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전후(戰後)의 현실과 시적 대응

분단의 비극은 1950년 6·25 전쟁으로 폭발한다. 1950년대는 6·25 전쟁으로부터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의 시대이다. 전쟁에 의한 피해와 이의 복구는 1950년대의 시대사적 과제였고 전쟁의 비극적 체험과 상흔은 우리 모두에게 인간 실존의 무의미함과 허무주의를 남겨 주었다. 전쟁은 시인들에게 참전(參戰)과 종군(從軍)이라는 적극적 대응 방식에서부터 풍자와 역설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 그리고 센티멘탈리즘이나 폐쇄적 자아 의식으로의 굴절 등 다양한 정신적 편차를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와 함께 전쟁은 다시 분단의 고착화를 낳게 되고, 이에 따라 냉전 체제하의 안보의 논리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신성한 절대불가침의 명제로 굳건히 자리잡게 된다.

1950년대의 시는 전장시(戰場詩)로부터 출발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구상(具常), 박인환(朴寅煥), 유치환(柳致環), 박두진(朴斗鎭), 조지훈(趙芝薰) 등 많은 문인들은 이에 대응하여 격시(激詩)를 쓰고 '문총구국대'를 조직하여 1·4 후퇴를 전후한 시기에 특히 체계적으로 활동한다. 이러한 와중에 이광수(李光洙), 김동환(金東煥), 김억(金億), 정지용(鄭芝溶), 김기림(金起林) 등은 납북되고, 설정식(薛貞植), 이용악(李庸岳) 등 좌익계 시인들은 월북하고, 박남수(朴南秀), 이인석(李仁石), 양명문(楊明文) 등은 월남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문단(文壇)은 재편될 수밖에 없었고, 분단시대의 문학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는 비극적 현실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한편,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결성된, 박인환(朴寅煥), 조향(趙鄕), 김경린(金璟麟), 이봉래(李奉來), 김차영(金次榮), 김규동(金奎東) 등의 {후반기} 동인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감각과 기법을 보다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청록파'류의 보수적인 서정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현대문명의 메커니즘과 그 이면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나 1950년대 시단은 중견 시인들의 전통적 서정시와 정한모(鄭漢模), 박재삼(朴在森), 조병화(趙炳華), 송욱(宋稶), 이형기(李炯基), 김춘수(金春洙), 김종길(金宗吉) 등 신진 시인들의 휴머니즘이나 전통적인 정한(情恨), 혹은 존재론적 성찰의 시 세계가 여전히 그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특성은 분단 이데올로기가 경직화될수록 더욱 뚜렷해져서, 대(對)역사적 목소리의 발로(發露)나 분단 현실에 대한 자기 반성적 성찰은 1960년대 이후의 김수영(金洙暎)이나 신동엽(申東曄)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1955년 {현대문학}과 {문학예술}, 1956년 {자유문학}의 창간으로 인해 {문예} 폐간(1954) 이후 공백 상태이던 문단의 지면이 확보되었을 뿐 아니라, 1957년 '한국시인협회'가 결성되어 기관지 {현대시}를 간행하고 국제시인협회에 가입하는 등,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시단(詩壇)은 새로운 변화와 질서를 모색하는 활발한 기운을 맞게 된다. 그리하여 1955년부터 1959년에 이르는 1950년대 후반에는, {시와 비평}, {시연구}, {시작업} 등 각종 시 전문지와 시 동인지가 간행되는 한편, 100여 권이 넘는 개인 시집들이 상재(上梓)되어 가히 현대시의 르네상스를 이루게 되고, 본격적인 현대시의 출발이 가능하게 된다.

3장(章)에서는 시사(詩史) 구분의 관례에 따라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에 등단하여 이후 한국 시단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시인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도록 한다. 그러나 1950년대 시인들의 거의 모두가 이후 1960년대의 시단의 중견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1950년대와 1960년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1960년은 4·19 혁명이라는 분명하고도 상징적인 역사적 사건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 시기를 10년 단위로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1950년대 시와 1960년대 시 모두가 뚜렷한 시대적 변별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김수영(金洙暎)은 예외적인 시인으로, 그 시의 성격상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변별적 특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김수영의 시만큼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작품을 구별하여 3장과 4장에서 나누어 감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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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金洙暎)

1921년 서울 출생

1941년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1942년 일본 토쿄(東京)상대 전문부에 입학 후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8년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시집 {달나라의 장난} 발간

1968년 사망

1981년 김수영 문학상 제정

시집 :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공저, 1949), {달나라의 장난}(1959), {거대한 뿌리}(1974), {김수영 전집}(1981)


대단히 난해한 이 시는 1945년 창작된 김수영의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이 시의 표현 특징을 살펴 보면 1·2·3연과 4·5연이 형태상은 물론, 표현상으로도 서로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앞 단락은 세 연이 모두 2행씩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그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은 데 비해, 뒷 단락은 형태가 안정되지 않으면서도 그 의미는 쉽게 드러난다. 또한, 앞 단락은 안정된 형태로 일정한 호흡을 주면서도 비약이 나타나지만, 뒷 단락은 직설적인 기술로 되어 있으며 빠른 호흡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 시에서 '공자'는 세상의 허위,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시인을 표상하며, 그런 '공자'가 가혹한 현실 세계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갈등을 '생활난'으로 표현하고 있다. 1연에서 제시된 시적 공간은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는 곳으로 나타나 있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다는 것은 꽃보다 열매가 먼저 맺히는 것으로, 이것은 바로 사물의 전도(顚倒) 내지 무질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너'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넘기 작란'을 즐기고 있다. 이것은 2연에서 시적 화자가 보이는 행동과 대조적인 것으로 다분히 유희의 성격을 지닌다. 그 곳에서 화자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너'에게 장난처럼 쉽다는 것은, 혼란스러운 삶이 '너'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이며 무의식적 삶임을 뜻한다. 그러나 2연의 '작전'은 1연의 '작란'과 대립되는 어휘로, 화자에게는 그러한 삶이 부자연스럽고 의식적임을 알게 한다. 이렇게 1·2연은 '너'와 '나'의 대립, '작란'과 '작전'의 의미상 대립을 통해 시인이 갖고 있는 자아와 타인의 대립적 인식 상태, 자아 의식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3연에서 '국수'를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린 아이들도 알 수 있는 '국수'를 생소한 이태리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줄넘기 작란' 같이 유희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1연에서 보여 준 '너'의 혼란스러운 생활 태도와 흡사하다. 이에 반해 국수를 먹기 쉬운 것으로 인식하는 화자의 태도는 바로 '너'에 대한 반란이다. 즉, '너'는 마카로니라는 어려운 말을 쉽게도 얘기하지만, 화자는 다만 국수가 먹기 쉬울 뿐이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본다면, 1·2연의 대립 구조가 3연에서도 계속 이어져 '유희'와 '반란'으로 나타남으로써 '너'는 전도되고 무질서한 공간에서 혼란스러운 삶을 살며 국수를 마카로니로 말하는 허위 의식을 보이는 존재로, 화자는 현실의 실존 공간에서 고통을 겪으며 '너'의 허위에 대해 반란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4연에서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동무 ― 너'가 지향하는 혼란의 생활 세계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자는 사물의 생리, 수량, 한도, 우매, 명석성까지도 바로 본 다음,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결연한 결의를 통해 모든 가치가 전도, 왜곡되어 있는 현실에 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바로 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선언 속에는 바로 보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절망적 예감이 담겨 있다. 즉, 이 예감은 화자의 의식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목표를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극적 예감이다. 결국, 이러한 의지와 절망의 상반된 의식으로 말미암아 시적 화자는 2연에서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는 식으로 고통을 토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한 바램으로 마지막 연에서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절망하고 있어, 현실과 당당히 맞서 싸우지 못하는 현실 인식의 한계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 시는 시인 스스로 자신의 현대시의 출발작이라 할 만큼 높이 평가하는 작품이다.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고도의 감정적 절제가 돋보이는 주지적 경향의 모더니즘 시이다. 이러한 감정의 절제는 거의 모든 문장이 '끊어준다'·'무관심하다'·'있다' 등의 평서형 종결 어미를 취하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하며, '병풍'·'용'·'낙일' 등 우리 고유의 동양적 정서를 함축하는 시어를 통해 죽음의 현대적 이미지를 동양적 정서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문상(問喪)을 와서, 주검을 가리고 있는 '병풍'을 바라보며 죽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병풍' 뒤에 누워 있는 주검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병풍에 그려져 있는 예술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인생의 허무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병풍'은 화자의 인식의 추이 과정에 따라 사전적 의미 → 죽음의 의미 → 예술의 의미로 발전 확산된다. 1·2행에서는 화자가 병풍을 대면하는 상황으로, 여기서 '병풍'은 단순히 가리개라는 일상적 사물일 뿐이다. 이와 같은 병풍은 3·4행에서 '주검에 취한 사람처럼', '무엇을 향하여서도 무관심하다'는 표현을 통해 죽음의 이미지와 관련되고 5·6행에 이르면 완전히 죽음을 뜻하는 의미 기호로 제시된다. '용'은 하늘로 오르는 '상승'의 이미지이며, '낙일'은 하루 해가 서산으로 지는 '하강'의 이미지임을 생각할 때, 그것은 분명해진다. 이제 '주검의 전면 같은' 병풍의 그림 속에서 동양적인 죽음을 발견한 화자는 7행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가르쳐 주는 병풍에서 진정한 예술의 세계는 먼저 개인적 감상을 배척해야 함을 깨닫는다. 8행에서는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병풍을 보여 줌으로써 허위와 가식의 세계에 우선하는 예술의 진실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9행의 '비폭'과 '유도'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10·11행에서는 두 가지 의미의 주검이 나타난다. 하나는 예술의 주검인 병풍이요, 또 하나는 실제 주검인 시신(屍身)이다. 따라서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는 구절은 영원한 예술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담겨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병풍은 '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12·13행은 1·2행에서의 병풍을 마주하고 있는 화자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는 병풍과 화자의 관계가 '끊어 준다'·'무관심하다'라는 단절의 상태였음에 비해, 여기서는 '바라보다'·'비추어주다'의 단절의 극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화자와 주검 간의 좁혀지지 않던 거리감이 마침내 '달이 나의 등 뒤에서 비추어 주는' 것으로 극복됨으로써 화자는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와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예술의 병풍처럼 그의 영혼도 영원할 것임을 믿게 되는 것이다.


1945년 처음 모더니스트로 출발한 김수영은 도시 문명의 비판과 신기성(新奇性), 암담하고 불안한 시대 사조 등을 표현하였으나, 당시의 유행성이나 시사성(時事性)을 극복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50년대부터는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겪어야 했던 지성(知性)의 방황과 고민을 육성(肉聲)으로 읊었다. 특히, <병풍>은 당시 모더니스트들의 유행적인 시사성, 관념성, 생경성을 극복,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은 바 있었다. 4·19 이후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신에 뿌리박은 그의 새로운 시정(詩情)의 탐구는 여러 참여파 시인들의 전위적(前衛的)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시는, 눈을 소재로 하여 순수한 생명 ― '눈'과 불순한 일상성(日常性) ― '기침'·'가래'라는 대립적 관념을 지적(知的)으로 탐구하고 있는 주지주의적인 작품으로, 이와 함께 현실에 대한 울분의 토로와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내포하는 현실주의적 특징도 동시에 지닌다. 순수 공간인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눈은 비순수 공간인 땅에 떨어진 다음에도 '살아 있다'고 외친다. 여기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의 본질적 현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눈의 순수성을 통해 불순하고 타락한 일상적 상황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라는 구절을 통해서 '눈[雪]'은 불의를 보고 감지 못하는 정의의 '눈[眼]'이라는 또 다른 함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때의 눈은 '새벽을 지나도록 살아 있'는 시적 화자 자신의 내면의 결의를 드러내 주는 매개물이 되며, 기침을 하고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를 뱉는 행위는 불의에 대한 저항의 외침을 표상한다.

이처럼 이 시는, 무채색인 눈과 유채색인 기침과 가래를 대립시켜 눈[雪]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새벽까지 살아 있는' 눈[眼]을 통하여 정의를 향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김수영은 차츰 뚜렷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신의 시 세계를 구축해 가는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산문을 대하는 것 같은 이 시는 팽이를 돌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화자가 그 속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상을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그간의 수동적인 삶에서 탈피하려는 진지한 생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팽이 돌리기는 어른들에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놀이이자, 돌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속성을 갖고 있는 놀이로서, 화자는 팽이가 도는 것을 단순히 유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음으로써 팽이는 곧 화자의 모습을 의미한다.

또한, '장난'은 진지함과 상반되는 행위로 도시적, 관습적인 대상의 인식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일상의 상투성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의식하는 행위인 어린이들의 팽이 놀이를 바라보는 순간, 화자는 '살아가는 것이 신비로울' 뿐 아니라,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이는' '별세계' 같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제목 <달나라의 장난>으로 제시된 이 팽이 놀이는 일상의 현실적 가치와는 구별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상을 표상하게 된다. 현실 세계의 팽이 놀이에서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새로운 관념 세계를 발견한 화자는 돌지 않는 팽이는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자세로 변모된다. 다시 말해,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화자가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항상 답보(踏步) 상태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게 된다. 이런 화자의 모습과는 달리,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도는 팽이는 마치 '수천 년 전의 성인' 같은 모습으로 화자에게 각인됨으로써 '제트기 벽화'·'비행기 프로펠러'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생활하지 못한 자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 준다. 그러므로 팽이는 줄기차게 돌아가면서 '스스로 도는 힘'을 갖도록 화자의 의식을 자극할 뿐 아니라, 나아가 독자 모두의 의식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김수영이 모더니스트에서 참여 시인으로의 본격적인 활동을 보인 것은 60년대이지만, 자유당 정권하에서 이미 그는 현실 참여 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시적 변모 과정을 보일 때의 창작으로, 폭포를 통해 현실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주지적 경향의 작품이다. 이 시는 거센 힘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의 모습을 시각과 청각적 심상을 통하여 표현하였기에, 표면상으로는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으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면상으로는 폭포는 깨어 있는 자, 의식 있는 자로서의 진실된 삶을 표상한다. 이렇게 이 시는 물리적 힘에 의해 인간다운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내는 깨어 있는 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먼저 이 시는 '떨어진다'와 '곧은'이라는 단순하면서도 힘찬 시어로써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 쉴 사이 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어떠한 불의, 부정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양심의 자세이며, 조금의 굴종과 무기력도 용납할 수 없다는 투철한 정신의 표상이다. '떨어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수는 것으로 고통과 희생이 수반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폭포의 '떨어지는' 행위를 통해 폭포가 지닌 '행동성·하강성·불굴성'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 투영함으로써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강렬한 영혼을 추구하고자 한다. 또한, '곧은'은 '직(直)'과 '정(正)'의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는 것으로, '곧은 소리는 곧은 / 소리를 부른다'는 구절에는 바로 폭포가 스스로도 곧다는 것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모든 '올곧은 소리'를 요구한다는 시인 자신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폭포를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삶의 자세에 대한 준열한 의지의 전형(典型)이자, 모든 사람들의 안이하고 타협적인 삶을 각성시키는 실천적 행동체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서정적 세계가 처음부터 제거되어 있고, 사물을 지적(知的)으로 인식하여 객관적으로 그리려는, 깨어 있는 의식 상태로 일관하고 있기에 느끼는 시가 아닌, 생각하게 하는 시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 시는 '밤'과 '곧은 소리'의 대립적, 상징적 심상을 통해, 부정적 현실을 거부하고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바른 소리(直言)를 강조하는 현실 참여 의식을 아울러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폭포는 시대적 상황, 사회적 현실을 외면한 채, 권력에 야합하여 자신의 영화만을 추구하는 이익 집단이나 무사안일로 일관하는 소시민의 삶 모두를 비판하고,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예언자'요, '선각자'의 모습으로 부각된다. 또한, 폭포의 세찬 물줄기와 웅장한 소리는 깨어 있는 자의 위대한 정신과 힘을 형상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이승만 독재 정권으로 인해 얼룩진 현실 상황을 깊이 인식한 시인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양심 세력의 진실된 목소리를 갈구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죽은 영혼'이라는 뜻의 제목이 암시하듯 자유와 정의가 활자로만 존재하는 부도덕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시인 자신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자유와 정의가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 사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 사회라 할 수 없으며,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진리도 참된 진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화자는 '예언적 지성'으로 불리는 시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소시민적 지식인으로 전락해 버린 자신의 영혼을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여긴다.

화자가 파악하는 현실은 자유와 정의가 상실된, 책으로만 위장되어 있는 거짓된 세계이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부도덕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행동화하지 못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분노는 결국 현실과 자기 자신 모두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거짓된 현실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하지만, 그 행동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수반하는 것임을 아는 화자는 다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라며 절망할 뿐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솔직한 자기 반성의 모습을 반복,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 모두의 타협적 행동을 준엄하게 추궁함은 물론, 나아가 그들에게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는 주술적 힘을 보여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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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朴寅煥)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생

1944년 평양의학전문학교 입학, 해방을 맞으면서 학업 중단

1946년 {국제신보}에 시 <거리>를 발표하여 등단

1949년 김수영, 김경린, 양병식, 임호권과 함께 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

1955년 시집 {박인환 시선집} 발간

1956년 사망

시집 : {박인환 시선집}(1955), {목마와 숙녀}(1976)


김수영, 김경린 등과 함께 5인 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한 박인환은 30년대의 김기림, 김광균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을 계승한 50년대 후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이다. 후기 모더니즘은 김수영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이념적 중심이나 이론 체계가 없어 30년대 모더니즘의 발전적 계승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50년대라는 전후(戰後)의 황폐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청록파적 경향에 반발하여 전통적 서정 세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모색을 꾀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시는 시어나 시구가 지니는 각각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그것들의 의미 상황을 추적하면 무엇을 뜻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데, 그것은 초현실주의적 방법인 우연성에 의한 시어의 자유 분방한 표현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인환의 이러한 언어 감각이 이 작품을 で분위기と로 느끼게 하는 주된 요인이며, 허무적이고 감상적인 정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후문학은 6·25의 비극적 체험과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 가치의 전도(顚倒)와 혼란, 문명화,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의 심화 등으로 인해 개인주의적, 감상적, 허무적 경향을 띠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 나타난 허무 의식과 센티멘탈리즘 역시 전후의 정신적 황폐함과 불안 의식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哀想)을 노래하고 있다. 1행에서 11행까지 계속 '떠났다'·'떨어진다'·'부서진다'·'죽고'·'버릴 때'·'보이지 않는다'가 연속되는 것에서 시적 자아가 마주선 허무와 절망을 읽을 수 있다. '목마'는 내면 세계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으로 철저히 추구한 영국 여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불안과 절망의 시대적 슬픔을 표상하는 것이며, '숙녀'는 바로 '버지니아 울프'를 가리킨다.

12행부터 25행까지 서정적 자아는 작별해야 한다는 등 무엇을 '해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단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절망적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 가깝다.

26행에서 끝 행까지는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임으로써 체념적 상황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지만, 그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애상적 태도를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 안주함으로써 삶의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허무주의자의 나약한 모습일 뿐이다.

'정원 옆에서 자라던 소녀'에서 '목마를 탄 숙녀'로, 다시 '늙은 여류 작가'로 변모하면서 허무와 불안 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템즈강'에 투신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처럼 인생 항로의 좌표를 잃고 살아가던 박인환은 '상심(傷心)한 별'과 '불이 보이지 않는 등대'와 같은 절망과 비애 속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며' 고통을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비극적 정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를 통해 문학과 술을 벗하며 끈기있게 현대 문명의 위기와 불안 의식을 세련된 감각과 높은 지성으로 노래한 그는 '우수(憂愁)의 시인'으로 불리우며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목마와 숙녀>와 함께 박인환의 대표적 작품으로, 샹송 스타일의 곡을 붙여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는 낭만적 시의 정수라 할 만하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박인환이 불안한 시대 의식과 위기감, 허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한 잔의 술과 이 같은 낭만적 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우수 어린 시인으로 만든 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감상적 성품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운명일 것이며, 그에게 <세월이 가면>과 같은 시는 커다란 정신적 위안제가 되었을 것이다.

3년간이나 계속된 전쟁 속에서 도시는 온통 폐허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 남은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철저하게 상호 무관심한 개인 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황폐한 분위기에서 시인은 따스한 인간애에 목이 말랐을 것이고, 세월에 따라 흘러간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며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던 '유리창 밖 가로등 / 그늘의 밤'과 '여름날의 호숫가'와 '가을의 공원 / 벤취'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갈 수록 더욱 황폐해 가는 전후(戰後) 도시적 분위기에서 그의 가슴은 점점 서늘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람 이름이 잊혀지고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 눈동자와 입술은 언제나 서늘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애뜻한 이 사랑 노래는, 영원히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감동과 가을비 같은 촉촉한 서정성을 전해 주며 길이 남아 있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시는 엘리어트의 <4중주(四重奏)>의 첫 구를 빌어 전후(戰後)의 황폐한 현실로부터 느끼는 허무 의식과 불안의 시간을 극복, 초월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긴장감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전 4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이란 가정(假定) 아래 첫째 연에서는 회상과 체험뿐인 삶을, 둘째 연에서는 고뇌와 저항뿐인 삶을, 셋째 연에서는 회의와 불안만 있는 모멸적인 삶을 제시한 다음, 마지막 연에서는 그와 같은 삶에 대한 절망과 죽음의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여러 차례의 살육에 복종한 생명'들로 인한 '정적'과 아직 '초연'이 자욱한 도시의 암흑 속에서 모든 소망을 상실하고 '소멸된 청춘의 반역을 회상하'는 다만 '살아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냉혹하고 절실한 / 회상과 체험', '복수와 고독을 아는 / 고뇌와 저항',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로 '고뇌와 저항', '회의와 불안'만이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는 전후의 황폐한 도시는 이미 신(神)도,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 폐허이다. 그러므로 '…… 아 최후로 이 성자의 세계'라는 구절은 참담한 현실의 반어적 표현일 뿐이며, 그 곳에 '살아 있는' '나와 우리들은' 모두 '시체'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적 화자는 그곳이 더 이상 삶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라는 비극적 인식으로까지 다다른다. 그와 같은 극도의 절망감과 허무 의식은 시대 현실에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발전됨으로써 자신을 '철없는 시인'으로 비하(卑下)시키고 마침내 죽음에 대한 강한 충동을 '나의 눈 감지 못한 /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라는 마지막 시행으로 표출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전쟁의 잔인성을 고발한다거나 전후의 비극적 분위기를 제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 현실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방법을 통해 그것을 이겨내려는 치열한 시 정신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민족의 비극 6·25를 배경으로 하여 전쟁의 비극을 극명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야간 열차를 타고 피난길에 오른 '우리'라는 시적 화자와 전선(戰線)으로 '죽으러 가는' 일련의 군인들을 대조시키는 방법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1연에서 시적 화자는 '신'께 모든 운명을 맡기고 '최후의 노정'일 수 있는 삶을 찾아 피난 열차에 오른다. '어느 날 역전에서' 군가(軍歌) 소리와 함께 만난 군인들은 '죽으러 가'는데, 그들과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은 우리들는 '정욕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기'는 여유를 보인다. 그러나 그 여유로움 뒤에는 '정욕'·'피폐'·'흘기다' 등에서 나타나는 화자의 문학에 대한 자조적 태도가 감추어져 있다. 시인이 <박인환 시선집> 후기에서 밝힌 바 있는,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라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상반된 이 표현은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함은 물론, 전쟁에서는 소설로 대표되는 모든 예술 행위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전선으로 떠나는 병사들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표정도 없이 / 폭음과 초연이 가득 찬 / 생과 사의 경지로 떠나'는 그들은 화자와 같은 지식인 계층이 아닌 '농부의 아들'들로 민중을 대변한다. 여기서 시인이 지식인들에게 갖는 비판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피침(被侵)의 고단한 역사 속에서도 지금까지 이 민족을 지켜 준 계층은 바로 이름없는 민중들이었음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연에서 화자가 보여 준 문학에 대한 자조적 태도도 '농부의 아들'로 대표된 병사들의 애국 애족의 마음을 응시함으로써 비롯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는 피난민들과 병사들이 서로 방향을 바꿔 달려 지나가는 것을 촉각적 이미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화자의 태도는 3연에서 어둠을 뚫고 달리는 피난 열차에서 '정적보다도 더욱 처량한' 달을 바라보다가 '인간의 피로 이룬 / 자유의 성채'는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음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자유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4연에서 화자는 '저 달 속에 /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여기서 '검은 강'이란 '신이란 이름으로서' 삶을 찾아가는 피난민들과, 전선으로 '죽으러 가는' 병사들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거리감을 뜻하는 것으로, 화자는 병사들과 일체화되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적 자세를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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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윤숙(毛允淑)

영운(嶺雲)

1910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 졸업

1933년 {시원(詩苑)} 동인

1949년 {문예} 창간

1954년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창립에 관여

1955년 한국자유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및 문총 최고 위원

1970년 한국문인협회 부위원장

1973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1990년 사망

시집 : {빛나는 지역}(1933), {옥비녀}(1937), {풍랑(風浪)}(1951), {정경(情景)}(1959)

산문집 : {렌의 애가(哀歌)}(1937)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6·25 때 광주 산곡에서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어느 국군 소위를 발견한 화자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그의 애국·애족심을 명확한 시어와 강한 호소력의 남성적 어조로 노래한 계몽시이다.

일찍이 시원 동인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했던 모윤숙은 일제하에서 한때 민족적 색채가 강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창씨개명에도 반대하는 등 저항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엔 일제의 압력과 회유에 굴복하여 친일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당시 최대의 문학지인 {문예}를 창간하고 민족주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 의식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6·25가 발발하자 모윤숙은 김윤성, 공중인 등과 함께 비상국민선전대에 참가하여 많은 격시(檄詩)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모윤숙은 문학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여 유엔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큰 공헌을 했으며, 1972년에는 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 시는 전 12연의 자유시로 기(起)·서(敍)·결(結)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죽은 국군 소위가 말하는 대목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앞뒤에 서사와 결사를 결합한 형식이다.

1연∼3연의 기 단락에서 화자는 외따른 골짜기에서 발견한 국군 소위의 시신에서 아직 식지 않은 피를 바라보며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고 있다.

4연∼11연의 서 단락은 죽어가는 국군 소위가 남기는 유언이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가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죽은 시신에게서 화자가 떠올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25세의 대한민국 아들로 숨을 마친다. 나는 용감하게 원수의 하늘까지 진격하고 싶었다. 나는 내 부모, 동생, 사랑하는 소녀 등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살고 싶어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죽어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벗이 되었다. 바람이나 새들에게도 이르고 싶다. 내 나라의 동포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내가 이루지 못한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를 갚기 위하여 무덤도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겠다.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내 나라의 한 줌 흙이 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12연의 결 단락은 3개 연으로 이루어진 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만들어 재배치함으로써 수미상관의 구성으로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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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상(具常)

본명 : 구상준(具常浚)

1919년 함경남도 문천 출생

1941년 일본 니혼(日本)대학 종교과 졸업

1946년 동인지 {응향}에 시 <길>, <여명도>, <밤>을 발표하여 등단

1947년 {응향}에 게재된 작품으로 소위 반동 작가로 낙인되어 월남

1957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86년 {구상 시전집} 간행

시집 : {구상 시집}(1951), {초토의 시}(1956), {까마귀}(1981),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1982), {드레퓌스의 벤취에서}(1984),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1984), {구상 연작시집}(1985), {구상 시전집}(1986), {삶의 보람과 기쁨}(1986), {개똥밭}(1987), {유치찬란}(1989)


이 시는 6·25의 체험을 노래한 <초토의 시>라는 연작시 15편 중, 여덟 번째 작품으로 직설적 어투의 무기교의 시라는데 그 형식적 특징이 있다. 시인은 동족 상잔의 비극으로 생겨난 で적군 묘지と 앞에서 이데올로기라는 허상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권력욕으로 인한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기독교적 윤리관에 바탕을 둔 사랑과 화해의 정신으로 민족 동질성의 회복과 평화 통일에 대해 염원하고 있다.

생존의 극한 상황인 전쟁 중에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던 원수 사이었지만, 가로막힌 휴전선으로 인해 넋마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은 이미 저주와 원한의 적(敵)이 아니라, 같은 겨레요, 형제일 뿐이다. 고향을 북에 둔 시인은 분단의 상징물인 휴전선을 바라보면서 민족의 고통을 절감하며, 적군 병사들의 '풀지 못한 원한'을 그들만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는 일체감을 보여 주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분단으로 인해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의 죽음을 뜻하며, 그들의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인의 뜨거운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구상의 시는 가톨리시즘을 형상화한 기독교적 세계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시와 삶의 믿음을 인생의 존재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집약시켜 살아온 가톨릭 시인으로, 전통적 서정시가 개인의 정서에 몰입하여 체관(諦觀)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즉물적인 언어와 물질주의적인 현대 문명을 지향하는 모더니즘의 세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의 시적 태도는 철저하게 존재론적인 기반 위에서 미의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없는 감성을 수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역사 의식에 기초하지 않은 생경한 지성이라는 것도 신뢰하지 않는다.

이 시는 명상과 기도의 심오한 내면적 자유를 구현하고 있다. 화자인 시인은 성서(聖書)의 단순한 장면과 사건을 환기하고, 그것들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불 장마 속' 같은 고통의 체험에서 생성된 것으로, 각 연의 마지막 행마다 쓰이고 있는 ' ― 하옵소서'의 기원적 태도에서 기독교 신앙과 삶의 진실성이 잘 나타나 있다. 물론 그의 삶의 진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진리는 투철한 신앙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연에서 화자는 지상적 고뇌에 대한 천상적 구원을, 2연에서는 '허깨비'와 '무지개'로 표상된 관념의 허상에서 벗어난 이성의 회복을, 3연에서는 원죄 의식의 신앙적 겸손을 호소하는 한편, 4연에서는 신에 대한 절대적 찬미를, 5연에서는 '불 장마 속'으로 표현된 인간의 불행에 대한 회복을, 6연에서는 '어린 양들'로 비유된 묵시적인 세계로 접근하고 있다.

한편, 이 시의 구조는 상충과 대립의 양상으로 되어 있다. 즉, '요란함 / 속삭임', '허상 / 실상', '부끄러움 / 떳떳함', '멸망 / 구원', '스러짐 / 있음'의 이미지에서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도 식물계의 '풀잎'과 동물계의 '어린 양'이라는 천국과 연관된 이미지를 통하여 기독교의 구원 사상을 사상적으로 통일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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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린(金璟麟)

1918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42년 일본 와세다대학 토목과 졸업

1949년 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1986년 제5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문학상 수상

1988년 제3회 상화 시인상 수상

{신시론}, {후반기}, {DIAL} 동인

시집 :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공저, 1949), {현대의 온도}(공저, 1957),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1985), {서울은 야생마처럼}(1987), {그 내일에도 당신은 서울의 불새}(1988)


김경린은 1949년 박인환,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냄으로써 '후기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시킨 시인이다. 그는 이미 일본에서 모더니즘 동인회 '바우(VOU)'등에 동인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귀국해서는 조선일보에 <차창(車窓)>등을 발표하여 김기림의 직계 제자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또한 청록파로 대표되는 전통적 서정 세계에 반발하여 1950년 '후반기' 동인회를 결성하고 도시적 감수성, 현대 의식, 전위적 기법 추구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전쟁 직후의 혼란상을 노래하면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1960년대 말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0년부터 재개한 그는 '한국적인 전통'에서 '세계적인 전통'으로 우리 시가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정열적인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시는 일찍이 그가 [모더니즘 선언서]에서 밝힌 바 있는 모더니즘의 세계성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국제 사회 속에서 겪는 지식인 화자의 절망과 좌절을 현대 문명의 한 표상인 '타자기'로 포착하여 현대인들의 정신 풍토를 그리고 있다. 발표 당시 '국제열차'·'타자기' 같은 시어는 대단히 생경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시인은 이 광물성 이미지의 시어들을 통하여 현대 도시 문명이 지닌 메카니즘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마치 '성난 타자기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질주하는 국제열차'처럼 빠르게 변화해 가는 국제 사회에 동승하지 못하고, '조상들이 / 뿌리고 간 설화가 / 아직도 남은' 전통적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우수와 병리를 진단한다. 그것은 바로 6·25의 비극적 체험과 상처로 인한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 가치의 전도와 혼란,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의 심화 등,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젊은 지식인들의 '불안'과 '공포'이며, '예절'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가 파괴되는 현실을 무심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빠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지만, 세계적 '기류'에 편승하여 언젠가 '투명한 아침을 가져올' '앞날'을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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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기(韓性棋)

1923년 함경남도 정평 출생

1942년 함흥사범학교 졸업

1955년 {현대문학}에 시 <꽃병>이 추천되어 등단

1965년 충남문화상 수상

1975년 한국문학상 수상

1983년 조연현 문학상 수상

1984년 사망

시집: {산에서}(1963), {낙향이후}(1969), {실향}(1972), {실험실}(1976), {낙향이후}(1982)


이 시는 인생의 의미를 역에 비유하여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시인의 허무주의적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다. 한성기의 작품은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사물의 본질에 대한 사색적 탐구가 아니라, 관조에 의한 새로운 발견과 재구성을 통해 참신성과 경이감을 풍겨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는 그 어떤 특별한 표현 기교도 없을 뿐더러 남달리 깊은 철학 사상을 담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기교의 기교로써 완벽한 시적 완결성을 갖춤으로써 일체의 작위성(作爲性)을 배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단순히 평범한 작품으로 폄하(貶下)할 것이 아니라, 시인의 노련한 수련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이 시인의 말처럼 '역'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의지할 의자 하나 없'는 '빈 대합실'같이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아득한 선로'처럼 끝없는 세월 속에서 미래에의 무지갯빛 환상을 꿈꾼다. 그러나 '푸른 불 시그널'처럼 반짝이던 그 꿈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 지나가'는 급행열차와도 같이 순식간에 사라져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새로운 열차를 기다리듯 또다시 꿈을 키우며 더러 행복해하기도 하지만, 그 행복은 언제나 한순간 '꿈처럼 어릴' 뿐이며, '눈이 오고 /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대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 인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생각하는 인생의 참모습이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능력에 따라 위대한 삶을 살건, 아니면 초라한 삶을 살건 간에 결국 그것은 '없는 듯 있는 듯' 서 있는 하나의 '조그마한 역'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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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동(金奎東)

문곡(文谷)

1925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46년 연변의과대학 수료

1948년 {예술조선}에 <강>이 입선되어 등단

1951년 {후반기} 동인

1959년 자유문인협회상 수상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역임

시집 :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 {하나의 세상}(1987),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


모더니스트로 출발한 김규동은 초기에는 주지주의 혹은 쉬르리얼리즘적인 색채를 보였으나, 7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 내지 역사 의식을 토대로 하는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의 민중시로 나아가는 시 세계를 보이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계열로 전쟁으로 인해 피폐된 인간성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흰나비'는 단순한 묘사의 대상이 아니라, 시적 화자를 대신하는 감정 이입된 존재로서 시적 상황에 대한 일정한 인식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활주로'·'제트기'·'피 묻은 육체'·'묘지' 등의 시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시에서 제기된 것은 피비릿내 나는 전쟁 상황이다. 그와 함께, '돌진하려는 흰나비'·'차단하는 투명한 광선의 바다'·'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 등의 날카로운 이미지는 죽음과 직면한 화자의 절박한 한계 상황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방향을 잊어버리고 / 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보'다가, 결국은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의 조수에 밀려 /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리'는 '흰나비'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 대항하여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모습이다.

그에게 '화려한 희망'을 갖게 하는 '아름다운 영토'는 인간성이 복원된 세계이지만, 현실은 '신도 기적도 이미 /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전쟁터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서만 피어난다는 모순된 '희망'을 찾아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준다. 이렇게 이 시는 6·25의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을 파괴하는 전쟁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감각적 표현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전후(戰後) 시의 한 경향이었던 모더니즘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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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우(朴鳳宇)

추풍령(秋風嶺)

1934년 광주 출생

1959년 전남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52년 {문학예술}에 <석상의 노래> 당선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휴전선> 당선

1958년 전남문화상 수상

1962년 제8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0년 사망

시집 : {휴전선}(1957), {4월의 화요일}(1962), {황지(荒地)의 풀잎}(1976), {서울 하야식(下野式)}(1985), {딸의 손을 잡고}(1987), {나비와 철조망}(1991)


박봉우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육성(肉聲)의 시'이다. 그의 시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의와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참여시의 특성을 갖는다. 50년대의 전쟁과 폐허로부터 60년대의 민주 혁명과 군사 독재, 70년대의 속 빈 강정 같은 풍요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빈곤감, 80년대의 민주화 열망 등 광복 이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달려온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시를 쓴 시인이다.

이 시는 1956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얼마 안 되는 당시 상황에 대단히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 날을 갈망하는 시인의 절규가 완곡한 산문 율조의 형식으로 절제되어 나타나 있다.

화자는 1·5연에서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는 민족의 분단 상황을 이상할 만큼 담담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휴전선이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꽃'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꽃'은 실제의 꽃이라기보다는 전쟁은 일시 멈추었지만, 더욱 깊어진 증오심으로 대치해 있는 분단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요런 자세'라는 구절에서 '요런'은 '겨우 이것 밖에는 안되는'의 의미로, 일시 포성이 멈추기만 했을 뿐,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닌 분단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화자의 심리가 내재해 있다.

2연에서 화자는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의 휴전선의 모습을 통하여 팽팽한 긴장감으로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의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 만주를 호령했던 '고구려 같은 정신'이나 삼국을 통일한 '신라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오늘날의 민족 상황을 비판하는 한편, 지금은 비록 남과 북이 허울좋은 이데올로기로 분단되어 있더라도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라며 통일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이냐며 하루빨리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민족의 큰 소망으로 발전한다.

3연에서는 분단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분단은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이며, '정맥'이 끊어진 신체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분단 상황이 계속되면 될수록 민족사는 더욱 '야위어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며 절망하고 있다.

4연에서 화자는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함으로써 동족 상잔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모진 겨우살이'와 같았던 6·25의 비극적 체험을 겪은 바 있는 화자는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이 바람에 쓰러지는 것 같은 전쟁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며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라고 외친다.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전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죄없는 백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 지도자들의 허황된 정치 논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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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柳呈)

1922년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45년 일본 죠오지(上智)대학 철학과 중퇴

1939년 일본의 {와까구사(若草)}지에 시 <소년 연모> 발표

1941년 일본어 시집 {춘신(春信)} 발간

시집 : {사랑과 미움의 시}(1957), {사랑앓이}(1989)


일본에서 시작한 작품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귀국한 이후 6·25를 전후해 우리말로 시 창작을 재개한 유정 시인은 평이한 언어와 일상적 소재를 통하여 현실과 생활을 반영시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시화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 시는 전쟁으로 페허화된 절망적인 현실을 램프의 불빛으로 밝히고 싶어하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늘도 / 램프와 네 얼굴은 켜지지 않고 / 어둑한 황혼이 제 집인 양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자는 그 어둠 속에서 마치 '피라도 보고 온 듯 선득선득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어둡고 두려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화자는 '램프를, / 그 따뜻한 것을 켜'려고 '얼어서 찬 등피'를 '호오 입김' 불어 닦는다. 그러자 램프의 '석윳내' 같은 화약 냄새가 풍기던 '골짜구니'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가냘픈 뒷모습'을 보이며 '내가 갈 수 없는 그 가물가물한 길'로 떠나 버린 그들은 바로 '전쟁이 데리고' 간 사람들로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가 화자의 가슴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듯 6·25의 폐허 속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허무감이 삶의 비애감과 어울려 절망적인 분위기로 나타나 있다. '내 그리운 것들아'라고 소리쳐 불러 보지만, '안개와 같이 / 끝내 뒷모습인 채 사라'진 그들은 돌아올 줄 모르고, 화자의 허탈한 마음 안에선 '램프'만 '싸늘하게 타'오를 뿐이다. 어두운 방안 한구석 '싸늘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화자가 깊은 '수심'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다시' 밤은 '검은 창 안'에 가득차 흐른다.

이 시는 전쟁의 아픔을 반추하며 그 고통과 절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어와 회화적 기법을 이용한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염원을 '램프'의 불빛처럼 보여 줌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인의 비극적 체험과 소망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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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주(李東柱)

1920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1942년 혜화전문학교 중퇴

1946년 4인 합동시집 {네 동무} 발간

1950년 {문예}지에 <황혼>, <새댁>, <혼야>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52년 전남문화상 수상

1959년 한국문인협회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위원장 및 {월간문학} 상임 편집위원 역임

1979년 사망

시집 : {네 동무}(공저,1946), {혼야(婚夜)}(1951), {강강술래}(1955), {이동주시집}(1987)


이 시는 남해안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민속춤인 で강강술래と를 제재로 하여 시각적인 회화성과 청각적인 음악성을 교묘하게 배합하여 민족적인 고전미와 삶의 애환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집단 원무(集團圓舞)를 추고 있는 처녀들의 공동성(共同性)과 도취성, 그리고 역동성(力動性)을 그린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꿈과 현실이 한 자리에 어울려 있는 듯한 환상적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1·2연은 장면의 제시 부분으로 춤을 추기 위해 모여든 처녀들을 '은어 떼'에 비유하고 있으며, 춤추기 시작한 모습을 '달무리가 비잉빙 도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3·4연은 춤추는 처녀들의 감정의 전개 부분으로서 아직은 정적(靜的)이고 완만한 호흡이다. 3연에서는 강강술래에 나타난 민족적 정한(情恨)을, 4연에서는 で백장미と로 제시된 달빛 하얗게 내려 비치는 뜰에서 '공작'처럼 춤을 추는 처녀들의 화려한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5·6연은 숨가쁘게 진행되는 춤동작으로 감정의 고조 부분이 되며, 7·8연은 달빛에 취해 무아경(無我境)에 빠져 춤추는 모습으로서 감정의 절정 부분이 된다. 마지막 9연은 한껏 고조된 노래와 춤사위를 통해 혼연일체가 된 모습으로, 앞에서 보여 주던 느린 리듬감이 동적(動的)이고 긴박한 호흡으로 변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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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하운(韓何雲)

본명 : 한태영(韓泰永)

1920년 함경남도 함주 출생

1943년 중국 북경대학 농학원 졸업

1944년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 근무

1945년 나병의 악화로 사퇴

1946년 함흥 학생 데모 사건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석방

1949년 시집 {한하운 시초} 발간

1975년 사망

시집 : {한하운 시초}(1949), {보리피리}(1955), {한하운 시전집}(1956), {한하운 제3시집}(1962)


한하운은 나병의 병고(病苦)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悲痛)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다간 천형(天刑)의 시인이다. 부제 <소록도로 가는 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의 수용소를 찾아가는 나병 환자인 화자의 고달픈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천형이라는 운명적 삶을 살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은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라는 첫 구절과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천리'는 고향 함경남도 함주에서 전라도 소록도까지의 공간적 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화자의 절망적 삶의 모습이자, 평상인들과 결코 동화할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거리감 즉, 삶의 거리감을 뜻하기도 한다.

그 아득하고 막막한 여행 길에서 어쩌다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가운' 화자는 그들에게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깊은 동류애(同類愛)를 느낀다. 버림받은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설움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 미덕 뒤에는 '절름거리며 / 가는' 고통이 있으며,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 슬픔이 자리한다. 그러므로 간신히 천안에 당도해도 여름해는 여전히 거친 수세미 같은 무더위를 내뿜고 있을 뿐이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느 버드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신을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진 사실을 발견해도 화자는 놀라거나 어떠한 감정 표현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함으로써 화자가 지닌 냉엄한 현실 인식과 '소록도'로 표상된 안식처를 간구하는 화자의 비극적 모습이 잘 투영되어 있다.


이 시는 '보리 피리'에서 환기되는 소박한 낭만적 정서가 아닌, 나병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극복한 명작이다. 일반인과 격리되어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 보리 피리를 불며 어린 시절 꽃 청산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은 '인환의 거리(인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와 '인간사'를 꿈꾸며 절망하지만, 마침내 방랑의 숱한 산하와 눈물의 높은 언덕을 건너는 더 큰 아픔을 통해 자신의 절망을 내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정형률을 살린 민요체의 정감 어린 가락으로 비유나 상징이 없는 간결하고 평이한 시어로 구송(口誦)하듯 노래하여 진정 아름다운 시로 격상시킨 이 작품은 자신의 한맺힌 삶을 '피 - ? 닐니리'라는 애절한 피리 소리에 담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서 피리를 부는 것은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행위이자, 자신을 학대하는 인간 세상에 대해 따뜻한 애정을 실어 보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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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金春洙)

1922년 경상남도 충무 출생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 중퇴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사화집}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8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아세아 자유문학상 수상

1982년 {김춘수 전집} 발간

대한민국문학상 및 예술원상 수상

경북대학교 교수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 {구름과 장미}(1948), {늪}(1950), {기(旗)}(1951), {인인(隣人)}(1953), {제1시집}(1954),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打令調)·기타}(1969), {처용(處容)}(1974), {남천(南天)}(1977), {비에 젖은 달}(1980), {처용 이후}(1982), {꽃을 위한 서시}(1987), {너를 향하여 나는}(1988)


한국시사에서 꽃을 제재로 한 시는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기 위한 소재로 꽃을 파악한 것이거나, 심미적 대상으로서 꽃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꽃'을 다루고 있어, 그만큼 심도가 깊다. 여기서 꽃은 하나의 구체적인 실재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인의 관념을 대변하는 추상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존재 탐구의 시인 김춘수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 이 시는 서정성이 일체 배제된 관념적이고 주지적인 작품이다. 처음엔 무의미의 관계였던 '나'와 '그(너)'가 '이름을 불러 주는' 상호 인식의 과정을 통해, 서로는 서로에게 '꽃'이라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변모하게 되고, 마침내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인 '꽃'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명명(命名)' 행위는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고, 그것을 실재적인 형상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을 뜻하게 된다. 이것은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파악한 하이데거의 명제와 비슷한 시적 발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존재를 조명하고 그 정체를 밝히려는 이 시는 주체와 객체[대상]가 주종(主從) 관계가 아닌, 상호 주체적 '만남'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익명(匿名)의 상태에서는 고독하고 불안하다. 그러므로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상태[존재를 인식하기 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에게서나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명명(命名)이라는 과정이 있기 전까지는 참다운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부재(不在)의 존재였던 '꽃'이 이름을 불러 주는 나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의 양태를 지니게 되며, 반대로 내 존재도 누가 나의 이름을 명명할 때야만, 부재와 허무에서 벗어나 그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 이 시는 앞에서 설명한 시 <꽃>에 대한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화자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소망을 읊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 '꽃'이 사물의 본질을 상징한다면, '미지'·'어둠'·'무명' 등은 사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화자는 그 무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 즉 꽃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1연에서 화자는 사물의 본질을 모르는 자신을 '위험한 짐승'이라 하여 무지에 대한 자각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자신의 자각 없이는 '꽃' 역시 불완전한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3연에서는 '추억의 한 접시 불'이라는 모든 지적 능력과 체험을 다하여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화자의 몸부림과 절망을 '나는 한밤내 운다'로 표현하고 있으며, 4연에서는 비록 존재의 본질을 깨닫지는 못했어도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 '나의 울음'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역설적 깨달음을 보여 주는 한편, 마지막 연에서는 결국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만 자신의 안타까움을 '얼굴을 가리운 신부' - 꽃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능금이 익어 가는 것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무한한 그리움의 성숙과 자연의 교감(交感)에 의한 충만함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능금'은 시인이 즐겨 다루는 '꽃'과 마찬가지로 구체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떤 관념의 표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생명 현상은 모두가 신비롭다. 그 중에서도 과일이 탐스럽게 익어 가는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시인은 능금과 가을을 의인화하여 결실, 성숙의 신비를 차분하고 동경에 찬 어조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1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그리움'이다. 능금은 무엇인가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되'는 충만한 존재가 되어 마침내 그 성숙의 무게로 인해 지상에 떨어져 내려온다. 따라서 이 그리움은 자신을 충만하게 하고, 아름다운 결실과 기쁨을 베푸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그리움으로 살다가 그리움으로 다가와 축제의 여운으로 새겨지는 능금의 실체를 보여 준 1에 이어 2에서는 능금과 가을 사이의 사랑으로 가득한 교감을 노래하고 있다.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문 / 이 아쉬운 자리'에 있는 능금을 위해 가을은 따사로운 햇살과 감미로운 바람으로 사랑의 애무를 보내 준다. 이것은 하나의 생명과 그를 둘러싼 자연 사이의 아름다운 합일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3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성숙한 능금이야말로 그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바다처럼 넓고 깊은 생명과 감정을 지니고 있는 신비의 존재임을 보여 주고 있다. 능금이라는 평범한 자연물 속에서 생명의 무한한 그리움과 충만함이 이루는 내면의 바다를 발견해 내는 시인의 예지(叡智)가 새삼 놀랍기만 하다.


이 시는 김춘수 시의 특질로 지적되는 '인식의 시'로 자주 인용되는 작품이다. 끝의 2행을 제외하면, 이 시의 대상이 무엇인지, 시인은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이 시는 비유적 이미지를 철저히 배제한 풍경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인동 잎>으로 제시된 한 폭의 그림에서 우리는 조금의 티끌도 묻어나지 않는 짜릿한 감정이입의 순간을 느끼게 된다. 일상적인 사물을 구체적인 설명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지 않는 대신, 시인의 가슴에 떠오른 어떤 관념을 압축된 풍경 묘사를 통해서 이렇게 '보여 줄' 뿐이다. 그 관념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은 무상(無想)의 관념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 쓰인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와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해 버리고 언어 자체를 절대화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게 본다면, 후반부는 풍경을 바라보는 화자의 감정이 반영된 것으로 일체의 관념과 설명을 배제하겠다는 시인의 의도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눈 덮인 초겨울 들판에서 붉은 열매를 쪼아먹는 '작은 새'는 인동초의 겨울나기를 가로막는 방해물의 상징이며, 인동초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슬픈 것은, 겨울과 작은 새로 표상된 시련의 외적 상황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인동초의 인고(忍苦)의 아픔이 짙게 배어 있는 까닭이다.


'인식의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김춘수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구체적인 설명 방법으로 무엇인가 말하려 하지 않는 대신, 이렇다 할 의미를 갖지 않은 '무념의 관념'을 풍경적 묘사를 통해 구체화하는 시작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다. 이 시도 뚜렷한 의미를 배제한 '무념의 관념'만으로 '나의 하나님'이란 존재를 선명한 이미지만으로 감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시인은 신에 대한 경외심 또는 절대적 가치를 높임법의 종결 어미로 예찬하는 기존의 시작 태도를 따르지 않고, 신에게서 떠오른 여러 이미지를 특유의 신선한 비유에 의해 압축시켜 보여 주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은 먼저 '늙은 비애'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과 '슬라브 여인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라는 구체적 사물로 실체화된다. 이렇게 가시화되었던 '하나님'은 다시 '여린 순결'로 모호해 지는 변화를 거쳐 마침내 느릅나무 새 순을 돋게 하는 '삼월의 연두빛 바람'으로 분명해진다.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존재가 어떻게 비애가 되며, 어떻게 살점 덩어리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김춘수가 하나님에게서 만난 그만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상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되었는가, 하는 인식의 문제는 전적으로 시인의 몫이며, 독자에게 주어진 몫은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것을 함께 향유하는 것일 뿐이다.


이 시는 고대 설화속 인물인 '처용'을 제목으로 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대신, 암울하면서도 몽환(夢幻)에 가득 찬 시인의 어린 시절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어떤 특정한 의미나 주제 의식을 시행에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3월의 어느 남쪽 바다에 내리는 눈'을 보고 느낀 인상을 감각적인 언어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연결로써 이미지화하였다. 흔히 김춘수의 시를 '무의미의 시'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시가 심상(心象)만을 제시하는 서술적 이미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그와 같이 시의 내면에 어떤 관념이나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미지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개별 시행들 속에서 어떤 특정한 관점을 추출하여 의미화하려고 하면 이 작품은 더욱 난해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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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조(金南祚)

1927년 대구 출생

1951년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수(星宿)>,<잔상>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3년 시집 {목숨}을 발간하며 본격적인 창작 생활 시작

1954년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1958년 자유문학가협회상 수상

1963년 오월문예상 수상

1975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서울시 문화상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 {목숨}(1953), {나아드의 향유}(1955), {나무와 바람}(1958), {수정과 장미}(1959), {정념의 기}(1960),{풍림(楓林)의 음악}(1963), {겨울 바다}(1967), {설일}(1971), {동행}(1976), {빛과 고요}(1982), {너를 위하여}(1985), {저무는 날에}(1985), {고독보다 깊은 사랑}(1986), {둘의 마음에 산울림이}(1986), {문앞에 계신 손님}(1986), {말하지 않는 말}(1986), {겨울나무}(1987), {바람 세례}(1988), {마음 안의 마음}(1988) 등


모윤숙, 노천명의 뒤를 이어 여류 시인 계보를 이은 대표적 시인인 김남조의 시 정신은 '사랑'이다. 김남조의 사랑은 초기시의 인간적, 지상적(地上的) 사랑에서 후기시에 이르면 근원적, 초월적인 방향으로 심화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 속의 갈등과 번민을 극복하고 순결한 영혼과 평화로운 안식을 갈구하는 자신의 소망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그리워하는 대상은 단순한 연가(戀歌) 속에 등장하는 애정의 임이 아닌, '하얀 모래벌 같은 마음씨의 벗'과 같은 임으로 인간 존재의 '무거운 비애'를 초월한 분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마음을 비유하여 모든 욕망과 번뇌, 갈등을 극복하며 그와 같은 임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제목 <정념의 기>에서 '정'은 곧,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념'은 신(神)에 대한 염원으로, '기'는 자신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첫 연에서 제시된 '기도'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종교적인 사색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기원의 대상을 향한 화자의 철저한 자기 반성적 어조로 시 전편을 하나의 기도문 형식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기원의 대상인 '너'는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 것일까? 화자는 그를 '내 사람'으로 규정하였으며, 또한 '갓 피어난 빛으로만 /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너'에 대한 기원은 궁극적으로 나의 사랑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을 향한 것이라는 점에서, '너'는 곧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어떤 성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기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절대자에 대한 귀의가 아닌, 자신의 내면적 충실을 다짐하고 있는 화자의 태도를 고려해 볼 때, '너'의 존재는 꼭 절대자만을 지칭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검은 머리 풀고' 함께 누울 수 있는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화자가 소망하는 또 하나의 이상적 자아일 수도 있다. 그런 존재인 '너'에게 화자는 '너를 위하여 / 나 살거니 /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겠다는 무상(無償)의 사랑과 헌신을 다짐한다.

1연은 기도의 시간이 밤임을 알려 주고 있으며, 그 기도의 내용이 단일하면서도 매우 절박한 것임을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로 제시하고 있다. 2연은 기도를 마치고 난 후의 기쁨을 '믿을 수 없을 만치의 / 축원'으로 서술한 부분으로, 기도 속에 생생하게 살아나는 사랑의 자기 확인이다. 3연은 기도의 대상인 '너'의 존재를 보여주는 부분으로, 그는 '갓 피어난 빛으로만 /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4·5연은 화자가 갖고 있는 '너'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있으며, 그와 함께 자신이 여성임을 알게 해 준다. '쓸쓸히 / 검은 머리 풀고 누운' 화자의 고독을 극복하게 해 주는 그 사랑은 '너에게 / 이미 준 것은 / 잊어버리고 /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게 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발전한다. 6연은 '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부분으로, '눈이 내리는 / 먼 하늘에 /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는 구절을 통해 화자가 '너'라는 그리움의 대상에게 쉽게 도달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마지막 7연은 '너'의 존재를 총체적으로 기술하는 부분으로, 5연에서 밝힌 주제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이름'과 '기쁨'은 존재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 자신의 존재는 '너'를 통해서만 구현된다는 깨달음이 반영되어 있다.


김남조는 인간의 고뇌를 종교적 차원으로 극복하며 긍정적 삶의 윤리관을 강하게 제시하는 시인이다. 이 시는 '겨울 바다'가 주는 암울한 절망감과 허무 의식을 극복하고 신념화된 삶의 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물'과 '불'로 표상된 표면적 허무감과 내면적 의지력 사이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 부정과 좌절이라는 '인고(忍苦)의 뜨거운 기도'를 통해 투철한 생의 의지를 가슴속에 새롭게 가다듬고, 겨울 바다를 떠나는 내용으로 삶에 대한 긍정적 윤리가 형상화되어 있다.

'겨울 바다'의 소멸과 생성으로 대표되는 관념적이고 이중적(二重的)인 이미지와 물과 불의 대립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극적 긴장감을 환기시킨 다음, 수심 속의 물 기둥을 통한 초극 의지를 시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겨울'은 4계절의 끝으로 만물이 무(無)로 돌아간 때이지만, 한편으로는 만물이 재생하는 봄을 잉태하는 때이기도 한데, 이것이 바로 '겨울'이 갖는 모순의 이미지이다. 마찬가지로 '바다'도 물의 순환이 끝나는 종착지면서 동시에 시발지라는 모순의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므로 '겨울 바다'는 죽음과 생성, 절망과 희망, 상실과 획득, 이별과 만남의 복합 이미지의 상징어가 된다.

시적 화자는 바로 그러한 이미지의 겨울 바다에서 '미지(未知)의 새'가 죽고 없음을 발견한다. '미지의 새'는 곧, 그 어떤 진실의 실체로 시적 자아가 체험하지 못한 성스러움을 표상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것이 상실된 겨울 바다는 죽음과 절망의 공간일 뿐이다. 그 때 살 속을 파고드는 매운 해풍까지 불어 대기에 그간 자신을 지켜 주고 지탱하게 했던 사랑마저도 실패로 끝나는 삶의 좌절을 체험하는 것이다. 절망적인 현실 공간에 매운 해풍이라는 현실적 고난이 닥쳐옴으로써 화자는 더욱 비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고뇌에 몸부림치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의 갈등을 겪던 그는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 속의 유한적(有限的) 존재라는 것과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치유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긍정적 삶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해 경건한 자세를 가지게 된 화자는 허무와 좌절을 이겨내기 위한 뜨거운 기도를 올리며 영혼의 부활을 소망한다. 그러므로 유한적 존재임을 분명히 자각하며 다시금 겨울 바다에 섰을 때, 그 곳은 이미 죽음의 공간이 아닌 소생의 공간이 되어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가 커다란 물기둥같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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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삼(朴在森)

1933년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여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성장

고려대학교 국문과 중퇴

1953년 {문예}에 시조 <강물에서>가 추천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정적(靜寂)>, 시조 <섭리(攝理)>가 추천되어 등단

1956년 제2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1967년 문교부 문예상 수상

1977년 제9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2년 제7회 노산 문학상 수상

1983년 제10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6년 중앙일보 시조대상 수상

시집 : {춘향이 마음}(1962),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뜨거운 달}(1979), {비듣는 가을나무}(1981),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해와 달의 궤적}(1990),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1991), {허무에 갇혀}(1993) 등


이 시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애잔한 가락과 섬세한 언어로 노래함으로써 우리 시의 전통적 서정을 가장 가까이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재삼의 대표작이다.

그의 시에는 남해안 삼천포에서 성장한 소년 시절을 소재로 한 회상조의 작품이 많은데, 이 시 역시 '소년 시절로의 회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서 '누님'은 한국 여인을 표상하고 있으며, 그 누이의 말 못하는 슬픈 사연이 화자의 여린 가슴에 여인의 한(恨)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나이 어린 화자는 슬픔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고, 밤바다로 뛰어나가며 소리 죽여 흐느낀다. 그러므로 누이의 슬픔과 화자의 울음은 두 남매의 혈연적 아픔으로 동질화(同質化)되어 나타난다.

누이의 슬픔을 함께 할 수 없는 어린 화자는 고샅길을 지나 밤바다에 나가 서서 눈물 흘리며, 달빛에 반짝이는 파도를 바라보고는 누이의 아픔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나 밤새도록 소리내 우는 파도처럼 찬란해지고 더욱 아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이의 아픔이 소진하여 그 아픔이 아픔으로 극복될 때라야 비로소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결국 두 사람은 결구에서 각각 '섬'과 '물결'로 비유됨으로써 누이가 섬이 되어 잠들 때, 화자는 섬에 와 부딪치며 우는 물결이 되는, 아름다운 인간적 합일을 이루며 시적 안정과 표현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감각적이면서 섬세한 시어로 명징(明澄)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 시는 산문체 형식이면서도 박재삼만의 독특한 가락과 효과적인 점층법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적 정한(情恨)을 짙게 나타내고 있다.


이 시는 섬세한 뉘앙스를 풍기는 소박하고 평이한 시어와 소근거리는 듯한 나직한 가락으로 전통적 정한(情恨)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고나'·'것네'와 같은 종결 어미를 사용함으로써 시조와 시를 함께 쓰는 시인다운 말솜씨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으며, 현대시와 옛 노래 사이의 문체상 단절을 극복하고 여성스런 가락을 창출하고 있다.

화자는 제사를 치르기 위해 큰집이 있는 고향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그에 얽힌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나타나는 한(恨)의 정서는 단순히 관념화되고 보편화된 정서가 아니라, 사랑의 실패를 겪은 화자의 체험 속에 녹아 있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화자의 슬픔과 이에 연결되는 물과 불의 이미지이다. '서러운'·'눈물'·'울음' 등의 시어가 전편을 슬픔과 한의 분위기로 이끌어 주며, '가을 강'·'눈물'·'산골 물소리'·'바다'로 이어지는 물의 이미지와 '가을 햇볕'·'불빛'·'해질녘'으로 연결되는 불의 이미지가 조화롭게 결합되어 나타난다.

한편, 이 시의 묘미는 저녁놀이 울음으로 환치되어 있는 데 있다. 저녁놀이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강'을 바라보면서, 그 시각적 이미지를 내면의 정서로 끌어들여 '울음이 타는'이라는 표현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자연의 정경과 시인의 정서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녁'은 '가을'과 함께 소멸·종말의 의미를 지니며, '가을'과 '놀'은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슬픔을 노래하기에 적당한 배경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 본원의 사랑의 슬픔과 고독과 무상함에 대한 한을 지닌 화자의 가슴에 저녁놀은 단순한 저녁놀이 아닌, 울음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이처럼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정한의 정서를 더욱 감각적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이 시는 우리 서정시의 전통 속에서 중요한 시사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는 춘향전을 소재로 하여 현대적 변용을 가한 <춘향이 마음 초(抄)>라는 연작시의 하나로 서정주(徐廷柱)의 <추천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장 한국적인 시를 쓴다는 서정주의 맥을 정통으로 이은 박재삼의 대표작인 이 작품에서 시적 자아인 '춘향'은 <추천사>의 춘향처럼 현실 세계에 고뇌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꽃나무에 견주어 그것을 순수한 생명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억지로 의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나무 가지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으로부터 샘솟는 것이므로 시제(詩題) '자연'이 시사(示唆)하듯, 자연의 힘이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의 고운 꽃을 피우게 된다는 춘향의 독백을 통해 시인은 사랑의 실체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인간의 마음과 자연을 동일시하고 있다. 꽃나무가 햇살을 받아 새 싹을 틔워 성장하고 마침내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도 모르게 제 가슴 속에서 자라난 사랑의 감정으로 말미암아 행복에 젖거나 불행에 빠지게 된다는 자연 현상으로 사랑을 파악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사랑의 표현을 '웃어진다'와 '울어진다'라는 피동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시는 시적 화자의 어릴적 가난했던 생활 체험을 회상하며 어머니의 슬프고 한스러운 모습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연 구분 없는 전 15행의 산문체 리듬의 이 시는 시적 대상의 변화에 따라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1∼5행은 진주 장터 어느 '생어물전'에서 장사를 하면서 자식들을 키우던 어머니의 고생스런 모습을 표현한 부분으로, 화자는 어머니의 고달픔을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바로 이 '한(恨)'은 이 시의 지배적 정서로 어머니의 고달픔이 응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9행은 '울엄매'가 돌아오기를 초조히 기다리며 떨고 있는 오누이의 슬픔을 '머리 맞댄 골방'과 '손시리게'와 같은 표현으로 절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어린 그들에게 '울엄매'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로 그들의 생존과 애정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10∼15행은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가 별을 보고 느꼈을 심정을 보여 주는 부분으로,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달빛에 반사되는 항아리의 반짝임에서 어머니의 눈물을 발견함으로써 고통스런 어머니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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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모(鄭漢模)

일모(一茅)

1923년 충청남도 부여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45년 {백맥}에 <귀향시편>을 발표하여 등단

1972년 제4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73년 {현대시론} 발간

1983년 시선집 {나비의 여행} 발간

서울대 교수와 문예진흥원 원장, 문화공보부장관 역임

1991년 사망

시집 : {카오스의 사족(蛇足)}(1958), {여백(餘白)을 위한 서정(抒情)}(1959), {아가의 방}(1970), {새벽}(1975), {사랑시편}(1983), {아가의 방 별사(別詞)}(1983), {나비의 여행}(1983), {원점에 서서}(1989)


'점점 멸하여 들어간다'는 다소 추상적인 의미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시적 화자가 미루나무에서 보고 느낀 가을의 공허감을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화자의 주관적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 채,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가을을 제시하고 있다.

1연은 시간의 이미지를 제시한 부분으로, 1·2행에서는 '한 개 돌 속에 /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것을 차가움과 냉혹함의 정적인 것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해 3·4행에서는 '옮기어 가는'·'움직임'이란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동적 이미지로 변모된다. 2연은 도치법이 구사된 부분으로, 적막한 가을의 모습을 헐벗은 미루나무를 통해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조한 시야'란 가을을 바라보는 화자의 쓸쓸한 마음을 뜻하며, '미루나무의 나상'이란 종말에 선 인간, 곧 무상한 인생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모여드는 원경을 흔들어 줄 / 바람도 없이'는 바람도 없는 적막 속에 서 있는 미루나무의 외로움과 함께 인생의 허무감을 정적 이미지로 보여 주고 있다. 3연은 미루나무의 줄기를 묘사한 부분으로서 여름날의 화려했던 푸르름을 잃어버린 그것을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 /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로 나타내어 젊은 날의 꿈과 영광을 잃고 황혼길에 선 인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이란 표현은 '나목'을 보여 주기 위한 화자의 단순한 시선 이동이라기보다는 인생의 무상성, 유한성을 뛰어넘고 싶어하는 화자의 초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연은 하늘에 맞닿아 있는 미루나무의 모습으로 비록 육신은 지상에 묶여 있지만, 정신만은 삶의 유한적 한계를 극복하고 천상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이 시는 가을의 고독한 미루나무를 밑그림으로 하여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멸입되어 자연에 귀의하게 된다는 철리(哲理)와 그것의 극복 의지를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비인간적 물질 문명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 속에서, 생명에의 신뢰와 사랑을 지키게 해 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경건한 기도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점차 삭막해져 가는 세상일지언정 따스한 인간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화자는 어린아이가 올리는 순수한 기도 같은 성스런 생활을 소망하며 옛이야기같이 순수한 인간성 회복을 기대한다. '당신'을 향한 화자의 기도는 우주의 합일에 의한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를 간직하게 함으로써 한 차원 더 높아진 차원에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다는 간절한 소망을 의미하지만, 세상은 이미 화자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병상 체험처럼 '아득한 추락과 /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 공포'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무서운 진리'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기계 문명으로 인해 비인간적인 것이 범람하는 50년대의 현실, 즉 전쟁이나 폭력 등을 암시한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인해 절대자를 향해 올리는 화자의 간절한 기도는 아름다움과 진실된 인간 세상을 향한 열망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으로, 이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순수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인의 정신 자세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나비의 여행과 아가의 꿈길을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시킨 다음, 전쟁의 공포와 아가의 꿈을 은유적으로 대조시켜 순수 의식과 휴머니즘에 대한 근원적인 동경을 말하고 있다.

전 3연의 서사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시에서 1연은 아가가 하는 꿈 여행의 전 과정을 서사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며, 2연은 아가가 꿈 여행을 떠나 체험한 구체적 내용으로, 시적 화자는 3연에서나 나타나고 있다. 밤마다 아가는 '하늘하늘' 날개짓을 하며, '수면의 강을 건너' 추억 속의 '들판'과 상상의 '바다' 위를 즐겁게 놀며 다니지만, 결국에는 '절벽'과 '미로'에 부딪치곤 가위에 눌린듯 소스라치며 놀라 깨어나는 꿈 여행을 반복한다. 이렇게 아가의 꿈 여행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못하는 까닭은 그가 아비규환의 전쟁을 겪는 악몽을 꾸기 때문으로, 시인은 소름 끼치는 아가의 꿈 여행과 아가의 순수성을 대조시키는 방법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하고 있다.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요,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이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 체험 내용은 매우 비관적인 모습으로 바로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3연은 괴로운 꿈 여행에서 돌아와 기진맥진해 하는 아가를 시적 화자가 품에 안고 위로해 주는 내용으로,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라는 마지막 구절에 휴머니즘의 주제 의식이 표출되어 있다.

'나비의 여행'과 '아가의 꿈'은 시인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의 다른 표현의 같은 상징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현실이 지닌 야수적 폭력성과 비이성적 폭압성 앞에서 나약하기만 한 나비[아가]의 여행[꿈]을 통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비인간적 가치와 무질서를 폭로하는 방법으로써 시인이 소망하는 휴머니즘의 참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시인의 휴머니즘 정신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검은 손'·'암흑'·'어둠'과 같은 어둠과 행복의 이미지에 대립하는 존재로, '진주'·'태양'·'광명' 등으로 나타난 밝음과 행복의 이미지를 표상한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과 사랑을 '눈물'과 '광택의 씨'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양분으로 해서 성장한 자식의 아름다운 모습을 '진주'·'태양'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검은 손'은 힘겨운 삶을 사시면서도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시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무화(無化)시키려는 어떤 부정적 힘 또는 방해물의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사랑을 관조적으로 노래하는 다른 연들과는 달리, 4연에서는 그것과의 대결 의지를 '사라져라'라는 명령형으로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맹물' → '눈물' → '진주' → '태양' → '광명'으로 확산되는 이미지 전개 방법을 통해 불안하고 어두운 시대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매개물로서 어머니를 예찬하고 있는 이 시는 가장 보편적인 소재를 빌어 매우 평이한 시어로써 참다운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의 시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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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화(趙炳華)

편운(片雲)

1921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45년 일본 동경고등사범 이과 졸업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하며 등단

1960년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74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1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985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95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시집 : {버리고 싶은 유산}(1949), {하루만의 위안}(1950) 외 1989년까지 56종


이 시는 조병화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그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보여 주고 있는 나그네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도 또 하나 작은 / 비둘기 가슴을 비벼 대며 밀려 가야만 한다'라는 구절에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반복구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잊어버려야 한다'는 진술은 화자의 나그네 의식을 방해하는 집착과 잡념을 벗어 버리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으로 볼 수 있다. 화자가 잊고자 하는 대상은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어떤 사람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화자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를 잊기 위해 노력하는 화자의 집요한 태도를 감안한다면, 그는 화자가 쉽게 잊을 수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잊어버려야만 한다'는 구절은 잊을 수 없는 사람까지도 모두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하는, 다분히 역설적인 내포를 갖는 진술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화자의 노력은 아무런 집착 없이 구름처럼 떠돌며 이승의 삶을 살아가는 불교의 선승(禪僧)과 같은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시의 주제는 나그네같이 흘러가는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하루만의 위안'으로 '그 날이 있어 나는 살고 / 그 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하'게 하는 인생에 대한 반성적 회상이라 할 수 있다.


편운의 시작 생활은 '인간의 본원적 고독'에서 출발하여 50년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그 여정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시집을 발간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지나친 다작(多作)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대한 체험과 그것을 통한 시인의 깨달음을 잔잔한 목소리로 전달해 줌으로써 여전히 읽는 이에게 따뜻한 감동과 위안을 주고 있다. 그의 시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렇게 '인생'이라는 크고 어려운 주제를 평이한 비유와 소박한 어법으로 노래한다는 점이다.

이 시도 고독한 나그네의 노래이며, 제재인 '낙엽'은 구름처럼 떠돌며 물처럼 흘러가야 할 시인의 분신이다. 화자는 번잡한 도시의 삶을 떠나 낙엽 지는 숲에 누워 '지나간 날'을 생각한다. 가을의 쓸쓸함과 고독 속에서 화자에겐 무수한 상념이 떠오르지만, 그것을 지우려 할수록 낙엽 지는 소리가 귀를 기웃거리게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면 푸른 하늘 속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가을 햇살이 그로 하여금 왠지 초조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화자는 '보이지 않는 곳'인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마음으로 언제까지나 고독 속에 존재하고 싶어할 뿐이다.

화자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낙엽 위를 걸으며 본격적으로 가을의 쓸쓸함과 고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육체가 낙엽 속에 버려진 것처럼 쌓인 낙엽을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고독과 슬픔에 빠져든다. 그의 고독은 '비 내리는 밤'이면 더욱 깊어져 '낙엽을 밟고 가고 / 슬픔을 디디고 돌아오'던 산책길을 생각하며 마음의 방황을 계속한다. 화자는 밤새도록 낙엽 지는 소리를 들으며 낙엽이 주는 인생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며 또 다시 아침을 맞이한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인간의 운명, 그것이 바로 낙엽의 운명이며, 자신도 결국은 그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화자는 낙엽을 보거나 밟는 행위와 낙엽 지는 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나직한 음성으로 알려 주고 있다.



이 시는 세월의 흐름이 만상(萬象)의 변모를 있게 하는 자연의 섭리(攝理) 앞에 선 인간 존재의 양식과 이러한 섭리를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달관의 경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의 등장(登場)과 낡은 것의 퇴장(退場)으로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를 세대 교체를 뜻하는 '의자'라는 평범한 소재를 통해 상징적 수법으로 그려냄으로써 인간 생활의 순리적 변모의 당위성을 시화하고 있다.

점층과 반복으로 시적 중량감과 여운을 담고 있으며, 생활과 역사성에 대한 경건함과 진지함을 경어체로 표현하여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각 연의 종결 어미를 '드리지요' ― '드리겠어요' ― '드리겠습니다'로 변조(變調)하여 세대 교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점차 증폭시켜 나아간 점도 이 시를 효과적 표현으로 만들어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먼 옛날 어느 분이 / 내게 물려주듯이' 물려 받은 이 의자를 이제는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에게 물려 주겠다는 화자의 말은 인간 존재의 변화 과정을 결코 절망적인 것이 아닌 희망의 눈으로 바라본 기대감의 표현이요, 생의 긍정적 인식에서 나온 시인의 깊은 지성적 윤리 의식의 반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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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덕수(文德守)

심산(心山), 청태(靑笞)

1928년 경상남도 함안 출생

홍익대학교 국문과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침묵>, <화석>, <바람 속에서>가 추천되어 등단

1964년 평론 [신라 정신의 영원성과 현실성]으로 현대문학상 수상

1971년 {시문학} 창간

1978년 현대시인상 수상

1981년 아카데미 학술상 수상

1985년 펜 문학상 수상

현재 홍익대학교 교수

시집: {황홀}(1956), {선(線)·공간(空間)}(1966), {새벽바다}(1975), {영원한 꽃밭}(1976),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1980), {다리놓기}(1982), {문덕수시선}(1983), {조금씩 줄이면서}(1985), {그대, 말씀의 안개}(1986) 등


이 시는 무의식의 심리 상태에서 연상 작용에 의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인간의 내면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소위 초현실주의적 기법이 사용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이 시에서의 '언어'도 무의미한 존재를 의미 있게 하는 명명 수단(命名手段)이 되며, 각 연에서 '나비'·'깃발'·'밀물'·'불꽃'·'꿀벌'에 비유되어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들 사이의 상호 관련성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모호할 뿐이어서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시법(詩法)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연에서 '언어는 /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 되'었지만, 4연에서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 되'고 있다. 결국 '언어'는 '꽃'을 매개로 하여 '나비'가 되기도 하고, '꿀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편,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 펄럭이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꽃의 둘레에서 / 밀물처럼 밀려와 / 불꽃처럼 타다간 / 꺼지'는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각각의 아무 의미 없는 사물에다 인식의 주체인 화자가 그것에 합당한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은 '나비', 또는 '꿀벌'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의미했던 사물을 '나비'나 '꿀벌'이라는 의미 있는 사물로 존재하게 하는 매체인 '꽃'은 대체 무엇일까? '나비'와 '꿀벌'은 모두 '꽃'을 찾아드는 사물들이다. 다시 말해, '나비'와 '꿀벌'은 '꽃'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꽃'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사물들이다. 따라서 '꽃'은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발화자인 화자로 볼 수 있다. 인식 주체인 화자가 없다면, '나비'는 결코 나비가 될 수 없고, '꿀벌' 또한 꿀벌이 될 수가 없다. 그것들은 의미 부여 수단인 '언어'를 통해서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합당한 '언어'를 선택하지 못함으로 인해 원래의 존재와는 전혀 상관 없는 존재로 파악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렇듯 정확하지 못한 의미 부여 행위를 일러 '펄럭이다가 쓰러지'는 것, 또는 '타다간 꺼지'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의 비유 개념인 '나비'·'깃발'·'밀물'·'불꽃'·'꿀벌' 중에서 '깃발'·'밀물'·'불꽃'은 '언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왜냐 하면, '나비'와 '꿀벌'은 '언어'와 직접 비유인 은유로 연결되어 있음에 비해, '깃발'·'밀물'·'불꽃'은 '펄럭이며 쓰러지'고, '밀려오고', '타다가 꺼지'는 '언어'의 속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간접 비유인 직유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시는 인식론을 바탕으로 인식 주체인 발화자가 인식 객체인 사물에 대해 올바른 의미 부여를 함으로써 정확하게 사물을 인식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하고 있다.


이 시는 이른바 '무의미의 시' 계열의 작품으로, 일체의 관념과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이미지와 이미지의 결합에 의한 순수 조형물로서의 시를 보여 주고 있다. 문덕수가 그의 시에 동원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기하학적인 형상을 드러낸다. 기하학적 상상력이라 부를 수 있는 그의 시작 태도는 선과 공간으로 요약되는 이미지의 원형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의 시는 이러한 이미지의 결합에 의해 창조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세계를 지향한다. 물론 새로이 창조되는 공간, 새로운 세계는 앞서 지적한 대로 조형적이며, 균제의 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미지의 형상들을 놓고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어떤 철학적인 관념을 찾아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의 시는 이미지 그 자체를 하나의 실체로 보려고 하는 모더니즘적 신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시작 방법은 소재 중심주의적인 시가 갖고 있는 좁은 한계를 벗어나 좀더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려고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쇄 반응, 즉 이미지의 자율성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자유 연상과 자동 기술법이라는 초현실주의적 수법을 원용하는 한편, 거기에 모더니즘의 특성인 분석적 언어 해체의 묘를 가미시키고 있다.

이 시에서 '선'은 '실뱀'이 되기도 하고, '빗살'이 되기도 하고, 다시 '꽃'과 '불꽃'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비유 관념들로서 다만 시인의 잠재 의식 속에서 자유 연상에 의해 우연히 추출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시인이 추구하는 바를 찾아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뿐더러, 왜 이러한 표현을 했느냐고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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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기(李炯基)

1933년 경상남도 진주 출생

1950년 진주농림학교 재학 중 {문예} 추천으로 등단

1956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1956년 한국문학가협회상 수상

1966년 문교부 문예상 수상

1976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2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3년 부산시 문화상 수상

1985년 윤동주 문학상 수상

1990년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집 : {적막강산}(1963), {돌베개의 시}(1971), {꿈꾸는 한발(旱魃)}(1975), {풍선 심장}(1981), {보물섬의 지도}(1985), {심야의 일기 예보}(1990), {죽지 않는 도시}(1994) 등

평론집 : {감성의 논리}(1976), {한국문학의 반성}(1980), {시와 언어}(1987)


이 시는 '무성한 녹음'과 '열매'를 위하여 떨어지는 꽃송이, 즉 낙화를 통해 이별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통찰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인 1957년에 썼다고 한다. 17세에 등단하여 일찍이 그 조숙성을 세상에 드러낸 바 있는 시인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대 중반의 청년이 썼다고는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시는 차분한 어조로써 삶의 보편적 측면에 대한 깨달음과 체념, 생의 예지 같은 것을 펼쳐내고 있다. 물론 시인의 내부에 서려 있는 젊음으로 해서 감상적 색채가 완전히 탈색한 것은 아니더라도 전후의 절망과 허무가 완전히 가셔지지 않은 당시의 문단 상황에서 이같이 정제된 서정시를 보여 주었다는 점은 이 작품의 가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시의 첫 연은 낙화의 아름다움을 서술하는 부분으로, 작품 전체의 주제와 인상을 집약하고 있는 경구이자 압권이다. 시인은 떨어지는 꽃을 보며 그 꽃의 사라짐을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환치해 놓는다. 사랑과 이별이 젊은이의 몫임에는 틀림없지만, 시인은 그것을 다만 젊은이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 범사의 보편적 국면으로 확대시킨다. 그러므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낙화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랑하면서도 떠나야 할 것을 알고 떠나가는 연인일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는 탐나는 자리라 하더라도 그에 연연하지 않고 떠나가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꽃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별이나 죽음도 그 참된 의미를 알고 이루어질 때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고귀한 깨달음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3연은 1연의 내용을 구체화하여 사랑의 사라짐과 나의 떠남을 꽃이 떨어져 분분히 흩날리는 모습으로 보여 준다. 4·5연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사랑과 이별의 아픈 체험을 거쳐 나의 청춘도 사라짐을 노래한다. 4연의 결구행이나 다름없는 시행을 5연으로 굳이 독립시킨 시인의 의도는 이 시가 사랑의 별리나 젊음의 아픔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는 영혼에의 축복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1행으로 이루어진 5연을 중심축으로 전후가 상호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전반부의 '젊음 ― 고뇌'와 후반부의 '성숙 ― 인내'의 대립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소 퇴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5연은, '낙화'가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과 가을날의 '열매'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 즉 통과 제의(通過祭儀) 같은 것임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네 삶도 그같이 무성한 녹음과 풍성한 결실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청춘기의 고통을 슬기롭게 감내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 준다.

6·7연은 이러한 깨달음이 심미적 의장(衣裝)을 통해 표현된 부분이다.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과 같은 표현은 내면의 추상적 사고를 가시적(可視的) 정경으로 나타낸 것으로, 고통의 인내가 내면적 아름다움과 관련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의도적 장면이다. 또한 지금 겪는 아픔이 성숙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슬픔 자체는 부정할 수 없기에 마지막 시행에서 물의 이미지를 이용, 눈물의 형상을 암시하고 비애의 정서를 형상화하였다.


첫 시집 {적막강산}에서 출발하는 이형기의 초기시 세계는 생의 고독감과 근원적 외로움이 주조를 이루면서 이를 통어(統御)하는 초월과 달관의 의식 세계를 지향한다. 그리움과 기다림의 정서적 색채, 외로움과 적막감, 비어 있는 마음의 여백을 채워 주는 내밀한 존재의 무상감이 그의 초기시들을 지배하는 서정주의의 바탕을 이룬다. 그의 초기시는 때로 자연 친화의 관조적 비애감이 배경이 된 생의 허무 인식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혹은 존재의 절대적 고절감을 확인하는 내적 허정(虛靜)의 세계관의 표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는 그러한 초기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세속적 욕망을 초월한 무욕의 정신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이 시의 핵심적 전언은 시적 주체인 화자가 시적 대상인 '산'의 전모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산의 전모는 다만 '표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화자가 보는 것은 다만 그 산의 '윤곽'일 뿐이다. 그러므로 '산'은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어떤 신비로운 존재요, 그 속에 무한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경이로움의 대상이다. '진좌한 무게'로 말미암아 '산'을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산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비'는 단순히 화자의 시야를 가리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을비'는 소멸의 공간을 '산'에 부여하고 '산'이 견뎌온 시간의 무게를 암시해 준다. 이렇게 '가을비'는 '산'에 신비감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그 신비의 일부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산'은 '가을비'에 의해서만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실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은 '산'으로 대표된 어떤 고립된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일부를 이루어 하나로 통합된 우주적 질서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방심무한 비에 젖는 산'이 만들어 내는 '어룽진 윤곽'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임을, 또한 '그 옛날 격노의 기억'마저도 지워 버린 '산'이 진정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 화자는 무욕의 상태에서 '눈물 어린 눈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삶의 태도를 갖는다. 이렇게 이형기의 시는 소멸의 시간, 공간을 견디는 존재의 신비에 대한 경이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경이감이야말로 세속적 욕망을 벗어낸 자만이 이룩할 수 있는 달관적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형기는 시적 대상을 보다 내면화된 영역으로 끌어들여, 소위 '정감의 미학'을 추구함으로써 서정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감각성을 살리기 위해 치밀한 언어의 구사에 노력하지만, 화려한 수사에 빠지지 않음은 물론, 자연에 대한 친애감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정서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내밀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 첫 시집 {적막강산}에 이어 {돌베개의 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지향과 함께 자기 존재에 대한 고독한 상념들이 주로 등장한다.

이 시도 정교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며,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의 청자인 '그대'가 되어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이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미약한 '장수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적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 내는 '깨어 있는 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김수영의 <폭포>와는 전혀 다른 '폭포'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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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길(金宗吉)

1926년 경상북도 안동 출생

혜화전문학교 국문과, 고려대 영문과 및 동국대 대학원 졸업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門)>이 입선

1955년 {현대문학}에 <성탄제>를 발표하며 등단

1965년 시론집 {시론} 발간

1986년 {김종길 시전집} 발간

시집 : {성탄제}(1969), {하회(河回)에서}(1977), {황사현상}(1986)


김종길 시의 뿌리를 이루는 것은 유가적(儒家的) 전통이다. 그의 시의 특성인 절제된 감정과 시어, 명징한 이미지와 고전적 품격 등은 모두 유가적 덕목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보여 주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결국 그의 이런 근본에서 자라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이른 화자는 '눈'을 매개로 하여, 어린 시절 병든 자신을 위해 눈 속을 헤쳐 산수유 열매를 따 오시던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 아버지는 부모의 은덕을 효로 보답해야 한다는 효제(孝悌)의 원리를 절로 떠오르게 하는 아버지이며, 화자는 그런 아버지로 표상되는 애정 넘치는 생활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열 개의 연이 시간적 추이 과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며, 1∼5연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6∼10연의 어른이 된 화자의 체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면서도 4연과 6연은 그 시간적 전개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산수유 열매'와 '눈'을 대비시켜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고도의 시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열병을 앓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붉은 산수유 열매'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어른으로서의 화자는 이제 어린 시절에 앓던 열병이 아니라 열병을 앓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 화자의 가슴에 서려 있던 열병이 지금에 와서는 그리움이 대신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열병과 그리움이 대칭적 관계를 갖게 된다. 또한,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은 '엄부자모(嚴父慈母)'로 대변되는 유교적 전통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차가운 옷자락만큼 아버지의 사랑이 깊고 뜨거움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전반부의 시적 공간은 시골이며, 후반부의 공간은 도시이다. 시골의 방에는 '바알간 숯불'이 피어 있고,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다. 도시에도 역시 '눈'이 내리고 있지만, 방이 제시되지 않는 대신 '내 혈액'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나타나 있다. '내 혈액'과 '숯불'은 동일한 붉은빛으로 서로 상관 관계를 가지며 시의 깊이를 더해 줌은 물론, 이러한 공간 구조는 '산수유 붉은 열매'에 의해 내적 통일성을 얻게 된다.

이 시의 시간은 전·후반부 모두 '성탄제 가까운 밤'이다. 성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이지만, 여기서는 성탄제의 그런 피상적 의미를 벗어나 화자와 아버지의 새로운 만남을 촉진시키고 조명하는 기능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탄제는 서구의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로서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전통적·복고적 정서로 전이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의 정점을 보여 주는 한편, 그 분위기에 싸여 가족간의 사랑을 한 차원 상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부자자효(父慈子孝)의 윤리관으로 대표되는 관습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한 차원 더 깊어진 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눈'은 고요한 회상의 분위기와 함께 춥고 쓸쓸한 겨울 장면을 조성하는 기능을 갖는다. 또한, 그 눈을 헤치고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열매'가 화자의 혈액 속에 녹아 흐른다는 것은 육친간의 순수하고도 근원적인 사랑이 늘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수유 붉은 알알'은 화자의 내부에 생명의 원소처럼 살아 있는 사랑의 상징이 됨으로써 거룩한 '성탄제'의 본질적 의미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 시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하여, 평범한 언어와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으로 건강한 삶의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자는 열띤 감정이나 감상에 휘말리지 않은 차분한 음성으로 독자에게 긍정적이면서 희망적인 인생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얼핏 읽으면 시적 감흥이 별로 없는 듯 보이나 그 속에 담긴 삶의 깊은 의미는 우리를 모두 경건하고 즐거운 삶의 세계로 이끌어 주기에 충분하다.

이 시는 7연의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달관·초탈의 경지를 시적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많은 역경을 겪은 다음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으로, 주어진 삶을 더 지혜롭게 영위하여 기쁨과 보람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날, 인생살이의 고달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화자는 더 높은 이상의 실현을 위해 그것을 긍정적, 희망적 삶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화자는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을 슬기로 견뎌내는 여유로움과 주어진 삶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려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활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그런대로', '꿈도 좀','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등의 구절에서 잘 드러나 있다.


'명징성(明澄性)과 염결성(廉潔性)'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종길 시의 특징은 절제된 언어와 감정으로부터 비롯되는 고전적 품격이다. 그의 시는 거의 다 어떤 풍경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 풍경은 대단히 선명한 이미지로 제시된다. 그래서 그의 시를 흔히 이미지즘 시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미지스트와는 달리 고전적 품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가 갖는 미덕은 탁월한 상상력으로 빚어내는 이미지의 명징성과 고전적 품격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염결성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어느 봄날의 황사 현상을 말하고 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아무 의미나 감흥이 없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제된 언어들이 매우 치밀한 조직 원리에 의해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계랍'이란 진통제나 해열제로 쓰이는 하얀 가루약으로, 주로 오한에 걸린 사람이 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발열처럼 복사꽃이 피'는 봄날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금계랍 같은 눈이 내리'기도 하면서 봄을 느낄 수 없는 추운 날씨였지만, 오늘은 어느새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수많은 꽃들이 떼를 지어 피어나는 봄날이 되었다. 그것을 시인은 오한과 발열이 반복되는 독감 환자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며칠 전, 흩날리던 하얀 눈발은 '금계랍' 같은 모습이며, 지금 시인의 눈앞에서 툭툭 꽃망울을 터뜨리는 복사꽃은 마치 발열 같은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본다면, 독감 환자는 목이 아프고 현기증이 일어나기에 '목이 타는 봄가뭄'이란 표현과 '현기증 나는 아지랑이'라는 표현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봄날, 기다리는 비는 한 방울 내려 주지 않고 봄가뭄에 시달리는 대지에는 며칠째 황사 현상만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이 시는 일기가 불순한 어느 봄날의 황사 현상을 독감 환자의 이미지로 그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금계랍'·'오한'·'발열'·'현기증' 등이 치밀하게 조립되어 하나의 선명한 이미지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미지를 통해 비는 오지 않고 황사만 자욱한 봄날에서 가질 수 있는 지리하고 답답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게 된다. 다분히 혼란스럽고 들뜬 상태의 봄날 풍경을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절제되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김종길은 황사 내리는 가문 봄날 같은 어지러운 마음조차도 절제하여 정신의 품위, 즉 고전적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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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복(李壽福)

1924년 전라남도 함평 출생

조선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5년 {현대문학}에 <실솔>, <봄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57년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1969년 시집 {봄비} 발간

전남문화상 수상

1986년 사망

시집 : {봄비}(1969)


이 시는 봄비 내리는 날의 애상적 정서를 7·5조의 음수율과 3음보격의 민요조로 표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수복의 시는 섬세한 감성과 한국적인 정감을 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시는 자연에 대한 관조적, 친화적 태도를 전통적 율조에 의탁하여 형상화함으로써 전통 서정시의 장점을 고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적 화자는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시어와 '강나루' → '보리밭길' → '꽃밭' → '들판'으로 시선을 확대시키는 방법을 통해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한편, 으레 그러리라고 짐작되는 것을 다짐하여 말할 때 쓰는 '―것다'라는 종결 어미를 반복함으로써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전달하고 있다. 이 시가 봄의 생명력을 예찬하는 작품이면서도 전통적 애상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봄은 화자에게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일깨워 줌으로써 봄비 그친 뒤 강 언덕에 짙푸르게 솟아날 풀잎 같은 서러움을 맛볼 계기가 되는 것이다. 마침내 4연에서는 봄의 상징물인 아지랑이를 '임 앞에 타오르는 / 향연'으로 표현함으로써 화자가 서러움을 느끼는 이유, 즉 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봄의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통해 임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함으로써 절망적인 분위기로 나아가는 것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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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삼(金宗三)

1921년 황해도 은율 출생

일본 토요시마(豊島)상업학교 졸업

1954년 {현대예술}에 <돌각담> 발표

1957년 전봉건,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발간하며 본격적인 작품 생활 시작

1971년 <민간인>으로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1978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4년 사망

1989년 {김종삼 전집} 발간

시집 :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공저, 1957), {십이음계}(1969), {시인학교}(1977), {북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큰 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1984), {김종삼 전집}(1989), {그리운 안니 로리}(1989)


김종삼은 고도의 비약에 의한 어구의 연결과 시어가 울리는 음향의 효과를 살린 초현실주의 기법을 원용하여 동안(童眼)에 비친 이미지로써 순수 지향의 의식을 펼쳐 보인 시인이다. 초기에는 시행의 단절, 난삽한 한자어의 배치, 의미의 비약 등을 활용하여 기법의 실험성을 드러내다가, 후기에는 점차 평이한 진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체험을 드러내고 행간의 여운을 통하여 감추어진 의미를 암시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 시는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 ―처럼'으로 묶인 세 개의 연에서 그 비교 대상이 생략됨으로써 완전한 문장을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쓰다가 그만 둔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끊어진 그 시상들을 '북치는 소년'이라는 제목을 중심으로 엮어 보면, 시인이 의도하고 있는 통일된 시상을 찾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연의 ' ―처럼' 뒤에 '북치는 소년'을 덧붙이면, 전체의 맥락이 완전하게 살아나 독자의 가슴 속에서 여운으로 완결됨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서양에서 우리 나라의 어느 가난한 아이에게 아름다운 카드가 온다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김종삼 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혼자이고 가난하며 비극적 존재로 나타난다. 이 시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2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가난한 아이로 비애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므로 6·25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전쟁 고아로도 볼 수 있겠다. 성탄절이 가까운 어느 날, 그 아이는 서양 소년이 북을 치고 있는 그림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는다. 그러나 카드 속에 담겨 있는 '북치는 소년'·'양떼'·'진눈깨비' 등의 이국적 풍광(風光)들은 그에게 막연한 아름다움의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다. 아이는 그 환상적인 풍경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그는 곧 그것이 다만 화려한 장식에 불과한, '내용 없는 아름다움'임을 깨닫는다.

이렇듯 이 시는 눈에 비친 사상(事象)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시가 아니라, 그 사상 뒤에 배음(背音)으로 깔려 있는 이미지에 의해서 조형된 시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어떤 사상이나 의미 내용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다만 각 시어들이 구축해 놓은 아름다움 그 자체만을 느낄 수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이 시는 6·25의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으면서도 전쟁의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목으로 쓰인 '민간인'이라는 단어는 관리나 군인이 아닌 '보통 사람'이란 뜻으로, 남북 분단의 비극이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끼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배경을 제시하고, 그 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이렇다 할 생각과 느낌을 덧붙이지 않은 채 다만 보여만 줄 뿐이다. 그것은 시인이 그 비극적 상황을 비정하리만큼 객관적으로 그려 내면서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것인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작 방법은 독자의 상상력을 통하여 더 깊은 생각과 느낌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은 시인에게 기억하기조차 끔찍했던 공포의 사건으로, '용당포'라는 지명과 '1947년 봄'이라는 시간을 통해 더욱 구체화됨으로써 장장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무서운 사건은 다름아닌, 전쟁이 발발하기 전, 북한 주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남북 왕래가 금지된 38선을 넘어 월남을 감행하는 극한 상황에서, 우는 젖먹이 아이까지 바다 속에 던져 넣던 비극적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라는 구절의 '수심'은 바로 분단이 가져다 준 비극의 깊이요, 그의 가슴에 각인된 고통과 슬픔의 깊이라 하겠다.


'시가 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만 시인이 시내를 배회하다가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 빈대떡을 먹'던 중, 자신이 길거리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야말로 고생스럽게 살면서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알파'요, '고귀한 인류'요, '영원한 광명'이며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는 이 시의 진술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인은 유치하다고 생각할 만큼 단순한 이 진술 속에 인정이 사람다움의 기초라는 인식을 담아냄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신의 정신 세계를 드러내는 한편,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시인이 행하여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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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식(金冠植)

현현자(玄玄子), 우현(又玄)

1934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동국대 농대 중퇴

1952년 시집 {낙화집(落花集)} 발간

1955년 {현대문학}에 <연(蓮)>, <계곡에서>, <자하문 근처>가 추천되어 등단

1970년 사망

시집 : {낙화집(落花集)}(1952), {김관식 시선}(1956), {다시 광야(曠野)에}(1976)



김관식은 한문과 동양의 고전에 능통하여 동양인의 서정 세계를 동양적 감성으로 구상화함으로써 특이한 시풍을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세련된 시어와 밝은 동양적 경지로 승화하려는 높은 정신의 추구를 엿볼 수 있으며, 서양 외래 사조를 배격하고 동양적 예지의 심오한 세계로 몰입하여 그 경지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세속적 생활 방식을 무시한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던 그는 결국 가난과 질병으로 36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석상을 소재로 하여 한없는 그리움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너무나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돌이 되었다는 이 시의 내용은 백제 가요 <정읍사>나 신라 시대에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설화와 접맥되어 있다. 또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김소월의 <초혼>에서도 그와 유사한 상황이 그려져 있다.

이 시는 행이나 연 구분은 물론, 구두점까지도 철저히 배제시킨 산문시이다. 이러한 형식상 특성은 독자에게 거침없이 작품을 읽게 함으로써 그리움으로 인해 돌이 되었다는 작품의 내용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효과가 있다.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첫 문장은 노을이 질 때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심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대 가신 곳 머언 나라'는 임이 화자 곁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떠났음을 알게 해 준다. 둘째 문장은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출렁이는 물결 소리'는 화자가 어느 바닷가에 서 있음을, '동정'은 화자가 여성임을 알게 해 준다. 셋째 문장은 극한적 절망 때문에 화자가 돌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임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과 눈썹 가장자리에 번지는 피눈물, 피눈물에 얼룩진 동정, 그리움을 전할 길 없는 답답한 마음, 맺힌 한으로 돋아난 혓바늘 등으로 말을 잃은 화자는 결국 '땅을 구르며 몸부림치며 궁그르'는 절망의 극한 속에서 말문이 열리는 대신, 하늘을 우러러 돌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 '돌'은 임에 대한 화자의 사무친 그리움의 돌이며 슬픔과 한이 응결된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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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룡(朴成龍)

남우(南隅)

1932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1956년 중앙대학교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화병정경(花甁情景)>, <교외(郊外)>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57년 전남문화상 수상

1961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박희진, 박재삼 등과 함께 {60년대 사화집} 동인 활동

1976년 시문학상 수상

시집 :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1969), {춘하추동(春夏秋冬)}(1970), {동백(冬柏)꽃}(1977), {휘파람새}(1982)


이 시는 바람이라는 평범한 소재에서 삶을 새롭게 해 주는 활력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낸 작품이다. 박성룡의 초기시는, 풀, 나무와 같은 작고 사소한 자연물에서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고, 다시 이것을 서정성과 서경성이 융합되도록 표현함으로써, 전위적인 실험도 전통적 정한의 세계에도 기울지 않은 온건하고 안정된 형태를 갖춘 특징을 보여 준다.

<교외>라는 제목하에 발표한 세 편의 시 중 마지막 것인 이 시는 형태상 일반적인 우리 시가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즉, 앞 절이 길고 뒷 절이 짧은 형태[前大節 後小節]가 아니라, 앞 절이 1행이고 뒷 절이 10행인 다소 특이한 형식이다. 화자는 뒷 절 3행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삶의 열정을 잃고 낙담해 있는 상태이다. 그러기에 앞 절에서 화자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촉매재 같은 '바람'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바람'은 '풀섶'을 흔들고,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 무형의 것'이지만,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대지를 감싸고 나를 애무하는 '풋풋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싱싱한 생명의 숨결이다. 화자가 이루고자 하는 삶은 세상의 모든 것을, '저 이름 없는 풀꽃'까지도 사랑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이 사랑을 일깨우고 싱싱하게 하는 활력소로서의 바람을 부르게 된다. 이 때 바람은 단순히 자연 현상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숨결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시가에서는 '바람'이 대개 시련이나 역경 등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데 반해, 이 시에 드러난 '바람'의 의미는 대단히 긍정적인 것으로, 이 작품을 신선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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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래(朴龍來)

1925년 충청남도 논산 출생

1943년 강경상업학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 <황토(黃土)길>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1년 제5회 충남문화상 수상

1969년 시집 {저녁눈}으로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 수상

1980년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80년 사망

1984년 시전집 {먼 바다} 간행

시집 :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궁}(1979)


박용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향토적 정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다. 아무리 작은 자연 현상조차도 예사로이 넘기지 않는 관찰력과 언어의 군더더기를 일체 생략하고 시적 압축으로써 보여 주는 섬세하고 간결한 함축미는 그를 70년대 중요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하고 있다.

이 시는 감이 한여름의 땡볕에 붉어지고 가을 서리에 익어서 눈 오는 겨울 어느 날 밤 제상(祭床)에 오른 것을 노래하고 있다. 단 2개의 문장을 14연으로 배열하여 전체적으로 언어의 절제와 표현의 간결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여 한 폭의 생동하는 소묘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구성은 상당히 치밀하고 적잖은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격을 보면 1∼2음보로 한 연을 형성하고 있지만,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11연의 경우 의미상 10연에 연속되는데 음절 수가 10연에 비해 반으로 줄어 휴지(休止)가 길게 붙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의미 단락상 1·2·3 / 4·5·6 // 7·8·9 / 10·11 / 12·13·14연으로 구분됨으로써 10연과 11연의 위치가 전체 시상 전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또한, 감이 여름에 익고 가을 서리를 맞고 있다가 겨울에 제사상에 오르는 시간적 추이 과정에 입각한 시상 전개에 맞춰 공간적 배경의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전반부에서는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돌담 위 연시'로 익었다고 하여, '꽂힌'의 하강과 '위'라는 상승의 대조를 드러내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도 '깊은 잠'의 하강과 '깨어나'·'빛나다'의 상승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전반부의 주어는 '땡볕'이고, 후반부의 생략된 주어는 '감', 서술어는 '빛나다'로 되어 있어 전반부의 주어인 '땡볕'에 연결됨으로써 내용이나 형식이 고도의 치밀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용래는 '소묘법(素描法)'이라는 표현 방법과 반복, 병렬에 의한 민요적 구조를 통해 그의 독창적 시 세계를 개척한 전형적 향토 시인이다. 그의 시가 대부분 정지적(靜止的) 언어로써 정상적인 구문보다는 명사나 명사형 어미로 시행을 마감시킨다거나 행간(行間)의 여백을 중시하는 것도 모두 소묘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그러한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시인의 정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말집 호롱불', '조랑말 발굽', '여물 써는 소리', '변두리 빈터' 등 네 장면의 제시 이외에는 동일한 구문의 4회 반복에 불과한 이 시는, '저녁눈'을 통해 가려져 있는 것, 소외되어 있는 것, 그리고 잊고 있던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먼저 시인은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을 반복 강조함으로써 리듬의 효과와 함께 유전(流轉)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녁눈'은 물질적 현상으로 언젠가는 없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이다. 그와 함께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사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 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제 그것들 위로 '붐비듯이' 늦은 저녁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애상적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사물들과 결합되어 더욱 을씨년스러운 겨울 저녁 풍경을 한 장의 사진처럼 묘사하고 있을 뿐,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4행시 형식의 커다란 행간 속에 그 감정이 깊숙이 감추어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문명의 거센 물결에 밀려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 토속적 세계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이 '눈발'로 환치되어 '붐비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시인은 의도적으로 눈 내리는 모습을 '붐비다'로 표현함으로써 적막한 분위기와 '소멸'의 이미지를 역동성의 눈발로 상쇄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은 그로 하여금 화려한 문명의 도시보다는 밀려나 있는 변두리, 즉 향토의 사물 위에 머물게 한다. 시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늦은 저녁'이라는 하강적 이미지와 '눈발'이라는 소멸의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 낸 <저녁눈>은 공간적 배경이 되는, 같은 이미지의 네 가지 사물들과 결합됨으로써 이 작품을 '텅 빈 아름다움'의 시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 시는 겨울밤에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을 간결한 소묘법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이 그려 놓은 이 소묘 속에서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은 여백의 공간 속으로 침윤되어 있을 뿐, 그 감정의 크기나 깊이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쓸쓸함과 애틋함 또는 삶의 무상감이 뒷그림처럼 작품에 깔려 있으나, 그것이 감상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것을 4행의 절제된 시 형식과 압축된 표현으로 적절히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달빛'·'물'·'바람' 등의 전원 상징의 시어와 '잠'·'고향'·'마늘밭'·'추녀'·'발목' 등의 인간적 체취의 소재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를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근원적 향수는 '눈'·'달빛'의 시각적 이미지와 '물'·'바람'의 청각적 이미지의 대응을 통해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를 유발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의 본질적 고독과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외로움이 전원 상징의 시어 속에서 향수와 그리움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박용래의 시는 전원 상징의 시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친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본질이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와 그리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향토적인 생활 정서에 뿌리박고 있는 박용래의 시는 문명의 때[垢]가 묻지 않은 토속 세계를 통하여 삶의 무상함을 정지적(靜止的) 언어로 표현한다. 형식면에서는 주로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비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상을 형상화시키는 데 그가 즐겨 사용한 방법은 '소묘법'이다. 비록 단조로운 단색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간결하고 날카로운 소묘는 회상물의 대상을 객관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의 많은 시가 정상적인 구문(構文)보다 명사나 명사형 어미로 시행을 끝맺고 있는 것도 그의 소묘적 방법의 한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행간의 여백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겨울 산촌의 외딴집에서 홀로 사는 노인의 고독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자어를 배제한 토속어와 경어체 구문의 사용, 그리고 명사 종결 어구를 삽입하는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통해 산촌의 적막함과 노인의 고독감의 깊이를 더해 주는 한편, 향토적 정서에 바탕을 둔 비유와 다양한 감각의 이미지, 쉼표와 의태어의 적절한 사용은 이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끝 부분에서 나타나는 귀뚜라미로의 감정 이입은 노인의 고독을 심화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연 구분이 없는 산문시 형태로, 화자는 원경에서 근경으로 시선을 이동하며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이 시는 먼저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다는 다소 환상적인 세계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단순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화속 같은 세계가 아니라,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적 토속 세계이다. 노인이 살고 있는 그 곳은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조그맣고 갱 속같이 파묻힌 마을로, 노루꼬리만큼 짧은 겨울해가 저물면 각 집들은 봉당에 불을 매단다. 그런 마을의 한구석에 위치한 노인의 '외딴집' 창문에 이슥토록 켜진 불빛은 마치 잘 익은 '모과빛' 같이 싱그럽기만 하다.

깊어가는 겨울밤, 노인은 문득 잠에서 깨어나 시장기를 느끼고는 무나 고구마를 깎으며 행여 누군가 찾아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다림으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노인은 짚단과 짚오라기의 서걱거림에서부터 처마깃의 이름 모를 새의 작은 날개짓에 이르기까지 청각을 집중해 보지만, 자기를 찾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 외로움에 절망해 버린다. 노인의 이러한 행위는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깊이를 증폭시켜 주는 동시에, 시인이 가지고 있는 섬세한 감각을 드러내는 징표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한동안 계속되던 노인의 밭은 기침 소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벽 속에서는 겨울 귀뚜라미가 떼를 지어 벽이 무너지라고 울어 댄다. 여기서 '겨울 귀뚜라미'는 동료로부터 떨어져 나와 외톨이가 된 귀뚜라미를 일컫는 것이며, 떼를 지어 벽이 무너지라고 우는 것은 겨울밤의 고요를 깨는 귀뚜라미의 울음 소리가 그만큼 크게 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외톨이가 된 귀뚜라미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의 처지가 교묘히 일치하게 됨으로써 결국은 귀뚜라미는 노인의 감정이 이입된 사물임을 알 수 있다. 그토록 서럽게 울어 대는 귀뚜라미처럼 노인도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고독감과 함께 산촌의 적막함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때, 문밖에선 가는 눈발이 치는지 또는 함박눈이 한바탕 뿌려주는지, 어디선가 희끄무레한 달무리가 떠오르는 풍경을 제시하면서 시상을 끝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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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욱(宋稶)

1925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영문과 졸업 및 미국 시카고대학 대학원 수학

1950년 {문예}에 <장미>, <비오는 창>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1년 시집 {하여지향} 발간

1963년 평론서 {시학평전} 발간

1980년 사망

시집: {유혹(誘惑)}(1954), {하여지향(何如之鄕}(1961), {월정가(月精歌)}(1971), {나무는 즐겁다}(1978), {시신(詩神)의 주소(住所)}(1981)


이 시는 모두 12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로서 영미 주지주의의 영향을 받고 쓴 실험적 작품이다. '시는 문명(文明)의 표정(表情)'이라는 송욱 자신의 시관(詩觀)이 잘 반영된 이 시는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6·25 이후의 한국 현대의 사회 풍속, 정치적 혼란, 사상적 카오스(Chaos), 이지러진 문명 등을 해학, 기지, 풍자, 야유의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송욱은 <장미>, <꽃>에서 관능과 감각을 균제한 형식 속에 응축시킨 바 있지만, 점차 풍자와 위트로 현실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의 장시 <해인연가(海印戀歌)>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자조와 역설로 이어지며, <하여지향>에서는 현실에 대한 불안과 그 극복의 의지를 역설과 기지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강렬한 시 의식이 자기 혐오에 빠지거나 정서적 파탄에 이르고 있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의 장시는 전체적인 시적 구성이나 균형을 거의 계산하고 있지 않으나, 지성에 근거한 시 정신의 치열성을 최대한으로 확대시키고 있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하여지향(何如之鄕)'이란 말은 고시조의 <하여가(何如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의 마을'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마을은 '부조리(不條理)가 가득한 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덩이', '―처럼' 등 동음(同音)의 나열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율격을 조성하고 있으며, 연쇄법과 특유의 재담(才談)에 의해 무거운 내용을 가볍게 전달하려는 시인의 의도가 나타나 보인다. 전반적으로 실험적 수법은 돋보이지만, 서정성의 결여와 지나칠 정도의 말장난으로 인해 언어적 유희로만 그치고 말았다. 가치관의 전도와 혼란으로 인한 무질서와 부조리의 현실 세계에는 오직 '배만 있는 남자들'과 '목이 없는 여자들', 즉 주체성을 상실한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화자는 이처럼 타락해 버린 세계에서는 더 이상 '내가 길이 아니면 길이 없'음을 인식하고 절망하지만, '안개 같은 지평선'으로 제시된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내일이 등극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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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림(金光林)

본명 : 김충남(金忠南)

1929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

1960년 국학대학 문학부 졸업

1948년 {연합신문}에 <문풍지> 발표하여 등단

1957년 김종삼, 전봉건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1973년 제5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75년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시집 : {상심하는 접목}(1959), {심상의 밝은 그림자}(1962), {오전의 투망}(1965), {학의 추락}(1971), {갈등}(1973), {한겨울 산책}(1976), {언어로 만든 새}(1979), {천상의 꽃}(1985), {멍청한 사내}(1988), {말의 사막에서}(1989) 등

시론집 : {존재의 향수}(1975), {오늘의 시학}(1978)



이 시는 서설(瑞雪) 속의 선미(禪味) 어린 산사(山寺)의 풍경과 분위기를 자유 연상에 따라 전개시킨 작품이다. 눈 내린 겨울 산의 암자와, 그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물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결합시킨 까닭에 다소 이해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이들 이미지들이 이루어 내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시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은 화자가 경험한 몇 개의 독립된 경험, 즉 '가야산 독경 소리' ― '철 늦게 내리는 눈' ― '매화 봉오리' ― '눈 내리는 해인사 열 두 암자' ― '벽을 향해 수도하는 노승의 미소'를 제시함으로써 그것들의 결합으로 연상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화자는 어느 해 여름, '가야산 해인사'에서 승려들의 '독경 소리'를 인상 깊게 들은 적이 있고, 오늘 다시 찾은 그 곳엔 '철 늦은 서설' 속에 피어난 '매화 봉오리'가 피어 있다. 여름에서 겨울로 바뀐 시간의 경과는 바로 '면벽한 노승'의 정진을 의미한다. 이 오랜 정진 끝에 이룩한 득도(得道)의 순간, '노승의 눈매'에 법열(法悅)의 '미소'가 돌 때, 눈 속에서는 '매화 봉오리'가 벙글고 있다. 눈 속에 피어난 '매화 봉오리'와 노승의 눈매에 어린 '미소'가 병치되어 동일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광림은 50년 시작 활동을 거치면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은 이미지에 대한 자각을 통해 언어의 새로운 존재를 만나고자 하는 작업으로,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의 개발이나 언어의 명징성, 또는 시적 표현을 통한 조형미의 창조 등의 기법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같은 노력은 선(禪)의 세계와도 같은 고도의 자기 절제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후기로 넘어오면서 그의 시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로, 그가 초기부터 일관되게 추구해 오던 주지적 서정을 통한 '새로운 서정'의 시도는 이와 같은 아이러니(Irony)의 방법을 통해 더욱 심화, 확대되고 있다. 즉,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그는 모더니즘적인 시의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시는 김광림의 후기 대표작으로 그 특유의 아이러니와 풍자 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해서 '예순'이란 나이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예순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이보다 더 살면 '덤'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있어, 예순이란 나이는 '요절'과 '덤'의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절'과 '덤'으로 제시된, 삶의 감회와 아쉬움, 또는 서글픔과 같은 감정을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갖게 되는 때가 예순의 나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제 예순의 나이에 이르른 시인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동시대를 살았던 여러 시인과 예술가들을 회상하게 된다. 누구는 예순을 조금 넘어 살았고, 누구는 예순이 되지 못해 죽었음을 떠올리며 그는 '나이'와 '삶'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예순을 채우지 못하고 죽은, 소위 '요절한 천재'들이 다 이루지 못한 예술 세계를, 혹은 그들이 남긴 위대한 예술 정신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것들을 그는 '덤을 역산한 천재들의 밥상에는 / 빵 부스러기 생선 찌꺼기 초친 것 등 / 지친 것이 많다'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대단히 강한 풍자적 성격을 동반한 비유로 다음의 시행이 뒤따라 나온다. 그러므로 '소월의 죽사발이나 / 이상의 심줄구이 앞에는 / 늘 아류들이 득실거린다'는 구절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 시단이 안고 있는 모방의 문제점과 정신의 궁핍화를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 이제부터 사는 것은 모두가 '덤'이며, 그 삶 속에서 이루려고 하는 예술 작업을 포함한 모든 것들도 앞 시대의 예술가들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조적 풍자를 통하여 그는 자신의 내면을 독자들에게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보다 깊은 진실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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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집(申瞳集)

본명 : 신동집(申東集)

현당(玄堂)

1924년 대구 출생

1959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및 미국 인디애나 대학원 수학

1954년 시집 {서정의 유형}으로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80년 한국현대시인상 수상

198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시집 : {대낮}(1948), {서정(抒情)의 유형(流刑)}(1954), {제이(第二)의 서시(序詩)}(1958), {모순(矛盾)의 물}(1963), {들끓는 모음(母音)}(1965), {빈 콜라병}(1968), {새벽녘의 사람들}(1970), {귀환}(1971), {송신(送信)}(1973), {신동집 시선}(1974), {미완(未完)의 밤}(1976), {장기판}(1979), {진혼(鎭魂)·반격(反擊)}(1981), {암호}(1983), {신동집 시전집}(1985), {송별}(1986), {여로(旅路)}(1987), {누가 묻거든}(1989) 등


신동집은 천(千)을 헤아릴 만큼 방대한 작품과 치열한 시 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꾀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의 모색과 전개는 우리 시가 표현성을 증대해 온 과정'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그는 문체와 소재면에 있어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많은 작품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이고 있다.

휴머니즘의 옹호와 주지적 경향으로 대표되는 그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이 시는 6·25의 비극적 체험을 배경으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 남은 자의 존재론적 갈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주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시적 발상이나 언어 구사에 있어서 생경함이나 난해함이 없으며, 현재 진행의 종결 어미와 구문 도치 등 다양한 구술체 표현이 돋보인다.

1연에서는 전쟁이 가져다 준 목숨의 황폐함을 노래하고 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숨은 때묻었다. / 절반은 흙이 된 빛깔'이라고 하여 화자는 전쟁에서 살아 남은 자신의 얼굴에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발견하고 있다. 2연에서는 삶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라는 간절한 소망이 1연의 살아 남은 현재의 목숨과 대비되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부각시키고 있다. 3연에서는 이러한 존재론적 한계에서 갖게 된 우주론적 명상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 주고 있다. '한 개의 별빛'이라는 구절 속에는 광막한 우주 속에 실존하는 개인적 생명의 귀중함이 암시되어 있다. 4연에서는 '포연의 추억 속에서 / 없어진 이름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5연에서는 진정한 삶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삶을 증언하고, 온갖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했던 구차한 모습들을 반성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삶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하라'는 구절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에 대한 반성적 자세를 명령형 어조로 촉구하는 한편,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라는 단언적 표현을 통해 반성적 자세를 갖게 된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존재의 고독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6·7연에서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통해 참다운 삶의 구현을 소망하고 있다. 화자는 살아 온 세월을 돌아보며 전쟁으로 얼룩진 삶이 신명나게 불어 오는 바람처럼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소망하며, 자신의 생애가 '모양할 수 없이 지워진' 먼 훗날, '어느 하많은 시공이 지나' '살아서 돌아올' 한 마리 '백조'를 꿈꾸고 있다. '나의 백조'는 5연에서 제시한 반성적 자세를 통해 얻어지는 화자 자신의 진정한 삶을 표상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러한 자세에서 소생할 것으로 확신하는 죽은 자들의 삶,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시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허무적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고 존재론적 갈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감동적으로 표출한 작품이다.


이 시는 가을날 돌담 아래서 처량히 울고 있는 귀뚜라미의 울음 소리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작품으로, 1연에서는 귀뚜라미가 중심이 된 '송신(送信)'의 상태를, 2연에서는 '가을의 사람'이 중심이 된 '수신(受信)'의 상태를 노래하고 있다. '한로(寒露)'라는 절기는 찬 이슬 내리는 무렵으로 양력 10월 8일경이 된다. 따라서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깊어가는 가을로, 죽음이나 조락의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1연에서는 계절적 배경과 발신자로서 송신하는 귀뚜라미를 보여 주고 있다. 찬 바람과 그 속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의 울음 소리를 통해 어느덧 가을이 깊어졌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귀뚜라미는 더 이상 화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어디론가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멀리 신호를 보내는 듯이 울어대는 것은 바로 한로, 즉 깊은 가을이 환기시키는 죽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제 자신이 죽을 것을 인식하게 된 귀뚜라미에게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며, 그런 면에서 귀뚜라미는 누군가에게 제 죽음을 알리고 싶기에 차가운 돌담에 기대어 울고 있는 것이다. '바람은 한로의 / 음절을 밟고 지나간다'라는 구절은,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을 향하여 질주하는 계절이 이제 17번째 절기인 한로를 지나고 있다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명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유한적 존재의 비애와 숙명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연에서는 이 같은 귀뚜라미의 송신을 받는 '가을의 사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가을'이 환기하는 노경에 다다른 사람으로, 귀뚜라미가 끊임없이 보내 준 죽음의 신호를 받고 망연하여 '일손을 놓고 / 한동안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이윽고 귀뚜라미의 울음, 즉 송신이 끝나고 나면 세상엔 적막만이 남게 된다는 것을 '하늘은 바이없는 / 청자의 심연이다'라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귀뚜라미의 애절한 울음 소리, 또는 그가 겪어야 할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늘은 청자의 그 오묘한 색감의 깊이와도 같이 더욱 푸르러질 뿐이라는 자연의 영원함, 신비로움을 강조함으로써 유한자적 존재의 무상함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오렌지를 소재로 하여 존재의 본질을 추구한 주지주의 계열의 작품으로, 사물의 외면과 내면적 의미를 대조시켜 존재의 참다운 본질 파악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렌지는 김춘수의 시 <꽃>에서의 '꽃'과 같이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관념적 사물을 상징할 뿐이다.

1연에서는 의미 이전의 사물 그 자체로서의 오렌지를 묘사하고 있다.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은 가공하거나 꾸밀 수 없는 것이므로 본질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또한,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은 내가 사물의 존재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할 때만 사물도 나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바탕에는 내가 대상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심리뿐 아니라, 나의 존재 의미도 대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2∼3연에서는 '나'가 인식하는 단순한 외형적 사물로서의 오렌지를 보여 주고 있다. '오렌지의 껍질을 벗기'거나 '속살을 깐'다는 것은 오렌지의 겉모양이나 색깔 등의 외면만을 파악한 것일 뿐, 오렌지의 본질을 파악한 것은 아니다. 본질은 도외시한 채 사물의 외면만 관심 갖는 그릇된 인식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4연에서는 존재의 본질로서의 오렌지를 보여 주고 있다. '나'가 오렌지를 파악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는 주체적 존재로 '이미 오렌지가 아닌' 것이 되어 '나를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오렌지는 무엇이다.'라고 '나'가 정의하는 순간, 이미 오렌지는 그 정의와는 상관없는, 생명을 가진 본질적 존재로 되돌아가 나 ― 생명을 가진 또 다른 존재 ― 와 대치하게 된다. 5연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는 '나'의 고민을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라는 것은 오렌지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끝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 '나'가 당혹해 하고 절망하는 모습이다. 오렌지도 나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당혹해 하고 절망하므로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따라서 '나'와 오렌지는 서로를 경계하고 대립하는 상대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몰라 당혹해 하고 절망하는 속에서 시간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처럼 하염없이 흘러갈 뿐이다.

6연에서는 당혹과 절망이 계속되는 어느 순간,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보여 주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서 오렌지와 '나'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지만, '나'가 오렌지의 본질을 어렴풋이 인식함으로써 긴장 해소의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내게 존재의 본질을 알게 해 줄 것 같던 그 존재는 '어진 그림자'만 보여 줄 뿐, 아직 완전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렌지를 '한없이 어진' 존재라고 한 것은 '나'가 찾고 싶어하는 해답을 제공해 줄 것 같기 때문이며, '그림자'로 표현한 것은 아직 완전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막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회의로 시작된 이 시는 한 가닥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존재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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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병(千祥炳)

1930년 경상남도 창원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수학

1952년 {문예}에 시 <강물>, <갈매기>가 추천되어 등단

1952년 {현대문학}에 평론 추천

1993년 사망

시집 : {새}(1971), {주막(酒幕)에서}(1979),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 등


천상병의 시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끊임없이 가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생을 일정한 직업도 없이 완전한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던 그였기에 가난은 결코 그가 떨쳐 버릴 수 없던 운명 같은 것이었지 모른다. 그의 '가난'은 <소릉조(小陵調)>의 '저승 가는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에서 한 정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시인은 지긋지긋한 가난의 극한에서도 괴로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느니, 아,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라는 달관의 경지로 뛰어넘는 명상적 세계를 펼쳐 보인다. 가난하기에 저승에 갈 염려도 없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역설의 진실을 가지고 살던 시인은 이 작품 <새>를 통해 <귀천>의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소중한 '날개'를 얻게 된다. 새는 인간이 신성(神性)에 근접할 수 있는 상징적 매개체가 되는 것으로,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하늘에 오르고 싶어하는 비상(飛翔) 의지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곤궁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삶을 고통스러워하거나 세상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남들이 소중히 여기는 부귀나 영화 같은 세속적 가치를 잊고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소박하게 살아가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외롭고 고달픈 '영혼의 빈터'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이 꿈꾸는 '새 날'은 '내가 죽는 날, / 그 다음 날'에나 올 것을 예감하며 그 때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있다. 그 때 '살아서 / 좋은 일도 있었다고 / 나쁜 일도 있었다고 /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세상의 평화를 고요한 마음으로 응시하며 '낡은 목청을 뽑'을 것이라고 자신과 약속한다. 이와 같이 죽음으로써 삶을 되돌아보는 방법을 통해 비로소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된 시인에게서 우리는 깊은 혜안(慧眼)을 갖고 있는 선승(禪僧)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가난하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시인의 태도는 그로 하여금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삶의 달관을 갖게 해 준다. 죽은 후에도 세상을 무념무상의 상태로 관조하고 싶어했던 시인은 새가 되어 '하늘로 돌아간' 지금도 천상 세계에서 '그렇게 우는' 모습으로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이 세상의 삶을 소풍온 것으로 생각하는 시인의 도가적(道家的)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어 영욕(榮辱)의 세속에서 철저한 무소유와 자유인의 초상으로 '새'처럼 살다가 '돌아간' 천상병 시인의 삶을 짐작하게 해 준다. 시인 특유의 삶에 대한 달관과 명상,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체관(諦觀)이 단순하고 소박한 어법과 구조를 통해 잘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새벽빛' - '노을빛'의 대조와 '이슬' - '구름'의 대응이 덧없는 인생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고양시킴으로써 내용과 표현, 사상성과 예술성이 하나로 더해져 서정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3연 9행의 소품인 이 시는 매 연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고 있다. 죽음을 뜻하는 진술을 반복하면서도 작품의 분위기는 전혀 어둡거나 침울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아름답게 생각할 만큼 맑고 곱기만 하다. 청정무구(淸淨無垢)의 영혼으로 무욕(無慾)의 삶을 끝까지 실천했던 시인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 구절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에 결합됨으로써 삶에 대한 그 어떤 집착이나 죽음을 억지로 피해 보려는 몸부림도 없는 투명한 정신 세계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죽음에 대한 능동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이 구절은 유한적 존재인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번뇌한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점이다. 또한, 죽음을 '돌아간다'로 생각하는 그였기에, 이승의 삶도 역시 '답답한 마음을 벗기 위해 맑은 바람을 쐰다.'는 뜻의 '소풍'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그의 여유로움은, 우리네 삶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며, 추억 속의 여행이 아름다운 것처럼 삶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한다.

이와 같이 천상병은 장식적 수사나 지적인 조작을 배제하고 현실을 초탈한 삶의 자세를 매우 간명하고 담백하게 표현함으로써 세속적 가치와 인위적 기교를 뛰어넘은 이 시대의 가장 개성 있는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슬'과 '구름' 같은 탈속적 세계를 꿈꾸며 평생을 술과 벗하며 숱한 기행(奇行)과 화제를 뿌리며 완전한 자유인으로 살다간 그였지만, 굳이 마지막 시행을 말없음표로 끝맺은 시인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으면서도 감추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차라리 말하지 않음으로써 추악한 인간 세계에 대해 인간성 회복의 경종을 울리는 것은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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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건(全鳳健)

1928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평양 숭인중학교 졸업

1950년 {문예}에 <원(願)>, <4월>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57년 김종삼,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69년 {현대시학} 창간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1988년 사망

시집 : {소월시화첩({素月詩畵帖)}(1958),{신풍토(新風土)}(1959),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 {춘향연가}(1967), {별 하나의 영원을}(1968), {속의 바다}(1970), {피리}(1980), {북(北)의 고향}(1982), {새들에게}(1983), {돌}(1984), {전봉건 시선}(1985), {트럼펫 천사}(1986), {기다리기}(1987)


이 시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실험적 기법과 참신한 이미지 구사를 중시한 전봉건의 대표작으로, 피아노 치는 여자와 그 소리를 듣는 화자의 모습이 독특한 이미지의 전개에 따라 구성된 작품이다. 과감한 비유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에 대한 감동을 보여 주고 있으나, 그 이미지들이 강렬하고도 돌발적으로 표현된 탓으로 다소 난해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 시는 감각적 시어를 구사하여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비약하는 연상 작용이 두드러진다. 연상 작용이란 하나의 관념에서 그와 관련된 다른 관념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 시에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약을 보여 주고 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여인의 손에서 '신선한 물고기'를, 피아노의 선율에서 '튀는 빛'을 떠올린 화자의 연상이 바다로 확산되어 '파도의 칼날'을 발견함으로써 피아노 연주를 단순히 감상하던 입장에 있던 화자는 마침내 피아노 선율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 준다.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피아노' ― '물고기' ― '바다' ― '파도'로 펼쳐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창조되는 순간, 화자는 벌써 피아노와 함께 바다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눈부신 '파도의 칼날'을 꺼내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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