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며

1960년대는 1960년 4·19 혁명의 거대한 민중의 열기(熱氣)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의 열망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좌절되고, 민주화의 과제는 근대화의 발전 논리와 냉전 체제의 안보 논리에 휘말려 결국 길고 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렇듯 1960년대는 모순과 갈등의 시대였다. 식민지 시기를 뒤이은 분단비극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4·19 혁명과 5·16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한국의 시단(詩壇)은 이러한 1960년대의 상황을 맞아 다양한 시적 응전력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우선 첫째로, 4·19와 5·16의 충격과 영향으로 투철해진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적극적으로 변혁의 의지를 작품 내에 수용하고자 하는 일군의 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작품의 先鞭(선편)은 김수영(金洙暎)이 쥐고 있다. 그는 1950년대의 소시민적 비애를 담담하게 노래하다가, 4·19를 계기로 <푸른 하늘을> 이후 <풀>에 이르기까지 현실 참여의 시작(詩作) 활동을 전개한다. 그의 이러한 현실 인식은 <껍데기는 가라>, <금강>의 신동엽(申東曄)의 민족주의적 역사 의식과 연결되고, 이성부(李盛夫)의 <벼>와 조태일(趙泰一)의 <국토> 등으로 계승된다.

한편, 사회적 관심을 특히 강조한 시와는 달리 순수한 서정과 낭만성을 강조한 경향의 시들도 크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5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주된 흐름으로, 정한모(鄭漢模), 조병화(趙炳華), 김남조(金南祚), 박재삼(朴在森), 박성룡(朴成龍) 등이 그 중심적 위치에 선다. 이러한 전대의 흐름과도 달리 현대시의 지성적 영역을 개척하려는 일군의 시인이 등장하는데, 1950년대에 등장한 김춘수(金春洙), 김광림(金光林), 김종삼(金宗三), 황동규(黃東奎) 외에도 이승훈(李昇薰), 오세영(吳世榮), 이수익(李秀翼), 정현종(鄭玄宗), 오규원(吳圭原) 등의 신인들이 주로 이 경향에 가세한다.

이러한 1960년대에 비한다면 1970년대는 오히려 체제적으로는 '안정된',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의 열망이 내재되어 있는 모순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체제적인 억압이 강했던 만큼, 적극적인 현실 참여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오히려 상징화, 내면화되어 있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경향은 전대의 김수영(金洙暎)과 신동엽(申東曄)을 이어받아, <농무(農舞)>의 신경림(申庚林)과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金芝河)로 계승되고, 1950년대부터 활동을 전개해 온 고은(高銀)의 후기시의 한 특징을 이룬다. 이와 함께, 근대화라는 1970년대의 경제 성장의 신화의 부산물로 생겨난 물질 만능 주의. 인간 소외, 전통 파괴 등의 반인간주의적 징후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으로 시적 형상화가 이루어지는 경향도 또한 197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시작(詩作)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4장(章)에서는 1960년대의 현실 참여의 시로부터 1990년대의 최근의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감상하고자 한다. 이 중에는 1960년대 이전부터 시작(詩作) 활동을 해 온 시인의 최근 작품도 있고, 1980년대 이후에 활동을 시작한 새로운 중견 시인들의 작품도 있다. 그만큼 오늘날의 시 창작 경향은 다양해지고 개성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다양성을 미덕으로 하는 현대의 문화적 환경과도 필연적으로 연관되는 점이다. 따라서 4장에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서는 1960년대의 시 경향과 1970년대 이후의 경향을 서로 비교해 보고, 이와 함께 이러한 시대의 간극을 넘어서는 시적 감동의 근거를 함께 탐색하여 보도록 한다. 그럴 때 보편적 서정으로서의 한국 현대시가 지닌 빛깔과 향기가 더욱 오롯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며, 좋은 시를 선택하고 감상할 수 있는 우리들의 안목이 한층 빛을 발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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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金洙暎)

작가 약력 - 3장 참조


이 시는 4·19 직후에 창작된 작품으로 자유로의 비상을 위한 고독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먼저 1연에서 시인은 노고지리를 예찬한 어느 시인의 표현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푸른 하늘'은 자유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것을 제압한다는 것은 단순히 즐겁게 노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노고지리가 아무런 희생도 없이 손쉽게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는 도외시한 채, 다만 자유로운 비상만을 노래한 것이 잘못임을 지적하고 있다. 2연은 그것을 설명해 주는 부분으로,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는 것은 '무엇을'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피'로 대유된 투쟁, 그리고 '고독'을 함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다시금 그러한 혁명적 행위가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함으로써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휩쓸리기 쉬운 타락상을 경계시키고 있다. 흔히 이 구절은 일반 대중과의 연대감을 획득하지 못한 엘리트 의식의 표출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전체 문맥을 고려해 보면 혁명에 수반되는 허탈감이나 승리의 기쁨 같은 일체의 감정을 배제함은 물론, 실패에서 오는 좌절까지도 견뎌낸다는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자유는 타인이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수동적·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적극적·실천적 개념임을 확신하고 있는 시인은 노고지리 비상만을 보고 자유를 노래하는 기존 시인들의 온건적·순응적 태도를 비판함은 물론, '푸른 하늘'이라는 높고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비상은 '피의 냄새'라는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을 통해서 근접할 수 있음을 푸름과 붉음이라는 색채의 대조를 통해 뚜렷이 제시하고 있다.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소시민적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발견하게 된 자신의 초상(肖像)은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경향이나 민중 시인으로서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땅 주인'이나 '구청 직원' 또는 '동회 직원', 소위 가진 자, 힘 있는 자에게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이발장이'나 '야경꾼'들로 대표된 가지지 못한 자, 힘 없는 자에게는 단돈 일 원 때문에 흥분한다. 또 그는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다 '붙잡혀 간' 소설가를 보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대항하지 못하고, '설렁탕집'에서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한다. 이렇게 커다란 부정과 불의에는 대항하지 못하면서도 사소한 것에만 흥분하고 분개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봄으로써 마침내 시인은 자기 모멸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또한, '절정 위에는 서 있지 /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는 자신의 방관자적 자세를 확인한 그는 '모래'·'풀'·'바람'보다도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비판, 반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은 아무 죄 없는 소설가를 구속하거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 권력에는 정면에서 대적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지식인의 무능과 허위 의식을 폭로, 고발하는 진지한 자기 반성을 통해 자신의 최후이자, 최고의 작품인 <풀>이라는 걸작을 창작하게 되는 정신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이 불의의 교통 사고로 타계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으로, 반서정성(反抒情性)과 참여시의 기치를 높이 든 그의 후기시 세계를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60년대 민중문학을 신동엽과 함께 이끌고 온 김수영은 투철한 역사 인식과 건강한 민중성에 기초를 둔 신동엽과는 달리 모더니즘 속에서 자라난 모더니즘의 비판자로서, 4·19를 계기로 해서 강한 현실 의식에 바탕을 둔 참여시의 진수를 보여 줌으로써 마침내 이성부, 이시영, 조태일로 이어지는 1970년대 민중문학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풀'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생명체로서 오랜 역사 동안 권력자에게 천대받고 억압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맞서 싸워온 민중, 민초(民草)를 뜻하며, 이와 반대로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억누르는 세력, 곧 민중을 억압하는 사회적 힘[독재권력, 외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바람에 의해 눕는 풀의 수동성과 바람에 앞서는 풀의 능동성, 그리고 바람을 넘어서는 풀의 넉넉한 생명력을 통해 민중의 끈질긴 저항과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즉, 이 시는 사회적 상황이 나빠져[날이 흐리고, 흐려서] 폭력화되었을 때[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민중은 무기력하게 짓밟히지만[풀은 눕고 울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나약한 힘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권력에 맞서 싸워 이기는[바람보다 먼저 웃는] 인류 역사의 총체적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이 시는 평이한 우리말 시어와 '풀·바람', '눕다·일어나다', '울다·웃다' 등의 시어를 과거시제에서 현재시제로 반복적으로 진행하면서 표현함으로써 '풀'이 지닌 역사적 상징성을 뚜렷이 드러내 주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자연 현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통하여 중후하면서도 명징(明澄)한 현실주의적 의미를 제시하는 시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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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엽(申東曄)

1930년 충청남도 부여 출생

단국대학교 사학과 및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어 등단

1967년 장편 서사시 <금강> 발표

1969년 사망

1975년 {신동엽 전집} 발간

1980년 유고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발간

시집: {아사녀(阿斯女)}(1963), {신동엽 전집}(1975),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0), {꽃같이 그대 쓰러진}(1989), {금강}(1989), {젊은 시인의 사랑}(1989)


이 시는 투철한 역사 의식에 입각하여 6·25로 인한 깊은 상흔(傷痕)을 진달래의 핏빛 이미지 속에서 그려낸 작품으로, 신동엽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전 12연의 자유시이다. 신동엽은 민족적 정서 또는 민족적 정기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전설을 자주 원용하는 특징을 보여 주는데, 이 시 역시 후고구려의 장수들 전설을 끌어들이고 있다.

1연은 국토의 평화스러운 정경을 '이름 모를 나비'라는 평범한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진달래 몇 뿌리 / 꽃 펴 있고'와 '나비 하나 / 머물고 있'는 정적 이미지는 전쟁으로 인한 주검을 보여 주고 있는 2연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3연은 주검이 누워 있는 장소의 유래를 밝히는 부분이다. 화자는 특유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곳을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 의형제를 묻던, / 거기가 바로 / 그 바위'라고 제시함으로써 6·25로 인한 죽음과 후고구렷적 장수들의 죽음을 연관시키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드높던 기상과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후고구렷적 장수들'을 통해 6·25를 민족적·역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갖도록 도와 주고 있다. 4연은 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제시한 부분이며, 5연은 죽은 자가 생전에 그리워하던 고향의 정경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저 아름다움으로만 장식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눈먼 식구들이 / 굶고 있'는 모습의 사실적 제시를 통해 시인의 치열한 현실 인식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6연은 이 곳에 앞서 과수원에서 보았던 또 다른 주검을 상기시키는 부분으로, 국토 전역에 깔려 있는 상흔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7연은 계속되는 폭탄 세례의 전장(戰場)을 진달래의 핏빛 이미지 속에서 보여 주는 부분이다.

8연부터 12연까지는 앞 연들이 제시한 시상을 약간의 변화만 가미시켜 반복하는 형식으로, 전반부에서 제시한 시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즉, 8연은 1연과 2연의 시상을 결합하고 있으며, 9연은 7연에서 보여 준 폭탄 세례의 전장을 반복하고 있다. 10연은 4연을, 11연은 3연을, 12연은 6연의 시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반복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뚫고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일 뿐 아니라, 그 실질을 이루고 있는 민중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임을 웅변하고 있다. 발표 당시에는 일단의 맹목적 반공주의자들에게 불온성을 지적받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도 통일 염원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가장 빼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동엽의 작품 경향은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시어와 고백적인 법으로써 한(恨)으로 대표되는 민족 정서를 진솔하게 표현한 점이 주조를 이룬다. 이 시는 시가 쓰여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4·19 혁명의 영령들을 기리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형식 구조는 3, 4음수율을 바탕으로 한 4음보의 반복적 형태로서, 4음보의 율격은 균형잡힌 틀 속에 교술적 내용을 장중하게 읊조려 음송(吟誦)에 적합하다. 이 4음보는 2음보끼리 대구를 이루며 1, 3음보에서 강하게 낭독하게 되므로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음보란 소리의 마디로서 관습적인 체계로 형성되는데, 우리 시에서는 행을 이루는 음보수는 고정적임에 비해 음절수는 가변적이다. 이 시도 각 연의 음보수는 4음보로 고정적이나 음보를 이루는 음절수는 2∼6음절의 가변성을 나타낸다.

또한, 1·2연과 4·5연의 중간에 위치하여 대칭적 균형미를 조성하고 있는 3연은 전통적 율조인 7·5조 리듬에 '행인아'라는 호칭을 도치시킴으로써 강렬하면서도 간절한 호소력을 자아내고 있다. 1·2·5연은 음수율, 행, 어조 등이 동일한 반복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4연은 2·4·2·4의 음수율로 대구와 반복 병치의 구조로서 3연에서 고조되기 시작한 감정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 4연은 호흡도 빠를 뿐 아니라, '눈' ― '바람' ― '인정'으로 이미지가 교차되면서 점층적 효과를 주게 된다. 한편, 3·4연을 합하면 전체의 시 형태는 매연 3행의 기·승·전·결의 전통적 형식이 되는데, 이것은 기·승·전·결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시인의 의도적인 시각적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죽음으로 인해 단절된 '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특히, 부정형의 서술어를 빈번히 사용하여 상실과 사라짐의 비극적 상황을 더욱 절실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전통적 율격을 바탕으로 한 여성적 어조는 장중한 여운을 주는 의고형 어미 '―지어이'와 어울려 작품의 분위기를 애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모습과 숨결은 화사한 꽃으로 피어나 자연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화자만의 그리움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민족 정서의 대상으로 존재함으로써 민족의 생명력으로 승화된다. 그러나 순환 반복하는 영원한 자연 속에서, 화자는 '그'의 숨결을 느끼면서도 실체로서 '그'를 인식할 수 없다는 비극이 있다. 따라서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으며 그의 환생을 소망하는 화자는 바로 민족의 보편적 정서인 한(恨)의 대상화(對象化)라 할 수 있다.

자연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의 조화를 시도하는 신동엽의 상상력은 궁극적으로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 생명과 민족의 순수성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이 자연을 포용하는 대지의 이미지는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뿌리내리고 이념의 갈등이나 현실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의 공간으로 '산'·'언덕'·'숲'·'눈'·'바람' 등의 자연 현상으로 표상되고 있다. 즉, '산'은 수직적 상승 지향성으로 고통과 혼돈의 현실 세계를 초극하는 신성한 공간이며, '들'과 '숲'은 푸르른 생명력을, '바람'은 붙잡을 수 없는 무형의 형체로 시공을 초월하는 정신적 영혼을 나타내는 한편, '눈'은 순결이나 숭고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대지의 이미지는 '그'의 영혼과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종로 5가 신호등 앞에서 동대문을 묻는 한 소년과의 만남을 계기로 당대 민중들의 운명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산업화와 근대화를 부르짖던 1960년대 사회적 상황 속에서 도시의 노동자나 창녀로 변해 가는 농민과 민족의 모습을 역사적 시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농민의 희생과 농촌의 붕괴를 담보로 해서 이루어진 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피폐된 농촌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도시의 노동자나 창녀로 전락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화자의 눈에 비친 현실은 '이슬비 오는 날'로 시작하여 '비에 젖고 있었다'로 끝나는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만큼 침울하고 고통스럽다.

전 9연의 이 시는 내용상 크게 5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2연으로 한 소년과의 만남이 제시된 부분이다. '이슬비 내리는 날'과 '통금에 쫓기는 밤 열한 시 반'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자아내는 절박한 상황은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대비됨으로써 더욱 고조된다. 한편, '서시오판'은 신호등을 뜻하는 것으로 소년의 운명의 갈림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단락은 3∼4연으로 소년의 모습과,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소년의 운명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에서 때묻지 않은 동심을 엿볼 수 있으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는 / 먼 길 떠나온 고구마'는 따스한 온정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그에게서 어린 노동자로서 그가 헤쳐 나가야 할 비극적 운명이 상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셋째 단락은 5∼6연으로 언젠가 보았던 창녀와 막노동자의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으로, 화자는 그들을 소년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화자는 '양지 쪽 기대 앉아 / 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는 '부은 한쪽 눈의 창녀'와 '고층 건물 공사장'에서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는 '등짐하던 노동자'가 겪는 개인적 비극을 세 개의 외세 ― '대륙'·'섬나라'·'새로운 은행국'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의 고난을 '대륙'과 '섬나라'로 나타내고 있으며, 미국 자본에 의존하여 수출 주도형 산업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60년대 경제 정책을 '새로운 은행국'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의 투철한 현실 인식은 결국 화자로 하여금 현실은 '이조 오백 년'과 다를 것이 없으며, 8연의 '북간도'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일제 시대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넷째 단락은 7∼8연으로 농촌의 황폐한 현실과, 그로 인한 농민들의 이농(離農) 현상을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다. '남은 것은 없었다',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로 이어지는 화자의 애환 어린 탄식과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라는 자조 섞인 독백에서 당시 농촌 현실의 궁핍화를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마지막 단락인 9연은 1연의 시상을 변형 반복하는 부분으로, 화자의 신분을 '노동으로 지친 나'라는 구체적 표현으로 알려주고 있다. '낯선 소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지식인의 시각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의 고통을 바라보는 화자의 동정심은 마침내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 비에 젖고 있었다'라는 끝 구절로 용해됨으로써 전편에서 서술된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있다.


이 시는 우리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여러 의미 있는 사건들을 바라보던 화자가 허위적인 것이나 겉치레는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과 순결함만이 그것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한 시어를 반복 구사함으로써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한편, 행간(行間) 걸림의 수법이나 쉼표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시상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화자가 없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껍데기'이다. 그런데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쇠붙이' 하나만을 화두(話頭)처럼 던져 놓고 있을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쇠붙이'와, 그와 상반되는 어휘들의 의미를 통해 그것을 추출해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4월 혁명의 '알맹이', 동학 혁명의 '아우성', 혼례청에서 맞절하는 아사달 아사녀의 '부끄러움', '향그러운 흙가슴' 등과 상반되는 개념일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이 작품에서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4월 혁명의 민주화 열망이 퇴색해 가고, 동학 혁명의 민중적 열망도 소진되어 가고 있는 현실적 여건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아울러 부끄러움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원시인 같은 순수한 마음의 회복과 그 같은 삶을 추구하는 순수성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현실에 대한 거부이다. 그런 화자에게 '껍데기'는 사라지기를 소망하는 대상일 뿐이지만, 17행 중 6행에서 '껍데기는 가라'고 소리칠 정도로 껍데기는 현실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4월이나 동학의 본래 이념과는 다르게 변모해 있는 현실 상황에 대해 화자는 강력한 거부의 몸짓을 '껍데기는 가라'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은 이런 상징적 의미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우리의 국토를 '한라에서 백두까지'라고 말함으로써 분단의 비극적 현실 상황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것은 동서 냉전의 부산물로 시작된 분단의 비극이 결국은 동족 간의 피비릿내 나는 전쟁을 거쳐 고착화되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한편, 반드시 극복해야 할 민족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아울러 '모오든 쇠붙이'라는 표현을 통해 현실 상황을 힘의 논리를 앞세운 무력으로 규정함으로써 4월 혁명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군사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한편,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은 참다운 의미의 '인간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세상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일생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시인의 슬픔과 애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장편 서사시 <금강>에 삽입되기도 하였다. 짧은 시행과 잦은 쉼표로 시상을 전개함으로써 시행이나 연의 반복이 주는 역효과를 최대한 막고 있다.

이 시의 창작 동기는 '먹구름' 덮인 하늘 아래서 머리에 '쇠 항아리'를 덮고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민중들의 삶이다. '맑은 하늘'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상징하며, 이에 대립되는 '먹구름'은 암담한 현실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먹구름'은 '지붕 덮은 / 쇠 항아리'로 변주되어 구속과 억압을 의미한다. 이에 화자는 4연에서 구속과 억압으로 표상되는 현실 상황의 극복을 위한 민족사적 과제를 '먹구름을 닦고 쇠 항아리를 찢'는 것으로 제시하여 그들이 삶의 '외경'과 '연민'을 아는 참다운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자유와 평화를 상실하고 인고(忍苦)의 나날을 살아 왔던 민중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아직도 도래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해 보여 줌으로써 현실 극복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쟁의 생채기를 꽃의 핏빛 이미지로 보여 준 <진달래 산천>(1959)에 이어 격동의 60년대 초반을 지나온 신동엽은 4·19를 돌아보는 화자의 서정적 정서를 드러낸 <산에 언덕에>(1963)를 통해 그리운 사람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이 시를 통해 60년대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격동기를 겪으면서 역사의 허구성을 목격하게 됨으로써 권력의 폭력성을 배격하는 목소리를 지니게 된다. 민중·민족·민주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낸 <껍데기는 가라>(1967)를 발표하여 우리 시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그는 <종로 5가>(1967)를 거쳐 마침내 자신의 문학적 역량이 하나로 집약된 장편 서사시 <금강>을 발표함으로써 민족 시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이 땅에 깊이 새겨 놓고 1969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갔다.

이 시는 2장씩 전·후시를 포함하여 총 30장 4800여 행의 장편 서사시로서 실존 인물인 전봉준과 가공 인물인 신하늬로 대표되는 인물군(人物群)들을 등장시켜 동학 혁명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학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시화(詩化)를 통해서 민중적 세계관과 반외세에 대한 시인의 인식 태도를 보여 주는 이 시는 여러 인물들 사이에 얽힌 사건들이 교직(交織)될 뿐 아니라, 시간의 넘나듦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다. 특히, 기존에 발표했던 <종로 5가>, <산사> 등의 여러 서정시를 삽입하여 형상화하는 특징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대체적인 사건 진행은 기이하게 태어난 후 초혼에 실패했다가 진아를 만나는 신하늬와, 동학에 입교하였다가 조병갑의 학정에 아버지를 잃은 전봉준과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만남은 동학 혁명으로 시작되며, 혁명의 실패로 끝난다. 즉, 혁명이 실패하자 신하늬는 아들을 낳은 후 죽음에 이르고, 전봉준은 체포 구금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을 통하여 역사의 유구함을 화자 자신으로 추정할 수 있는 신하늬의 아들에게서 확인하고 있다.

신동엽은 현실 인식의 뿌리를 민족사를 관통하고 있는 사건들인 동학 혁명, 한국 전쟁, 4·19 등에서 찾아 이를 정당하게 해석하고자 한 시인이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민중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여 보여 줌으로써 이 나라에 새로운 문학적 전망을 열어 놓았다. 나아가서는 70년대 민중 민족 문학의 튼튼한 뿌리를 참여시라는 형태로 선도함으로써 자신의 시사적 위치를 더욱 값진 것으로 한 시인이었다.


이 시는 분단의 현실을 '겨울'로, 통일의 시대를 '봄'으로 상징하여 통일에 대한 시인의 뜨거운 염원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기·승·전·결의 전통적 구조에 각 연의 종결 어미를 '않는다'·'움튼다'·'움트리라'·'녹여 버리겠지'와 같은 단정적 어조를 사용하여 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먼저 분단의 원인이 외세(外勢)에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화자는, 통일의 주체는 외세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임을 역설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하고 있다. '봄은 /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 오지 않는다'라는 첫 연에서 '남해'와 '북녘'은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통일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통일의 싹도 마땅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움터야 함을 2연에서 주장하는 한편, 3연에서는 분단의 원인과 통일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소 양대 진영의 영토 확장욕에서 비롯된 분단임을 '겨울은, / 바다와 대륙 밖에서 /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이라는 구절로 보여 주고 있으며, 우리가 이루어야 할 통일은 그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함을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 우리들 가슴속에서 / 움트리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눈보라'는 분단의 고통을, '바다'와 '대륙 밖'은 우리 나라의 주변 국가인 외세를 의미한다.

마침내 화자는 4연에서, 다가올 통일 조국의 모습을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들 / 눈 녹이듯 흐물흐물 / 녹여버리'는 새로운 화합의 장으로 제시함으로써 남과 북이 증오와 대결의 군사적 대결을 버리고 진정한 하나의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사에 우뚝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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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申庚林)

1935년 충청북도 중원 출생

동국대학교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탑>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

1975년 고은, 백낙청, 박태순, 이문구, 염무웅 등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3년 민요연구회 창립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 소장

198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창립, 사무총장 역임

1990년 제2회 이산문학상 수상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및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 의장

시집: {농무}(1973), {새재}(1979), {달넘세}(1985),{씻김굿}(1987), {가난한 사랑 노래}(1988), {우리들의 북}(1988), {길}(1990), {쓰러진 자의 꿈}(1994) 등

장시집: {남한강}(1987)

기행문집: {민요기행·1}(1985), {민요기행·2}(1989)

평론집: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3), {우리시의 이해}(1986),


<갈대>로부터 시작된 신경림의 시작 생활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농민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바람에 서걱이는 갈대와 같이 설핏한 민요조 가락에 실어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지식인이나 도시인의 시각에 의해 굴절된 농촌이 아니라, 자신을 농촌·농민으로 제한시킴으로써 생생히 살아 숨쉬는 농촌문학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시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생명 인식을 '갈대'의 울음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소위 민중시 계열로 변모한 70년대 이전의 그의 초기시 세계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 탐구에 주력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인식에서 출발했던 '갈대'의 막연한 울음이, 후일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서 우러난 농민의 아픔이라는 구체적 울음으로 확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는 '갈대의 내면 세계' ― '갈대의 외면 묘사' ― '갈대가 흔들리는 까닭' ― '갈대가 깨달은 삶의 의미'의 과정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대리자로 등장한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따라서 갈대의 '흔들림'은 외부적 원인이 아닌, 내재적 원인으로 인한 것이며, 갈대의 '울음'은 사회적 갈등의 소산이 아니라, 개인의 존재론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과거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는 의미로,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극적 깨달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울음은 바깥을 향한, 즉 외부 세계를 겨냥한 울음이 아니라, 숙명적 존재임을 인식하고 얻은 내적인 울음이요, 정적인 울음이다. 그러므로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화자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한다면, 이 시는 단순히 그의 슬픈 사연을 담은 작품이지만, 불특정한 인간 전부를 지칭하고 있다면, 이 시는 인간의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노래한 시가 됨을 알 수 있다. 어느 쪽으로 보건 간에 <갈대>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시인은 마침내 1960년대 중반부터 민중의 현실과 공감대를 이루는 작품 세계를 통해 외부 세계를 향한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신경림의 문학적 관심은 농촌에 대한 관심, 즉 농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관심과 애착으로부터 출발한다. 농촌의 실상을 도외시한 농촌문학이란 그 어떤 존재 가치도 있을 수 없음을 직시한 끝에, 문학에 있어서 농촌이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당위'로 자신의 창작 지침을 삼게 되었다. 이 시는 그가 등단 이후 거의 10년 동안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거나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농촌의 공동체적 삶을 체험한 이후, 다시금 시를 쓰기 시작한 무렵의 작품으로, 그의 문학적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장날을 앞두고 장터에 모인 마을 사람들이 추운 겨울밤을 술과 놀음으로 지새우며 고달픈 삶의 회포를 푸는 모습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담담하게 고백하듯 진술하고 있다. 즉, 시적 대상인 '우리'가 전혀 분리되지 않은 채 제시됨으로써 화자에 의해 관찰된 농민들의 현실적 삶은 고스란히 화자의 내면에 수용됨으로써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융화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농민들의 삶의 대변자로서 시인의 존재를 부각시킬 때, 작품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회한의 정서나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과 비원(悲願)의 행위들은 모두 집단적인 정서로 보편화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화자가 진술하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삶의 현장이자 생활 주변의 현실로서 진실성과 전형성을 획득한다. 이처럼 농민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정서와 결합하여 개인의 목소리로써 드러날 수 있는 형태가 바로 신경림의 '농민시'의 본질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며, 후일 <농무>라는 작품을 탄생하게 하는 기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경림은 우리 고유의 '이야기꾼'으로서 전통적인 시가의 원형을 간직한 시인이다. 그의 초기시에서 나타나는 시적 방법론은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차원에 국한되어 있지만, 농촌의 현실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그의 상상력이 농촌 민중들의 정서에 일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민중의 노래를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터는 농민들이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곳이며, 그들이 농사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세상사에 대해 벌이는 열띤 토론의 장이다. 이 시는 파장시 농민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그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장터에서 만난 서민들의 모습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압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향토적인 정취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자유시이지만, 화자의 태도를 기준으로 보면 크게 3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단락은 1∼4행으로 농민들이 그들의 공동체적 삶에 대해 갖는 애정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참외를 깎'아 함께 나누어 먹거나,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이 되는 그들에게서 피붙이보다 더 진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1행의 '못난 놈들'은 자기 비하적 표현이 아니라, 친근감에서 우러난 동류애의 표현이다.

2단락은 5∼9행으로 농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표출하고 있는 부분이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누던 그들의 대화가 차츰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의 현실적 문제로 바뀜에 따라 상경(上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이농(離農)의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다. 뒤숭숭해진 마음에 일찍 귀가하기 싫어진 화자는 '섰다라도 벌일까 /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망설이며 농촌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과 자신의 삶에 대한 아픔을 드러낸다.

3단락은 10∼13행으로 현실을 수용하고 그 아픔을 감내하고자 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화자는 '소주에 오징어를 찢'으며,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유혹들을 물리치고,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문' 밤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귀가 도중, 화자의 앞길을 비춰 주는 달빛은 그의 밝은 내일을 암시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점점 황폐화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을 바라보는 화자의 비판적 심경이 '절뚝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시는 산업화의 거센 물결로 인해 급속도로 와해되어 가던 1970년대 초반의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농촌의 절망과 농민의 울분을 고발, 토로하고 있으면서도, 그 울분이 선동적이거나 전투적인 느낌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그것은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끝나는 작품 구조에 의해서 교묘한 역설과 시적 운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울분과 절망을 정반대의 '신명'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통해 그들의 아픔이 역설적으로 고양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연 구분이 없는 20행 단연시 구조의 이 시는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1∼6행으로 농무가 끝난 뒤 농민들이 '소줏집'에서 답답하고 고달픈 심정을 술로 달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로 시작되는 1행은, 농무가 두렛일의 흥겨움보다는 농민들의 자조적인 한탄과 원한의 몸짓임을 나타내기 위한 예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농무가 끝난 뒤의 '텅 빈 운동장'이 주는 공허감은 이젠 더 이상 농무에 신명을 느낄 수 없는 농민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자, 이런 현실에 대한 공연자의 안타까움과 공허함을 표한한 것이다. 그러므로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한' 그들은 텅 빈 마음과 고달픈 삶을 그저 술로 달랠 뿐이다.

2단락은 7∼10행으로 농악패에 대한 농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통해 예전과 달라진 농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옛날의 풍습대로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 보아도, 신명나게 놀아 주던 어른들 대신, '조무래기들'만 악을 쓰며 따라붙거나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 철없이 킬킬대는' 처녀애들뿐이다.

11∼16행의 3단락은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나온 그들이 자신의 울분을 춤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춤을 추는 그들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거나 '서림이처럼 해해대'며 즐거워하지만, 결국은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하며 자신들의 삶을 자학하거나 체념하고 만다. 임꺽정과 서림은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이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까닭은 농민들의 한과 슬픔이 다만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함께 해 온 역사적인 것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배려로 볼 수 있다.

4단락은 17∼20행으로 자신의 한과 고뇌를 신명난 춤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이다.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이르렀을 때, 농민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로 극에 달하지만, 오히려 '날라리를 불고' 덩실덩실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바뀜으로써 그들의 비애가 그만큼 심화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농민들이 추는 춤은 그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강한 몸짓이며, 자신들의 고뇌와 한의 뜨거운 발산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생활 터전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을 농촌의 일상 언어를 통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농민들의 정취와 정감을 물씬 느끼게 해 주는 한편, 농민들의 격한 감정을 직접적인 서술로 표출하면서도 농무의 동작이나 농악기의 소리로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탄탄한 서정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가난과 절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과 소외된 농촌을 상기시켜 주는 뛰어난 문학성으로 말미암아 이 시는 제1회 만해 문학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 시는 '목계 장터'를 중심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민중들의 삶과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목계'는 1910년대까지 중부 지방의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남한강안(南漢江岸)의 수많은 나루터 중 가장 번창하기도 했지만, 1921년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의 일환으로 충북선이 부설되자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시의 표현상 특징은 전통적인 민요의 리듬을 연상시키는 4음보를 주된 율격으로 하면서, '하고', '하네', '라네' 등의 어미를 반복적으로 구사하여 생동감 있는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방랑과 정착의 이미지가 교체되어 나타나고 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1·2행을 변주, 반복하여 주제를 강조하는 안정된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표면상 1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진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 독백은 화자 개인의 삶의 애환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떠돌이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고뇌라는 일반화된 삶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가 '목계 장터'라는 생활 현실의 공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적 화자가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들이 시적 표현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름'·'바람' 등으로 표상되는 떠남과 '들꽃'·'잔돌' 등으로 표상되는 정착의 이미지 사이의 대조적 표현은 퇴색해 가는 목계 나루에서 방랑과 정착의 기로에 서 있는 농촌 공동체의 시대적 삶과 화자의 개인적 삶 사이의 갈등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16행의 단연시로서 의미상 5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단락 : 1∼4행 : 하늘 ― 구름, 땅 ― 바람(잔바람)

2단락 : 5∼7행 : 방물 장수

3단락 : 8∼11행 : 산 ― 들꽃, 강 ― 잔돌

4단락 : 12∼14행 : 떠돌이

5단락 : 15∼16행 : 하늘 ― 바람, 산 ― 잔돌

1∼7행에서, 하늘과 땅은 날더러 구름이나 바람, 혹은 '방물 장수'가 되라고 하고, 8∼14행에서는, 산과 강이 날더러 들꽃이나 잔돌, 혹은 '떠돌이'가 되라고 한다. 이를 보면, 8∼14행이 1∼7행의 변주이며, 15∼16행은 1∼2행의 반복으로, 이 시가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단락은 화자가 갖는 유랑의 운명에 대한 인식을 보여 준다. '구름'과 '바람'은 화자가 삶에 대해 갖는 비탄, 또는 삶의 주체로서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뜻하며,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는 그 곳에 전해져 내려 오는 전설에서 취재한 표현이다. 2단락은 방물 장수로서의 떠돌이 삶을 노래한다. '아흐레 나흘'은 목계장이 서는 4일과 9일을 말하며,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 장수'에서 가을볕마저도 서럽게 느끼며 살아야 하는 그의 비애가 잘 드러나 있다. 3단락은 나약한 민초로서 살아가는 삶을 제시하며, 4단락은 고달픈 삶의 애환과 소망을 보여 준다. '산서리 맵차'고 '물여울 모진' 삶의 시련을 피해 '풀 속에 얼굴 묻고' '바위 뒤에 붙'어 안식을 얻고 싶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를 '떠돌이가 되'어 살아가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천치로 변해 / 짐부리고 앉아' 쉬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은 화자가 처한 곤궁한 삶을 대변하고 있다. 5단락은 운명과 존재성을 함께 제시하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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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閔暎)

1934년 강원도 철원 출생

1957년 {현대문학}에 <동안>이 추천되어 등단

1972년 시집 {단장} 발간

1983년 한국평론가협회 문학상 수상

시집 : {단장(斷章)}(1972), {용인 지나는 길에}(1977), {냉이를 캐며}(1983), {엉겅퀴꽃}(1987)


이 시는 한국적 의식의 정수를 밀도 높은 서정의 가락에 용해시켜 간결하고 응축된 단시(短詩) 형식의 작품 경향을 보여 주는 민영의 대표작이다. 발음의 동일성에 의한 '유음 연상(類音聯想)'으로 주제를 강화시키는 한편,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 1·4연을 유사한 내용과 동일한 각운으로 배치한 수미상관의 구성을 결합시킴으로써 보다 안정된 구조 형태를 갖추고 있다.

화자는 경기도 용인 땅을 지나가다 산등성이에 무리지어 피어난 산벚꽃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는다. 그 벚꽃 풍경은 개화와 낙화에 따라 그에게 휴식을 선택하게 하거나 죽음 이후의 안식에 대한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는 '지친 몸을 쉴까', '뼈를 묻을까' 하는 유혹에 잠시 빠져들기도 하지만, 이내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그것을 물리친다. 고향은 '도피안사에 무리지던 / 연분홍빛 꽃너울'처럼 아름다움의 상징인 동시에, '먹어도 허기지던 삼춘 한나절'의 유년 시절을 환기시키는 아픔의 표상이기도 하다. 또한, 고향은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오염되어 가는 우리 고유 문화를 뜻하기도 한다. 물밀 듯 밀려 오는 서구 문화로 파괴되고 있는 고향을 생각하면 할수록 화자의 가슴은 '소태같이 쓰'기만 할 뿐이다.

'구국(救國)을 연상하게 하는 멧비둘기의 울음 소리 '구국구국'과 서구 문화를 대표하는 코카콜라의 중국식 표기인 '가구가락'을 교묘하게 배치시킴으로써 서구 문화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우리 문화의 현재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한편, 이 시의 주제인 '나라 사랑'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레 솟구치도록 하고 있다. 화자는 코카콜라를 '밸에 역겨운 / 물 냄새'라 힘주어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은 정겨운 우리의 멧비둘기 울음 소리를 '소태같이 쓰'다고 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 시는 독자들에게 산벚꽃 피고 멧비둘기 우는 들판에 나가 이름 모를 풀잎이라도 씹으며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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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高銀)


본명 : 고은태(高銀泰)

법명 : 일초(一超)

1933년 전라북도 군산 출생

1956년 {불교신문} 창간

1958년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5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8년 {고은 전집} 발간

1989년 제3회 만해 문학상 수상

1989년 장시집 {만인보} 발간

1991년 중앙문화대상 예술상 수상

시집 : {피안감성(彼岸感性)}(1960), {해변(海邊)의 운문집(韻文集)}(1963), {신 언어의 마을}(1967), {새노야}(1970),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1974), {부활}(1975), {제주도}(1976), {입산}(1977), {새벽 길}(1978), {고은 시선집}(1983), {조국의 별}(1984), {지상의 너와 나}(1985), {시여 날아가라}(1987), {가야 할 사람}(1987), {전원시편}(1987), {너와 나의 황토}(1987), {백두산}(1987), {네 눈동자}(1988), {대륙}(1988), {잎은 피어 청산이 되네}(1988), {그 날의 대행진}(1988), {만인보}(1989), {독도}(1995) 등 다수

소설집 : {피안앵(彼岸櫻)}(1962), {어린 나그네}(1974), {일식(日食)}(1974), {밤 주막}(1977), {산산히 부서진 이름}(1977), {떠도는 사람}(1978), {산 넘어 산 넘어 벅찬 아픔이거라}(1980), {어떤 소년}(1984), {화엄경}(1991)


이 시는 시인이 민족과 역사를 만나기 전, 허무주의적 세계에 빠져 있던 초기시의 대표 작품이다. 그의 허무주의는 50년대 전후(戰後)의 폐허를 배경으로 방랑과 입산, 환속으로 이어진 자신의 행려 의식(行旅意識)과 노장(老莊)의 무위(無爲) 사상, 그리고 불교의 공(空) 사상과 관련 깊은 것으로, 그의 초기시 세계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시인은 눈 덮인 길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방황과 고뇌를 가라앉히고 무념 무상(無念無想)의 명상적 경지에 다다르는 체험을 노래하고 있다. '눈'은 그 흰 빛깔로 인해 '정화(淨化)'의 이미지이며, 모든 것을 너그럽게 감싸 안는다는 의미에서 '관용(寬容)' 내지 '포용(包容)'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눈길은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즉, 지난날의 방황과 고뇌를 정화시켜 포근히 감싸 안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한다.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라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화자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오래도록 방황을 거듭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방황의 끝에서 그는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눈을 바라보며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솟구쳐 오르는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 바로 이 순간의 눈 덮인 풍경을 그는 '설레이는 평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눈길'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인데, '안에서는 어둠'이다. 나아가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라고 하고 있다. 이 어둠은 실제 어둠이 아닌, 마음 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눈길과 서로 조응되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어둠은 절망적 암흑이 아니라 평화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에서 느끼는 어떤 감정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눈'은 '겨울', 즉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방황을 거듭해 온 시인의 삶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는 이미지요, '어둠'은 '눈'으로 덮인 평화의 경지를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평온하고 고요한 평정심의 의미이다.


이 시는 시인이 신동문(辛東門) 시인의 모친상 때, 충북 청원군 소재의 문의 마을에 가서 장례 절차를 주관한 체험에서 나온 작품으로, 초기시의 허무적 색채에서 벗어나 70년대 중반, 민중 시인으로 변모하게 되는 중기시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먼저 이 시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 '길'과 '죽음'은 가장 핵심적인 시어이다. 1연의 2행과 3행에서 등장하는 '길'은 그 의미가 각기 다르다. 즉, 전자의 길이 화자가 문의까지 간 길을 나타낸다면, 후자의 길은 문의에서 다른 곳으로 뻗어나간 길을 의미한다. 5행에 나타난 '죽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첫 번째 죽음은 작품 전체의 문면(文面)에 나타나는 행동 주체로서의 죽음이지만, 두 번째 죽음은 화자의 정서에 의해 착색된 죽음, 결국 화자가 느끼는 죽음이다.

화자는 문의에 닿는 '길'과 죽음의 '길'을 은유로 결합하여 '이 세상의 길'로 보여 줌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문의와 세상이 연결되는 '길'을 통해 운구 행렬이 지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관성을 통해 길의 적막함은 곧 죽음의 적막함이 됨으로써 죽음은 삶을 거절한 채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음이 가는 길이자, 마을로 표상된 삶이 가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길'과 '마을'은 서로 대립적 개념이며, '재'는 삶이라는 마을에 예비되어 있는 죽음을 뜻한다.

화자는 이제 삶을 전제로 하지 않은 죽음은 없으며, 죽음은 결국 삶을 완결하고 통합시키는 것을 깨닫고는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 한 죽음을 받는 것을'이라고 말한다. '죽음이 죽음을 받는다'는 것은 죽음이 어느 한 개인의 죽음으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죽음과의 만남을 통해 모든 삶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것임을 뜻한다. 또한,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라는 구절에서 '인기척'은 살아 있음의 징표로 죽음과 대립되며, '저만큼'과 '돌아다 본다'는 것은 죽음과 삶, 죽음과 자아의 관계가 모순적임을 뜻한다. 다시 말해, 죽음이라는 것은 왔다가는 멀어지고, 멀어지다가는 다시 가까이 오는 것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침내 화자는 '모든 것은 낮아서 /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 중에서 죽음보다 높은 것은 없으며, 돌을 던져 죽음을 쫓아내려 해도 죽음은 온 세상을 덮어 버리는 눈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된다.

이 시에서 죽음은 결코 절망적이거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친근한 대상으로서 화자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죽음은 삶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삶을 완성시키는 것도 죽음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화자는 한층 경건해진 삶의 자세를 갖는다. 그러므로 화자는 엄숙한 장례 의식을 통해 깨닫게 된 죽음과 삶의 관계가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라는 표현으로 알려 주는 것이다.

이 시는 1970년대 유신 정권의 독재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시인의 민주화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화살'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적으로 앞장서 투쟁했던 사람, 즉 민주화 투쟁의 전위를 상징한다.

시인은 이 땅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서 '가진 것'·'누린 것'·'쌓은 것'이라는 부와 명예뿐 아니라 '행복'도 넝마처럼 버리자고 한다. 나아가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 화살처럼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고 반복해서 외침으로써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출한다. 또한, '박힌 아픔과 함께 썩'겠다, '피를 흘리'겠다는 다짐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민주화를 앞당기겠다는 순국(殉國)의 의지로 하나의 밀알이 썩어야만 만인을 먹이는 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캄캄한 대낮'으로 표상되는 폭압의 현실 속으로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겠다'는 시인의 대 사회적 선언은 마침내 그를 허무의 깊은 늪에서 벗어나 멀고도 험한 민중·민족·통일 문학의 금자탑으로 우뚝 서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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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동규(黃東奎)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58년 {현대문학}에 <시월>, <즐거운 편지>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8년 제13회 현대문학상 수상

1980년 한국문학상 수상

1990년 제1회 김종삼 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

시집 : {어떤 개인 날}(1961), {비가(悲歌)}(1965), {평균율 1}(공저, 1968), {평균율 2}(공저, 1972),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1975),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열하일기}(1984), {풍장(風葬)}(1984),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1988), {몰운대행(行)}(1991)

시론집 : {사랑의 뿌리}(1976)


이 시는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차가운 겨울날의 항구 모습과 눈송이를 통해 차분하게 묘사해 낸 작품이다. 화자의 감정이나 사상은 배제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중심 이미지는 정박해 있는 배이며, 그 배의 앙상함이 주는 쓸쓸함과 겨울밤 흩날리는 눈송이가 주는 황량함이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화자는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도착한 항구는 화자가 머문 곳이자 배가 정박한 곳이다. 항구는 떠나는 배와 도착하는 배가 머무르는 곳으로, 여행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항구는 화자의 방랑과 안주가 접합된 장소로서의 이중적 역할을 한다. '길게 부는 한지의 바람 /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드는 스산한 겨울밤, 마치 눈이라도 내릴 듯 불빛이 낮게 느껴지는 항구에서 화자는 우울한 마음으로 밤 풍경을 바라보며 서 있다. 화자의 막막한 심정은 '구겨 넣고', '꺼 버리고'와 같은 소멸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되어 나타나 있다. 항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던 화자는 이제 '조용한 마음으로 / 배 있는 데로 내려간다'. 화자는 그 곳에서 정박중인 배들이 모두 항구 쪽으로 뱃머리를 향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멀리 바다를 항해하던 배들이 지친 항해를 끝내고 항구로 돌아와서 편안히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 화자는 자신도 오랜 방랑을 끝내고 정박 중인 배처럼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그 때,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 개의 눈송이'가 '하늘의 새들'과 함께 날아오른다. '눈송이'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浮遊)하는 속성을 가진 것으로 화자의 방황하는 젊음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구절은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눈발을 현란한 이미지로 그려냄으로써 화자의 암울한 의식을 자극하는 동시에, '하강'의 이미지를 '상승'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이룬다. 막연함, 차가움, 덧없음 등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소재들과 화자의 우울한 심리가 얽혀 있던 전반부의 황량한 이미지가 후반부에 이르러 정박해 있는 '배'로 집중됨으로써 앞의 서성거림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극적 전환을 이룬다. 즉, 거대한 용골의 모습으로 정박해서 '항구의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배의 이미지는 어둡고 암울한 현실을 버텨 이겨내는 견고함의 의미를 화자에게 떠올려 준 것이다. 그로부터 비로소 화자의 암울했던 의식은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 정화되고 오랜 방황을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는 제목이 의미하듯 일종의 '사랑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연시(戀詩)는 대개 실연의 상처를 노래하거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함으로써 임을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은 자의 고독과 상처를 드러내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누가 떠났고 누가 남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단지 실연이라는 상황에 두 사람 모두 연루되어 있음을 암시할 뿐, '어제를 동여맨 편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두 사람의 행복했던 어제와 내일을 단절시키는 편지일 것임은 분명하다. 그 어제의 사라짐과 함께, 길과 길 아닌 것, 즉 어제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어제의 사라짐은 '어린 날 /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는 이미지와 연관된다. '돌'이 어린 날의 어떤 특정한 추억과 관련된다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 돌의 상태는 분명 그 추억이 더 이상 행복하거나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깨어진 금들'은 바로 이러한 깨어진 추억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으로, 추억의 그 빈 자리엔 이제 '몇 송이 성긴 눈'만 날릴 뿐이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눈은 화자가 아무리 '사랑한다 사랑한다' 외쳐 보아도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그렇다면, 이 화자가 갖는 그 비극적 운명은 무엇일까? 이 시가 창작된 70년대 초 암울했던 현실 상황과 관련한다면 '어제를 동여맨 편지'나 '문득 사라진 길'은 지난날 추구해 오던 가치가 억류되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로 상징된 사회적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화자는 바람직한 방향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 돌과 '한없이 떠 다니는' 눈송이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 노래'는 한 개인에게 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국가와 같은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그만 사랑'이 아닌 '큰 사랑'으로 심화, 확산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풍장'은 시신을 한데에 내버려 두어 비바람에 없어지게 하는 장례(葬禮) 풍속의 하나이다. 이 시는 풍장을 시적 상황으로 설정하여 자신이 죽을 경우 풍장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아울러 시간의 경과에 따른 풍장의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비장한 어조로 읊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풍장'이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많이 발표하였는데, 이 '풍장' 시리즈는 죽음에 관한 시이면서 동시에 삶에 관한 시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죽음에 대한 투철한 인식 없이는 삶의 황홀에 대한 감각도 없기 때문이다.

화자는 먼저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라는 요약된 진술을 통해 '바람'이 상징하는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죽음'의 그것과 병치시키고 있다. 죽음이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라면, 바람의 장송(葬送)이야말로 거기에 가장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 손목에 매어 달고'라는 구절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입은 채로'·'가는 채로'와 같이 생시의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현실 세계로부터의 격리를 소망하는 화자의 마음이 나타나 있으며, '전자 시계'는 현대의 물질 문명을 상징한다. 그러나 현실의 고통은 그러한 죽음마저도 그를 자유롭게 해 주지 않는다.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 군산에 가서 / 검색이 심하면 / 곰소쯤에 가서 /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라는 구절에는 죽어서까지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적 구속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 특히, '가죽 가방'과 '전세 택시'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극적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검색'은 군사 독재로 지칭되는 시대적 상황을 의미하며, '곰소'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물리적 상황이 미치지 않는 곳, 즉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가장 자연스러운 곳을 뜻한다. 그러므로 화자는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달라며 현실을 벗어나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2연에서는 육지에서 바다로 전환된 시적 배경에 따라 육신의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보여 준다. 물론, 이 바다는 화자가 육신의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지향점, 즉 무인도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결국 바다는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는 '늦가을 차가운 햇빛'이 있는 '무인도'[이상 세계]와 '가죽 가방'·'전세 택시'·'검색'으로 점철된 육지[현실 세계]를 분리시키는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로서의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 일체의 구속을 벗어 던진 완전 자유의 상태에서 무인도의 햇빛 속에 누워 바람으로 피와 살을 마르게 해 달라는 풍장에의 염원은 바로 육신의 모든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화자의 소망을 뜻하는 것으로, 정신의 투명성과 자유를 성취하고자 하는 갈망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햇빛'과 '바람'이 그 같 은 투명함,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이미지가 된다. 또한, '손목시계 부서질 때 /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린다는 것은 시간과의 단절, 즉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영겁의 시간 속으로 소멸되는 육신의 모습을 암시한다. '백금'은 '돈'으로 표상되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의미하며, '백금'마저 녹스는 풍장의 과정은 그 어떠한 것도 대자연 앞에서는 무화될 수밖에 없는 무가치한 것임을 알려 준다.

3연에서는 자유로움을 성취하는 모습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다. 5행으로 진술된 화자의 염원은 실상 1연의 첫 행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를 자세히 설명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풍장'의 핵심인 '바람'이 중심이 되어 시상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은 살과 피를 말리우듯 일체의 사물을 소멸시켜 자연의 일부로 되돌려 주는 생명 순환(生命循環)의 원리를 상징한다. '화장도 해탈도 없이'는 자신의 죽음이 그 어떤 세속적 가식으로도, 신성한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는 화자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는 바람에 풍화되어 가는 육신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결국, 이 시는 '바람'과 '죽음'이라는 두 소멸의 이미지를 '풍장'으로 결합시켜 일상적 삶의 고통과 세속적 욕망에서부터 벗어나 정신의 투명성과 자유로움을 성취함으로써 무한한 자연에로 귀의하고자 하는 화자의 소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풍장은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자연적인 장례 의식이다. 그러므로 화자가 자신이 죽을 경우 '풍장'을 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생의 마지막을 가장 자연적인 장례 의식으로 마감함으로써 현대 문명사회에서 그 가치를 잃고 점점 왜소해지거나 세속적 욕망으로 인해 반자연적인 삶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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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부(李盛夫)

1942년 광주 출생

1959년 광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1961년 {현대문학}에 <백주>, <열차>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4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들의 양식(糧食)> 당선

1967년 김광협, 이탄, 최하림, 권오운 등과 {시학} 동인

1969년 제15회 현대문학상 수상

1977년 제4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시집 :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백제행}(1977), {평야}(1982), {빈 산 뒤에 두고}(1989), {야간 산행}(1996)

이 시는 '벼'라는 생명 표상을 통해 민족, 민중의 공동체 의식을 나타낸 작품으로, 비유와 상징의 기법으로써 주제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성부의 시에는 분노와 사랑의 감정이 함께 담겨 있다. 분노를 담고 있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내면 세계나 자연과 같은 서정보다는 사회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는 흔히 참여시로 분류된다. 그의 시 속에는 지난 역사 속에서 가혹하게 짓밟히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껴안고자 하는 일관된 의지가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 타인의 삶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역사적 현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억압과 소외의 현실에 대한 고발과 함께 패배감을 극복하려는 현실 극복의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인 '벼'는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민중, 민족 의식과 생명 의지로 상징된다. 기·승·전·결의 4연 구성의 이 시는 벼의 외면적 모습, 벼의 내면적 덕성, 벼의 내면적 태도, 벼에 대한 예찬의 과정에 따라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1연의 '햇살 따가워질수록 /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라는 구절에 온갖 고난을 이겨낸 민중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으며,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는 구절에는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민중의 삶이 나타나 있다. 2연에서 보듯, 이러한 민중들이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었을 때, '더 튼튼해진 백성들'이 된다는 것은, 개인이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민중의 저력이 발휘됨을 의미한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이 죄지은' 것처럼 권력에 짓밟혀 숨죽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힘이 강해질 때면 그들은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는 벼와 같이 가슴엔 세상을 향한 강렬한 저항의 불길이 일어나며, 자신들이 떠나야 할 때는 소리 없이 떠날 줄도 알고 있다.

3연은 2연의 부연 단락으로 민중들이 어질고 현명한 존재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로 표상된 절대자를 향하여 서러움을 달랠 줄도 알고, 시련이 닥쳐올 때면 노여움을 삭일 줄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회 현실에 대해 저항할 줄 아는 '더운 가슴'이 용솟음치는 민중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4연에는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는 강한 민중의 생명력이 함축되어 있다. 비록 벼는 피흘리며 베어지지만, 자기 희생을 통해 이룩한 '넓디넓은 사랑'에 만족하며 조용히 쓰러진다. 쓰러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아는 벼의 고귀한 희생을 거쳐 새로운 벼가 탄생되듯, 이러한 연속성 속에서 인간의 삶이 유지되는 것을 민중들은 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삶의 동반자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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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李昇薰)

1942년 강원도 춘천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및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1962년 {현대문학}에 <바다>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4년 '현대시' 동인

1983년 제29회 현대문학상 수상

1987년 제19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겸 {현대시 사상} 주간

시집 : {사물 A}(1969), {환상의 다리}(1976), {당신들의 초상(肖像)}(1981), {사물들}(1983), {당신의 방}(1984), {너라는 환상}(1990),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1991) 등

평론집 : {반인간}(1975), {시론}(1979), {이상(李箱) 시 연구}(1987) 등


김춘수의 시를 흔히 '무의미의 시'라 하고,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승훈의 시를 '비대상(非對象)의 시'라고 부른다. 이것은 김춘수가 심상만을 제시하는 서술적 이미지에 초점을 두는 데 반해, 이승훈은 무의식적 세계의 환상을 순간순간 떠오르는 언어로써 이미지의 고리를 만들어 형상화하는 데서 이르는 말이다.

이 시는 제1호에서 제9호까지 연작시 형태로 이루어진 것 중 제1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 각 편이 의미의 맥락을 갖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위독'이라는 말의 심상을 공통적 모티프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내면 세계의 처절하고 참담한 감정적 분위기를 순간마다 떠오르는 언어들의 상호 충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시에는 몇 개의 시적 소재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 외부의 사물을 노래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직관 그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시적 소재들이 어떤 인과적 의미망이나 사실적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유 연상에 따른 초현실주의적 수법에 의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가 '장송의 바다'라는 시구나 '위독'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죽음에 직면한 어떤 상황을 암시하는 인상만을 전해 줄 뿐, 분명한 내용 전개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 난해시로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 보이는 여러 시어들, 즉 '램프'·'난간'·'장송의 바다'·'달빛'·'망또'·'어둠의 칼'·'불빛'·'집념의 머리칼'·'차건 손'·'식탁'·'흰 보자기' 등은 어떤 의미 질서의 맥락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내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식의 어두움, 또는 깊숙이 배어 있는 절망이나 고독의 감정을 제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단편적 사물들이다. 이러한 시어들은 시인의 개인적 내면인 어두움, 고독, 절망 등에 의해 발생된 것들로 무의식적 내면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램프가 꺼진다'는 첫 구절은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변화, 즉 내면 세계의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어두움의 깊이는 '소멸의 깊은 난간'이라는 구절로 제시되어 있다. 바로 그 같은 내면 세계에서 도달하게 된 '장송의 바다'는 끝없는 절망을 표상하며,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는 마지막 구절은 '장송의 바다'의 끝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를 통해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 것은 이들 언어들이 상호 충돌을 통해 이룩해 내는 내면적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 그 상황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는 현실의 실제적 상황에 부딪쳐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한 실존의 내면의 무의식적 환상을 심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의 그 처절하고 참담한 정서적 상황은 곧 현실의 참담한 상황의 무의식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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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자(許英子)

1938년 경상남도 함양 출생

1961년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에 <도정연가(道程戀歌>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3년 우리 시문학사상 최초의 여성동인회 <청미회> 조직

1986년 제20회 월탄 문학상 수상

1992년 제2회 편운 문학상 수상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 {가슴엔 듯 눈엔 듯}(1966), {친전(親展)}(1972),{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 {빈 들판을 걸어가면}(1984), {조용한 슬픔}(1990) 등


이 시는 '벼'라는 생명 표상을 통해 민족, 민중의 공동체 의식을 나타낸 작품으로, 비유와 상징의 기법으로써 주제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성부의 시에는 분노와 사랑의 감정이 함께 담겨 있다. 분노를 담고 있다는 것은 그의 시선이 내면 세계나 자연과 같은 서정보다는 사회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시는 흔히 참여시로 분류된다. 그의 시 속에는 지난 역사 속에서 가혹하게 짓밟히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껴안고자 하는 일관된 의지가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 타인의 삶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역사적 현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억압과 소외의 현실에 대한 고발과 함께 패배감을 극복하려는 현실 극복의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인 '벼'는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민중, 민족 의식과 생명 의지로 상징된다. 기·승·전·결의 4연 구성의 이 시는 벼의 외면적 모습, 벼의 내면적 덕성, 벼의 내면적 태도, 벼에 대한 예찬의 과정에 따라 시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1연의 '햇살 따가워질수록 /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라는 구절에 온갖 고난을 이겨낸 민중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으며,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는 구절에는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민중의 삶이 나타나 있다. 2연에서 보듯, 이러한 민중들이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었을 때, '더 튼튼해진 백성들'이 된다는 것은, 개인이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민중의 저력이 발휘됨을 의미한다. 그들은 아무 '죄도 없이 죄지은' 것처럼 권력에 짓밟혀 숨죽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힘이 강해질 때면 그들은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는 벼와 같이 가슴엔 세상을 향한 강렬한 저항의 불길이 일어나며, 자신들이 떠나야 할 때는 소리 없이 떠날 줄도 알고 있다.

3연은 2연의 부연 단락으로 민중들이 어질고 현명한 존재임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로 표상된 절대자를 향하여 서러움을 달랠 줄도 알고, 시련이 닥쳐올 때면 노여움을 삭일 줄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회 현실에 대해 저항할 줄 아는 '더운 가슴'이 용솟음치는 민중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4연에는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는 강한 민중의 생명력이 함축되어 있다. 비록 벼는 피흘리며 베어지지만, 자기 희생을 통해 이룩한 '넓디넓은 사랑'에 만족하며 조용히 쓰러진다. 쓰러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아는 벼의 고귀한 희생을 거쳐 새로운 벼가 탄생되듯, 이러한 연속성 속에서 인간의 삶이 유지되는 것을 민중들은 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삶의 동반자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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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李昇薰)

1942년 강원도 춘천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및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

1962년 {현대문학}에 <바다>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4년 '현대시' 동인

1983년 제29회 현대문학상 수상

1987년 제19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현재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겸 {현대시 사상} 주간

시집 : {사물 A}(1969), {환상의 다리}(1976), {당신들의 초상(肖像)}(1981), {사물들}(1983), {당신의 방}(1984), {너라는 환상}(1990),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1991) 등

평론집 : {반인간}(1975), {시론}(1979), {이상(李箱) 시 연구}(1987) 등


김춘수의 시를 흔히 '무의미의 시'라 하고,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승훈의 시를 '비대상(非對象)의 시'라고 부른다. 이것은 김춘수가 심상만을 제시하는 서술적 이미지에 초점을 두는 데 반해, 이승훈은 무의식적 세계의 환상을 순간순간 떠오르는 언어로써 이미지의 고리를 만들어 형상화하는 데서 이르는 말이다.

이 시는 제1호에서 제9호까지 연작시 형태로 이루어진 것 중 제1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 각 편이 의미의 맥락을 갖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위독'이라는 말의 심상을 공통적 모티프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 시는 내면 세계의 처절하고 참담한 감정적 분위기를 순간마다 떠오르는 언어들의 상호 충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시에는 몇 개의 시적 소재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 외부의 사물을 노래하고 있다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직관 그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시적 소재들이 어떤 인과적 의미망이나 사실적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유 연상에 따른 초현실주의적 수법에 의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가 '장송의 바다'라는 시구나 '위독'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죽음에 직면한 어떤 상황을 암시하는 인상만을 전해 줄 뿐, 분명한 내용 전개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 난해시로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 보이는 여러 시어들, 즉 '램프'·'난간'·'장송의 바다'·'달빛'·'망또'·'어둠의 칼'·'불빛'·'집념의 머리칼'·'차건 손'·'식탁'·'흰 보자기' 등은 어떤 의미 질서의 맥락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내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의식의 어두움, 또는 깊숙이 배어 있는 절망이나 고독의 감정을 제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단편적 사물들이다. 이러한 시어들은 시인의 개인적 내면인 어두움, 고독, 절망 등에 의해 발생된 것들로 무의식적 내면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램프가 꺼진다'는 첫 구절은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변화, 즉 내면 세계의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어두움의 깊이는 '소멸의 깊은 난간'이라는 구절로 제시되어 있다. 바로 그 같은 내면 세계에서 도달하게 된 '장송의 바다'는 끝없는 절망을 표상하며,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는 마지막 구절은 '장송의 바다'의 끝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를 통해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 것은 이들 언어들이 상호 충돌을 통해 이룩해 내는 내면적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 그 상황 속에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시는 현실의 실제적 상황에 부딪쳐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한 실존의 내면의 무의식적 환상을 심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의 그 처절하고 참담한 정서적 상황은 곧 현실의 참담한 상황의 무의식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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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자(許英子)

1938년 경상남도 함양 출생

1961년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에 <도정연가(道程戀歌>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3년 우리 시문학사상 최초의 여성동인회 <청미회> 조직

1986년 제20회 월탄 문학상 수상

1992년 제2회 편운 문학상 수상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 {가슴엔 듯 눈엔 듯}(1966), {친전(親展)}(1972),{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 {빈 들판을 걸어가면}(1984), {조용한 슬픔}(1990) 등


이 시는 사랑과 절제의 시인으로 불리는 허영자의 대표작으로 '수놓기'라는 일상적 일을 통해 '세사 번뇌'와 '사랑의 슬픔'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체험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이자 핵심 소재인 '자수'는 시인에게 있어 실제적인 수놓기라기보다는 고뇌를 견디는 방법이요, 극기(克己)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모두 6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의미상 3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 단락은 1연으로 화자가 수를 놓는 일이 어떤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마음 속의 고뇌나 슬픔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둘째 단락은 2∼3연으로 오랜 번민을 가라앉히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심경에 다다르는 수놓기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여러 가지 색실을 따라가며 화자가 수를 놓다 보면, 어느덧 '처음 보는 수풀'이나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 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내면적 상상의 세계로 화자가 수를 놓으면서 되찾게 된 마음의 평화를 의미한다. 셋째 단락은 4∼6연으로 수를 놓고 있으면 사랑의 슬픔도 이겨내고 번뇌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1연의 '어지러운'과 2연의 '아우성'으로 암시되었던 고뇌의 내용이 셋째 단락에 와서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화자를 오래도록 괴롭혀 왔던 사랑의 고뇌요 슬픔이다. 아마도 화자는 수를 놓는 행위를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극락 정토'라는 절대적 구원까지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허영자 시는 일반적으로 간결과 반복의 표현 특징을 갖는다. 간결함은 곧 함축성을 뜻하는 것으로 허영자의 경우, 행의 길이가 짧을 뿐더러 작품 전체의 길이까지도 짧다. 이 작품도 일체의 군말을 배제한 표현의 절제를 통해 고도의 압축미를 보여 준다. 또한, 전통적 서정을 주조로 하여 사랑과 기다림, 한과 고독의 본질적인 인간 내면을 구가하는 우리 여성 시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와 같은 언어 절제의 압축미를 통하여 시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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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익(李秀翼)

1942년 경상남도 함안 출생

1965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고별>, <편지>가 당선되어 등단

1963년 '현대시' 동인

1965년 제4회 신인 예술상 수상

1980년 부산시 문화상 수상

1987년 제32회 현대문학상 수상

1988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5년 제7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본부 근무

시집 : {우울한 샹송}(1969), {야간 열차}(1978), {슬픔의 핵(核)}(1983), {단순한 기쁨}(1986), {그리고 너를 위하여}(1988), {아득한 봄}(1991), {시간의 샘물}(4인 공동 시집, 1990), {지상에는 진눈깨비 노래가}(4인 공동 시집, 1992) 등


맑고 아름다운 서정시로써 이 시대의 어둠을 맑게 정화시켜 주는 소중한 시인의 한 사람인 이수익은 첫 시집 {우울한 샹송}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투명한 지성으로 비애의 정서를 고양시킴으로써 한국 서정시의 황금 부분을 조용히 갈고 닦아온 시인이다. 흔히 잔잔한 우수와 비애의 정서, 명징한 이미지와 언어의 세계, 상실감 회복의 미학으로 평가받는 그는 평자에 따라서는 소월과 지용의 장점만을 섞어놓은 시인, 또는 타고난 천성의 시인이라는 극찬을 듣기도 한다.

이 시는 그의 첫 시집 {우울한 샹송}에서 가장 완벽한 구조의 서정시로 손꼽는 작품으로, 삶의 허망함과 죽음의 막막함을 투명한 지성적 통제 아래 절제된 감정으로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전 9행의 소품이지만, 시인이 이 작품에 기울인 시적 의장(意匠)의 치밀성과, 각 시어나 시행마다 쏟아넣은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 설정된 시적 상황은 지극히 단순하다. '간밤에 말이 죽었고, 오늘 아침 그 말의 주검 위에 비가 내린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시적 대상인 말의 죽음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겉으로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지만, 시인은 애정을 가지고 따스한 시선으로 말의 죽음을 바라본다. 검고 슬픈 눈을 가진 말의 순결성, 그동안 말이 견뎌야 했던 노동, 어느 누구 한 사람 지켜 주지 않았던 최후, 그 말의 죽음을 위로하듯 내리는 비 등, 시인이 관찰하고 명상하는 내용 속에는 이와 같은 사랑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맞이하게 되는 생명의 종식에 대한 안타까움, 외로운 영혼이 지닌 순결성에 대한 명상이 시행 사이에 응결되어 있다.

시인은 먼저 말이 죽었다는 사실을 첫 행에서 제시한 다음, 말의 순결성과 고통스런 삶의 과정을 2, 3행의 '두 눈을 감아 버리고'와 '뼈를 쓰러뜨리고'라는 대구 형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다음에는 말의 고독한 영혼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4∼6행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운반해 갔다'라는 구절은 말의 노동 행위와 연관되는 표현으로 절묘한 효과를 자아낸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노동으로 평생을 보냈을 말이므로 죽어서도 자신의 삶을 죽음으로 운반해 갔을 것이라는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을 엿보게 하는 이 구절에서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 생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그 다음 7∼9행은 하늘이 말을 위해 베풀어 주는 전별 의식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비가 내린다' 다음의 쉼표(,)와 '슬픈 전별이' 다음의 마침표(.)이다. 앞의 쉼표는 호흡의 단절을 막고 뒤의 마침표에서 시상이 끝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므로 서술어가 생략된 채 마침표로 끝나 버린 마지막 시행의 공백 뒤에는 죽음의 침묵과 적막이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죽음을 바라보고 느끼는 시인의 허망함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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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탄(李炭)

본명 : 김형필(金炯弼)

1940년 서울 출생

1963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람 불다>가 당선되어 등단

1964년 '신춘시' 동인

1969년 월탄 문학상 수상

1984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시집 : {바람 불다}(1967), {소등(消燈)}(1968), {옮겨 앉지 않는 새}(1979), {대장간 앞을 지나며}(1983) 등


자아 성찰을 통해 존재의 내면을 탐구하여 실존적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는 이 시는 참신한 감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기 괴리(自己乖離)의 현실 세계를 다양하게 인식하고 형상화하는 시인이라 평가받고 있는 이탄의 대표작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새들'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상적 인간들을 뜻하며, '한 마리 새'는 실존적 삶을 자각한 존재로 시인 자신을 의미한다. 한편, '새들이 가득한 푸르른 여름'은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이 현실 세계를 표상한다.

일상적 인간인 '새들'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날기도 하고, 한 가지에 여러 마리가 앉아 싸우기도 하는 등 마치 자신들이 누리는 이 미망(迷妄)의 세계가 가치의 모든 것인 양 향락을 구가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만 감각적 세계의 유한적 자유일 뿐,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벗어나서 누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인식한 '한 마리의 새'인 시인은 '하늘'이라는 무한한 공간 중 극히 일부의 공간일 뿐인 '나뭇가지'에 존재하면서 향락적인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가지에 매달려 '나뭇잎'이 된 새, 곧 실존적 삶을 자각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새'가 '나뭇잎'으로 변화하는 존재의 탈바꿈은 바로 존재의 자기 초월을 의미하는 동시에,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왜냐 하면, 나뭇잎의 조락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떨어진 나뭇잎이 땅에 묻혀 새순이 되어 돋아나는 것은 부활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존재의 초월을 이루는 열쇠는 바로 '고독의 문'으로 형상화된 자아 성찰이다. 마지막 구절에서 '옮겨 앉지 않는 새가 / 고독의 문에서 나를 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그것임을 알게 해 준다. 이렇듯 이 시는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인식을 통해 일상적 삶을 극복하고, 나아가 삶과 죽음까지도 초월하고 싶어하는 시인의 철학적 삶의 자세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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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태일(趙泰一)

1941년 전라남도 곡성 출생

1966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이 당선되어 등단

1964년 '신춘시' 동인

시집 : {아침 선박}(1965), {식칼론}(1970), {국토}(1975), {가거도}(1983), {연가}(1985), {별 하나에 사랑과}(1986), {자유가 시인더러}(1987),{풀꽃은 꺾이지 않는다}(1995)


이 시는 시인의 투철한 현실 인식을 보여 준 그의 세 번째 시집 {국토}의 서시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1970년대를 지탱했던 민중 사관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국토에 대한 사랑과 새 역사의 도래를 기다리는 소망을 통해 시인은 억누르는 자, 가진 자, 높은 자들에 대한 부정 의식과 더불어 억눌리는 자, 헐벗은 자, 낮은 자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나타내고 있다. 국토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애정은 곧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민초들에 대한 애정이므로 시인은 그것을 비록 '버려진 땅'이라 호명하면서도 그것이 배태하고 있는 풀잎이나 돌멩이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섬세함을 보여 준다.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숱한 민중들의 영혼에 '우리의 삶을 불지펴'야 하며 '우리의 숨결을 보태'야 한다는 시인의 주장에서 우리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간 이 땅의 민중들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와 '살결'과 '뼈'까지도 '통째로 보태'야 한다는 그의 의지에서 우리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땅은 다스리는 자의 것이 아닌,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또는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두 발로 걸어 답파(踏破)해서 살아 있는 땅임을 깨달은 민중들의 것임을 바탕으로 자신의 '국토론'을 출발시키고 있으며, 현실을 막강한 힘으로 압박하고 있는 부정적 힘의 실체에 맞서 '야윈 팔다리일망정' '통째로'의 논리로 맞서는 저항문학의 정수를 이 시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구성은 '― 수밖에 없는 일이다'로 끝나는 1∼3연의 전반부와 '― 일이다'로 끝맺는 4·5연의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반부에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감지하게 하며, 후반부에서는 그 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환기시켜 준다. 그것은 곧 현실이 어려울지라도 삶을 포기할 수 없으며,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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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종(鄭玄宗)

1939년 서울 출생

1964년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에 <화음(和音)>, <여름과 겨울의 노래>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5년 '60년대 사화집' 동인

1966년 '사계' 동인

1992년 제4회 이산문학상 수상

1995년 제40회 현대문학상 수상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 {사물(事物)의 꿈}(1972), {고통의 축제}(1974), {나는 별 아저씨}(1978),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1984), {거지와 광인}(1985),{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꽃 한송이}(1992), {세상의 나무들}(1995) 등

시론집 : {숨과 꿈}(1982), {시의 이해}(1983), {관심과 시각}(1983)


정현종은 박남수의 사물 이미지 추구와 김춘수의 존재 의미 천착 경향을 결합해 놓은 듯한 독특한 시풍을 가진 시인이다. 그는 인간성과 사물성, 주체성과 도구성 사이의 정당한 의미망을 나름대로 추구함으로써 그 동안 인간들의 아집과 욕망에 의해 더렵혀지고 훼손된 사물 본성의 회복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사물들이 자기의 기능과 직분을 다하면서 다채롭고 조화로운 화해의 세계를 만들기를 소망한다.

그의 초기시는 전후의 허무주의나 토착적 서정시를 극복하고, 시인의 꿈과 사물의 꿈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초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의 시는 '고통 / 축제', '물 / 불', '무거움 / 가벼움', '슬픔 / 기쁨' 등과 같은 상반되는 정서의 갈등과 불화를 노래하면서도 현실을 꿈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정신의 역동적 긴장을 탐구한다. 그러던 그가 80년대 말부터는 현실과 꿈의 갈등보다는 생명 현상과의 내적 교감, 자연의 경이감, 생명의 황홀감을 노래하면서 화해의 세계를 지향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이 시는 부제에서 명기된 것처럼 사물 중 나무의 꿈을 평이한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무의 꿈이란 나무가 자신의 생명을 실현하려는 꿈이다. 그 꿈은 우주와의 에로스적인 친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나무는 '햇빛'과 '비'와 '바람'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구현한다. 나아가 나무는 이렇듯 우주와의 교감과 상호 침투 과정을 통해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된다.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지만, 물, 햇빛, 공기, 바람 등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나무는 우주의 생태적 질서의 한 중심이다. 다시 말해, 우주적인 존재로서의 나무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나무의 꿈은 시인의 꿈으로 환치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 이 시에 나타나는 것은 나무와 햇빛, 비, 바람의 단순한 교섭이지만, 그것은 생명과 우주, 인식과 세계의 상호 교섭이라는 보다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는 시적 대상인 나무를 통해 우주적인 공동체 안에서 생명의 자기 실현에 관한 꿈을 꾸고 있는 시인의 열망을 드러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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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은교(姜恩喬)


1946년 함경남도 흥원 출생

1968년 연세대학교 영문과 졸업

1968년 {사상계} 신인 문학상에 <순례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

1975년 제2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92년 제37회 현대문학상 수상

현재 동아대학교 교수

시집 : {허무집(虛無集)}(1977), {빈자일기(貧者日記)}(1977), {소리집(集)}(1982), {우리가 물이 되어}(1986), {바람 노래}(19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1989), {그대는 깊디 깊은 강}(1991), {벽 속의 편지}(1992) 등



 

이 시는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미래 가정법 형태로 시작하여 생명력의 합일에 대한 희구를 '물'과 '불'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물'은 '나'와 '그대'라는 고립된 개체들을 '우리'로 합일시킬 수 있는 매개체이자, '가뭄'으로 표상된 삶의 고독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또한, '물'은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는 생명의 기원인 동시에, 다른 것들과 섞여 '아직 처녀인 / 부끄러운 바다'로 흘러감으로써 삶의 다른 세계를 맛보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물'로 상징되는 조화로운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태워 버릴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에, 3연에서 '불'로 만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은 삶의 기본 원리가 되는 '물'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것으로,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에 맞서는 대결의 정신을 의미한다. 그 때,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음을 발견한 시인은, 이 불이 지나가고 난 후, 모든 사람들이 '만리 밖'의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마침내 '흐르는 물'로 만날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지향하는 '넓고 깨끗한 하늘'이란 바로 완전한 합일과 충만한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새로운 창조적 만남의 공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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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원(吳圭原)

본명 : 오규옥(吳圭沃)

1941년 경상남도 삼랑진 출생

1961년 부산사범학교 졸업, 그후 동아대학교 법학과 졸업

1968년 {현대문학}에 <우계(雨季)의 시(詩)>,<몇 개의 현상(現像)>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82년 제27회 현대문학상 및 연암 문학상 수상

현재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사랑의 기교}(1975),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1987), {마음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 소리}(1995)

시론집 : {현실과 극기}(1976), {언어와 삶}(1983), {현대시작법}(1990)


오규원은 이 시대의 가장 개성 있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무의미한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일상적 감각에 대한 거역'이라는 시적 방법을 추구하는데, 이것은 비슷한 경향의 시인인 이승훈이 비대상의 시를 추구하는 것이나, 정현종이 철저하게 개성적인 이미지에 의지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는 사물의 존재를 감각적 인식에 따라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적는 것을 거부하는 동시에, 감각적으로 인식된 것을 뒤집어 놓음으로써 보이는 것을 감추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전도된 언어 속에서 역설의 원리에 따라 사물의 새로운 질서를 발견한다. 그것은 일상적인 감각이나 인습화된 개념을 벗어나기 위한 시적 방법으로, 결국은 그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도 관련된다.

이 시는 이질적인 두 존재인 '개봉동'과 '장미'를 한 자리에 공존시켜 양자 사이의 내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서 '장미'는 순수와 신비와 아름다움과 생명을, '개봉동'은 공장과 도시와 문명과 공해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순수한 삶을 훼손·파괴시키는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

첫째 연에서 '장미'는 '개봉동' 입구의 길을 왼쪽으로 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로 나타나 있다. 비록 '장미'가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그가 가진 순수함은 '개봉동' 입구의 길마저도 굽게 한다는 의미 있는 말을 첫 구절에 배치시켜 생명의 위대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와 함께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서 있는 장미를 뒤이어 보여 줌으로써 장미가 개봉동의 길에 흡수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개봉동의 길이 장미의 길로 이어지게 하는 생명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이 '장미'가 '개봉동' 주민으로 섞일 수 있는 한편, 서울 속에 피어 있으면서도 서울 밖의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다른 법칙 속에서 살아가는 모순된 삶의 모습을 '개봉동'과 '장미'라는 이질적인 두 존재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셋째 연에서는 '장미'의 비밀스러운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순수와 아름다움과 신비와 생명의 표상인 장미야말로 이 시대 인간들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세계이며, 그러한 세계를 수용하거나 만나지 않는 한, 우리 시대의 막힌 문들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에게 있어 개봉동에 피어 있는 장미는 쉽사리 그 존재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런 탓으로 그는 이러한 장미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분명한 것은 길 밖에서 길을 이끌고 있는 장미의 세계를 소생시킬 때라야만,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바람직한 제 길을 찾을 뿐 아니라, 닫혀 있는 문도 활짝 열릴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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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영(吳世榮)

1942년 전라남도 영광 출생

1965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68년 {현대문학}에 <잠 깨는 추상>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72년 '현대시' 동인

1983년 제15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4년 제4회 녹원 문학상 수상(평론 부분)

1986년 제1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1992년 제4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2년 제2회 편운 문학상 수상(평론 부분)

현재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 {반란하는 빛}(1970),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3), {모순의 흙}(1985), {무명연시(無名戀詩)}(1986), {불타는 물}(1988), {사랑의 저쪽}(1990),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1991), {꽃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어리석은 헤겔}(1994) 등

평론집 : {한국 낭만주의 시 연구}(1980), {한국 현대시의 행방}(1988), {20세기 한국시 연구}(1989), {상상력과 논리}(1991), {문학연구방법론}(1993) 등


오세영은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존재의 상처와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세상에 버려진 고독한 존재라는 것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일찍이 김춘수에 의해 제기된 것이지만, 김춘수가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릴케류의 서양 철학을 통해 탐구했다면, 오세영은 그 고뇌를 '무명(無名)'이라는 동양적 진리를 통해 탐구한다. 여기서 '무명'이란 본질적인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인 번뇌와 아집에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이 무명의 상태에서 깨달음을 통해 존재가 본래적으로 지향해야 할 영원성과 무한성을 찾아가는 노정에 놓여 있는 한편, 존재의 깨달음을 얻은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양식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절제와 균형의 미덕이라는 동양적 중용의 의미를 담고 있는 형이상학적 작품이며, 근대적 이성주의라 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삶과 합리적인 사고 체계를 수용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팽팽하고 긴장된 힘으로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그릇'이 '빗나간 힘'에 의해 '깨진 그릇'이 되었을 때, 그것은 아무것이나 베어 넘길 수 있는 무서운 '사금파리'의 '칼날'이 되어 그 내부에 감추고 있던 긴장된 힘의 본질 ― 날카로운 면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릇'은 조화롭고 질서 잡힌 '원'의 세계이지만, 그것은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매우 불안하고 긴장된 형태로 자신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나 사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단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 본래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이 시는 바로 그 같은 편향된 사고 방식이 가져올 수 있는 획일화된 이념, 사상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깨진 그릇'에 비유하여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그릇'이 절제와 균형이 잡힌 합리적인 세계라면, '깨진 그릇'은 절제와 균형이 무너진 비합리적인 세계가 되며, 그러한 왜곡된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맹목의 사랑'을 강요하는 매체가 바로 '칼'인 것이다.

처음엔 조화롭고 균형 잡힌 '원'의 세계인 '그릇'이었지만, 그것이 깨어질 때, '원'이 주는 원만한 세계는 마치 '칼날'과 같은 예리한 무기가 지배하는 기형적(畸形的) 세계로 변질되고 만다. 이러한 잘못된 세계는 사람들에게 단선화된 이념만을 강요함으로써 정상적인 삶을 구속하고 억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에서 '그릇'과 같은 모나지 않은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시인의 중용적 생활 자세와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 의지를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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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金芝河)

1941년 전라남도 목포 출생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1969년 {시학}에 <황톳길>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70년 <오적(五賊)>을 발표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에서 수여하는 '로터스상' 수상

1981년 국제시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위대한 시인상' 수상

1981년 브르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수상

1991년 {김지하 전집} 발간

시집 : {황토}(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986), {검은 산 하얀 밤}(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등


1960년대 이후 우리 농촌은 왜곡된 경제화 정책과 농촌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쇠퇴 일로를 걷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한 농민들의 대규모 이농(離農) 현상과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몰려간 농민들은 단순히 노동력만을 파는 것을 지나 여인들은 몸을 팔게 되었음은 물론, 결국에는 농촌의 삶 또는 그들의 정신마저 도시에 팔게 되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이농 현상은 단순히 농촌만의 문제가 아닌, 전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된 동시에 한국인 모두가 고향을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심각한 고향 상실 의식을 갖게 되었다. 삶의 원형적이고 화해로운 질서로서의 고향 공간은 사라져 버린 대신, 시멘트로 대표되는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인 도시 문화만이 이 땅에 남게 되었다. 이 시는 바로 이러한 이농 현상과 그로 인한 농촌 문화의 붕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서글픔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표현은 '간다 / 울지 마라 간다'는 구절의 세 번에 걸친 반복에 초점이 놓여 있다. 이 구절이 작품의 서두, 중간, 결말 부분에 놓여 시상을 개폐시킴은 물론 시상을 응축시키는 기능도 갖고 있다. 몸을 팔기 위해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표현은 그 결연한 의지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서글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비장한 느낌을 전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묘미는 이러한 단호함과 비장함이 한데 맞물려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것에서 시적 긴장이 생겨나는 것이며, 그 긴장의 구도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며 주제를 강조시키고 있다.

한편, 화자는 서울에서 일용 노동자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몸 팔러 가'는 상황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비감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수출 주도형의 경제 구조 지탱을 위한 저임금과, 농민들에 대한 정부의 저곡가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언제 돌아온다는 약속도 할 수 없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맹세할 수도 없이 막막한 심정으로 고향을 떠나 '모질고 모진' 서울로 향해 가는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결코 고향의 '분꽃'과 '밀냄새'는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고백 속에는 화자의 회한과 분노가 짙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70년대를 온통 수형(受刑) 생활로 보낸 시인이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유신 체제의 질식할 듯한 폭압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의 열망을 온몸으로 절규함으로써 그를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우뚝 서게 한 이 시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신 새벽 뒷골목에 남 몰래 쓰'는 시적 상황 속에 당시의 현실이 선명하게 집약되어 있다.

시인은 첫째 연에서 '신 새벽'이라는 시간과 '뒷골목'이라는 공간이 갖는 복합적 의미 구조를 통해 화자가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신새벽'은 순수와 자유의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이고, '뒷골목'은 그늘지고 어두운 공간을 표상하므로 시인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역설적 원리를 대입한다면,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의 폭압이 심할수록 조국의 민주주의도 그 속에서 싹을 틔운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뒷골목 같은 후미진 곳에서만 간신히 행해지는 민주화 투쟁을 보여 줌으로써 현실 상황이 얼마나 폭압적인가 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둘째 연은 여러 가지 소리의 중첩을 통해 이 시대의 공포와 고통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발자욱 소리'에서부터 '탄식 소리'에 이르기까지 구체적 사건의 서술은 일절 배제되어 있으면서도 그 소리들 사이에 놓여 있는 살벌한 상황이 읽는 이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도록 해 주고 있다.

화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의 분노와 비통함으로 흐느끼면서 뒷골목의 나무 판자에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쓴다. 뒷골목에서 '숨죽여 흐느끼며 / 남몰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여주는 이 구절은 그 어떤 산문적 서술보다 뚜렷하게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증언하고 있으며, 아울러 시대의 아픔을 넘어 '저 푸르른 자유'로 달려가겠다는 비장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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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영(李時英)

1949년 전라남도 구례 출생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수(繡)>가 당선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 <채탄> 등이 당선되어 등단

1969년 문화공보부 예술상 수상

198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집행위원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에 참여

1996년 제8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시집 : {만월(滿月)}(1976), {바람 속으로}(1986), {길은 멀다 친구여}(1988), {피뢰침과 심장}(1989), {이슬 맺힌 사랑 노래}(1991), {무늬}(1995), {사이}(1996)


이시영은 한국적인 서정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 의식과 예술 의식을 탄력있게 조화시킨 하나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는 대체로 민중적 현실에 바탕을 둔 비판의 목소리가 주조를 이룬다. 1970년대의 폭압적 정치 현실에 저항하던 민중들의 삶과 사상을 서사적인 골격의 이야기를 가진 '이야기시'로 독특한 리얼리즘 시의 경지를 개척하던 그는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짧은 서정시를 통하여 민중들의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여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새롭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이야기시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교직(交織)하고 있다. 우연히 마주친 용산 역전 밤거리의 한 여인을 통해 화자는 추억 속의 '정님이'를 떠올리게 됨으로써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농촌 공동체의 달콤한 회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러나 무정한 현실로 복귀하는 이 시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결국은 그 달콤함도 잠시만의 행복으로 그치고 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이 시의 사실적 묘사는 197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었던 여러 문제점, 즉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파생된 비참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명랑하고 순박하기만 했던 '정님이'가 식모로, 방직 공장의 여공으로, 다시 영등포 색시집의 창녀로 전락해 가는 삶의 여정은 바로 70년대 후반까지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소녀들의 무작정 상경'을 상기시키는 한편, 리얼리즘 문학관의 기본이 되는 '환경 결정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운명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처럼 '정님이'도 '변두리 인간(marginal man)'이 걷는 삶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물론, 이 시에서 그녀가 정말 '정님이'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라며 단정하지 않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여백을 통해서 농촌을 떠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도시 빈민의 형상은 사회적 개괄성을 획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님이'로 대유된 도시 빈민의 생활은 비참한 것이 틀림없지만, 그녀가 농촌을 떠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은, 이 시가 도시 지식인의 시각에 의해 농촌이 지나치게 이상화되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머슴 만득이'와 진배 없는 신분인데다, '학교도 못 다녔'던 그녀가 농촌에 남아 살았다 해도 결국은 주인을 위해 평생토록 힘겨운 노동을 바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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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선(李聖善)

1941년 강원도 고성 출생

1967년 고려대학교 농학과 및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70년 {문화비평}에 <시인의 병풍>외 4편으로 등단

1972년 {시문학}에 재추천

1988년 강원도 문화상 수상

1990년 제2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94년 제6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6년 제1회 시와 시학상 수상

시집 : {시인(詩人)의 병풍(屛風)}(1974), {하늘문(門)을 두드리며}(1977), {몸은 지상에 묶여도}(1979),{밧줄}(1982), {나의 나무가 너의 나무에게}(1985), {별이 비치는 지붕}(1987), {별까지 가면 된다}(1988), {새벽꽃 향기}(1989), {향기나는 밤}(1991), {절정의 노래}(1991), {벌레 시인}(1994), {샘물 속의 바다가}(4인 공동 시집,1987), {시간의 샘물}(4인 공동 시집, 1990), {지상에는 진눈깨비 노래가}(4인 공동 시집, 1992) 등


이성선은 1970년 등단 이래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혼탁한 시속(時俗)에 때묻지 않은 순수 서정의 자연 세계를 노래하는 매우 특이한 시인이다. 그가 즐겨 찾는 시적 대상은 산, 바다, 별, 나무와 같은 자연물이다. 그는 이 자연물에 대한 관조를 통해 얻은 자족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간결하고 명징한 언어로 포착하여 소위 정신주의 시 세계를 형상화한다.

이 시는 번뇌와 고통 뒤에 새롭게 탄생하는 절정의 세계를 노래하는 한편, 그 새로운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흥미롭게 제시한다. 연 구분이 없는 전 25행의 단연시인 이 시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인 1∼13행에서 화자로 대치된 시인은 설악산 어느 한 줄기에서 '산정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큰 나무'를 바라본다. 그 나무는 '우주 속에 / 대붕의 날개를 펴고 / 날아가'며, '밤마다 별 속에 떠 있다'. 시인은 밤마다 그 나무에서 '춤 없는 춤'을 보고 '말 없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렇다면, 나무가 그에게 전해 주는 무언의 몸짓이란 무엇인가? 모두(冒頭)에서 제시한 '큰 산이 큰 영혼을 기른다'라는 지극한 평범한 진실을 통하여 시인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설악산이 기르는 '큰 나무'는 무엇을 뜻하는가?

둘째 단락인 14∼19행에서 시인은 설악산 나무를 본 일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하고 나서, 나무가 '홀로 절정을 노래하는' 것을 듣기도, '거인처럼 서서 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되는 역설을 통해 셋째 단락에서 마침내 나무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단락에서 시인은 '없다'라는 종결 어미를 세 번에 걸쳐 반복함으로써 '있다'라는 역설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너를 본 일이 없다', '너의 번뇌를 들은 바 없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설악산 '큰 나무'는 '전신이 거문고로 통곡하는' 깊고 깊은 번뇌와 절망을 거쳐 '우주 어느 분'을 만나고 있음을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우주 어느 분'이란 바로 깨달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 깨달음 뒤에 비로소 절정의 노래가 가능해지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큰 나무'가 부르는 '절정의 노래'는 비로소 시인의 것이 된다.

셋째 단락인 20∼25행에서 '다 타고 스러진 잿빛 하늘'의 희생을 딛고서 절정의 환희를 노래하는 나무가 시인의 내부 속으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결국 그 나무는 시인의 감정이 이입된 사물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천상과 지상의 두 수평선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인처럼 서서 우는' 나무가 시인 자신이라는 것은 시인의 정신이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고통스런 통과의례를 거쳐 마침내 우주와 합일되어 우주의 중심에 우뚝 서는 자신의 모습을 '너는 내 안에 있다'라는 구절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물론, 우주와의 이러한 물아일체의 경지는 때묻지 않은 자연 세계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찾고자 하는 구도자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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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鄭喜成)

1945년 서울 출생

1968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

1881년 제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이 시는 민중시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모범 답안이라고 할 정도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정희성은 첫 시집 {답청}에서 전통적인 것, 신화적인 것에 대한 현대적 인식의 가능성을 작품을 통해 점검하기도 하고, 언어의 압축을 꾀하면서 서정성의 진폭을 시험하기도 하다가, 두 번째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이르러 그간의 절제된 형식에서 벗어나 형식의 자유로움과 감수성의 역동적 요건을 확보하며 마침내 현실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이 시집에서 그의 시 세계는 두 가지의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그 하나는 시적 진실성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민중적인 삶에 대한 애착이다. 이 두 가지 지향은 그의 시를 일상적인 삶의 문제와 현실의 국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 원동력이 된다.

이 시는 중년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통해 인생의 궁극적 가치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노동자의 처지에 밀착시킴으로써, 민중시 계열의 많은 시들이 지닌 결함 ― 지식인 화자를 통해 목소리만 높이는 시적 어조의 불균형 문제를 말끔히 해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샛강' 취로 사업장에서 날품을 파는 중년 노동자인 시적 화자는 하루분의 노동을 끝낸 저녁 무렵,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바라보며 '흐르는 것이 물뿐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쉬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잠시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건강하고 활기찬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삶은 그러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보잘것없는 노동의 대가인 줄 알면서도, 또한 천대받는 일인 줄 알면서도 부양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날품을 팔 수밖에 없는 자신의 기막힌 삶을 돌아다 보면서 그는 실의에 빠진다. 이렇듯 적극적인 현실 극복의 의지가 없는 그는 자신을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라고 자학하며, 작업이 끝나면 그저 강가에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돌아가는 일이 전부이다.

그러나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떠오른 달을 새삼 발견하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절망적인 자아 인식 태도를 버리게 될 뿐 아니라, 비록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이지만, 왜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썩은 강물 속에 떠오른 달이지만, 그 달빛의 휘황함에서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게 된 것이며, 나아가 건강성을 회복하고 결연한 의지를 가슴에 담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구절이 단순히 '돌아간다'가 아닌, '돌아가야 한다'라는 당위적 종지형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삽'을 '씻는다'는 것은 노동자인 화자 자신의 생계 수단인 삽을 날카롭게 하여 밝은 미래를 앞당기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와 같은 맥락으로 '돌아갈 뿐이다'와 '돌아가야 한다'는 구절 역시 모순된 현실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겠다는 현실 극복 의지의 적극적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또 한 가지 덧붙일 점은, 이 시가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이미 20년이나 앞질러 통찰함으로써 '생태시' 또는 '환경시'로서의 전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70년대의 왜곡된 근대화 과정에서 말미암은 자연과 인간의 괴리감 내지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저물어서 /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떠올라 물결에 흔들리는 쓸쓸한 달의 모습을 통해 극명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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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권(趙鼎權)

1949년 서울 출생

1971년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1970년 {현대시학}에 <흑판>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85년 제5회 녹원문학상 수상

1988년 제20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91년 제1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2년 제6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1994년 제39회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1977), {시편}(1982), {허심송(虛心頌)}(1985), {하늘 이불}(1987), {산정 묘지}(1991), {신성한 숲}(1994)

시선집: {백지 위에 별빛을}(1985), {풀잎 속 푸른 힘}(1986)


한없이 투명하고 한없이 견고한 정신의 드높은 경지. 그 곳은 조정권의 시가 도달하려는 세계이며, 그 성과로 나타난 것이 곧 <산정 묘지> 시편이다. 정신적 순결성과 이미지의 명징성이 조화롭게 일치를 이룬 세계, 맑고 투명하면서도 유동하지 않고 집중된 응결의 힘을 보여 주는 세계, 그는 바로 이런 공간을 꿈꾸어 왔고, 마침내 그는 그 정점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동양적인 정신주의를 바탕으로 한 치열한 사유의 깊이와 그것을 담아낸 언어 선택의 정점 때문에 그의 시는 명상시(瞑想詩)라고 불리는 한편, 일제 치하 육사의 <절정>을 방불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즉, '하늘도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와 같은 극한적 현실 상황 속에서도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자기 극복과 초월의 모습을 이루어낸 육사의 자세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 시의 '산정 묘지'는 <절정>의 '절정'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산정 묘지>는 30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로 허무와의 싸움을 통해 정신적인 극복을 성취해 가는 초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초인(超人)이란 니체에 의하면 '대지에 뿌리박고 살면서 자력에 의해 자기 극복을 성취함으로써 정신의 상승을 획득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어떤 초자연적, 초현실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의 대결을 통해 자기 극복과 구원을 이루어가는 현실적인 인간이다. 조정권은 그것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시에 '결빙'·'광석· '얼음'·'씨앗'·'뼈' 등과 같은 견고성 이미지들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으며, 이 작품에서는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나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이라는 구절에서 그 같은 초인적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그의 현실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이다. 그의 시에는 '밤'·'어둠'·'겨울'·'결빙'과 같은 하강적 이미지 시어들과 함께 '없다'·'않다'·'못한다' 등의 부정 종지법, 그리고 '가장'·'못내'·'끝내'·'마침내' 등의 단정 부사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비관적인 세계 인식의 태도는 무(無)와의 대결로 응집된다. 그러므로 '산정 묘지'라는 제목의 '산정'과 '묘지'가 뜻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무와의 대결 또는 무의 초극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정'은 지상의 맨끝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공간이며, '묘지'는 삶의 마지막인 죽음의 세계, 곧 무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시인은 이 무와의 첨예한 대결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의 극점에 도달하려는 치열한 초극 의지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이 시는 허무한 지상적 삶을 초월하고, '가장 높은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산정 묘지'에 다다르려 하는 시인의 현실 초극 의지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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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鄭浩承)

1950년 경상남도 하동 출생

1983년 경희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설굴암에 오르는 영희>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 당선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함께 반시(反詩) 동인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위령제> 당선

1989년 제3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슬픔'의 시인 정호승은 인간을 옹호하고 민중을 신뢰하는 낙관주의적 태도와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따스한' 작품 세계를 펼쳐 준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슬픔의 내용을 확장시키거나 깊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시인으로, '슬픔'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시적 사색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전통적인 정서인 한이나 비애의 세계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것으로, 그는 이 '슬픔'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의 아픔, 전쟁이나 분단, 독재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상처까지도 끌어안고 따뜻이 위무해 준다. 이처럼 그는 현실의 모순 아래서 고통받고 있는 삶을 노래하면서도 그 삶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미래 지향적 자세를 보여 준다는 면에서 그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중 시인으로 평가하는데 망설임이 없게 한다.

이 시는 그의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 실려 있는 대표작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운명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화자인 '나'로 대치된 시인은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서 있다. 그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세상 속으로 고단한 길을 떠난다.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에서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다시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심화되는 과정을 통해 그가 그토록 기다리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슬픈 것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될 때이다. 이처럼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시인의 밝은 눈은 자신의 '인생을 내려놓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기에다 '슬픔', '기다림', '아름다움'이 저녁 들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고즈넉하고 쓸쓸함의 정서는 이 시를 더욱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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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인(金明仁)

1946년 경상북도 울진 출생

1969년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출항제(出港祭)>가 당선되어 등단

1976년 김창완, 이동순, 정호승, 김성영 등과 '반시(反詩)' 동인 활동

1992년 제3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

1992년 제7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현재 경기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 : {동두천(東豆川)}(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물 속의 빈 집}(1991),{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김명인의 시 세계를 관류하는 시적 원리를 한 마디로 말하면 추억이다. 그러나 그의 추억은 아름다운 과거보다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가깝고, 과거의 것이면서도 오늘 속에 선명하게 남아 그의 존재를 구속한다. 상처난 과거로서의 추억이라 하더라도 평생 동안 가슴에 묻어 두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치유하려 한다. 그의 얼룩진 추억은 6·25와 아버지라는 두 가지 어둠으로 대별된다. 전쟁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로서는 전쟁으로 훼손된 유년의 체험을 형상화하는 한편, 전쟁이라는 극한 공간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과거의 기억은 아버지로 상징된 절대성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어둠은 그의 시를 공간적으로는 변두리 선호 경향을 드러내게 하며, 의식면에서는 서민 또는 하층 민중 지향적 경향을 띠게 하였다. 그의 초기시의 대표작인 <동두천>, <켄터키의 집>, <베트남>, <아우시비쯔>, <영동행각(嶺東行脚)> 등의 시편들이 모두 그 같은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그가 대학을 마친 직후 동두천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잠시 교사 생활을 할 때 만났던 무수한 혼혈아들을 떠올리며 지은 작품으로, 동두천역 저탄더미에 내려 쌓이는 눈을 통해 혼혈아와 같은 소외된 인간의 설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유년의 전후 폐허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된 허무 의식과 유신 체제라는 70년대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에서 형성된 절망적 현실 의식이 작품에 투영됨으로써 이 시는 과거의 어두운 기억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도 캄캄한 어둠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의 시적 배경인 동두천은 우리 민족에게 일종의 상처와도 같은 도시이다. 동족 간의 비극적인 전쟁에 개입했던 미국 군대가 아직까지 머무르고 있는 그 곳엔 그들을 상대로 몸을 팔아 살아가는 여자들이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는 약소 민족의 슬픔을 자신의 운명으로 안고 혼혈아라는 이름의 불행한 아이들이 태어난다. 시인은 그 도시에서, 그것도 떠나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의 운명을 표상하는 기차역에서 저탄더미에 떨어져 내리는 눈을 바라다 본다. 신호등이 바뀌자 서둘러 떠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인생도 저렇게 '어디론가 / 가고 있는 중'이라는 상념에 잠겨 있다가, 혹시나 군중에서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 / 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처럼 '파묻혀 흐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눈이 아무리 깨끗하다 할지라도 '내리는 눈일 동안만' 깨끗할 뿐, 떨어져 녹는 순간 석탄과 구분되지 않는 진창의 검은 물이 되어 흐르는 것을 발견한 그는 결국 제 아버지들을 따라 바다를 건너가게 될 혼혈아들의 운명이 바로 그와 동일함을 깨닫게 된다. 낯선 나라 험한 세상에서 그들이 어린 날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첩첩 수렁 너머의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 하는 이 땅이야말로 절망적인 진창길임을 알고 있는 시인은 마침내 그들과 하나가 되어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흘러가게 하느냐'라고 부르짖는다. 여기서 '그리움'이란 좀더 순수하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이 '더럽다'는 것은 그 희망이 늘 우리를 배반했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처음엔 '눈'처럼 순수했던 우리였지만, 그리움에 현혹되어 진흙탕의 눈물이 되고,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욕망에 이끌려 현실을 '신기루'처럼 여기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흘러가게 되는 막막한 존재의 설움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 '눈물'은 중의적 의미로, 눈이 녹은 물인 동시에 시인이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가 순수한 사람임을 알게 하는 행위이지만, 이 눈물도 역시 눈 녹은 물처럼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을 벗어날 수 없'다. 한편, 자신의 순수한 시가 맞이하게 될 운명도 결국 그와 같을 것임을 알고 있는 그는 마침내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현실의 진창까지도 다 건너야 비로소 순결한 새벽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순수한 눈이 녹아 떨어지는 이 진창과, 자신의 순수한 시가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고 끌어안아야 하는 그 어두움이야말로 새벽으로 상징된 순수한 인간적 삶에 다다를 수 있는 유일한 통과 의례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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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규(金光圭)

1941년 서울 출생

1964년 서울대학교 독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5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1981년 제1회 녹원문학상 수상

1981년 제5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1984년 제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현재 한양대학교 독문과 교수

시집 :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 {반달곰에게}(1981),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크낙산의 마음}(1986), {좀팽이처럼}(1988), {아니리}(1990), {물길}(1994)


김광규의 시는 대부분 평이한 언어와 명료한 구문(構文)으로 씌어진 일상시(日常詩)이면서도 그 속에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그를 흔히 난해시에 식상한 독자와의 통교(通交)를 회복시킨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시 역시 일상적 삶에서 얻은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평이한 표현 방법을 통해 중년기 사내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명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는 화자가 중심이 된 간단한 줄거리가 담겨 있다. 4·19가 일어나던 무렵, 젊은 혈기와 '때묻지 않은' 순수로 살던 화자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어느 '세밑', 중년의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옛 추억이 서린 곳에서 동창들을 만난다. 그들은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기'고 전화번호가 달라진 만큼,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부와 지위를 얻은,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중년이 되어 있다. 월급이 대화의 전부가 되고, 물가가 고민의 주종을 이루는 소시민의 중년이 되어 버린 그들은, '늪' 같은 일상적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옛사랑'을 노래하던 젊음을 떠올려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포커'나 '춤'으로 대표되는 향락적 세계를 즐길 뿐이다. 그러므로 행여 누가 들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그저 '살기 위해 살고 있'는 소시민적 생활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 순수와 젊음을 반추시켜 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다만 '플라타너스 가로수'만이 간신히 남아 그들을 반겨 주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하얀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없는 자신들을 확인할 뿐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라며 꾸짖는 것 같은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도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는 화자의 무거운 발자국에서, 우리는 유수 같은 세월 속에 젊음과 열정, 순수와 이상을 잃어버리고 거의 맹목적일 만큼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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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권(宋秀權)

1940년 전라남도 고흥 출생

1962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산문에 기대어> 등이 당선되어 등단

1975년 문화공보부 예술상 수상

1987년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1988년 제2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1992년 서라벌 문학상 수상

시집 :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꿈꾸는 섬}(1982), {아도(啞陶)}(1984), {새야 새야 파랑새야}(1986), {우리들의 땅}(1988),{별밤지기}(1992) 등


이 시는 종래의 한국 서정시가 갖고 있던 부정적 허무주의를 남도(南道)의 서정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 극복하고 역동적인 경지의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은 송수권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이다. 이 시에서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소재들을 튼튼한 민족적 정서를 바탕으로 원초적 삶을 희구하는 방향으로 초기시를 출발시킨 그는 민족에 대한 사랑에서 민중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분단 조국에 대한 역사 의식으로까지 점차 확대시켜 나아가는 중에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전통시가 아니다. 그의 시는 우리 가락과 소재와 정서를 노래하면서도 소월이나 영랑의 감상과 나약으로 치우친 취약점을 극복하고 있으며, 전통적 한의 세계 표출과 토속어의 사용이라는 면에서는 박재삼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박재삼에게 없는 민중적 힘의 분출이 들어 있다. 한편 박용래가 갖는 고향 정경과 유년으로의 지향 등 한국적 정서와도 공유하지만, 박용래가 다분히 과거 지향적임에 비해 그는 역사 속으로 전진하는 특이한 전통시 세계를 보여 준다. 게다가 신경림이 주로 농민과 농촌 현실의 고통, 모순, 비리 등에 초점을 맞춘 농촌 현장으로의 시, 즉 현실 인식을 일깨워 주는 시를 지향하는 데 반해, 그는 농촌의 가락과 정서를 형상화하여 여유와 원초적 인식을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완연한 차이를 갖는다.

이 시에서의 '산문'은 단순히 절문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경계의 문으로 윤회와 부활을 상징한다. 이 시는 3연으로 구성된 자유시로 첫째 연은 '누이야 ∼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5항의 목적어가 결합된 형태의 구조이며, 둘째 연과 셋째 연은 첫째 연과 같은 질문에 목적어가 각각 2항, 1항이 결합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목적어인 '가을 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의 의미는 죽음이다. 시인의 전기적 사실을 참고한다면,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와 자살한 동생을 누이로 대치시켜 누이의 눈썹이 가을 산 그림자에 묻혀 떠돌고 있는 이미지로 부각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시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무주고혼(無主孤魂)으로 인간이 이승에서 못 다 풀고 간 한(恨)의 덩어리이다. 그러나 그가 힘의 역학을 추구하면서 한의 덩어리가 승화되기를 누누히 강조한 점을 고려해 볼 때, '눈썹'이란 죽음이자 부활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어는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이다. 여기서 '즈믄 밤의 강'은 모든 것을 잠재우고 어둠 속에 묻어 버린 대상으로 결국은 죽음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누이가 보는 것은 그런 강이 아니라, 그 강이 '일어서는 것'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 ― 재생'의 패턴 속에서 강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자작시 해설을 따르면, 죽은 누이의 혼은 신선한 물방울로 만나기도 하고,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또는 물속에서 반짝여 오는 돌의 모습으로 부활되어 생명을 얻는다.

이렇게 일관되게 추구된 부활 의지는 마침내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 건네이던' 암시적 행위로 마무리된다. '누이야 ∼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의 마지막 목적어인 이 행위는 누이가 겪은 부활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자, 불교에서 말하는 생명의 인과 법칙과 윤회를 암시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산문에 기대어>라는 이 시의 제목과도 일치되는 관조와 깨달음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연에서도 그 같은 부활 의지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샘솟고 있으며, 시인은 죽은 누이와 마주앉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는 슬픈 제의(祭儀)를 되풀이하는 행위를 통해 비극적 삶을 인식하고 있다. 셋째 연은 누이의 부활 내지 환생에 바치는 시인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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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복(李晟馥)

1952년 경상북도 상주 출생

1982년 서울대학교 불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7년 {문학과 지성}에 <정든 유곽(遊廓)>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82년 제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0년 제4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 {남해 금산}(1987), {그 여름의 끝}(1990),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2)


이성복은 평상인들을 뛰어넘는 특유의 상상력에 의한 자유 연상의 기법으로 등단부터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시인이다. 현실과 직결되며 현재의 불행을 구성하는 온갖 누추한 기억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연상은 초현실주의 시를 방불하게 하는 현란한 이미지를 빚어낸다. 이처럼 현실과 밀착된 기억에서부터 창출해내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바로 왜곡된 현실을 고발하는 시적 방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보편적이고 공적인 차원으로까지 그 의미를 확대시킬 수 있다. 삶의 범주 차원에서 그의 시가 암시하는 것은 모든 사물은 상관적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유일한 핵심은 없다는 점이다.

이 시는 연상의 원리를 특징으로 하는 이성복의 초기시 대표작이다. 시적 화자의 연상에 의해 그려지는 일상의 소묘는 무감각하게 마비된 병든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에서 가족이란 삶의 기본 단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이 시에서 보는 것처럼 초기시에서는 주로 피폐하고 타락한 현실의 초상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인 아버지의 움직임에서 출발한 연상 작용은 여동생과 어머니에 이어, '나'에까지 이른다.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 비해 무기력하게 소일하는 화자 자신의 자괴감을 엿볼 수 있다. 젊은 그가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행동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 비추어 전방의 무사함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불안한 휴전 상태가 삶의 조건이 되어 있는 현실은 전방이 무사하기만 하면 세상은 완벽하다는 아이러니를 유발시킨다. 이러한 연상의 고리는 통치의 미비함을 무마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시 상황을 강조하던 당시의 정치 현실에 대한 은밀한 비판을 이루기도 한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없는 것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뒤이어 나타나는 창녀들에 대한 연상을 통해 화자는, 이 현실이 없어야 할 것조차 있는 부조리의 세상임을 강조한다. 게다가 더욱 섬뜩하게 이어지는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의 연상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으로까지 연결되는 강한 현실 부정에서 비롯된다. 집일을 돕는 애들의 연상은 가장인 아버지의 피로한 일상으로 다시금 이어지고, 여동생의 데이트에 대한 상상에 이어 '멋진 여자'를 본 기억으로 가 닿는다. 자신의 잘 풀리지 않는 사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끝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과격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완벽한 세상'에서 태평스럽게 노닥거리는, 그러나 전혀 편하지 않은 '나'의 현실은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들이 모두 다 새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며,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 삶까지 솎아내는 것'과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 무너뜨리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는 등 곤고한 사람들의 삶에 가 닿는다. 그러다가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의 / 다정함'을 떠올리기도 하고 교통 사고로 인해 여러 사람이 죽는 사건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향락을 즐기기만 할 뿐, 죽어가는 사람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한다며 씁쓸해 한다. 결국 화자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시행으로 시상을 마무리하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궁핍과 퇴폐의 현실적 삶 속에 살아가는 존재일 뿐 아니라, 이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한 곳인지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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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호(崔勝鎬)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

1975년 춘천교육대학 졸업

1977년 {현대시학}에 <비발디>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82년 제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1985년 제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0년 제2회 이산 문학상 수상

시집 : {대설주의보}(1983), {고슴도치의 마을}(1985), {진흙소를 타고}(1987), {세속도시의 즐거움}(1990), {고해 문서}(1991), {회저의 밤}(1993),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1995), {반딧불 보호구역}(1995)


최승호의 시는 진지한 명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가 펼치는 시적 의장도 무겁고 절제된 운율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노래하거나 읊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시는 '들여다 보는' 것이며, 독자는 명상하는 시인의 곁에서 함께 명상하도록 권유받는다. 그가 첫 시집 {대설주의보}에서부터 일관되게 명상하는 대상은 '죽음'과 도시화 현상에 겪는 일상적 경험들이다. 그는 그것에서 비정하고 절망적인 관찰자가 되어 현대인의 본질적 모순을 정확히 읽어낸다. 죽음에 관한 명상의 매개로 사용하는 소재들은 '지하철', '자동 판매기', '자동차', '변기', '똥', '기계', '공해' 등 다양한 도시적 물상들로, 그가 가진 비판적 세계관이 문명화 또는 산업화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종말론적 위기감 속에서도 그는 결코 종교적 초월이나 내면 세계로의 도피를 꿈꾸지 않는다. 속악한 세계는 반드시 속악한 인물을 통해서만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그의 시는 현대인들의 본질을 그 같은 모순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른 도시시들처럼 경박하지도 유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심각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시는 지성적 판단과 철학적 사유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 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의 표제시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세속화된 현대인들의 모순된 삶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제목 '세속도시의 즐거움'이란 세속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비극적 삶을 역설과 반어로 나타낸 것이다. 문명의 세속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왜곡의 전형적 양상은 물신(物神) 숭배로, 이 시에서 우리는 이 물신 숭배가 빚어낸 극단적인 인간 소외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감으로 인한 단순한 의미의 소외감이 아니라, 영안실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죽음의 비애라든가 엄숙함, 또는 진지함이 전혀 나타나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인간 왜곡 현상으로서의 극한적 소외이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에 의해 관찰된 영안실 풍경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풍경은 남편의 죽음인지, 시부모의 죽음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 곡하던 여인'이 '늦은 밤 손익을 / 계산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며, 두 번째 풍경은 영안실을 찾아온 문상객들이 보여 주는,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로서의 모습이다. 주검을 옆에 두고도 슬픔에 잠기지 않는 대신, 오히려 진지한 자세로 부조금을 계산하는 여인의 모습과, '외로운 시체를 위한 밤샘'이 아니라, 문상을 돈버는 기회로 삼고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는 우리 시대의 문상객들을 보여 주는 데 시인은 조금도 인색하지 않다. 이러한 극단적 인간 왜곡을 보여 주면서도 시인은 그 추악한 세속적 욕망의 인간 소외를 증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늘한 / 허'를 느끼고 있다. 그것도 죽은 자에서가 아니라, 산 자에게서 느끼는 허전함이라는 데서 이 시인이 추구하는 문명 비판의 시 세계가 허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아울러 죽음이라는 자연적 현상을 생전에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인은 나아가 '큰 도적에게 큰 슬픔이 있으리라'라는 극단적인 역설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그것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생의 마지막 귀결점이 아니라, 육신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거룩한 출발점으로 인식하는 이 시인에게서 우리는 왜곡된 인간 존재의 슬픈 모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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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지우(黃芝雨)

1952년 전라남도 해남 출생

서울대학교 미학과 및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1980년 {문학과 지성}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83년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1년 제36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4년 제8회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 (1985), {나는 너다}(1987), {게 눈 속의 연꽃}(1990) 등


80년대의 시가 세칭 민중시와 형태 파괴시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때, 그 두 가지 흐름을 하나로 통합시키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시인이 바로 황지우다. 그가 이질적인 두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던 바탕은 물론 섬세한 서정성이다. 그는 민중시 운동이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던 극단적인 이념 추구 방향뿐 아니라, 순수시의 정서적 안일성까지도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다양한 실험적 기법을 사용, 언어의 힘을 최대로 활용한다.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쓰고자 했던 그가 바라본 80년대는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찬 곳이자, 차라리 초월해 버리고 싶은 환멸의 공간이었다. 이 시는 바로 그러한 현실 인식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폭압적 현실 상황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을 풍자라는 수법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풍자라는 면에서는 당대의 그 어떤 시도 달성하지 못한 극적인 야유 효과를 갖고 있으며, 그 효과의 실체는 신성 모독에 있다.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환멸적 인식과,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자괴감은 극장에서의 애국가 상영을 매개로 형상화됨으로써 충격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관람석의 불이 모두 꺼진 캄캄한 극장은 바로 암울한 현실 상황을 표상하며, '삼천리 화려 강산'을 배경으로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관객들은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 맹목적인 삶을 따라야 했던 당시의 민중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한 사람인 화자는 '삼천리 화려 강산'을 떠나 줄지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극장 화면의 새떼들을 보며, '한 세상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우울한 소망을 갖는다. 그 같은 소망도 잠시일 뿐, 애국가가 끝나는 순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화자는 더 큰 좌절감에 빠져든다. 여기서 '삼천리 화려 강산'이란 풍자의 대상인 조국이 더 이상 '화려 강산'일 수 없다는 역설로 쓰이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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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택(金龍澤)

1948년 전라북도 임실 출생

순창 농림고등학교 졸업

1982년 {21인 신작 시집}에 <꺼지지 않은 횃불>, <섬진강·1>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86년 제6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섬진강}(1985), {맑은 날}(1986),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꽃산 가는 길}(1988), {그리운 꽃편지}(1989), {그대, 거침 없는 사랑}(1994), {강 같은 세월}(1995)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은 우리 시대의 가장 소중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 세계는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는 농촌, 풀 한 포기, 어머니의 머릿기름 냄새 등에서 출발점을 이룬다. 그가 쏟아 넣는 애정의 대상은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주변 사람들이거나 지나치기 쉬운 주위의 흔한 사물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도시인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시가 갖는 소중함은 농촌에 대한 친근감 넘치는 섬세한 묘사가 단지 현상 파악에 그치지 않고, 매서운 비판의 시선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리고도 투명한 정서 속에 숨어 있는 당당함이 그의 시를 그의 시로 존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농촌 실정을 왜곡하는 도시의 위정자나 정책 당국에 대한 강한 외침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로부터 비롯된다. 그와 함께 그의 시에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공동체에 대한 소박한 소망이 깔려 있다. 그 소박함이야말로 화려한 논리가 난무하고 가치가 왜곡된 현실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고려할 때, 그의 시는 더욱 존재 가치를 얻게 된다. 거기에다 전라도 사투리로 진행되는 가사체, 타령조, 판소리체 가락과 형식은 그의 시를 옹골찬 비판의 맛이 잘 드러나게 하는 동시에, 농촌 공동체적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킨다.

김용택의 등단작이자, 첫 시집이면서 대표 시집인 {섬진강}의 표제시이기도 한 이 시는 오늘의 김용택을 있게 한 작품으로, 같은 제목의 연작 시편이 30편 가까이 된다. 이 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용택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섬진강같이 맑고 투명하면서도 진한 서정성이다. 이 서정성은 섬진강 강변 마을의 아름답고 서럽고 한맺힌 삶의 실상을 어루만져 끌어안는 그의 기막힌 언어 구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섬진강을 어머니의 젖줄로 하여 질박한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남도 사람들의 가슴 속 상처가 된 응어리진 한과 설움을 보여 주는 한편, 그들의 설움을 위무해 주는 포용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전라도 실핏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는 섬진강은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에 피어난 '토끼풀꽃'과 '자운영꽃'같이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온갖 서러운 '어둠을 끌어다 죽이'는 젖줄로 흐를 뿐 아니라, '그을린 이마'로 제시된 남도의 깊은 한을 달래며 '훤하게 꽃등도 달아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섬진강은 지역에 따라서는 영산강을 가까이 불러내기도 하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한편, 지리산과 무등산 사이를 굽이치며 흘러가면서 남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 산을 교통, 결합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 한구석도 빼놓지 않고 남도 전체를 푸근히 얼싸안고 흘러가는 섬진강이기에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로 제시된 위정자 내지 정책 당국이 아무리 남도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해도 그들은 결코 위축되거나 굴복되지 않을 것임을 몇 번씩이나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시는 남도의 지극한 한과 설움의 세계로까지 심화, 확대되어 마침내 폭넓은 민중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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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해

본명 : 박기평(朴基平)

1958년 전라남도 고흥 출생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1983년 {시와 경제}에 <시다의 꿈>외 6편을 발표하여 등단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 수상

현재 세칭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중

시집 : {노동의 새벽}(1984), {참된 시작}(1993)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박노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산업 현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 체험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낸 시인이다. '노동 해방'의 약자인 '노해'를 그의 필명으로 삼은 그는 노동운동사상 '전태일' 이후 노동자의 대표적 상징체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히 독자층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1980년대 노동문학, 혹은 노동자 문학의 활성화에 불을 당긴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 후 소위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989년 결성된 세칭 '사노맹'의 중앙 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현재 복역중에 있으며, 옥중에서 쓴 작품들을 모아 1993년 {참된 시작}을 출간하였다.

{노동의 새벽}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작품이다. '현장적 구체성', '체험의 진실성', '최고 수준의 정치적 의식과 예술적 형상화 능력' 등의 말로 칭송받았던 이 시집의 작품들은 지식인의 관념이 아닌, 노동자의 노동 현장의 일상적 삶이 노동자의 언어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의한 부정의 대상이었다.

{노동의 새벽}의 표제시인 이 시는 5연 40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의미상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연으로 철야 작업을 끝내고 나서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라고 위기를 느끼는 발단 부분이다. 둘째 단락인 2,·3연은 화자의 서로 상반되는 자세가 나타나는 전개 부분이다. 즉, 2연은 '오래 못가도 /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나타내며, 3연은 '진이 빠진 / 스물 아홉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운명을 어쩔 수 없다'는 갈등이 상반된다. 셋째 단락인 4연에서는 '차거운 소주를 붓는' 행동이 '분노와 슬픔을 붓는' 행동으로 바뀌는 전환 부분이다. '슬픔'은 앞에서 나타났던 갈등의 연속이라면, '분노'는 체념을 넘어서는 힘이 된다. 넷째 단락인 5연은 절정과 화해를 이루는 부분으로, 4연에서의 분노의 힘이 더욱 확산되어 '절망의 벽을 /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 거치른 땀방울'로 퍼져나간다. 절망은 사라지고, 그 대신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희망과 단결의 의지를 다지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 '노동의 새벽'에서 '노동'은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의미하며, '새벽'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지펴려는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고통과 초월이라는 대립 구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단순한 대립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갈등과 전환은 '절망의 벽'으로 제시된 노동 현실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절실히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