 꾀꼬리의 울음에 의해서만 '눈 먼 처녀'는 윤사월의 무르익은 정경 속에 용해될 수 있기에 꾀꼬리의 울음은 바로 그녀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외딴 봉우리'·'외딴 집'·'눈 먼 처녀'라는 세 가지 비극적 소재로 배합된 이 작품에서 '눈 먼 처녀'는 내면적 설움과 고뇌의 소유자로서 작품의 중심을 형성하며 한국적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 있는데, 그녀의 가련함에서 더욱 깊은 고적감, 비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송화 가루'는 후각과 시각을 함께 드러내는 시어로 그것의 주된 색조는 '노랑'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고적한 배경과 어우러지면서 토속적, 향토적인 애수와 고독을 더해 주고 있으며, 또한 꾀꼬리의 노란색과 결합되어 식물을 매체로 한 상상력과 동물을 매체로 한 상상력이 한국적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선명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시는 현실과 단절된 이상적 세계의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목월의 초기시에는 간결한 언어와 민요적 리듬 속에 이상화된 전원 세계를 그린 작품이 많은데, 그 대표적 시가 바로 <청노루>, <산도화> 등이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가능한 한 언어를 절제하고 리듬을 단순화하여 마치 선경(仙境)을 그려놓은 듯한 한 폭의 담수채(淡水彩) 동양화를 펼쳐 보이고 있다. '청운사', '자하산'은 현실적 공간이 아니라, 이상향과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표상으로 향토색을 풍기고 있는 배경이 되며, 그 속에 '청노루'라는 신성화(神聖化)된 동물이 속세로부터 멀리 떠나 평화롭게 뛰놀고 있다.

'청노루'가 '푸른빛 노루'이듯 '청운사'는 '푸른 구름', '자하산'은 '보라빛 놀'로 시각적 색채감을 높여 더욱 환상적 분위기를 배가시키고 있다.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 구름'이라는 구절의 느린 호흡과 정서적 여백은 시인이 추구하는 이상 세계가 현실의 갈등과 일제 치하의 암울한 역사로부터 초월하고 싶어하는 평화와 안식의 공간임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청운사'·'기와집'·'자하산'의 정적(靜的) 이미지와 '청노루'·'구름'의 동적(動的)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청운사'·'청노루'의 푸른색과 '자하산'의 보라색, '느릅나무 속잎'의 초록색 등의 색채적 심상은 밝고 선명한 시적 정서를 더 한층 형상화시키고 있다.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 상황 속에서 목월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연뿐이었다. 그 곳은 단순히 자연으로의 귀의라는 동양적 자연관으로서의 자연이라기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빼앗긴 그에게 '새로운 고향'의 의미를 갖는 자연이다. 그러므로 목월에 의해 형상화된 자연의 모습은 인간과 자연의 대상들이 아무런 대립이나 갈등 없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이다. 다시 말해, 시간 진행을 의미하는 자연의 변화가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우지도 않을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인간의 삶이 자연을 해치는 파괴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는 그 같은 자연 속에 안겨 평범하면서도 풍요로운 삶, 즉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시인의 순수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인간 삶의 근원적인 차원을 인식한 자연이기에 '산이 날 에워싸고 /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라는 구문이 정언적 명령법(定言的命令法)이 아닌 흔쾌한 권유로서 주어지는 한편, 화자에 의해 그것이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이 날 에워싼' 아늑한 자연 속에서 화자는 그 자연이 들려 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이 1연에서는 '씨나 뿌리며, 밭이나 갈며 살아라'라는 내용으로, 2연에서는 '들찔레처럼, 쑥대밭처럼 살아라'는 것으로, 마지막 3연에서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아라'라는 구절로 나타난다. 물론 그것은 자연이 직접 들려 주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그 자연에서 이루고 싶어하는 소박하고 인간다운 삶의 표현이다. 그가 이루고 싶어하는 삶이란 바로 씨 뿌리며 밭 가는, 자연에 토대를 둔 삶에서부터 들찔레와 쑥대밭 같은 자연스런 삶으로 변주될 뿐 아니라, 구름이나 바람 같은 자연과 일체화된 삶으로 확대되면서 화자가 소망하는 삶의 양상을 차례차례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화자는 자연의 아들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구김살 없이 살고 싶다는 순수한 서정을 토로하며 자연에 대한 뜨거운 향수와 열망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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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두진(朴斗鎭)

혜산(兮山)

1916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40년 {문장}에 <향현(香峴)>, <묘지송(墓地頌)>, <낙엽송(落葉頌)>, <의(蟻)>,

<들국화> 등이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

1946년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 결성에 참여

1949년 한국 문학가 협회 결성에 참여

1956년 제4회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1962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1970년 3·1 문화상 수상

1976년 예술원상 수상

1981년 연세 대학교 교수로 정년 퇴임

1984년 박두진 전집 간행

1989년 제1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시집 : {청록집}(1946), {해}(1949), {오도(午禱)}(1953), {거미와 성좌}(1962), {인간 밀림}(1963), {하얀 날개}(1967), {고산 식물}(1973), {사도행전}(1973),{수석열전}(1973), {야생대(野生代)}(1981), {에레미야의 노래}(1981), {포옹무한}(1981), {그래도 해는 뜬다}(1986), {돌과의 사랑}(1987), {일어서는 바다}(1987), {성고독}(1987) {불사조의 노래}(1987), {서한체(書翰體)}(1989)


<묘지송>은 <향현(香峴)>과 더불어 정지용에게 초회 추천된 작품으로 당시 문단에서는 경이로움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묘지'에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 통념을 뒤엎었을 뿐 아니라, '죽음'을 '부활'의 높은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박두진의 탁월한 시작 능력이 발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대개 비애감·공포감·허무감 등을 주조로 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시인의 종교적 신념을 통해 부활의 이미지로서 형상화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생의 종착점이 아닌 새로운 생명이 부활하는 영생지(永生地)로서 존재하는 까닭에 죽음은 결코 두려움이나 무상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밝고 환하고 빛나는 곳으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삶의 폭넓은 긍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주검에 대한 찬미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멧새의 의성음(擬聲音)으로써 전체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찬 것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산문 율조 또한 이 시의 건강한 호흡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1연은 시적 공간인 공동 묘지의 묘사 부분으로, 무덤의 잔디를 금잔디로 미화함으로써 묘지의 일반적 느낌을 제거시키고 있다. 2연에서는 무덤 속의 촉루와 주검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촉루와 주검을 '하이얀 촉루'와 '향기로운 주검'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인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강렬한 긍정적 인식을 엿보게 한다. 3연은 시인의 생사관이 드러난 부분으로, 살았을 때 서러웠던 삶이니 죽어서 서러울 것이 없고, 오직 무덤 속을 환하게 비출 태양만이 그리울 것이라는 내용이다. '서러운 삶이 끝났기에 오히려 슬프지 않다.'는 역설이 진실로 받아 들여지는 것은 일제 치하의 암흑기를 살던 당시 우리 민족의 힘겨운 생존과 무관하지 않으며, 주검이 태양을 그리워한다는 표현은 시인이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보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무덤 속을 비출 태양'은 현실적으로는 자유의 태양, 즉 보다 나은 세상의 도래를 뜻하고, 종교적으로는 영혼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신생(新生)의 갈망'으로 대표되는 시인의 미래 지향적 초극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4연은 주제연으로 봄날의 무덤의 모습을 더할 수 없이 따뜻하고 정겨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주검들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의 의성어의 효과적 활용은 주검에 생명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 시는 일제 말기의 극한 상황을 인종(忍從)으로 초극하며, 새로운 세계의 도래(到來)를 기다리는 뜨거운 열망이 표백(表白)된 작품으로 <해>와 시상 전개 방법이 매우 유사하다. '여우'·'이리' 등으로 대표되는 '악'[악마 ― 파괴]의 표상과 '사슴'·'토끼' 등으로 대표되는 '선'[천사 ― 평화]의 표상이 함께 등장하는 '산'은 바로 선·악이 함께 뒤엉켜 존재하는 인간 세계이자 역사 발전의 장애 요인의 이미지로서 당시의 현실 상황을 상징한다.

화자는 숨막히는 일제의 폭압 아래서, 첩첩한 산 너머 존재하는 광명(光明)의 세계를 보기 위하여 '둥둥 구름을 탄다.' 그가 구름 위에서 내려다 본 산에서는 온갖 동식물이 뒤엉켜 생존을 위한 살벌한 살육(殺戮)을 벌이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당시 조국의 어지러운 현실 모습인 것이다. 그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개벽(開闢) 이래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침묵하며 바라보고만 있는 산들은 아마도 지리할 대로 지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산마루에서 '대변혁' ― 혁명을 상징하는 '확 확 치밀어 오를 화염'이 일어나기를 갈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죄다 불타 버린 그 산에 다시 풀나무와 짐승들이 하나 둘 모여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선과 악, 약육강식(弱肉强食), 힘과 파괴로 얼룩진 투쟁의 역사가 모두 사라지고, '핏내 잊은 여우 이리가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평화와 공존, 화해와 복락(福樂)의 종교적 이상 낙원이 달성될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 시는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에 쓴 작품으로 몰래 간직해 두고 있다가 해방된 이후 발표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 많은 시인, 작가들이 일제에 굴복하여 친일 문학으로 전향하거나 붓을 꺾었음에 비해, 오히려 박두진은 조국 광복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예감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러한 민족 해방에의 열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이 존재하기에 동시대의 친일 문학은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었을 뿐 아니라, 친일 문학을 비판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박두진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도 산문시의 급박한 호흡을 이용하여 광복의 기쁨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쉼표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산문율조의 긴 호흡을 차단시키고 있으며, 언어 반복의 리듬 감각을 통해, 고양된 감정이나 상승의 분위기를 조성시켜 읽는 이의 정서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 박두진의 초기시가 대개 일제 치하에서의 민족적 비애나 절망 대신, 광복을 기다리는 밝고 희망적인 태도를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노래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구원의 세계, 곧 해방된 조국을 동양적 이상향인 '무릉 도원(武陵桃源)'으로 나타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 시의 주제적 핵심은 일제 치하에서 '다섯 뭍과 여섯 바다'로 흩어졌던 우리 민족이 다시 조국땅에 모여 민족 공동체의 삶을 재현하자는 결의와 소망으로 집약된다. 1연은 바로 그러한 재현의 터전이 되는 민족 해방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함부로 짓밟혔던' 조국 강토에 마침내 봄이 돌아옴으로써 복사꽃, 살구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벌과 나비, 새들이 모여들게 된다. 2·3연은 '철이'라는 호칭으로 제유된 '흩어진 우리 민족'을 조국 해방의 터전으로 불러들이는 내용이다. 4·5연은 돌아온 겨레와의 감격적인 재회를 상상으로 보여 줌으로써 눈물과 피로 상징된 슬픔과 고통의 얼룩진 시대를 지나 푸른 깃발, 비둘기, 꽃다발이 가득한 희망과 평화, 영광의 조국땅으로 그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마지막 6연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민족 공동체가 다함께 누릴 행복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앞 부분은 1연에서 제시한 평화스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 주고 있으며, 뒷 부분은 민족이 한데 모여 춤판을 벌이는 환희의 모습을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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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趙芝薰)

본명 : 조동탁(趙東卓)

1920년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 출생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 발표하여 등단

1941년 혜화 전문학교 문과 졸업, 오대산 월정사 불교 전문 강원 강사 역임

1946년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 조직

1950년 문총 구국대 기획위원장 역임

1968년 한국 시인 협회장 역임

1968년 사망

1973년 {조지훈 전집} 발간

시집 : {청록집}(공동 시집 1946), {풀잎 단장(斷章)}(1952), {역사 앞에서}(1959), {여운(餘韻)}(1964)


조지훈은 시인을 일러 "미의 사제(司祭)요, 미의 건축사이다."라고 정의함으로써 그 자신을 전통적 시관(詩觀)을 지킨 시인임을 밝힌 바 있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옛 여인의 옷과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예스런 어투와 가락으로 조화 있게 표현하고 있다. <승무>와 함께 이 시는 고전적 소재와 전통 무용에 대한 시적 탐구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승무>가 춤을 소재로 하면서도 번뇌의 종교적 승화를 표현하고 있다면, <고풍 의상>은 한복의 우아함과 이를 통해 표현되는 춤사위의 그윽함을 보여 줌으로써 한 폭의 미인도(美人圖)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풍스런 의상과 춤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살리기 위해 시인은 부드럽고 우아한 가락과 '호장저고리'·'치마'·'운혜'·'당혜'·'호접'·'아미'와 같은 옛 정취가 넘치는 시어들을 사용하는 한편, '밝도소이다'·'보리니'·'흔들어지이다'와 같은 의고적(擬古的) 종결 어미를 구사하여 한층 더 옛스런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18행의 단연시이지만 의미상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3행의 첫째 단락은 작품의 배경을 어느 깊어가는 봄밤, '하늘로 날을 듯'한 날렵한 처마의 기와집으로 설정함으로써 고적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부연 끝'이나 '반월' 등은 모두 한국적인 선(線)의 미를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7행의 둘째 단락은 저고리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화려한 빛깔의 무늬가 돋보이는 호장저고리를 노래하면서도, 그 화려함보다는 '곱다'는 측면을 '곱아라 고아라'로 반복, 변주하며 강조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한편, 그 고운 것을 은은한 달빛에 비유하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와 같이 표현함으로써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미적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8∼10행의 셋째 단락은 치마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8·9행은 치마 선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10행은 치마 선의 미를 '사르르 물결을 친다'라는 역동적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11∼14행의 넷째 단락은 한복을 입은 여인의 맵시와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앞서 제시한 한복의 이미지에 어울리게 사뿐히 춤을 여인의 모습이 한 마리 나비에 비유되어 있다. 15∼18행의 다섯째 단락은 고풍 의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화자의 도취감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 '이 밤에 옛날에 사'는 고전적 일체감을 느낀 화자는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겠다고 한다.

이처럼 이 시는 고전 시대의 풍물에서 민족 고유의 우아하고 섬세한 미를 찾아내 세련된 서정으로 형상화시킴으로써 전통을 중시하는 시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특히, 창작 시기가 일제 치하인 점을 생각하면, 우리 것을 점차 상실해 가던 당시에 우리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작품 내면에 투영시킴으로써 민족 정서를 환기시켰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좀더 심오한 전통 문화의 정신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지 외적 묘사에만 머물고 만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한다.


우리말의 조탁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조지훈은 {청록집}에서 보여 준 것처럼 자연 친화와 민족 정서, 그리고 전통에의 향수와 불교적 선미(禪美)의 서정 세계를 펼치다가, 6·25를 분기점으로 현실 참여의 적극적 시세계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유당 정권 하에서는 투철한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한 부정 부패 및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참여적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시를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명시의 하나로 '승무'라는 춤을 소재로 하여 삶의 번뇌를 극복하려는 종교적 구도(求道)의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 시적 화자는 어느 깊은 가을밤, 한 젊은 비구니가 달빛 내려 비치는 오동나무 아래서 자신의 세속적 번뇌를 이겨내기 위해 '승무'라는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관찰자로서 지켜보고 있다.

조선 명종 때, 개성의 명기(名妓)인 황진이(黃眞伊)가 지족 선사(知足禪師)를 파계시킨 일화를 춤으로 만든 것이라 전하는 이 '승무'는 장삼(長衫) 위에 가사(袈裟)를 걸치고, 고깔 쓰고 법고(法鼓)를 두드리며 추는 춤으로, 수행(修行) 과정의 고통과 번뇌를 잊으려는 괴롭고 쓰라린 수도자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히 '승무'의 춤 동작이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수도승의 번뇌 초극에 대한 안타까운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또한 이 시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를 첫 행과 마지막 행에 배치하는 수미상관식 구성을 사용하고 있으며, '감추오고'·'모두오고'·'감기우고'와 같은 아어형(雅語形) 어휘를 활용하여 운율감을 살리는 한편, '나빌레라'·'파르라니'·'정작으로'·'외씨보선'·'살포시' 등 맵시 있는 우리말을 조탁하여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전 9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3연의 첫째 단락은 춤추기 직전의 모습으로 화자는 '고깔', '깎은 머리', '두 볼'의 순서에 따라 묘사하고 있다. 특히, '두 불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는 역설적 표현에서 춤추는 승려가 홍조(紅潮) 띤 젊은 여자라는 것과 그가 세속적인 번뇌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4연의 둘째 단락은 승무가 이루어지고 있는 배경이 제시된 부분이다. 무대는 황촉불 하나만 켜져 있는 텅 빈 공간이며, 시간은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 밤으로 제시됨으로써 고전적 정밀미(靜謐美)를 느끼게 해 준다.

5∼8연의 셋째 단락은 춤의 동작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먼저 5연에서는 유장하면서도 급박한 동태미를 나타냄으로써 4연의 정밀미와 대조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승무를 추는 비구니의 세속적 번뇌와 갈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6·7연은 춤추는 모습을 통해 세속적 번뇌를 극복하는 모습이 제시되고 있다.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는 행위는 '아롱질 듯 두 방울'로 표상된 세속적인 번뇌를 초극하려는 구도자의 갈망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구도적 춤 동작을 통해 마침내 그가 도달한 경지가 곧, 이 작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7연의 '번뇌는 별빛이라'라는 구절이다. '별빛'은 천상적·초월적 세계를 표상하는 것으로 지상적·세속적 현실 상황을 의미하는 '눈물'과는 결코 동일시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불교 원리에 의해 등가적(等價的) 가치를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눈물'과 '별빛'의 관계는 '진흙' : '연꽃', '범부(凡夫)' : '부처', '고행' : '열반' 등과 같은 상대적 개념이지만, 주체의 의지에 따라 전자[진흙·범부·고행]에서 후자[연꽃·부처·열반]로 이행할 수 있다는 불교의 원리에 따라 '눈물 = 별빛'이라는 비유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8연에서는 유장한 춤 동작을 다시 보여 주고 있지만, 5연의 춤 동작과는 다소 이질적이다. 즉, 5연은 종교적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춤인데 반해, 8연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춤이므로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다는 구절로 표현된 것이다.

9연의 마지막 단락은 춤의 종료이자 시상의 마무리 부분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1연의 '나비'와 9연의 '나비'가 서로 다른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1연의 '나비'는 나비처럼 보이는 고깔의 모습을 단순히 형상화한 것에 불과하지만, 9연의 '나비'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모습이므로 '애벌레' → '나비'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불교적 자기 정화(淨化) 내지 재생(再生)을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퇴락(頹落)한 고궁의 옥좌 앞에서 몰락한 왕조와 국권의 상실을 회고하면서 비극적인 역사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산문시이다. 역사에 대한 감회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구체적이면서 평범한 시어를 적절히 이용하여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으며, 시인의 역사 의식과 조국애가 낭만적 정조를 바탕으로 드러나 있다.

행과 연의 구분 없이 6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산문시인 이 작품은 내용에 따라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문장부터 둘째 문장까지의 앞 단락은 퇴락한 대궐의 모습을 서경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며, 셋째 문장부터 여섯째 문장까지의 뒷 단락은 그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상을 노래한 부분으로, 선경 후정의 방법에 따라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식민지 치하라는 현실적 절망감에 빠져들지 않고 냉철한 시선으로 조국의 패망 원인을 분석한 시인은 그것을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라는 사대 사상(事大思想)으로 단정한다. 그리고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린' 옥좌를 보며 민족적 슬픔에 빠져버린다. 중국에 굴복하여 용 대신 봉황으로 제왕(帝王)을 나타냈던 부끄러운 역사를 돌아보며 그는 민족의 주체성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조국의 패망에 대해 눈물 흘리는 것이 부질없음에도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며 망국(亡國)의 설움을 소리 높여 부르짖는 시인은 저승의 '구천(九泉)'이 아닌, 가장 높은 하늘이라는 뜻의 '구천(九天)'을 바라보며 조국이 해방된 그 날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곧 사대주의로 일관된 민족 주체성의 부재를 비판하는 동시에 조국 해방은 민족 주체성의 회복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시인의 투철한 역사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목월의 <나그네>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달랠 길 없는 민족의 정한을 스스로 나그네화하여 아름다운 시어, 시각적 이미지, 고전적 가락을 통해 탄식과 체념이 담긴 낭만적 시정(詩情)으로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시제 '완화삼'은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

일제 치하라는 비극적 현실 상황을 상징하는 '차운산 바위'에 존재하는 화자는 '하늘'과 같은 이상을 꿈꾸어 보지만, '산새'로 표상된 화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울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정처없는 나그네가 된 그는 '칠백 리 물길'을 따라 긴 유랑길을 떠나게 된다. 그 유랑길의 한 여정인 어느 강마을에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이르렀을 때, 마침 술 익는 냄새와 함께 서산에선 붉은 노을이 물들고 있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라는 시행은 나그네와 꽃, 곧 시인과 자연이 합일된 경지이자, 이 시의 제목을 '완화삼'이라 한 이유를 알게 해 준다. '완화삼'이란 본디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이 시행의 '소매 꽃잎에 젖어' 있는 것 같은 무념 무상의 경지를 표상한다. 그런 다음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자연에 동화되어 하염없는 나그네 길을 다시 떠나는 그는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며,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와 같은 애상감에 젖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 말 이조년(李兆年)의 시조 <다정가(多情歌)>의 '다정도 병인 양하여'와 상통하는 정서이다.

이처럼 이 시는, 세속적인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 구름처럼 흘러가는 나그네의 고독과 무상감이 7·5조, 3음보격의 전통적 가락과 낭만적 분위기, 감각적 이미지의 시어와 함께 간결한 시행 구조에 완전히 용해됨으로써 전통적 서정시의 전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지는 꽃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애정과 경건한 자세가 엿보이는 이 작품은 조지훈의 초기시에 드러나는 특유의 적막감과 비애 어린 서정성이 흠뻑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서 빚어진 물외한인(物外閑人)의 감정과 자연을 관조하는 정신으로 말미암아 평자(評者)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보기도 한다.

떨어지는 꽃을 보며 삶의 쓸쓸함을 노래하는 화자는 어둡고 애수 어린 분위기에서도 꽃의 떨어짐에 대해 격정적인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더라도 언젠가 꽃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에, 그는 '꽃이 지기로소니 / 바람을 탓하랴' 라며 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렴 밖에 성긴 별이 / 하나 둘 스러지'는 새벽까지 잠 못들며 꽃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어디선가 소쩍새가 서럽게 울어 대고, 어둠이 서서히 벗겨지며 '머언 산이 다가선다.' 그러한 허전한 시간에, 촛불을 끄고 어둠과 마주하며 뜰에 어리는 '꽃 지는 그림자'를 바라보았을 때, 지는 꽃에 대한 자신의 서글픈 감정으로 인해 '하얀 미닫이문'은 꽃의 붉은 그림자로 은은히 붉어진다. 이렇듯 떨어지는 꽃에서 느낀 비애감을 말한 다음, 그는 '묻혀서 사는' 자신의 심정을 아는 이 없기에 '꽃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 라며 세상을 피하여 홀로 사는 자신의 적막한 심경과 소멸해 가는 이름다움을 노래한다. 꽃과 함께 살아온 그의 삶에서 '떨어진 꽃'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목숨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스레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의 '낙화'는 꽃이 떨어진다는 자연적 현상과 더불어 고귀한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복합 상징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잘 정돈된 시어와 시적 균형미로 슬픔을 억제하며, 전통적 율격의 적절한 배합 속에서 삶의 짙은 우수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묘사와 서술로만 일관하고 있는 작품으로, 각각의 시어나 시구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이나 인상으로 감상해야 한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시는 옛절의 고풍스런 풍경을 절제된 언어와 민요적 리듬을 통해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한 폭의 동양화로 보여 줌으로써 여백으로 남겨둔 시인의 주제 의식을 찾아내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이 사용한 여러 소재들, 즉 '잠든 상좌 아이'·'말 없이 웃으시는 부처님'·'눈부신 노을'·'지는 모란' 등이 갖는 이미지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마침내 '서역 만리 길'로 귀의(歸依)함으로써, 그가 그린 이 그림은 심오한 선(禪)의 세계로 젖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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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안남도 평양시 진향리 출생

1933년 {조선문단}에 희곡 <기생촌>이 당선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마을>, <초롱불>, <밤길>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41년 평양 숭인 상업 학교를 거쳐 일본 츄우오(中央) 대학 법학부 졸업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7년 조지훈,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 시인 협회 창립

1957년 제5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1973년 한양대 문리대 강사 역임 및 도미(渡美)

1995년 사망

시집 :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신(神)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1970), {사슴의 관(冠)}(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그 이후}(1993), {소로(小路)}(1994)



이 시는 그의 첫 번째 추천작으로 평화로운 농촌의 여름날 오후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낸 서경적 경향의 서정시이다. 향토적 분위기의 간결한 시어와 '나른나른'·'대록대록'과 같은 의태어를 3연 7행의 짧은 형식에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효과적인 표현을 이루고 있다.

1연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부분으로 시골 마을의 정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느낀 이미지를 평화로움으로 제시하고 있다. 2연에서는 무대를 하늘로 옮겨, '솔개'가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고 있는 원경을 그리고 있으며, 3연에서는 시선을 땅으로 이동하여 솔개에게 겁먹고 뜰안 한구석에 숨어서 눈알만 대록대록 굴리고 있는 암탉의 모습을 근경으로 나타내고 있다. 겁을 삼킨 '암탉'의 눈알을 클로즈업시켜 생동감 있는 표현을 이루는 한편, 오수에 잠겨 있는 외로운 마을 속으로 녹아들게 함으로써 이 작품을 더욱 평화롭고 한가로운 분위기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와 같이 평화로운 농촌의 정경을 풍경 그 자체로 표현해 낼 수 있었던 시작 능력이 있었기에 박남수는 후일 주지주의 시인으로 변모한 후에도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여 <새>, <종소리> 등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는 박남수의 두 번째 추천작으로 그의 초기시가 지향했던 섬세한 서정과 토속적인 시세계를 짐작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초롱'이란 대나무를 잘게 잘라 만든 살 위에 종이를 씌우고, 그 속에다 촛불을 켜는 기구이다. 그것을 막대기에 매달아 들고 다닐 때면, 촛불이 꺼질 듯 흔들린다. 이 '초롱불'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가는 모든 전통적인 것의 대유로, 시인은 이것을 통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초롱불'·'원두막'·'옛 성터' 등과 같은 향토적 정서를 드러내는 시어로써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2·3·4연을 모두 산문투의 문장으로 배치시킴으로써 유장한 리듬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일반적 산문시와는 달리 간결한 느낌을 주고 있다.

1연에서는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풍경을 제시하여 초롱불을 잃어버린 화자의 정황을 드러내고 있으며, 2연에서는 '초롱불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과 '풀 짚는 소리 따라'라는 구절을 통해 소멸되어 가는 우리의 향토적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있다. 3·4연에서는 초롱불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산턱 원두막'이나 '무너진 옛 성터'를 찾아갈 때면, 언제나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던 초롱불이었지만, '꺼진 듯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이제는 더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문명의 이기(利器)에 밀려 사라져 버리는 현실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5연에서는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의 아련한 모습을 제시하는 한편,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말없음표 속에 함축하고 있다.


청록파 세 시인이 등단 초기에 주로 자연을 노래한 것과는 달리, 박남수는 그들과 같은 {문장}지 출신이면서도 특유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일제 식민지 하의 농촌을 소재로 현실 상황을 암시하는 시를 발표하였다. 이 시는 그의 세 번째 추천작으로 그의 초기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멀리 산턱에 등불 몇 개가 보이는 어느 농촌 마을의 여름 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개구리들이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한 사내가 논둑이 끊어진 탓인지 번개치는 개천 길을 달려가고, 번개가 그치자 조용하던 논에서 다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서경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여름 밤의 서경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시제가 '여름 밤'이 아닌 '밤길'로 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 전편에 깔려 있는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당시의 암울한 현실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전반부의 동적 이미지와 후반부의 정적 이미지를 대립시키는 방법을 통해 더욱 짙은 어둠을 느끼게 하고 있으며, 2행으로 구성된 연과 1행만으로 구성된 연을 교차시키는 시행 배열 방법으로 교묘한 리듬감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과거 시제의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주관적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 상황으로 시상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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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金鍾漢)

을파소(乙巴素), 월전무(月田茂)

1916년 함경북도 경성군 명천 출생

니혼(日本) 대학 예술과 졸업

1936년 {동아일보}에 시 <망향곡> 발표

1937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시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당선

1939년 문장에 <귀로>, <고원의 시>, <그늘>, <할아버지>, <계도> 등 추천

1944년 사망

시집: {수유근지가(垂乳根之歌)}(1943), {설백집(雪白集)}(1943)


이 시는 윤사월의 어느 날, 낡은 우물가에 비친 모춘(暮春)의 정경과 그 곳에서 시적 자아가 한 아낙에게 물을 얻어 먹으며 느끼는 순수한 인정미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자아는 능수버들에 둘러싸인 낡은 우물가를 지나다 우물 속에 비친 푸른 하늘을 본다. 마침 그 곳에서 물을 긷던 한 아낙에게 물 한 모금을 부탁하자 아낙은 아무 말 없이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드리운다. 그 때 마침 멀리서 뻐꾸기 울음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 온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녀가 인적 드문 우물가에서 그냥 우두커니 물을 떠 주고, 받아 마시는 행위가 쑥스럽게 느껴지자, 시적 자아는 아낙에게 공연히 뻐꾸기를 화제로 말을 건낸다. 한가롭고 조용한 봄날 오후에 들려 오는 뻐꾸기 울음 소리는 적막한 봄날의 정경을 이끌어 주는 동시에 어색한 두 남녀 사이에 끼어들어 대화를 열어주는 기능을 갖는다.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아낙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조용히 웃으며 두레박이 넘치게 시원한 물을 길어 그에게 건낸다. 그녀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것은 푸른 하늘이 비친 맑은 우물물이자,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그녀의 정성스런 마음이며 푸른 전설이다. 낡은 우물이 있는 그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그 아낙이 길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푸른 전설처럼 그윽하고 옛스런 물이요, 그것은 바로 마을의 평화와 안식의 삶을 열어 주던 풍요로운 근원인 셈이다. 이러한 정겨운 분위기에 어울리게 황소의 울음 소리가 멀리서 나직하게 들려 올 때, 아낙이 머리에 이고 가는 물동이의 찰랑이는 물에서도 시적 자아는 푸른 하늘이 비쳐져 있음을 본다.

낡은 우물과 푸른 하늘, 푸른 전설과 황소의 울음 소리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어느 농촌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이 시는 당시 우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시인 특유의 재치와 섬세한 고유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잔잔한 감흥을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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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직(李漢稷)

목남(木南), 율아당(栗雅堂)

1921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

경성 중학 졸업, 일본 게이오(慶應) 대학 법학과에서 수학

1939년 {문장}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 <온실>, <낙타>, <북극권>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55년 종합지 {전망} 주재

1956년 조지훈과 함께 {문학예술} 추천 담당

1960년 문화 공보부의 문정관으로 일본으로 건너감

1976년 사망

시집 : {이한직 시집}(1977)


이 시는 이한직의 첫 추천작으로, 정지용은 심사평에서 "선이 활달하기는 하나 치밀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라는 불만과 함께 '외래어의 잦은 사용'을 꼬집으며 시적 기교만 부린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처럼 이 시는 의도적으로 서구적 체취를 풍기고자 많은 외래어를 등장시키고 있으며, 3연과 6연에서는 같은 시행의 반복을 통하여 시적 안정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연에서는 '그리운'을 '그립은'으로 변형시키는 우리말 구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풍장'이란 원래 시신(屍身)을 한데 내버려 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소멸되게 하는 원시적(原始的) 장례법(葬禮法)을 뜻하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만 18세의 시인이 처해 있던 일제 말기의 절망적인 사회상을 상징하며, 그 속에서 '괴로워하'며 자유와 안식을 갈망했던 시인의 애끓는 마음은 '그리움'으로 나타나 있다.


{인문평론}과 함께 일제 말기의 문예지를 대표하던 {문장}이 배출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세칭 청록파 시인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시 세계를 구축한 이한직은 등단 당시에는 주지적이고 감각적인 시를 발표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민족적 경향으로 전환하였다. 이 시 역시 정지용으로부터 추천받은 작품으로, 그의 주지적 경향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한다.

이 시에는 낙타처럼 늙은 선생님과 선생님처럼 늙은 낙타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화자인 '나'다. 화자는 어느 날 동물원에서 낙타를 바라보다가, 문득 옛날의 늙은 선생님을 떠올림으로써 지난 시절 동심의 세계를 그리워하게 된다.

전 5연의 이 작품은 의미상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3연은 화자가 눈을 감고 생각하는 상상의 세계로 선생님이 등장하며, 4∼5연은 화자가 현실로 되돌아와 눈 앞에 본 세계로 낙타가 등장한다. 화자가 늙은 낙타의 모습에서 그처럼 늙은 은사님의 모습을 연상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은 결국 동심의 세계를 잃고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화자 자신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선생님' = '낙타' = '나'의 동일화(同一化)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오후, 동물원을 찾은 화자는 잔디 위에서 낙타를 보던 중 눈을 감고 회상에 잠긴다. 회상 속에서 회초리를 들고 한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그 선생님은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항시 '옛날에 옛날에' 하시면서 옛날을 그리워하시던 분이다. 그리고 '― 옛날에 옛날에 ―'라는 암전(暗轉) 속에서 그 선생님의 모습은 천천히 사라져 버린다. 여기까지가 화자가 눈을 감고 회상한 부분으로 주인공은 바로 선생님이다.

4연부터는 무대가 밝아지면서 화자는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대의 주인공은 선생님에서 낙타로 바뀌게 된다. 낙타는 어린 시절의 선생님만큼 늙었을 뿐 아니라,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어른이 된 화자는 옛날의 선생님처럼, 또는 지금의 낙타처럼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앞 단락이 '낙타'에서 비롯된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주조를 이루고 있음에 반해, 뒷 단락은 동물원의 정경과 화자의 감정을 가볍게 스케치함으로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이 모더니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초기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의 주지적이고 감각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즉,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한편, 가능한 한 감정을 배제하고 시적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여읜 동심'을 회고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주지적 기법과 차분한 어조로 인하여 감상(感傷)에 빠져들지 않음은 물론, 오히려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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